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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쿠모노가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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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햐쿠모노가타리는 일본의 괴담 놀이 형식으로, 참가자들이 촛불을 켜놓고 괴담을 이야기하며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놀이는 에도 시대에 유행했으며,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햐쿠모노가타리는 전국 시대 무사의 수련에서 시작되어 오락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서구화의 영향으로 미신으로 배척받기도 했지만, 다시 괴담 소설의 유행으로 부활하기도 했다. 햐쿠모노가타리는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금기와 불안을 반영하며, 근대적 괴이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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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쿠모노가타리
개요
명칭햐쿠모노가타리
로마자 표기Hyaku-monogatari
의미백 가지 이야기
유형괴담
기원에도 시대
목적영혼 소환 의식
관련 문화일본
유래 및 의식
유래원래는 무사들이 담력을 키우기 위해 했던 놀이에서 유래
의식 방법여럿이 모여 등불을 100개 켜 놓는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등불을 하나씩 끈다.
마지막 등불이 꺼지면 요괴나 유령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야기 주제괴담, 전설, 미신 등
준비물100개의 등불
칼 (요괴를 퇴치하기 위함)

부적
특징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방 안이 어두워지고 분위기가 고조된다.
마지막 이야기가 끝나면 실제로 요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다.
대중 문화
현대적 변형현대에는 공포 영화, 게임, 소설 등의 소재로 활용
예시영화: 링, 주온
게임: 사일런트 힐, 령
소설: 기담, 도쿄 이문

2. 역사

햐쿠모노가타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괴담회로,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햐쿠모노가타리의 기원은 곤자쿠 이야기집의 백귀야행, 무가담력 시험이나 종교 의례, 전국 시대 이야기꾼 오토기슈(御伽衆) 등에서 찾을 수 있다.[9][10][3] 에도 시대에는 문학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고,[12] 메이지 시대 이후 서구화의 영향으로 쇠퇴했다가 다이쇼, 쇼와 초기에 다시 유행하였다.[16][17]

2. 1. 기원과 초기 형태

후쿠타 아지오의 《일본민속대사전》(日本民俗大辭典)에서는 햐쿠모노가타리의 원류를 《곤자쿠 이야기집》의 백귀야행 등에서 찾았다.[9] 최가진은 《곤자쿠 이야기집》이 성립된 시기가 헤이안 시대 후기이므로 이때부터 햐쿠모노가타리 괴담회가 이루어졌다고 추정하는데,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모이는 괴담회가 일종의 '놀이' 개념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10]

햐쿠모노가타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나는 무가나 마을의 젊은이들이 담력 시험이나 진혼공양과 권선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의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전국 시대에 귀족이나 무사의 밤을 지키며 이야기를 들려주던 전문 이야기꾼 오토기슈(御伽衆)가 괴담이나 골계담을 선보였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3] 이 두 가지 설에서는 햐쿠모노가타리가 일상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닌, 일정한 법칙 하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 일종의 의례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1]

에도 시대 후기의 국학자 기타무라 노부요는 수필 《기유 쇼란》(嬉遊笑覧, 1830년)에서 햐쿠모노가타리의 형식상 기원이 중세의 "메구리모노가타리"(巡り物語)가 아닐까 고찰하고 있다. 메구리모노가타리는 몇 명의 이야기꾼이 서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임 혹은 그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로, 수필에서는 이것이 본래 불신영험(仏神霊驗)담을 이야기하던 것에서 기원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여럿이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메구리모노가타리의 형태에서 무섭고 괴이한 이야기만을 나누는 괴담회가 파생되어 나왔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4] 한편, 오리쿠치 시노부는 방 안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함으로써 외부에서 접근하는 마물에게 "여기에는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는 "후루야노모리"(古屋のもり)라는 이야기 유형이 괴담을 이야기하는 장의 원점에 있었고, 그것이 햐쿠모노가타리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2]

2. 2. 에도 시대의 발전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괴물 저택 햐쿠모노가타리 그림》(化物屋敷百物語の図), 보스턴 미술관 소장


에도 시대에 햐쿠모노가타리라는 용어는 여러 문학 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했으며, 1659년 《햐쿠모노가타리》에 처음 등장하였다.[12] 이 책은 통속적인 산문인 가나조시에 속하며, 상권과 하권 각 50화씩 총 100화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서문에서는 괴담회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수록된 이야기들은 괴담이 아닌 단순한 이야기나 잡담이어서 괴담 계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괴담회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이듬해인 1660년 《도노이구사》(宿直草) 권2 제3화 〈햐쿠모노가타리를 하여 거미의 다리를 자른 이야기〉(百物語して蜘蛛の足をきる事)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괴이한 이야기 백 개를 하면 실제로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는 속설에 따라 햐쿠모노가타리를 열고, 아흔아홉 번째 이야기가 끝났을 때 천장에서 굵은 손이 내려와 안주를 가져가려 하자 칼로 베어 보니 거미의 다리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햐쿠모노가타리는 다양한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내용과 형식 면에서 햐쿠모노가타리 괴담회를 재현한 괴담 작품으로는 《쇼코쿠 햐쿠모노가타리》(諸国百物語, 1677년)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햐쿠모노가타리 계열의 에도 시대 산문 작품으로는 《햐쿠모노가타리 효반》(百物語評判, 1686년), 《쇼코쿠 신햐쿠모노가타리》(諸国新百物語, 1692년), 《오토기 햐쿠모노가타리》(御伽百物語, 1706년), 《고쇼쿠 햐쿠모노가타리》(好色百物語, 1701년), 《고콘 햐쿠모노가타리》(古今百物語, 1751년), 《반세 햐쿠모노가타리》(万世百物語, 1751년), 《다이헤이 햐쿠모노가타리》(太平百物語, 1732년), 《도세 햐쿠모노가타리》(当世百物語, 1762년), 《신센 햐쿠모노가타리》(新選百物語, 1766년), 《신세쓰 햐쿠모노가타리》(新説百物語, 1767년), 《긴다이 햐쿠모노가타리》(近代百物語, 1770년) 등이 있다. 이러한 가나조시, 우키요조시, 요미혼과 같은 산문 장르뿐만 아니라 우키요에(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햐쿠모노가타리》 등), 교카, 조루리, 고칸, 기묘시와 같은 삽화집 등 햐쿠모노가타리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다.[13]

다치카와 기요시에 따르면, 햐쿠모노가타리는 전국 시대에는 무사들의 단련을 위한 진지한 행사였지만,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락적이고 향락적인 성격이 강해졌다고 한다. 근세 초 만지간분 시기에는 햐쿠모노가타리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엔호 시기를 기점으로 신뢰성이 떨어졌고, 조쿄, 겐로쿠 시대에는 오락적이고 향락적인 것으로 변모하였다. 교호 연간에는 요괴를 실제로 보려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놀이로 변화하였다. 햐쿠모노가타리 괴담집에는 햐쿠모노가타리 괴담회를 배경으로 성립했다는 기술이 있었으나, 《오토기 햐쿠모노가타리》 이후로는 이러한 기술이 사라졌다.[14]

에도 시대에 괴담을 이야기하는 풍조가 유행했지만, 햐쿠모노가타리라는 형식이 실제로 행해졌는지, 그리고 괴담집 출판의 성행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기록이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6][15]

2. 3. 근대 이후의 변화

메이지 시대 이후 서구화와 합리주의를 지향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괴담을 미신으로 배척하는 경향이 생겨났다.[16] 그러나 다이쇼, 쇼와 초기에는 괴담 소설이 다시 유행하면서 풍류계와 문학계에서 햐쿠모노가타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창작하고, 실제로 괴담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가시 마사오는 이 당시의 햐쿠모노가타리 유행을 메이지 유신 이래 서구화 정책이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 서양 심령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보았다.[17]

근세 햐쿠모노가타리 전통의 형식적, 기능적 측면을 계승하는 이 시기의 모임과 작품은 소신문이나 잡지 등 근대적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되어 괴담의 새로운 발원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18] 또한, 인간 중심의 근세적 괴이관이 근대 과학이나 의학과 결부하여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이 괴이 현상과 연관된다는 새로운 괴이관이 형성되었다.[19] 괴이를 긍정하는 근세적 사고와 이를 부정하는 근대의 계몽적 사고가 뒤얽혀 충돌하여 혼재가 표출되고,[20] 신문물과 서구 심령주의가 혼합되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근대적 괴담이 생겨났다.[19]

3. 형식

아사이 료이의 《오토기보코》에 묘사된 햐쿠모노가타리. 등불을 끄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햐쿠모노가타리 괴담회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첫 기록은 아사이 료이의 가나조시 《오토기보코(1666년)》에 실려 있다.[21]

예로부터 사람들이 전해 오던 무서운 이야기와 기이한 이야기를 모아서 백 가지 이야기하면 반드시 무서운 일이나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에는 정해진 방식이 있다. 달빛이 없는 어두운 밤에 등잔에 불을 켜는데, 그 등불은 푸른 종이로 바르고 백 개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이야기 하나를 마칠 때마다 심지 하나씩을 뽑아내면 좌중이 점점 어두워지고, 푸른 종이의 색이 변하면서 어쩐지 스산한 분위기가 된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반드시 기이한 일이나 무서운 일이 나타난다고 한다. (중략) 속담에 "낮에는 남을 험담하지 말라. 남을 험담하면 해가 생긴다. 어두운 밤에는 귀신 이야기를 하지 말라. 귀신 이야기를 하면 괴이한 일이 생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백 편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여기에서 붓을 멈춘다.[22]

3. 1. 기본 형식

햐쿠모노가타리의 기본적인 형식은 참가자들이 촛불을 켜놓고 둘러앉아 차례로 괴담을 들려주며,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끄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1815년에 간행된 《교훈 햐쿠모노가타리(教訓百物語)》의 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이미 근세 시기에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11] 오늘날 대중매체에서도 햐쿠모노가타리는 여러 개의 촛불을 켜놓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밤늦도록 괴담을 나누는 모습으로 묘사된다.[11]

3. 2. 금기시되는 놀이

"반드시 무서운 일이나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는 기술에서 알 수 있듯, 햐쿠모노가타리는 오래전부터 금기시되는 놀이 행위이자 금기를 위반하는 도구로 작용하였다.[11][23] 실제로 일본 각 지방 풍속에서는 햐쿠모노가타리를 금기시하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24]

4.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영향

햐쿠모노가타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괴담 문화로, 한국과 일본 양국의 문화, 예술, 대중매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햐쿠모노가타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괴담과 유사한 점이 많아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특히, 햐쿠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요괴나 귀신은 한국의 전통적인 요괴나 귀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한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햐쿠모노가타리의 인기는 한국의 문화, 예술, 대중매체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

햐쿠모노가타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괴담 문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일본인들의 삶과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햐쿠모노가타리는 일본의 문학,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햐쿠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요괴나 귀신은 일본의 전통적인 요괴나 귀신으로 묘사되어 일본인들에게 공포와 흥미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5. 심리적, 사회적 의미

百物語일본어는 본래 에도 시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놀이의 일종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초를 켜놓고 무서운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초를 하나씩 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의식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참가자들에게 심리적,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百物語일본어는 공포를 극복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기능을 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긴장감을 느끼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초를 끄는 행위를 통해 공포를 통제하고 해소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공포를 공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대감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百物語일본어는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를 전달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괴담에는 종종 권선징악, 인과응보와 같은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사회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행동 양식을 제시하고 규범을 내면화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百物語일본어는 세대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년층이 젊은 세대에게 구전 설화를 전달하며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현대 사회에서 百物語일본어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이어지고 있다. 공포 영화, 드라마, 소설, 게임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百物語일본어의 모티프를 차용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괴담을 공유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百物語일본어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인 공포를 다루고 공동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문화적 장치로서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참조

[1] 서적 日本民俗大辭典 <下> 吉川弘文館 2000
[2] 서적 昔話の森:桃太郎から百物語まで 大修館書店 1998
[3] harvnb 2010
[4] harvnb 2007
[5] harvnb 2014
[6] harvnb 2009
[7] harvnb 2009
[8] 저널 일본문학과 문화콘텐츠 - 『쇼코쿠 햐쿠모노가타리(諸國百物語)』에서 <게게게노 기타로(げげげの鬼太郎)>까지- 우리어문학회 2019
[9] 서적 日本民俗大辭典 上 吉川弘文館 1999
[10] harvnb 2017
[11] harvnb 2017
[12] 서적 百物語全注釋 勉誠出版 2013
[13] harvnb 2009
[14] 저널 百物語怪談集成 国書刊行会 1987-07
[15] harvnb 2014
[16] harvnb 2017
[17] harvnb 2007
[18] harvnb 2017
[19] harvnb 2017
[20] harvnb 2017
[21] harvnb 2017
[22] 서적 伽婢子 岩波書店 2001
[23] harvnb 2009
[24] 서적 昔話の森-桃太郎から百物語まで 大修館書店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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