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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순왕후는 조선 영조의 며느리이자 진종의 비이며, 정조의 양모이다. 1716년 조문명의 딸로 태어나 1727년 효장세자와 혼인했으나, 이듬해 효장세자가 요절하면서 13세에 과부가 되었다. 영조는 현빈으로 봉해진 그녀를 각별히 아꼈으며, 1751년 사망 후 효순현빈으로 추존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효순왕후로 추존되었고, 1908년에는 소황후의 시호를 받았다.
《조문명 초상(趙文命肖像)》\n----효순왕후의 아버지인 조문명 효순왕후는 1716년(숙종 42년) 조문명의 딸로 태어났으며, 1727년(영조 3년)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효장세자와 가례를 올렸으나, 1728년(영조 4년) 효장세자가 요절하였다.
이후 1735년(영조 11년) 현빈(賢嬪)으로 봉해졌으며,영조는 며느리 현빈을 딸 화평옹주와 함께 총애하였다. 현빈은 영조를 위해 밤을 직접 삶아 올리는 등 정성을 다했다.
1751년(영조 27년) 창덕궁에서 개창(옴병)과 토황증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영조가 지은 행록에 따르면, 현빈은 효장세자와 정빈 이씨의 기일이 같아, 이 기일을 전후해 매년 소식하다 토황증(구토와 함께 누렇게 변하는 병)이 생겼다고 한다.
사후 1752년(영조 28년) 효장세자의 묘에 합장되었고, 시호는 효순현빈(孝純賢嬪)을 받았다.1776년 양자인 정조 즉위 후 진종 추존과 함께 효순왕후(孝純王后)로 추존되었으며,1908년 순종 때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로 추존되었다.
2.1. 왕세자빈 간택과 이른 과부
1716년(숙종 42년) 1월 8일, 조문명의 딸로 태어났다. 1727년(영조 3년) 정식 간택을 통해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효장세자와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1728년(영조 4년) 효장세자가 10세의 어린 나이로 요절하여 후사는 두지 못했다.
1735년(영조 11년),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세자빈 조씨를 더 이상 빈궁으로 칭할 수 없으므로, 수빈 한씨와 덕빈 윤씨의 고사를 따라 세자를 여읜 세자빈에게 빈호를 내려 현빈(賢嬪)으로 봉하였다.
2.2. 현빈 책봉과 영조의 총애
1735년(영조 11년),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세자빈 조씨를 더 이상 빈궁으로 칭할 수 없게 되어 수빈 한씨와 덕빈 윤씨의 고사를 따라 세자를 여읜 세자빈에게 빈호를 내려 현빈(賢嬪)으로 봉하였다.
영조는 자녀 중에 딸 화평옹주와 며느리 현빈이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려준다며 총애하였다. 영조는 청상과부가 된 현빈을 안타까워하며 아껴주었고, 현빈은 영조가 밤을 좋아하여 밤을 직접 삶아서 올리기도 했다. 영조는 현빈의 행록을 쓰면서 '현빈이 나를 먹이려고 늘 직접 밤을 삶았는데 영원히 졸서(卒逝)하던 날조차 삶아 놓은 밤이 소반에 남아 있었으니, 이는 현빈이 그날도 진상하려 삶아 놓았다가 병이 위독해져 하지 못한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2.3. 죽음과 토황증
1751년(영조 27년) 11월 14일, 창덕궁 건극당(建極黨)의 동실인 의춘헌(宜春軒)에서 병사하였다. 사인은 개창(옴병)과 토황증의 합병증이었다.
영조가 지은 행록에 따르면, 효장세자와 그의 어머니 정빈 이씨의 기일이 같은 날이라, 효장세자 기일과 정빈 이씨의 기일을 전후해서 매년 소식(素食중국어)을 하였는데, 이로 인해 토황(吐黃, 구토와 함께 누렇게 변하는 병) 증세가 생겼고, 그 토황증이 계속 쌓였다고 한다.
2.4. 사후
1752년(영조 28년) 효장세자의 묘에 합장되면서, 시호는 효순현빈(孝純賢嬪)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