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쓰카 공습
1. 개요
히라쓰카 공습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를 대상으로 한 연합군의 공습을 의미한다. 히라쓰카시는 히라쓰카 해군 탄약창과 일본국제항공공업 공장 등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도쿄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철도가 지나고 연합군의 일본 본토 침공 시 상륙 예정 해변 중 하나로 지정되어 전략적 중요성을 가졌다. 1945년 7월 16일, B-29 폭격기 138대가 소이탄 1,163톤을 투하하여 도시 중심부를 파괴했고, 7월 30일과 8월 13일에도 미 해군의 공습이 이어졌다. 이 공습으로 228명에서 343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
소이폭격 -
도쿄 대공습
도쿄 대공습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육군 항공대가 일본 도쿄에 실시한 대규모 전략 폭격 및 소이탄 공격으로, 특히 1945년 3월 10일 공습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단일 공습으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민간인 거주 지역 파괴로 전쟁 범죄 논란이 있다. -
소이폭격 -
드레스덴 폭격
드레스덴 폭격은 1945년 2월 영국과 미국 공군이 군사적 목표를 가지고 독일 드레스덴에 감행한 대규모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켜 전쟁 범죄 논란과 전략 폭격의 윤리성 논쟁을 야기한 사건이다. -
히라쓰카시의 역사 -
스바정
스바정은 가나가와현 사가미강 유역에 위치했던 정으로, 스가 촌과 마뉴 촌의 합병으로 발족하여 정으로 승격되었으나 히라쓰카 정에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
히라쓰카시의 역사 -
히라쓰카슈쿠
히라쓰카슈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1601년 설립된 도카이도의 역참으로, 1655년 신히라쓰카슈쿠로 개칭되었으며, 1843년에는 상당한 규모를 갖추었고, 안도 히로시게의 우키요에에도 묘사된 도카이도 우편 서비스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
일본 본토 전역 -
나가노현
나가노현은 일본 혼슈 중앙부에 위치하며, 199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고 높은 취업률을 보이며, 일본 알프스 등 산악 지형과 다양한 관광 명소를 가진 현이다. -
일본 본토 전역 -
이오지마 전투
이오지마 전투는 1945년 2월과 3월 이오지마 섬에서 미국과 일본 간에 벌어진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 전투로, 미군이 승리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일본 본토 공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
2. 배경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는 대도시거나 인구가 많은 중요 도시는 아니었으나,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였다. 군사적으로는 히라쓰카 해군탄약고와 일본국제항공공업 공장(도심 북부 위치)이 있었고, 전략적으로는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 본선이 지나갔으며, 몰락 작전 시행 시 연합군이 상륙할 주요 해변 중 하나였다. 일본국제항공공업은 日本国際航空工業일본어로 닛산 그룹의 군용기 생산 공장이었다.
2.1. 군사적 중요성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는 대도시거나 인구가 많은 중요 도시는 아니었으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 2곳이 있었다. 하나는 히라쓰카 해군탄약고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국제항공공업 공장으로 둘 다 도심 북부에 있었다. 또한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 본선이 지나는 곳이었으며 몰락 작전 시행시 연합군이 상륙할 주요 해변 중 하나였다.
2.2. 전략적 중요성
가나가와현 히라쓰카시는 대도시거나 인구가 많은 중요 도시는 아니였으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 2곳이 있었다. 하나는 히라쓰카 해군탄약고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국제항공공업 공장으로 둘 다 도심 북부에 있었다. 또한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 본선이 지나는 곳이었으며 몰락 작전 시행 시 연합군이 상륙할 주요 해변 중 하나였다.
3. 공습
히라쓰카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시설이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까지 큰 폭격은 없었다. 그러다 종전 직전에 여러 차례 공습을 받았다.
1945년 7월 16일 야간, 미국 육군 항공대 제20공군 제314폭격편대 소속 B-29 슈퍼포트리스 138기가 소이탄 1,163t을 투하하여 도시 중심부를 파괴했다. 그러나 폭탄 대부분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중되면서, 도시 외곽의 일본 제국 해군탄약고는 생산량의 5%, 항공기 공장 생산량은 10%만 피해를 입는 등 군수산업에 큰 피해는 없었다. 이 공습으로 약 228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후 미국 전략폭격분석보고서는 시가지의 44.8%가 파괴되었다고 분석했다.
이후 1945년 7월 30일과 1945년 8월 13일에도 공습이 있었다.
3.1. 1945년 7월 16일 공습
1945년 7월 16일 야간, 미국 육군 항공대 제20공군 제314폭격편대 소속 B-29 슈퍼포트리스 138기가 1,163t의 소이탄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도시 중심부가 파괴되었으나, 폭탄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중되어 군수 시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일본 제국 해군탄약고는 생산량의 5%, 항공기 공장 생산량은 10%의 피해만 입었다.
이 공습으로 약 228명(추정치)이 사망했다. 전후 미국 전략폭격분석보고서에서는 시가지의 44.8%가 파괴되었다고 분석했다.
3.1.1. 공습 과정 (7월 16일)
1945년 7월 16일 밤, B-29 138기가 이즈반도 방면에서 진입하여 하나미즈강 하구에 조명탄을 투하했다. 22시 30분경 공습 경보와 함께 소이탄 투하가 시작되었다. 오이소역 주변, 고마산, 사가미강 건너편 지가사키 등 외곽부터 폭격이 시작되어 점차 시 중심부로 옮겨갔다. 공습은 다음 날인 7월 17일 오전 0시 35분까지 이어졌다.
3.2. 7월 30일 공습
1945년 7월 30일, 미국 해군의 USS Wasp, USS Shangri La, USS Yorktown 함재기인 SB2C 헬다이버 16대와 F4U 콜세어 24대가 닛산 자동차 생산 시설을 목표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공장 건물 2, 6, 7동에 500파운드 폭탄 18개가 투하되었고, 징집된 학도들을 포함한 노동자 25명이 사망했다.
3.3. 8월 13일 공습
1945년 8월 13일, 미 해군은 USS 핸콕, USS 벨로 우드, USS 베닝턴, USS 렉싱턴, USS 샌 재신토에서 함재기 61대를 발진시켜 또 다른 공습을 감행했다. 주된 목표는 다시 닛산 자동차 생산 시설이었으나, 자재 부족과 이전 공습의 피해로 인해 사실상 버려진 상태였다.
4. 피해
1945년 7월 16일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조사에 따라 달랐다. 미국 전략 폭격 조사단 보고에서는 228명, 가나가와현 경찰 조사에서는 237명, 히라쓰카시 조사에서는 343명으로 추정했다. 당시 시역 10,419호 중 약 8,000호가 소실되었다. 7월 16일에 투하된 소이탄은 447,716발(1,173톤)로, 하룻밤 투하량으로는 하치오지 공습 다음으로 일본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