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빈 양씨
1. 개요
혜빈 양씨는 조선 세종의 후궁으로, 현감 양경의 딸이다. 세종의 총애를 받아 귀인에 봉해졌으며, 혜빈의 칭호를 받았다. 단종이 즉위한 후에는 단종을 보필했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면서 금성대군 등과 결탁했다는 이유로 탄핵당하여 청풍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신하들의 상소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후 숙종 때 신원되었으며, 정조 때 혜경궁 홍씨와의 작호 중복을 피하여 민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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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 사망 -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는 르네상스 초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을 아우르는 섬세한 색채, 고요한 분위기,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종교화를 다수 제작하여 가톨릭 예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
1455년 사망 -
최사유
최사유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39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02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익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영원군에 봉해졌다. -
청주 양씨 -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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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양씨 -
양희경
대한민국의 배우 양희경은 1981년 연극으로 데뷔하여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배우이자 가수 양희은의 동생이며 배우 한승현의 어머니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세종이 죽자 관례에 따라 비구니가 되어 궐을 나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문종이 재위 2년여만에 죽고 12살의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혜빈은 다시 궁으로 들어와 단종을 보필하였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혜빈의 궁중 장악을 염려하여 문종의 후궁인 홍 귀인의 작위를 숙빈으로 높여 혜빈을 대신하게 하자, 혜빈은 더 이상 단종을 보필 할 수 없게 되어 수양대군을 원망하였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이 선위하자, 혜빈 양씨는 금성대군 등과 결탁하여 전횡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탄핵당하고 가산이 적몰된 뒤 청풍으로 유배되었다. 1455년 12월 17일(음력 11월 9일) 신하들의 여러 상소 끝에 교수형으로 사망한다.
2.1. 초기 생애
현감 증 의정부좌찬성 양경(楊景)과 부인 이씨 슬하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삼촌은 중추원 동지사를 지낸 양후(楊厚)이다. 처음에는 내명부 예하 궁인으로 들어왔으나 지병으로 병약한 세자를 보살피던 중 세종대왕의 눈에 들어서 후궁이 되었고 귀인 첩지를 받았다. 아버지는 의정부 좌찬성으로 추증되었다. 정1품의 빈에 오른 후 혜빈이라는 칭호를 하사 받았다. 자식으로는 세 아들 한남군 어, 수춘군 현, 영풍군 전 등을 두었다.
세자빈(후일의 현덕왕후)이 단종을 낳은 후 이튿날 갑자기 죽게 되자, 세종대왕은 문종에게 알려 경혜공주와 단종을 혜빈에게 맡기도록 했다. 혜빈은 기뻐하며 자청했고 단종과 경혜공주를 극진히 보살폈다. 특히 직접 기른 단종에게는 더욱 지극한 사랑을 주었으며 단종 또한 혜빈의 품에서 잠들기를 늘 원했다. 왕이 되어서도 단종은 혜빈의 처소에서 묵는 것을 희망했으나 수양이 모사를 염려하여 가로막았다.
2.2. 세종의 후궁
세종의 후궁으로, 아버지는 현감 증 의정부 좌찬성 양경(楊景)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삼촌은 중추원 동지사를 지낸 양후(楊厚)이다. 처음에는 내명부 궁인으로 들어왔으나, 병약한 세자를 보살피던 중 세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귀인 첩지를 받았으며, 아버지는 의정부 좌찬성으로 추증되었다. 이후 정1품 빈에 올라 혜빈(惠嬪) 칭호를 받았다. 세 아들 한남군 이어, 수춘군 이현, 영풍군 이전을 두었다.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이튿날 사망하자, 세종은 문종에게 경혜공주와 단종을 혜빈에게 맡기도록 했다. 혜빈은 기꺼이 단종과 경혜공주를 극진히 보살폈다. 특히 단종에게는 더욱 지극한 사랑을 주었으며, 단종 또한 혜빈의 품에서 잠들기를 원했다. 단종은 왕이 되어서도 혜빈의 처소에서 숙박하기를 희망했으나, 수양대군이 이를 염려하여 막았다.
2.3. 단종 보필과 수양대군과의 갈등
문종이 재위 2년여만에 죽고 12살의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혜빈 양씨는 산에서 다시 궁으로 들어와 단종을 보필하였다. 그러나 혜빈이 궁중을 장악할 것을 염려한 수양대군이 문종의 후궁인 홍 귀인의 작위를 숙빈으로 높여 혜빈을 대신하게 하자, 혜빈은 더 이상 단종을 보필할 수 없었다. 혜빈은 이 일로 수양대군을 원망하였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이 선위하자, 혜빈 양씨는 금성대군 등과 결탁하여 전횡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탄핵당하고 가산이 적몰된 뒤 청풍으로 유배를 갔다. 1455년 12월 17일(음력 11월 9일) 신하들의 여러 상소 끝에 교수형으로 사망한다.
2.4. 계유정난과 죽음
계유정난 이후 신하들이 혜빈 양씨를 죽이기를 청했으나, 세조는 상왕 단종이 죽이지 말라고 청하여 명을 받아들였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결국 1455년 혜빈 양씨에게 교수형을 명했다. 혜빈 양씨는 1455년 12월 17일(음력 11월 9일)에 교수형을 당해 사망하였다.
혜빈 양씨의 유해는 종조부인 병사공 양치가 남몰래 거두어 경기도 포천 기당리 세장산에 묻고 평토를 하여 극비에 부쳤다.
아들 영풍군 전도 곧 살해당하였고, 한남군 어는 1459년 6월 금산 유배지에서 병사하였다.
2.5. 사후
혜빈 양씨는 1455년 12월 17일(음력 11월 9일) 세조에 의해 교수형을 당해 사망하였다.
1712년(숙종 38년) 4월 28일 관작(官爵)과 봉호(封號)를 회복하여 신원(伸冤)되었다.
혜빈 양씨의 유해는 종조부인 병사공 양치가 남몰래 거두어 경기도 포천 기당리 세장산에 묻고 평토를 하여 극비에 부쳤다. 아들 영풍군 전도 곧 살해당하였고, 한남군 어는 1459년 6월 금산 유배지에서 병사하였다.
숙종 때 문혜(文惠)의 시호가 내려져 문혜대빈이 되었다. 정조 15년에는 정조의 모친 혜빈 홍씨(혜경궁)와 같은 작호를 피하여 새로 민정(慜貞)이란 시호를 내리고 신주를 새로 만들어 제사 지내게 하였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조부 | 양첨식 | |
| 조모 | 정부인 경주 최씨 | |
| 아버지 | 양경 | 남평현감 역임 |
| 어머니 | 이씨 | |
| 남편 | 세종 | 조선 제4대 왕 |
| 장남 | 한남군 어 | 1429년 ~ 1459년 |
| 장자부 | 양원군부인 안동 권씨 | |
| 차남 | 수춘군 현 | 1431년 ~ 1455년 |
| 차자부 | 영천군부인 영일 정씨 | |
| 삼남 | 영풍군 전 | 1434년 ~ ? |
| 삼자부 | 현부인 순천 박씨 | 박팽년의 딸 |
| 손자 (장남 소생) | 흥안군 중생 | 1458년 ~ ? |
| 손녀 (장남 소생) | 이수리 | 정문명과 혼인 |
| 손자 (차남 소생) | 수안군 상 | |
| 손자부 (차남 소생) | 군부인 죽산 안씨 | |
| 서손자부 (차남 소생, 첩) | 미상 | |
| 서증손 (차남 소생, 첩 소생) | 적성군 석 | |
| 손녀 (차남 소생) | 전주 이씨 | 심순로와 혼인 |
| 손녀 (삼남 소생) | 이소사 | 이양손과 혼인 |
| 양손자 (삼남 소생) | 취성군 이빈 | 양녕대군의 차남 서산군 이혜의 차남, 영풍군 사후 양자로 입적 |
| 증손 (수안군 소생) | 의인군 흠 | |
| 증손 (수안군 소생) | 안흥부정 수 | |
| 증손녀 (수안군 소생) | 전주 이씨 | 한세창과 혼인 |
| 증손녀 (수안군 소생) | 전주 이씨 | 민천석과 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