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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cm 열차포가 캐넌포 구스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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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80 cm 열차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개발된 세계 최대 구경의 열차포이다. 1934년 독일 육군 최고 사령부의 의뢰로 크루프사가 설계했으며, 마지노 선의 요새 파괴를 목표로 했다. 1937년 설계가 완료되어 제작이 시작되었으나, 기술적 난제로 인해 완공이 지연되었다. 두 문이 제작되어 '구스타프'와 '도라'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으며, 세바스토폴 포위전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되었다. 엄청난 크기와 무게 때문에 이동과 설치에 어려움이 있었고, 연합군의 제공권 장악으로 운용에 제약이 있었다. 1945년 연합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괴되었으며, 3번째 포는 52cm 구경에 장거리 로켓 발사 기능을 갖도록 설계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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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cm 열차포가 캐넌포 구스타프
개요
도라의 모형
도라의 모형
종류철도포
사용 기간1941년~1945년
사용 국가국방군
참전 전쟁제2차 세계 대전
개발
설계크루프
설계 년도1937년
제작사크루프
생산 년도1941년
생산 수량2문
단위 비용700만 라이히스마르크
제원
중량1,350톤
전체 길이47.3m
포신 길이32.5m (L/40.6)
7.1m
높이11.6m
구경800mm
포탄철갑탄(AP)
고폭탄(HE)
발사 속도30~45분당 1발 또는 하루 14발
포구 속도820m/s (고폭탄)
720m/s (철갑탄)
사거리약 39,000m
최대 사거리47,000m (고폭탄)
38,000m (철갑탄)
각도최대 48°
운송철도
화차
기중기
운용
운용 인원포 조작: 약 1,400명
지원 인원: 4,000명 이상
조립 시간3일 (54시간, 250명)
기타 인원궤도 설치 및 제방 건설: 2,500명
대공 방어: 2개 Flak 대대 (항공 공격으로부터 보호)

2. 개발

1934년, 독일 육군 최고 사령부(OKH)는 에센크루프사에 프랑스 마지노 선의 요새를 파괴할 대포 설계를 의뢰했다. 크루프 사의 기술자 에리히 뮐러는 7미터의 철근 콘크리트 또는 1미터 두께의 강철 장갑판을 프랑스 포병의 사정거리 밖에서 뚫기 위해서는 구경 약 80 cm, 포신 30 m, 무게 1천 톤이 넘는 거대한 열차포가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포의 선회는 철도 선로의 곡선 구간을 따라 무기를 이동하여 관리해야 했다.[7][8][9]

1936년 3월, 아돌프 히틀러가 에센을 방문하여 거대 대포의 실현 가능성에 의혹을 제기했지만, 80 cm 모델의 설계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1937년 초, 설계도가 완성 및 승인되었고, 1937년 중반에 첫 번째 대포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강철 조각을 단조하는 데 기술적인 복잡성이 있어, 원래 완공 예정일인 1940년 초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10]

1939년 말, 크루프 사는 시험 모델을 제작하여 힐러슬레벤 사격장으로 보내 시험을 실시했다. 높은 고도로 발사된 7100 kg 포탄은 규정된 7미터의 콘크리트와 1미터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었다.[11] 1940년 중반에 시험이 완료되었고, 알프리트 크루프는 1941년 초 뤼겐발데 시험장에서 히틀러를 직접 초청하여 구스타프 대포의 공식 승인 시험을 진행했다.

런던 제국 전쟁 박물관에 있는 800mm 슈베러 구스타프 포탄. 비교를 위한 사람


두 개의 대포가 주문되었다. 첫 번째 발사는 1941년 9월 10일 힐러슬레벤의 임시 포가에서 시험 발사되었다. 1941년 11월, 포신은 현재 폴란드 다르워인 Schießplatz Rügenwalde-Badde로 옮겨졌고, 7,100킬로그램의 철갑탄(AP)을 사용하여 37,210 m 사거리에서 8번의 추가 발사 시험이 실시되었다.

실전에서 대포는 두 개의 평행 철도 궤도에 8개의 보기로 지지되는 특수 설계된 섀시에 장착되었다. 각 보기는 5개의 차축을 가지고 있어 총 40개의 차축(80개의 바퀴)이 있었다. 크루프는 이 대포의 이름을 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 회사의 선임 이사인 '슈베러 구스타프'(중(重) 구스타프)로 명명했다.

대포는 무거운 콘크리트 관통탄과 가벼운 고폭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150 km의 사거리를 가진 극초장거리 로켓 발사체도 계획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포신을 84 m까지 연장해야 했다.[12]

크루프 회사의 전통에 따라 첫 번째 대포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용도 청구되지 않았다.[13] 그들은 두 번째 대포인 '도라'에 대해 7백만 제국 마르크(2015년 약 2,400만 달러)를 청구했는데, 이는 선임 엔지니어의 아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슈베러 구스타프(검정색)는 OTR-21 Tochka SRBM 발사기(빨간색)와 비교했을 때(유사한 크기와 사정거리의 투사체를 발사) 사람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3. 구조 및 제원

80cm 열차포는 두 종류의 포탄을 사용했다.[11]

고폭탄철갑탄
길이3.6m
무게4,800kg7,100kg
포구 속도820m/s720m/s
최대 사거리48km38km
폭약 중량700kg250kg
효과분화구 크기:
폭 10m 깊이 10m
관통력:
최대 고각에서 특수 장약 사용시 콘크리트 7m 관통.[11]
비고이 포는 당시 독일의 대부분의 고폭탄과 유사한 설계의 기본적인 고폭탄을 발사했다.주 탄체는 크롬-니켈강으로 제작되었으며, 알루미늄 합금 탄두 덮개가 장착되었다.



800mm 포탄과 T-34/85의 비교 (Imperial War Museum)


80cm 열차포를 견인하기 위해, 전용 전기식 디젤 기관차 D311형도 제작되었다. 2량 고정 편성 2대가 1941년크루프사에서 제작되었다. 전장 22.5m, 출력 1,880마력, 최고 속도 75km/h, 8동축(4동축 * 2량)이며, 총 중량은 147t이었다.

이 기관차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서독 철도 V188형 → 288형 디젤 기관차가 되어, 화물 열차를 견인했다. 288형은 1972년까지 사용되었다.

#REDIRECT는 제거되어야 한다.

3. 1. 성능

80cm 열차포는 고폭탄과 철갑탄 두 종류의 포탄을 사용했다.[11] 고폭탄은 무게 4.8톤, 포구 속도 820m/s, 최대 사거리 48km, 폭약 중량 700kg이며, 폭 10m, 깊이 10m의 크레이터를 생성했다. 포탄 본체는 니켈 크롬강, 노즈 콘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철갑탄은 무게 7.1톤, 포구 속도 720m/s, 최대 사거리 38km, 폭약 중량 250kg이며, 7m의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었다.[11]

고폭탄철갑탄
길이3.6m
무게4,800kg7,100kg
포구 속도820m/s720m/s
최대 사거리48km38km
폭약 중량700kg250kg
효과분화구 크기:
폭 10m 깊이 10m
관통력:
최대 고각에서 특수 장약 사용시 콘크리트 7m 관통.[11]
비고이 포는 당시 독일의 대부분의 고폭탄과 유사한 설계의 기본적인 고폭탄을 발사했다.주 탄체는 크롬-니켈강으로 제작되었으며, 알루미늄 합금 탄두 덮개가 장착되었다.



4. 운용

4. 1. 실전 기록

1941년에는 1번 포가 완성되었고, 같은 해 9월, 마그데부르크 북동쪽의 힐러스레벤 근교의 실험장에서 첫 번째 시험 사격이 이루어졌다. 그 후, 포는 포메라니아의 뤼겐발데(Rügenwaldede: 현재 폴란드령 다르워보) 사격 시험장으로 이송되어 시험 사격과 운용 훈련이 이루어졌다.

1942년1월, 운용 부대로서 부대장 뵘(R. Böhmde) 대령 지휘 하에 제672 중포병대(E)가 편성되었고, 같은 해 2월에는 1번 포 "구스타프"를 세바스토폴 요새 포위전에 투입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제672 중포병대(E)는 확대 재편성되어 출격했다. 분해된 기재는 3월 초부터 반출을 시작하여, 같은 달 하순부터 순차적으로 현지에 도착했고, 4월 중에는 운용을 위한 전용선 외 구축이 완료, 5월에는 포 설치를 시작하여, 6월 5일에는 발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6월 6일에는 10m 콘크리트로 방호된 지하 30m 해저 탄약고에 명중시켜 이를 파괴, 6월 17일에는 막심 고리키 요새의 30.5cm 포탑에 명중탄을 가했다. 이 일련의 전투에서 구스타프는 48발을 발사했으며, 포위전 이후 강선의 마모로 인해 수명이 다한 포신을 교체한 후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참여하기 위해 레닌그라드 교외로 이동, 1943년까지 대기 상태로 그곳에 주둔했다.

파괴된 세바스토폴 요새의 30.5cm 연장 포탑


2번 포 "도라"는 1942년에 완성되었고, 1942년 8월 중순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 교외에 전개, 같은 해 9월 13일에는 발사 준비 체제를 완료했지만, 같은 해 11월에는 전황의 급변에 따라 철수했다.

이후 구스타프, 도라 모두 중포병 부대가 전개된 작전마다 투입이 검토되었지만, 이동과 전개, 그리고 사격 준비에 막대한 인원과 자재, 그리고 주 단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획될 때마다 중단되었고, 전쟁 후반에는 독일군이 제공권을 잃었기 때문에 이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1944년의 바르샤바 봉기 진압에도 카를 자주 박격포와 함께 투입이 계획되어, 출동 준비 단계까지 진행되었지만, 최종적으로 투입되지는 않았다.

구스타프, 도라 모두 1945년 4월에는 연합국 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폭파 처분되었고, 구스타프의 잔해는 켐니츠 근교에서 소련군에, 도라의 잔해는 뉘른베르크 근교에서 미군에 의해 발견·회수되었지만, 회수된 잔해의 그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또한, 3번째(3량째)는 포구경을 52cm로 감소시킨 대신 포신 길이를 43m까지 증가시킨 장포신형(구경장 82.7)으로 변경될 예정이었다. 이 포는 통상 포탄뿐만 아니라 탄체에 로켓 모터를 내장한 로켓 보조 추진탄을 발사할 수 있으며, 발사 중량 680kg의 탄체를 최대 사정거리 190km의 거리에 투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3번 포는 완성되지 못했고, 포의 일부만이 전후 에센의 크루프 공장에서 발견되었다.

4. 1. 1. 슈베러 구스타프 (도라)

1942년 1월, 운용 부대로서 부대장 뵘(R. Böhmde) 대령 지휘 하에 제672 중포병대(E)가 편성되었고, 같은 해 2월에는 1번 포 "구스타프"를 세바스토폴 요새 포위전에 투입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제672 중포병대(E)는 확대 재편성되어 출격했다.[24] 분해된 기재는 3월 초부터 반출을 시작하여, 같은 달 하순부터 순차적으로 현지에 도착했고, 4월 중에는 운용을 위한 전용선 외 구축이 완료, 5월에는 포 설치를 시작하여, 6월 5일에는 발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6월 6일에는 10m 콘크리트로 방호된 지하 30m 해저 탄약고에 명중시켜 이를 파괴, 6월 17일에는 막심 고리키 요새의 30.5cm 포탑에 명중탄을 가했다. 이 일련의 전투에서 구스타프는 48발을 발사했으며, 포위전 이후 강선의 마모로 인해 수명이 다한 포신을 교체한 후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참여하기 위해 레닌그라드 교외로 이동, 1943년까지 대기 상태로 그곳에 주둔했다.

2번 포 "도라"는 1942년에 완성되었고, 1942년 8월 중순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 교외에 전개, 같은 해 9월 13일에는 발사 준비 체제를 완료했지만, 같은 해 11월에는 전황의 급변에 따라 철수했다.

이후 구스타프, 도라 모두 중포병 부대가 전개된 작전마다 투입이 검토되었지만, 이동과 전개, 그리고 사격 준비에 막대한 인원과 자재, 그리고 주 단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획될 때마다 중단되었고, 전쟁 후반에는 독일군이 제공권을 잃었기 때문에 이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구스타프, 도라 모두 1945년 4월에는 연합국 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폭파 처분되었고, 구스타프의 잔해는 켐니츠 근교에서 소련군에, 도라의 잔해는 뉘른베르크 근교에서 미군에 의해 발견·회수되었지만, 회수된 잔해의 그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4. 1. 2. 슈베러 구스타프 2

두 번째로 제작된 포이다. 1942년 8월 중반, 스탈린그라드 서쪽에 배치된다. 9월 13일 발포 준비를 완료하나, 포위망이 격파당하기 시작하자 포를 후퇴시킨다. 마찬가지로 포획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괴되었다.[19]

국방군 군사사 박물관(Militärhistorisches Museum der Bundeswehr)에 전시된 모형


''도라''는 두 번째로 생산된 포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잠시 배치되었는데, 1942년 8월 말, 스탈린그라드 서쪽 15km 지점에 배치되었다.[19] 9월 13일에 발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소련군이 독일군을 포위하려는 위협을 가하자 이 포는 철수되었다. 독일군이 장기간 후퇴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도라''를 함께 가져갔다.

2번 포 "도라"는 1942년에 완성되었고, 1942년 8월 중순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 교외에 전개, 같은 해 9월 13일에는 발사 준비 체제를 완료했지만, 같은 해 11월에는 전황의 급변에 따라 철수했다.

이후 구스타프, 도라 모두 중포병 부대가 전개된 작전마다 투입이 검토되었지만, 이동과 전개, 그리고 사격 준비에 막대한 인원과 자재, 그리고 주 단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획될 때마다 중단되었고, 전쟁 후반에는 독일군이 제공권을 잃었기 때문에 이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구스타프, 도라 모두 1945년 4월에는 연합국 군에게 노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폭파 처분되었고, 구스타프의 잔해는 켐니츠 근교에서 소련군에, 도라의 잔해는 뉘른베르크 근교에서 미군에 의해 발견·회수되었지만, 회수된 잔해의 그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4. 1. 3. 랑거 구스타프

Langer Gustav영어는 구경 52cm, 포신 길이 43m의 장거리포였다. 680kg의 초장거리 로켓 발사체를 190km까지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프랑스 칼레에서 런던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였다. 그러나 이 포는 건설 중 에센에 대한 여러 차례의 RAF 폭격으로 손상되어 완성되지 못했다.

5. 한계 및 문제점

80cm 열차포는 엄청난 크기와 무게로 인해 이동과 설치가 매우 어려웠다. 전용 철로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고, 포의 회전을 위해서는 철로에 곡선을 만들어야 했다. 발사 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으로 인해 병사들의 고막이 손상되는 경우가 잦았다. 연합군의 제공권 장악으로 인해 운용에 큰 제약을 받았다.

6. 후속 계획

란트크로이저 P. 1500 몬스터는 80cm K(E) 포, 15cm sFH 18 중(重) 곡사포 2문, 다수의 MG 151 기관포로 무장한 자주포이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1943년 이 계획을 취소했다. 설계도를 넘어서 어떠한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크루프 사는 1942년 12월에 80 cm 열차포의 "자주포형"으로 총 중량 1,500t에 달하는 거대한 육상 전차, Landkreuzer P.1500 Monster(육상 순양함 P.1500 “몬스터”)의 설계안을 아돌프 히틀러에게 제출했다. P.1500은 250mm의 차체 전면 장갑, MAN사제 잠수함용 디젤 엔진(2,200마력) 4기를 사용해 15km/시로 주행, 80cm 주포와 부무장으로 2기의 15cm sFH 18 중(重)곡사포, MG151 15mm 기관포 다수를 장비할 계획이었다. 이는 마우스 초중전차나 란트크로이저 P. 1000 라테보다 크기가 컸다.

7. 평가

8. 대중 문화

80cm 열차포는 실전에 배치된 대포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그 거대한 크기와 독특한 외형으로 인해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일부 작품에서는 적지 않은 단점을 픽션 특유의 과감한 어레인지와 개량을 통해 극복한 발전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참조

[1] 웹사이트 Hitler's 1,350 tonne super gun intended to destroy France in WW2 https://www.forces.n[...] 2024-06-01
[2] 웹사이트 1500-ton Self-Propelled 80m Gun https://fingolfen.tr[...]
[3] 서적 Hommes et ouvrages de la Ligne Maginot Histoire & collections 2003
[4] 문서 Eisenbahngeschütz DORA Taube
[5] 웹사이트 Hitler's Doomed Schwerer Gustav: Largest Gun Mankind Has Ever Built https://interestinge[...] 2023-12-14
[6] 웹사이트 80 cm Cannon 'Dora' http://www.hpwt.de/2[...] 2015-08-29
[7] 웹사이트 The Biggest Gun Ever Used In Combat: Germany's Schwerer Gustav https://www.slashgea[...] 2023-12-14
[8] 웹사이트 Hitler's Doomed Schwerer Gustav: Largest Gun Mankind Has Ever Built https://interestinge[...] 2023-12-14
[9] 서적 Waffen und Geheimwaffen des deutschen Heeres 1933–1945. (Band 1: Infanteriewaffen, Pionierwaffen, Artilleriewaffen, Pulver, Spreng- und Kampfstoffe.) Bernard und Graefe
[10] 웹사이트 Hitler's 1,350 tonne super gun intended to destroy France in WW2 https://www.forces.n[...] 2023-12-14
[11] 웹사이트 Oil-Electric Engines for 'Dora', The History of the V 188 http://www.aopt91.ds[...]
[12] 웹사이트 Hitler's Doomed Schwerer Gustav: Largest Gun Mankind Has Ever Built https://interestinge[...] 2023-12-14
[13] 문서 Eisenbahngeschütz DORA Taube
[14] 간행물 Dragons and Hot-Air Balloons https://archive.org/[...] 1961-12
[15] 웹사이트 De Schwerer Gustav A Dora http://html2.free.fr[...]
[16] 웹사이트 The 80cm 'Gustav' in Action http://www.aopt91.ds[...]
[17] 문서 Eisenbahngeschütz DORA Taube
[18] 문서 Eisenbahngeschütz DORA Taube
[19] 서적 German Artillery of World War Two https://archive.org/[...] Greenhill Books
[20] 웹사이트 Журнал Техника и вооружение 2009 № 07 - стр 22 https://profilib.net[...] 2018-02-07
[21] 문서 当列車砲について、「グスタフ」もしくは「ドーラ」という名称で記述されていることがあるが、これらはいずれも個々の砲自体に命けられた固有の愛称であり、この「80cm列車砲という兵器“そのもの”」の愛称ではないので注意が必要である。
なお、未完に終わった3基目(3両目)の愛称は“ヘルタ(Herta)”が予定されていた、と記載されている書籍等があるが、この点に関する確定的な資料は2017年現在で発見されていない。

[22] 문서 当列車砲について、「[[複線]]の線路が必要だった」と解説されていることがあるが、この上を走行するのは列車砲1両のみであり、車両がすれ違いも並走もしないので、“複線”の定義には当てはまらない。
[23] 문서 前述のように、“複線”の定義に当てはまらないのと同様、複々線ではない。
[24] 문서 設計としては「2段式ロケットの第1段目が砲の装薬(発射薬)である」と見たほうが近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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