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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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주엽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농구 선수이자 농구 해설가, 감독, 방송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고려대학교 시절 뛰어난 기량으로 주목받았다. 프로 선수 시절에는 청주 SK 나이츠, 골드뱅크 클리커스, 부산 KTF 매직윙스, 창원 LG 세이커스 등에서 뛰며 KBL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은퇴 후에는 해설위원과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을 역임했고,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현주엽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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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 2023년 고려대학교 방문 중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75년 7월 27일
출생지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신장195cm
체중123kg
포지션스트레치 포
소속사블리스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채널mukboss Mr.JooYup
선수 경력
고등학교휘문고등학교
대학교고려대학교 농구부
고려대학교 대학원
프로 입단1998년 (KBL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청주 SK 나이츠)
선수 생활1998년 - 2009년
역대 소속팀청주 SK 나이츠 (1998-1999)
부산 KTF 매직윙스 (1999-2005)
상무 (2001-2003, 군 복무)
창원 LG 세이커스 (2005-2009)
등번호32, 9
포지션파워 포워드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대표대한민국 U-19 (1992)
U-22 대표대한민국 U-22 (1993-1997)
성인 대표대한민국 (1994-2005)
감독 경력
감독 생활2017-2020
소속팀창원 LG 세이커스
수상 내역 (선수)
KBL 20주년 올타임 레전드 122017
KBL 15주년 레전드 올스타2012
KBL 올스타6회 (1999, 2000, 2004, 2005, 2006, 2008)
KBL 페어플레이상2006
KBL-CBA 올스타2회 (2005, 2006)
KBL 베스트 52005
KBL 이달의 선수2회 (2000년 1월, 2004년 11월)
농구 큰잔치 결승 MVP2002
농구 큰잔치 리바운드상2002
ABC 챔피언스컵 덩크 콘테스트 우승1997
국가대표 메달
아시안 게임금메달 (2002 부산)
은메달 (1994 히로시마)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아 선수권 대회금메달 (1997 리야드)
은메달 (1995 서울)
은메달 (1999 후쿠오카)
동아시아 경기 대회은메달 (1997 부산)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은메달 (1992 베이징)
KBL 통계
득점5,389점 (경기당 13.2점)
리바운드1,674개 (경기당 4.1개)
어시스트2,095개 (경기당 5.1개)
유튜브 채널 정보
채널명mukboss Mr.JooYup
활동 기간2021년 - 현재
장르버라이어티
구독자 수705,000명 (2023년 6월 21일 기준)
조회수217,502,830회 (2023년 6월 21일 기준)
실버 버튼 획득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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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력

* 1988년 서울도성국민학교 졸업
* 1991년 휘문중학교 (농구부) 졸업
* 1994년 휘문고등학교 (농구부) 졸업
* 1998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94학번) 졸업
* 2008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3. 선수 경력

현주엽은 1998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청주 SK 나이츠에 지명되었다. SK는 이미 서장훈을 영입한 상태였기에 현주엽과 함께 우승을 노렸지만, 외국인 선수와 현주엽, 서장훈과의 부조화로 인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프로 첫 해에 현주엽은 34경기에 출전, 평균 23.94득점, 6.35리바운드, 4.6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뛰어난 개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듬해 현주엽은 스몰 포워드로 변신, 서장훈과의 팀워크를 개선하며 SK의 정규시즌 1위를 이끌었다. 그러나 1999년 12월 24일,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에 트레이드했다. SK는 트레이드 이후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현주엽은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최인선 감독에게 실망감을 표했다. 이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골드뱅크는 현주엽 영입 효과를 보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0년 현주엽은 무릎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거치며 2000-2001 시즌 많은 경기에 결장했고, 평균 득점도 16.7점으로 하락했다.

현주엽의 상무 입대와 함께 골드뱅크는 코리아텐더로 팀명을 변경했고, 이후 KTF에 매각되었다. KTF에서 추일승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현주엽은 두 번의 무릎 수술 후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어 포인트 포워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4-05 시즌 후 현주엽은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했다. 최고 대우를 받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운동 능력과 공격 본능이 저하되어 2006-07 시즌부터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2008-09 시즌에는 6.73까지 하락했다.

현주엽의 프로 선수 시절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정규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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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시즌경기평균경기시간평균득점필드골 성공3점슛 성공자유투 성공공격 리바운드수비 리바운드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슛턴오버파울
1998-99청주 SK 나이츠3436:3223.98.92.14.11.54.96.44.60.80.33.42.6
1999-00청주 SK 나이츠1538:5019.67.71.23.11.33.54.76.21.10.24.12.7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2737:3423.78.80.95.11.34.86.07.61.30.33.33.4
2000-01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2730:5716.76.80.13.01.44.25.75.01.10.02.72.9
2003-04부산 KTF 매직윙스4431:1412.95.00.62.40.82.73.45.91.30.03.22.6
2004-05부산 KTF 매직윙스5335:1214.25.41.22.30.72.83.67.81.20.43.72.4
2005-06창원 LG 세이커스5431:1111.24.40.71.80.73.64.35.31.00.12.12.8
2006-07창원 LG 세이커스4626:479.33.40.51.80.73.03.73.40.90.12.12.4
2007-08창원 LG 세이커스5326:337.93.10.41.40.73.03.74.00.90.11.72.0
2008-09창원 LG 세이커스4419:476.72.60.31.30.31.92.23.30.80.11.81.8
통산39730:3013.35.10.82.40.93.34.15.21.00.22.72.5


플레이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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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경기평균경기시간평균득점야투 성공3점슛 성공자유투 성공공격 리바운드수비 리바운드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슛턴오버파울
2004-2005부산 KTF 매직윙스241:3023.09.51.52.53.54.58.06.51.00.53.53.0
2006-2007창원 LG 세이커스421:4012.04.80.52.00.32.32.52.00.00.32.32.3
2007-2008창원 LG 세이커스223:097.52.00.03.51.02.53.52.01.00.03.51.5
2008-09창원 LG 세이커스214:266.02.01.01.00.50.51.01.50.00.01.50.5
통산1024:2912.14.60.72.21.12.43.52.80.40.22.61.9

3.1.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농구

1975년 7월 27일 서울에서 의류제조업을 하는 아버지 현진구(玄晉具)와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에서 활약한 농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 홍성화(洪性華) 사이에서 슬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위로는 세 살 위의 두 쌍둥이 형이 있었다. 그의 본관은 연주(延州)이다.

서울 도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휘문중학교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하였던 그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나, 공교롭게도 서울 휘문중학교로 학교를 배정받아 농구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으로 입학하고 다시 농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휘문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된 현주엽은 1학년 동안은 늘 벤치를 지켰으며 2학년이 돼서야 코트에 첫 출전을 하게 된다. 현주엽은 휘문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선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머니를 현주엽의 농구 코치가 알아보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운동선수 생활을 하였던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선수가 된 후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현주엽은 그 당시 NBA 농구 비디오를 보면서 농구연습을 했고 그의 롤모델 농구선수는 매직 존슨이었다. 매직 존슨을 동경하여 2008년까지 줄곧 등번호 32번을 달았다. 농구 실력 향상을 위해 현주엽은 자신이 좋아하는 NBA 스타 매직 존슨의 경기 영상을 보며 독학했다.

서장훈은 현주엽보다 한 살 위로 1988년 현주엽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했으며, 현주엽과 농구선수 서장훈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친구이다.

현주엽의 고등학교 시절은 고교 농구 경기 최다 득점 기록(63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풀타임으로 뛰지 않고 이 기록을 달성했다.

2016년 2월 3일 방영된 SBS TV 프로그램 영재 발굴단에서 현주엽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료였던 석주일 선수(석주일)가 자신과 서장훈에게 재능이 없으니 농구를 그만두라고 말했던 일화를 공개하며, 이 말이 자신의 발전 동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현주엽은 대학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고, 한국의 명문 대학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큰 키를 이용한 점프슛과 발전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그의 스카우팅 과정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농구 명문 대학인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현주엽을 영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93년 3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주엽의 고려대학교 진학이 공식 발표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현주엽은 당시 최강팀이었던 연세대학교에 가면 쉽게 우승 반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고려대학교 출신인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여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편한 길만을 고집하면 성장이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결국 현주엽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해, 그리고 준우승에 머물렀던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를 이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려대학교를 선택했다.

3.2. 고려대학교 시절 (1994-1998)

휘문고 시절부터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받던 현주엽은 1993년 3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려대학교 농구부 진학을 발표한다. 현주엽은 1993년 3월 대학연맹전에서 고려대가 8강 진출에 실패하는 것을 보고 고려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대학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고려대에 줄곧 승리하던 연세대에 들어가기보다는, 연대와의 대결에서 열세에 있던 고려대에 들어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했다.

현주엽이 대학 진학 후 처음 출전한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려대는 연대에 28점 차로 크게 패했다. 하지만 고려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거쳐 결승에 진출,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했다. 최종 결승전에서 고려대는 시종일관 연대에 밀렸으나,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양희승이 동점을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했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키며 고려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대학 무대 첫 대회에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한 현주엽은 인터뷰를 통해 선배들보다 부족함을 느꼈고, 고교 농구와 대학 농구의 큰 차이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이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 팀 내 입지를 다졌고, 고려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고려대가 연승 가도를 달리자, 세간의 관심은 70년대 말에 기록했던 최다 연승 49연승을 깨고 50연승을 달성할지에 쏠렸다. 그러나 1995년 가을철 대학농구 연맹전 예선 첫 경기에서 현주엽이 발목 부상으로 빠진 고려대는 당시 약체였던 홍익대에 3점 차로 패하며 20연승에서 연승을 마감했다. 이후 고려대는 다시 연승을 이어갔지만, 50연승에는 근접하지 못했다.

현주엽은 허재에 이어 대학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고려대학교에서 뛰며 1990년대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전희철, 양희승, 김병철, 신기성과 함께 고려대학교의 "베스트 5"로 불렸으며, 뛰어난 덩크슛 능력으로 "매직 히포"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1996년 9월 20일, 현주엽은 경희대학교병원에서 왼쪽 발목 부상 수술을 받았다. 대학 시절부터 과도한 훈련과 무릎에 가해지는 격렬한 운동으로 인해 관절 삼출액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으며, 왼쪽 무릎 통증을 겪고 있다.

3.3. 프로 선수 시절 (1998-2009)

1998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은 전체 1순위로 청주 SK 나이츠의 지명을 받았다. SK는 서장훈을 이미 영입한 상태였기에 현주엽과 함께 우승을 노렸으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현주엽, 서장훈의 포지션 중복 및 자존심 대결로 인해 부조화를 겪으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최인선 감독이 부임했다. 현주엽은 프로 첫해 34경기에 출전, 평균 23.94득점, 6.35리바운드, 4.6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뛰어난 개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듬해 현주엽은 스몰 포워드로 변신, 서장훈과의 팀워크를 개선하며 SK의 정규시즌 1위를 이끌었다. 그러나 1999년 12월 24일,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의 조상현 + 현금 4억원에 트레이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최인선 감독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현주엽의 포지션에 대한 불만과 현대 상대 전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SK는 트레이드 이후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현주엽은 트레이드 소식을 기자에게서 처음 듣고 최인선 감독에게 실망감을 표했다.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1999년 12월 14일 현대전 패배 후 최인선은 현주엽에게 책임을 물었고,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다음 경기를 보이콧했다는 것이다. 이후 최인선은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았고, 결국 현주엽은 SK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SK는 현주엽을 삼성으로 보내려 했으나, 삼성의 전력 증가를 우려해 약체 팀인 골드뱅크로 트레이드했다. 골드뱅크는 현주엽 영입 효과를 보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0년 현주엽은 무릎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거치며 2000-2001 시즌 많은 경기에 결장했고, 평균 득점도 16.7점으로 하락했다.

현주엽의 상무 입대와 함께 골드뱅크는 코리아텐더로 팀명을 변경했고, 이후 KTF에 매각되었다. KTF에서는 추일승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현주엽은 두 번의 무릎 수술 후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어 포인트 포워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4-05 시즌 후 현주엽은 FA 자격을 얻어 LG로 이적했다. 최고 대우를 받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운동 능력과 공격 본능이 저하되어 2006-07 시즌부터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2008-09 시즌에는 6.73까지 하락했다.

현주엽의 프로 선수 시절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정규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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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경기평균경기시간평균득점필드골 성공3점슛 성공자유투 성공공격 리바운드수비 리바운드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슛턴오버파울
1998-99청주 SK 나이츠3436:3223.98.92.14.11.54.96.44.60.80.33.42.6
1999-00청주 SK 나이츠1538:5019.67.71.23.11.33.54.76.21.10.24.12.7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2737:3423.78.80.95.11.34.86.07.61.30.33.33.4
2000-01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2730:5716.76.80.13.01.44.25.75.01.10.02.72.9
2003-04부산 KTF 매직윙스4431:1412.95.00.62.40.82.73.45.91.30.03.22.6
2004-05부산 KTF 매직윙스5335:1214.25.41.22.30.72.83.67.81.20.43.72.4
2005-06창원 LG 세이커스5431:1111.24.40.71.80.73.64.35.31.00.12.12.8
2006-07창원 LG 세이커스4626:479.33.40.51.80.73.03.73.40.90.12.12.4
2007-08창원 LG 세이커스5326:337.93.10.41.40.73.03.74.00.90.11.72.0
2008-09창원 LG 세이커스4419:476.72.60.31.30.31.92.23.30.80.11.81.8
통산39730:3013.35.10.82.40.93.34.15.21.00.22.72.5


플레이오프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시즌경기평균경기시간평균득점야투 성공3점슛 성공자유투 성공공격 리바운드수비 리바운드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슛턴오버파울
2004-2005부산 KTF 매직윙스241:3023.09.51.52.53.54.58.06.51.00.53.53.0
2006-2007창원 LG 세이커스421:4012.04.80.52.00.32.32.52.00.00.32.32.3
2007-2008창원 LG 세이커스223:097.52.00.03.51.02.53.52.01.00.03.51.5
2008-09창원 LG 세이커스214:266.02.01.01.00.50.51.01.50.00.01.50.5
통산1024:2912.14.60.72.21.12.43.52.80.40.22.61.9

3.4. 국가대표팀 경력

현주엽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년 이상 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주로 9번과 15번을 달고 국제 무대에서 뛰었다. 허재에 이어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두 번째 대학 1학년생이었다.

현주엽은 1994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3경기에서 평균 3.7점과 3.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1998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10.0점, 4.0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4년 아시안 게임1998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여 모두 은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왼쪽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내며 20년 만에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 현주엽은 4쿼터 종료 4초 전 동점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고 연장전에서 6점을 추가하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199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7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평균 16.6점, 5.3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는 팀 내 득점과 리바운드 1위를 기록했으며, 대회 전체 득점 순위에서도 NBA 선수들을 능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1997년 동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1997 아시아 챔피언스컵 덩크 콘테스트에서는 백보드를 깨뜨리는 덩크슛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한국 농구 역사상 백보드를 깬 유일한 선수이다.

1995년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와 1999년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은메달, 1997년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5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8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8.6점을 기록했으며, 대한민국은 4위를 차지했다.

현주엽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에도 1992년 FIBA 아시아 U18 선수권 대회 은메달, 1993년 FIBA 21세 이하 세계 선수권 대회 11위, 1997년 FIBA 21세 이하 세계 선수권 대회 9위(개인 득점왕)를 기록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4. 은퇴 후

현주엽은 2009년 6월 24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다음 날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장에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들어섰으며,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가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밝혔다. 또한, 우승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농구를 좀 잘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네 번 받은 현주엽은 코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당시 창원 LG 세이커스와 1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2009년 6월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9시즌에 걸친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2012년 KBL 12주년 기념 레전드 올스타전에 선발되었으며, 팬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드림팀 1위를 차지했다. (이상민은 매직팀 1위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KBL 20주년을 맞아 올타임 레전드 12인에 선정되었다. 현주엽은 포워드 부문 레전드로 선정되었으며, 애런 헤인즈, 조니 맥도웰, 천희철, 추승균, 문경은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4.1. 해설위원 (2014-2017)

은퇴 후 농구와 거리를 두고 지내던 현주엽은 고려대 절친인 신기성의 추천으로 2014년 농구 해설가로 데뷔,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 은퇴 후 5년 만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해설가로 코트에 복귀한 것이다.

현주엽은 한 인터뷰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은퇴 후 여러 스포츠 중계 제안을 거절했으나 너무 늦기 전에 코트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39세였던 2014년 9월 17일, 현주엽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KBL 드래프트에서 농구 해설가로 데뷔했는데, 이는 은퇴 기자회견 이후 그의 첫 공식 등장이었다.

해설가 데뷔 첫해, 베테랑 스포츠캐스터 한명재와 함께 2014-15시즌 KBL 중계를 맡았다. 2015-16시즌부터는 정용검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췄는데, 두 사람은 유익하고 재미있는 해설로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현주엽의 심도 있는 분석과 재치 있는 해설은 농구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2017년, 현주엽은 KBL의 공식 미디어이자 출판물인 점프볼(Jumpball)이 선정하는 올해의 해설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농구 기자와 방송인 30명으로 구성된 패널 투표에서 13표로 1위를 차지했고, 최연길(7표), 김동광(6표)이 그 뒤를 이었다.

2017년 4월 26일, 현주엽이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발표 후,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2016-17시즌 KBL 결승 3차전에서 게스트 해설위원으로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마무리했다.

4.2. 감독 경력 (2017-2020)

2017년, 김진 감독의 후임으로 창원 LG 세이커스의 제7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코치진으로는 김영만 수석코치, 박재헌 코치, 강혁 코치를 두었다. 하지만 현역 은퇴 이후 지도자 경력이 부족하여 농구계와 팬들의 우려가 있었다. 이는 KBL 역사상 감독 경험 없이 감독직에 임명된 첫 사례였으며, 현주엽은 선수에서 무경험 감독으로 직행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현주엽은 창원 LG 세이커스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감독 첫 해인 2017-18 시즌에는 17승 37패로 10개 팀 중 9위에 그쳤다. 그러나 2018-19 시즌에는 30승 24패로 팀을 3위까지 끌어올리며 4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9-20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16승 26패로 다시 9위에 머물렀다.

결국,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인해 계약 만료 후 사퇴했다. 구단은 재계약 의사를 밝혔지만, 현주엽은 재계약 제안을 거절했다. 후임으로는 조성원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현주엽은 2020년 5월 17일 방영된 KBS2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2019-20 시즌 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사퇴했다고 밝혔다.

4.3. 방송 활동

현주엽은 2015년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슈퍼파워'라는 별명을 얻으며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농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2017년 농구 감독 부임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가, 2019년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로 복귀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창원 LG 세이커스 선수들과 함께 유명세를 얻었으며, KBL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했다.

2020년에는 TV는 사랑을 싣고 MC를 맡았고,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유튜브 채널 '먹보스 쭈엽이'를 개설하여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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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방송사제목역할비고
1994년MBC《이야기쇼 만남》
1994년MBC《일요큰잔치》
1994년KBS《한밤의 이야기 쇼》
1995년SBS《백보드 밑의 전쟁》
1996년KBS가족오락관
1996년KBSTV는 사랑을 싣고
1998년SBS《게임쇼 하이파이브》
1998년KBS체험 삶의 현장
2015년MBC무한도전》(무도큰잔치특집)
2015년SBS좋은 아침
2015년KBS2《우리동네 예체능》(농구 리턴즈 특집)
2015년tvN《촉촉한 오빠들》
2015년SBS백년손님
2015년SBS런닝맨
2015년SBS정글의 법칙 in 니카라과》
2015년KBS2《네 멋대로 해라》진행자(MC)
2015년MBC《위대한 유산》
2015년채널A《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
2015년채널A개밥 주는 남자》(1회~15회 하차)
2016년MBN엄지의 제왕
2016년SBS오! 마이 베이비
2016년SBS《영재 발굴단》
2016년~2017년tvN《수요미식회》부정기 출연
2016년SBS《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2016년KBS2배틀트립》(홍콩 영화 투어vs일본 만화 투어)
2016년SBS정글의 법칙 in 뉴칼레도니아》
2016년MBC마이 리틀 텔레비전
2016년TV조선《모란봉 클럽》
2016년JTBC《청춘식당 잘 먹겠습니다》
2016년XTM《REBOUND》
2016년KBS2《해피투게더 3》
2017년tvN《버저비터》
2017년OLIVE《요상한 식당》
2017년OLIVE《원나잇 푸드트립 먹방레이스》
2017년KBS1트루밥쇼
2017년MBC《은밀하게 위대하게》
2019년~2021년, 2022년KBS2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2020년JTBC위대한 배태랑
2020년tvN《건강함의 시작, 몸의 대화》
2020년KBS2옥탑방의 문제아들
2020년~2021년KBS2TV는 사랑을 싣고진행자(MC)
2020년SBS미운 우리 새끼특별출연
2020년JTBC뭉쳐야 찬다
2021년MBC《배달고파? 일단시켜!》진행자(MC)
2021년JTBC《뭉쳐야 쏜다》코치, 해설
2021년MBC《구해줘! 홈즈》
2021년MBC《안싸우면 다행이야》
2021년MBN《전국방방쿡쿡》
2022년SBS신발 벗고 돌싱포맨게스트
2022년JTBC《전설체전》
2022년E채널토요일은 밥이 좋아

5. 논란

* 2013년 7월 10일, 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어 면허정지 100일 처분을 받았다.
* 2021년 3월 14일, 학교폭력 의혹에 휩싸였다.
* 은퇴 후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1700을 잃었다. 2012년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지만, 피해 금액의 절반인 870만 회수할 수 있었다.

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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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수상 내역
1994국가대표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은메달, 국무총리표창
1995-96농구대잔치베스트 5
1996대학농구선수권대회MVP
1997국가대표1997년 FIBA 21세 이하 세계 선수권 대회 득점왕 (총 126점, 경기당 평균 18점), 1997년 FIBA 21세 이하 세계 선수권 대회 한 경기 최다 득점 (1997년 8월 3일 호주와의 경기에서 32점), 1997년 동아시아 경기대회 은메달, 1997년 ABC 선수권 대회 금메달, ABC 챔피언십 덩크 콘테스트 우승
1997-98농구대잔치베스트 5
1998국가대표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8-99농구대잔치베스트 5
1999KBL신인 최초 트리플 더블, 신인 최다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경기 기록 (24경기), 신인 올스타 선정, KBL 올스타
1999국가대표1999 ABC 선수권 대회 은메달
2000KBLKBL 올스타 베스트 5, KBL 월간 MVP (1월)
2001-02농구대잔치MVP
2002기타농구 축제 최우수 선수, 농구 축제 리바운드상
2002국가대표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4KBLKBL 올스타, KBL 월간 MVP (11월)
2004-05KBL포워드 중 최다 더블 더블 기록 (13경기), 포워드 중 최다 어시스트 기록 및 전체 어시스트 2위 (총 415 어시스트, 경기당 7.83 어시스트)
2005KBLKBL 베스트 5, KBL 올해의 포워드, KBL 올 퍼스트 팀, KBL 올스타 베스트 5, KBL-CBA 올스타, KBL 올스타
2005-06기타이성구 페어플레이상
2006KBLKBL 모범선수상, KBL-CBA 올스타, KBL 올스타
2008KBLKBL 올스타
2012KBLKBL 15주년 레전드 올스타
2017기타KBL 20주년 올타임 레전드 12, 점프볼 올해의 캐스터
2018-19KBLKBL 정규 시즌 3위
2020KBS 연예대상리얼리티 부문 최우수상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 커리어 최다 트리플 더블 기록 (7경기)

7. 플레이 스타일

현주엽은 발은 느리지만 70cm에 달하는 서전트 점프 능력으로 골밑을 장악했고, 파워 포워드 출신 치고는 드물게 드리블과 아웃렛 패스 능력이 뛰어나 고교 시절부터 한 경기 평균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 시절에는 멋진 덩크슛을 선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5cm, 129kg의 현주엽은 1990년대 한국 농구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소화했으며, 이 포지션을 한국 농구에 소개하고 대중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다재다능했던 현주엽은 플레이 메이킹, 볼 핸들링, 패싱, 어시스트 능력으로 유명했다. 화려하고 강력한 플레이 스타일로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신인 시절 24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현재까지 KBL에서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KBL 역사상 최초로 신인으로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선수이다. 신인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4-05 시즌에는 포워드 포지션에서 13개의 더블 더블을 기록하며 최다 기록을 세웠다. 포워드 포지션에서 1위, 리그 전체 어시스트 평균 7.83개로 2위를 기록했다. MVP 후보에 올라 2위를 차지했고, KBL 베스트 5 포워드 부문에 선정되었다. 거친 인상과 달리 신사적인 플레이와 자신감 넘치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경기 중 젠틀맨십을 유지하며 커리어 동안 단 5개의 테크니컬 파울만 기록했고, 2006년에는 모범 선수상을 수상했다. 현주엽은 커리어 통산 7개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는데, 이는 주희정과 함께 리그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KBL 역사상 최고이자 가장 지배적인 파워 포워드 중 한 명으로 평가받지만, 포지션에 비해 체격이 작았던 현주엽은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별명과 달리 우승 반지를 획득하지는 못했다.

현주엽은 9시즌 동안 정규리그 397경기에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30.5분 동안 13.3점, 4.1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4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10경기에서는 경기당 평균 24.48분 동안 12.1점, 3.5리바운드, 2.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그의 통산 기록은 407경기 5389점, 1674리바운드, 2095어시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