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는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지도자, 방송인이다.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아자동차, 원주 TG 삼보 엑써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하며 1990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은퇴 후에는 전주 KCC 이지스 감독과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두 아들 허웅과 허훈 역시 농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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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 방열 (농구인) 방열은 대한민국 농구인으로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과 1964년 도쿄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조흥은행 여자농구단, 쿠웨이트 농구 국가대표팀, 현대 남자 농구단 등을 지도했으며, 남자실업농구연맹 부회장, 대한농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 김동광 김동광은 뛰어난 지도력으로 KBL 삼성 썬더스 감독 시절 두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고 1997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최우수감독으로 선정된 대한민국의 농구 감독이자 해설가이다.
1985 쿠알라룸푸르 은메달 1987 방콕 은메달 1989 베이징 은메달 1991 고베 은메달 1995 서울 은메달 1999 후쿠오카 은메달
동아시아 경기 대회
1993 상하이 은메달
FIBA 아시아 U-18 선수권 대회 (구 아시아 주니어 선수권 대회)
1984 서울 금메달
기타 정보
별명
농구 대통령
관련 인물
허웅 (아들) 허훈 (아들)
소속 구단
고양 데이원 점퍼스 (단장)
전주 KCC 이지스 감독 시절의 허재(2010년)
2. 초기 생애 및 교육
허재는 4남매 중 막내로, 형 1명과 누나 2명이 있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는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의 탈북자였다.[4] 그는 1978년 상명초등학교를, 1981년 용산중학교를, 1984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망한 농구 선수로 주목받았으며, 특히 고려대학교와 중앙대학교 사이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의 중심에 있었다.[5] 그는 여러 대학의 제의 끝에 중앙대학교를 선택했고, 1988년 체육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다.[6][86]
3. 선수 경력
중앙대학교 출신[86]으로, 대학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프로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다.
1990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한 경기 62득점이라는 대회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농구대잔치(당시 명칭 농구 페스티벌)에서 7번의 우승과 3번의 MVP를 수상했다.
3. 1. 대학 시절
허재, 김유택, 강동희는 "허동택 트리오"로 불리며 1980년대 대학 농구를 지배했던 중앙대학교 농구팀의 핵심 선수들이었다.[7][8] 이들은 여전히 중앙대학교 농구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선수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한기범을 포함한 이 4인조는 당시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양분하던 대학 농구계의 판도를 바꾸고 중앙대학교 농구팀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9] 특히, 당시 중앙대학교는 농구보다는 배우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 더 알려져 있었기에 이들의 활약은 더욱 돋보였다.[9]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서 10년을 보낸 후, 허재는 1998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현 원주 DB 프로미)로 트레이드되었다.[14] 그는 그해 신인으로 드래프트된 신기성과 함께 팀을 이루었다.[15] 이후 김주성이 드래프트되고 팀명이 원주 TG 엑서스로 변경되면서 팀은 강력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김주성의 리바운드와 득점 능력, 신기성의 스피드와 슛 정확도, 허재의 경험과 다재다능함, 그리고 외국인 선수 레온 데릭스의 뛰어난 신체 능력이 조화를 이루며 '스피드 TG'라는 별명을 얻었다.[16]
2002-03 시즌 정규 리그 동안 허재의 출전 시간은 다소 줄었지만, 그는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사기를 북돋았고, 특히 플레이오프에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을 올리는 등 중요한 활약을 펼쳤다. TG 엑서스는 결승에서 전 시즌 우승팀인 대구 오리온스를 상대로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승 2패로 승리하며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과정에서 허재의 역할이 컸다.[17]
허재는 2003-04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18] 그가 선수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 9번은 원주 TG 엑서스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현재의 후신팀인 원주 DB 프로미가 계승하고 있다. KBL은 그의 은퇴를 기념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은퇴 기념 경기를 개최했다. 이 경기의 티켓은 판매 시작 몇 분 만에 매진되었으며, 강동희, 이상민, 현주엽 등 그의 옛 동료들이 함께 참여하여 자리를 빛냈다.[19]
3. 4.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로서 1985년부터 1999년까지 활약했다. 두 번의 하계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선수단 대표로 선수 선서를 했다.[86] 이 대회에서 남자 농구 대표팀은 최종 9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허재가 올림픽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에도 참가했다.[91]
1990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62점을 기록하며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역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88][89][90] 이 경기에서 한국은 이집트에 117-115로 승리했으며, 대회 최종 순위는 15위를 기록했다.[20][21][22] 허재의 62점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1995년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는 한국에서 개최되었는데, 대표팀은 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준우승했지만, 허재는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후, 허재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코칭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미국으로 건너가 페퍼다인대학교 남자 농구팀 코칭 스태프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다.[23]
이후 KBL로 돌아와 2005년부터 전주 KCC 이지스 감독을 맡았으며, 2016년부터는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4. 1. 전주 KCC 이지스
2005년, 허재는 한국으로 돌아와 KBL 팀 전주 KCC 이지스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선수 출신 감독으로서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 모두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인물이 되면서, 스타 선수 출신 감독들이 실패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24][25]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세 차례 수비 5걸에 선정된 '원클럽맨' 신명호, 2013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올-토너먼트 팀에 선발된 김민구, 6차례 국내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한 하승진, 그리고 스타 포인트 가드 김태술 등의 기민한 선수 영입으로 명성을 얻었다.[26]
2013-14 시즌, 10월 15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선수의 슛이 상대 선수에 의해 막히자 "이게 블락이냐?"라는 말을 잘못 발음하여 화제가 되었다. 당시 그의 선수가 파울을 당했다고 생각한 허재는 심판 홍기환의 블락 판정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27] "블락(block)"의 한국어 표기는 블락(''beul-lak'')인데, 허재는 불낙(''bul-nak'')으로 잘못 발음했다. '불낙'은 "불고기"의 '불'과 "낙지"의 '낙'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불고기 낙지 찌개를 뜻한다. 이는 불고기 낙지 찌개 관련 인터넷 밈으로 이어졌고, 개그맨들과 다른 운동선수들, 심지어 허재의 아들들까지도 다른 사람의 판정에 대한 극심한 불만을 표현하는 용어로 패러디했다.[28][29][30] 이 밈은 2015년 허재의 큰아들 허웅이 커리어 첫 블락을 기록한 후 다시 등장했고, 허웅의 블락 장면 영상은 "이게 블락이다"라는 자막과 함께 바이럴되었다.[31]
2014-15 시즌 준비는 스타 루키 김민구가 음주운전 사고로 중상을 입으면서 중단되었다. 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허재는 그의 큰아들 허웅 (슈팅가드,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 조기 진출을 선언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두 선수의 포지션이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그가 아들을 김민구의 대체 선수로 뽑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결국 허재는 고려대학교 가드 김지후를 뽑았고, 그의 아들은 원주 DB 프로미에 의해 다음으로 지명되었다.[32] 허재는 하승진, 김민구, 그리고 2대1 트레이드로 영입한 김태술을 중심으로 한 '드림팀'을 구상했지만, 김민구의 사고, 김태술의 부진, 그리고 하승진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33]
2015년 2월, 허재는 5라운드 마지막 경기 후 팀의 부진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퇴를 발표했다.[34][26] 그의 수석 코치 추승균이 시즌 잔여 기간 동안 감독 대행을 맡았다.[35] 당시 전주 KCC 이지스는 9위였다.
허재는 10시즌 동안 팀을 두 차례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었고, 6차례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감독으로서 531경기에서 252승(승률 0.475)을 거두었다.[26] 승률이 50%를 약간 밑돌았지만, 특히 이상민이나 현주엽과 같이 KBL 팀 감독을 맡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후배들과 비교했을 때, 우승 트로피 측면에서 국내 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스타 선수 출신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36] 사퇴 당시 그는 정규 시즌 200승 이상을 기록하고 우승을 차지한 7명의 KBL 등록 감독 중 한 명이었다.[37]
선수 시절 인기가 많았던 허재는 감독으로서는 논란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불같은 성격과 심판 및 경기 관계자들과의 다툼으로 여러 차례 비신사적인 행위로 벌금을 받았다. 전주 KCC 이지스에서 그는 추승균, 하승진, 김태술, 이상민, 서장훈 등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지도했고, 카리스마와 자유로운 관리 스타일로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는 당시 선수들이 팀 결정에 거의 참여할 수 없었던 엄격한 위계 문화와는 다른 것이었다.[33][38][39]
4. 2.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2009년과 2011년 허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잠시 맡았는데, 이는 전주 KCC 이지스 감독직과 겸임한 것이었다. 2016년 6월, 그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었다.[40] 그의 지휘 아래 국가대표팀은 2017 FIBA 아시아컵에서 3위를 차지했고, 2018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아시안 게임 후 사임했고, 그의 조수인 김상식이 뒤를 이었다.
5. 은퇴 후 활동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한 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는 KBL 코칭 스태프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했다.[33]
전 국가대표팀 동료인 서장훈, 현주엽과 함께 허재는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한 초창기 은퇴 농구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 농구가 축구와 더불어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였던 시절에 선수로 활동했다. 이들의 방송 활동은 KBL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리그와 선수, 코치들이 불법 베팅, 승부 조작, 음주 운전 등 여러 논란으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상황에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41][42] 2022년 6월에는 아들들과 함께 보령시 녹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8부작 리얼리티 쇼 '허섬세월'에 출연했다.[43]
2022년 5월, 고양 캐롯 점퍼스의 새로운 구단주인 데이원자산운용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되면서 MBC 예능 프로그램 '집 나간 남자'에서 하차했다. 데이원 측은 허재가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이라고 밝혔다.[44]
6. 개인 생활
1992년, 허재는 비시즌 부산 여행 중 만난 조각가 이미수와 결혼했다.[1] 슬하에 아들 허웅과 허훈을 두었으며,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로 농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85] 허웅은 전주 KCC 이지스 소속 슈팅 가드이고, 허훈은 수원 KT 소닉붐 소속 포인트 가드이다.[1]
허재는 아내와 함께 아들들이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두 아들이 자신에게서 정식으로 농구를 배운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아들들이 자신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들들이 KBL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경기를 거의 보러 가지 않았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함께 출연하지 않았다.[45][4][46]
2020년, 둘째 아들 허훈이 KBL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면서 국내 농구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모두 MVP를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허재는 1997-98 시즌 플레이오프 MVP와 아마추어 시절 MVP 등을 수상한 바 있다.[47][48][49]
7. 방송 활동
허재는 선수 시절부터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감독 은퇴 후에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아들인 허웅과 허훈이 프로 농구 선수로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방송에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45][4][46] 자세한 출연 목록은 아래와 같다.
7. 1. TV 프로그램
1990년대 초반부터 KBS 2TV의 《체험 삶의 현장》, 《퍼즐특급》, 《가족오락관》 등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특히 1994년에는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농구 선수 역할로 특별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50][51]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방송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9년부터는 JTBC의 《뭉쳐야 찬다》 시리즈와 《해방타운》, SBS의 《정글의 법칙》, KBS의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인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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