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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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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스티아이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인물로,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 치하에서 활동했다. 그는 스키타이 원정에 참전하여 다뉴브 강 다리를 지키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미르키노스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얻으려 했다. 수사에서 생활하던 중, 밀레토스의 참주 자리를 되찾기 위해 이오니아 반란을 선동했으며, 아리스타고라스에게 반란을 지시하는 밀서를 보냈다. 반란에 가담한 후, 페르시아 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다리우스 1세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명예롭게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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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티아이오스

2. 스키타이 원정 (기원전 513년경)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히스티아이오스는 다리우스 1세가 스키타이를 공격할 때 다른 참주들과 함께 페르시아 군에 합류했다. 이들은 다리우스 1세가 다뉴브강에 건설한 다리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4]

히스티아이오스 휘하의 그리스인들이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다뉴브강 다리를 지키고 있다. 19세기 삽화.


당시 케르소네소스의 참주였던 밀티아데스는 스키타이의 제안을 따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히스티아이오스는 자신들은 다리우스 왕의 신하로서 다리를 지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신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키타이인들의 제안을 따르는 척하면서, 그들에게 사절을 보내고 다른 참주들은 다리를 해체하는 척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키타이인들에게 페르시아 군대를 찾아보라고 설득했고, 스키타이인들이 떠난 후 페르시아군이 다뉴브강으로 돌아오자 히스티아이오스는 이들을 안전하게 수송할 배를 준비했다.[4]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트리몬강 (현재의 스트루마 강) 근처 미르키누스(훗날 암피폴리스가 되는 곳)에 정착지를 건설하려 했다. 다리우스 1세와 함께 사르디스로 돌아온 후, 다리우스 1세는 히스티아이오스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고, 히스티아이오스는 미르키누스를 원한다고 답했다.[5] 페르시아 군 사령관 메가바조스는 히스티아이오스가 목재가 풍부하고 유럽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인 미르키누스를 원한다는 점을 의심했다. 다리우스 1세는 히스티아이오스를 신뢰했지만, 불안감을 느껴 수사로 불러들여 친구이자 조언자로 삼았다.[6] 한편, 히스티아이오스의 조카이자 사위인 아리스타고라스밀레토스에 남았다.[7]

2. 1. 다뉴브 강 다리 방어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히스티아이오스는 다리우스 1세의 스키타이 원정에 참여한 다른 참주들과 함께 다뉴브강에 설치된 다리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4] 스키타이인들은 히스티아이오스 등에게 다리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당시 아테네의 참주였던 밀티아데스는 스키타이인들의 조언을 따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히스티아이오스는 참주로서의 지위가 다리우스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가 죽으면 틀림없이 전복될 것이므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2]

대신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키타이인들의 제안을 따르는 척하자고 제안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키타이인들에게 사절로 보내져 참주들이 스키타이 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나머지 참주들은 다리를 파괴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키타이인들에게 페르시아군을 찾도록 설득했다.[4]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들이 떠나 있는 동안 페르시아인들이 다뉴브강으로 돌아왔고 히스티아이오스는 그들을 강 건너로 무사히 수송하기 위해 배를 조직했다고 기록한다.[4]

2. 2. 미르키노스 정착 시도

히스티아이오스는 스트리몬강 유역의 미르키누스(이후 암피폴리스가 세워진 곳)에 정착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다리우스 1세와 함께 사르디스로 돌아온 후, 다리우스는 히스티아이오스에게 공헌에 대한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고, 히스티아이오스는 미르키누스 지배권을 원한다고 답했다. 다리우스는 이에 동의했다.[5]

그러나 페르시아 사령관 메가바주스는 히스티아이오스가 페르시아 통치 영토에서 유럽으로 가는 주요 도로를 통제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과 목재의 원천에 관심을 보였다고 의심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우스는 히스티아이오스를 충성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를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자신과 함께 수사로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6]

3. 이오니아 반란 (기원전 499년 ~ 기원전 494년)

Ἱστιαῖος|히스티아이오스grc페르시아다리우스 1세에게 반기를 든 이오니아 반란을 선동하고, 이후 반란에 직접 가담했다.

기원전 499년, 히스티아이오스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노예의 머리에 문신으로 메시지를 새겨 아리스타고라스에게 보냈다. 이 메시지는 페르시아에 대한 반란을 지시하는 내용이었다.[8] 낙소스 섬 원정에 실패하여 부하들에게 미움을 받던 아리스타고라스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아테네에레트리아에 지원을 요청하고, 사르디스를 불태웠다.[9] 다리우스 1세는 반란 소식을 듣고 히스티아이오스를 불렀으나, 히스티아이오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반란 진압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리우스 1세는 그의 요청을 허락했다.

밀레토스로 가던 중 히스티아이오스는 사르디스에 들러 페르시아 관리 아르타페르네스에게 반란의 원인에 대한 추궁을 받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아르타페르네스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자, 히스티아이오스는 키오스 섬으로 도망쳤다. 이후 히스티아이오스는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페르시아에 저항했지만, 결국 페르시아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3. 1. 반란 선동

Ἱστιαῖος|히스티아이오스grc는 수사에 머무는 것이 불쾌하여, 이오니아에서 반란을 일으켜 밀레토스의 왕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을 계획을 세웠다.[3] 기원전 499년, 그는 가장 신뢰하는 노예의 머리를 삭발하고, 머리에 문신으로 메시지를 새긴 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를 기다렸다. 그 후 노예는 아리스타고라스에게 보내졌고, 아리스타고라스는 노예의 머리를 다시 삭발하고 메시지를 읽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메시지는 그에게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키라고 말하고 있었다.[8]

낙소스 원정이 실패한 후 자신의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던 아리스타고라스는 히스티아이오스의 명령에 따라[8] 아테나이에레트리아의 도움을 받아 사르디스를 공격하고 불태웠다.[9]

3. 2. 반란 가담과 배신

기원전 499년, 히스티아이오스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노예의 머리에 메시지를 문신으로 새겨 아리스타고라스에게 보냈다. 이 메시지는 페르시아에 대한 반란을 지시하는 내용이었다.[8] 낙소스 섬 원정에 실패하여 부하들에게 미움을 받던 아리스타고라스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8] 그는 아테나이에레트리아에 지원을 요청하고, 사르디스를 불태웠다.[9]

다리우스 1세는 반란 소식을 듣고 히스티아이오스를 불렀으나, 히스티아이오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반란 진압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리우스 1세는 히스티아이오스를 의심하지 않고 요청을 허락했다.

밀레토스로 가던 중 히스티아이오스는 사르디스에 들렀다. 그곳에서 페르시아 관리 아르타페르네스에게 반란의 원인에 대한 추궁을 받았지만, 히스티아이오스는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아르타페르네스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자, 히스티아이오스는 키오스 섬으로 도망쳤다.

히스티아이오스는 키오스 섬에서 함대를 조직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밀레토스 참주로 복귀하려 했다. 그러나 밀레토스인들은 참주 복귀를 원하지 않았고, 히스티아이오스를 레스보스 섬으로 추방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히스티아이오스는 레스보스 섬에서 함대를 모아 비잔티움을 기지로 흑해에게해에서 해적 행위를 했다.[10]

3. 3. 최후

기원전 494년 라데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이 이오니아 반란군을 진압하자, 히스티아이오스는 비잔티움을 떠나 키오스 섬을 공격하고 타소스섬을 봉쇄한 후, 페르시아 군을 공격하기 위해 본토에 상륙하려 했다.[11] 그러나 그리스 군이 페르시아 군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결집했지만, 히스티아이오스는 페르시아 제국 군의 하르파고스 장군에게 체포되었다.[11]

총독 아르타페르네스다리우스 1세가 히스티아이오스를 사면할 것을 우려하여 그를 수사로 돌려보내지 않고 처형했다.[3] 아르타페르네스는 히스티아이오스의 머리를 미라로 만들어 다리우스 1세에게 보냈다.[11]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다리우스 1세는 히스티아이오스가 반역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그의 머리를 명예롭게 매장했다.[11] 그러나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역적의 머리를 명예로운 매장에 처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조

[1] 서적 Ancient Persia: A Concise History of the Achaemenid Empire, 550–330 BC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2] 서적 The Histories Penguin Group 2003
[3] 서적 Ancient Persia: A Concise History of the Achaemenid Empire, 550–330 BCE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4] 서적 히스토리아
[5] 서적 히스토리아
[6] 서적 히스토리아
[7] 서적 히스토리아
[8] 서적 히스토리아
[9] 서적 히스토리아
[10] 서적 히스토리아
[11] 서적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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