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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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상(許商)은 전한 시대의 학자이자 관료로, 오행 사상과 산술에 능했다. 그는 하후시창에게 배운 오행전을 주감에게서 전수받았으며, 《오행논력》, 《오행전기》, 《허상산술》 등의 저서를 남겼으나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황하 치수 사업에 참여하여 능력을 발휘했으며, 첨사, 소부, 광록대부, 대사농, 광록훈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그의 제자로는 당림, 오장, 왕길, 결흠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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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문

허상은 《오행논력》(五行論曆)·《오행전기》(五行傳記)·許商算術중국어을 저술했으나, 모두 현전하지 않는다. 許商算術중국어은 《구장산술》의 원형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2.1. 오행 사상

허상은 하후시창이 하후승에게 배운 『오행전』주감에게서 배웠다. 허상은 『오행전기』 또는 『오행론』을 직접 저술했지만,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2.2. 산술

허상이 저술한 許商算術중국어은 현전하지 않는다. 許商算術중국어은 杜忠算術중국어과 함께 《구장산술》의 원형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허상은 『산술』 26권을 저술했는데, 현존하는 《구장산술》이 이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2.3. 제자 양성

하후시창은 하후승에게서 『오행전』을 배웠고, 하후승의 제자 주감에게서도 배웠다. 허상은 『오행전기』 또는 『오행론』을 직접 저술했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허상은 문인들을 가르쳤는데, 그중 덕행으로는 당림, 언어로는 오장, 정치로는 왕길, 문학으로는 결흠이 뛰어났다. 당림과 왕길은 박사가 되었고, 오장과 결흠은 구경에 해당하는 관직까지 올랐다. 이 외에도 반백이 허상의 가르침을 받았다.

허상은 『산술』 26권을 저술했다. 현존하는 『구장산술』이 허상의 저술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3. 생애 및 관력

허상은 전한 성제 시기 두흠의 추천으로 장작대장이 되어 황하 치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이후 첨사, 소부, 시중광록대부, 대사농, 광록훈 등 여러 요직을 거쳤다. 당림, 오장, 왕길, 결흠 등을 제자로 두었다.

산술에 능하고 공공 사업의 비용을 잘 헤아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황하 치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수화 2년(기원전 7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왕망 때(8년~23년) 제자들이 그의 공적을 기리는 석주를 세웠다.

3.1. 초기 활동

하평 3년(기원전 26년), 예전에 범람하였던 황하가 다시 평원에서 범람하여 제남·천승까지 흘러들어갔다. 두흠의 추천으로 장작대장 허상은 간대부(諫大夫) 승마연년·광록대부 왕연세·승상사(丞相史) 양언(楊焉)과 함께 치수를 시작했고, 6개월 만에 일을 끝냈다.

이후 첨사·소부·시중광록대부·대사농·광록훈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제자로 당림·오장·왕길·결흠이 있었다.

성제 초년, 건시 원년(기원전 32년), 풍준이 황하의 하도 변경에 대해 의견을 냈다. 이때, 승상(광형)과 어사는 "상서의 허상이 산술에 능하고, 공용을 헤아릴 수 있다"라고 말하며 추천했다. 허상은 현지를 시찰하고, 공사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홍가 4년(기원전 17년)의 홍수 때, 하제도위인 허상은, 승상사의 손금과 현지를 시찰했다. 손금은 독마하(마협하)에 황하를 끌어들이는 것을 제안했지만, 허상은 반대했다. 결국, 허상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영시 3년(기원전 14년), 첨사인 허상은 소부에 임명되었다. 2년 후인 원연 원년(기원전 12년)에 시중·광록대부가 되었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 시중·광록대부에서 대사농으로 옮겨갔다. 수개월 만에 광록훈이 되었다. 늙고, 또한 병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4개월 후인 수화 2년(기원전 7년)에 사망했다.

사후, 왕망 때(8년부터 23년)에, 제자들이 스승을 현창하는 석주를 세웠다.

3.2. 황하 치수

하평 3년(기원전 26년), 예전에 범람하였던 황하가 다시 평원에서 범람하여 제남·천승까지 흘러들어갔다. 두흠의 추천으로 장작대장 허상은 간대부(諫大夫) 승마연년·광록대부 왕연세·승상사(丞相史) 양언(楊焉)과 함께 치수를 시작했고, 6개월 만에 일을 끝냈다.

성제 초년, 건시 원년(기원전 32년), 풍준이 황하의 하도 변경에 대해 의견을 냈다. 이때, 승상(광형)과 어사는 "상서 허상이 산술에 능하고, 공용을 헤아릴 수 있다"라고 말하며 추천했다. 허상은 현지를 시찰하고 공사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홍가 4년(기원전 17년) 홍수 때, 하제도위인 허상은 승상사 손금과 현지를 시찰했다. 손금은 독마하(마협하)에 황하를 끌어들이는 것을 제안했지만, 허상은 반대했다. 결국, 허상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3.3. 주요 관직 역임

허상은 전한 성제 시기에 여러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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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역임 시기주요 내용
장작대장하평 3년(기원전 26년)두흠의 추천으로 간대부(諫大夫) 승마연년, 광록대부 왕연세, 승상사(丞相史) 양언(楊焉)과 함께 황하 치수 담당. 6개월 만에 완료.
첨사영시 3년(기원전 14년)소부로 승진.
소부영시 3년(기원전 14년)
시중광록대부원연 원년(기원전 12년)
대사농수화 원년(기원전 8년)
광록훈수화 원년(기원전 8년)수개월 역임.


건시 원년(기원전 32년), 풍준이 황하 하도 변경에 대한 의견을 냈을 때, 승상(광형)과 어사는 허상이 산술에 능하고 공용을 헤아릴 수 있다고 추천했다. 허상은 현지 시찰 후 공사의 필요성을 인정했으나, 재정난으로 연기되었다.

홍가 4년(기원전 17년) 홍수 때, 하제도위였던 허상은 승상손금과 현지를 시찰했다. 손금은 독마하(마협하)에 황하를 끌어들이는 것을 제안했지만, 허상은 반대했고, 결국 허상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수화 2년(기원전 7년)에 사망했다.

3.4. 사후

왕망 때(8년~23년)에, 제자들이 스승을 현창하는 석주를 세웠다.

4. 출전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하
권27중지상 오행지
권29 구혁지
권30 예문지
** 권88 유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