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언 (후한)
1. 개요
황승언은 후한 시대 인물로, 채풍의 사위이자 제갈량의 장모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처음 등장하며, 이릉 전투 이후 육손을 팔진도에서 탈출시키는 조력자로 묘사된다. 소설 속에서 황승언은 삼국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조연으로 등장하며,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에서는 그의 친구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
후한말 사람 -
화타
화타는 중국 후한 말의 명의로, 약물 처방, 침술, 마취 수술 등 뛰어난 의술을 펼쳤으며, 조조의 치료를 거부하여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후한말 사람 -
유표 (흉노)
유표는 남흉노 선우 우부라의 아들이자 연제씨 일족으로, 흉노 출신 최초로 유씨 성을 사용했으며, 남흉노가 다섯 부로 나뉘었을 때 좌부를 통괄했고, 그의 아들 유연은 한조를 건국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3세기 중국 사람 -
제갈량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한에 합류하여 승상이 되었고, 섭정으로서 남정을 통해 촉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법치주의와 인재 등용을 중시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력을 강화했다. -
3세기 중국 사람 -
유비
유비는 후한 말 평민 출신으로 시작하여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러 세력을 거치며 활동하다 제갈량을 영입하여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이릉 전투 패배 후 병사하였다.
2. 가족
황승언은 채풍(蔡諷중국어)의 장녀와 결혼했다. 슬하에 딸을 두었는데,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고, 가공의 이름인 "황월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황부인은 삼국 시대 촉한의 재상이자 섭정인 제갈량과 결혼했다. 채풍의 차녀는 후한 말 형주 자사였던 유표와 결혼했으며, 아들 채모를 두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황승언은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조연으로, 삼국 시대 이전과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37장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제갈량의 집을 방문했을 때 처음 등장하며, 이릉 전투 이후 84장에서 육손을 제갈량의 팔진도에서 안내하며 다시 등장한다.
3.1. 제갈량과의 인연
208년, 유비가 제갈량을 등용하기 위해 제갈량의 집을 찾아갔을 때 우연히 황승언을 만났는데, 이때 유비는 황승언을 제갈량으로 착각하였다.
222년, 촉군을 추격하던 육손은 어복포(魚腹浦)에서 석진(石陣)에 갇혀 군사들과 몰살당할 운명에 처했으나, 황승언은 이들을 애석하게 여겨 탈출 방법을 알려주었다. 육손은 황승언에게 감사하며 위의 침략에 대비해 동오로 돌아갔다.
『삼국지』「촉서」 제갈량전의 주에 인용된 『양양기』에 따르면, 황승언은 현재 후베이성징저우시훙후에 있는 "면남의 명사"였다. 당시 융중에 살고 있던 제갈량에게 "내 딸은 얼굴은 못생겼지만, 재주는 그대에게 어울린다"라고 제안하여 혼인을 성사시키고, 딸을 수레에 태워 보냈다.
3.2. 이릉 전투 이후
222년, 이릉 전투에서 촉군을 추격하던 육손은 어복포(魚腹浦)의 석진(石陣)에 갇혀 군사들과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황승언이 이들을 애석하게 여겨 탈출 방법을 알려주었고, 육손은 황승언에게 감사하며 위의 침략에 대비해 동오로 돌아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릉 전투 이후 촉군을 추격한 오의 육손이 제갈량이 준비한 어복포라는 석진에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때 노인 황승언이 나타나 석병팔진 '팔진도'에 갇히지 않도록 도와주어 추격을 멈추고 철수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에서는 황승언이 아닌 그의 친구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