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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공동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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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19 공동성명은 2005년 9월 19일 4차 6자회담에서 채택된 합의문이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매년 200만 킬로와트의 대북 송전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으며, 경수로 무상 제공도 별도로 규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발사 및 10월 1차 핵실험을 통해 공동성명을 파기했다. 이후 2013년 오바마 행정부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9·19 공동성명의 재이행 의사를 천명했다.

2. 9.19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

9·19 공동성명은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6자 회담에서 채택된 성명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핵무기 포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2. 1. 합의 사항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매년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였다.[1] 이는 KEDO가 건설하려던 100만 킬로와트 신포 원자로 2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같다.[1] 한나라당은 30년간 19조 원의 비용과 한국전력공사의 전력 손실 비용까지 추가되어, 과도한 대북 지원이라고 비판했다.[1]

9·19 공동성명에는 대한민국이 매년 200만 킬로와트의 직접 대북 송전 외에도 경수로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다.[1]

3. 관련국 입장

9·19 공동성명은 관련된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2005년 4차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6자 간 이견이 심해지자, 초안 수정을 금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을 압박하여 최종 타결을 이끌어냈다.[1] 2013년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로 채택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과 중국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촉구했다.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이유로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2008년 미국이 중유 5만 톤을 선적했을 때, 일본은 납북자 송환이 없다며 중유 제공을 반대했고, 이에 미국이 일본 부담분 5만 톤을 대신 선적했다.[5]

러시아는 2013년 9월 2일, 외무장관이 6자회담의 진전을 희망한다고 밝혔다.[9]

3. 1.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과 대북 포용 정책에 따라 9·19 공동성명에 참여했다. 이 성명에서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매년 2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1] 이는 당초 KEDO가 지어주려던 100만 킬로와트 신포 원자로 2기가 생산하는 분량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30년간 19조 원의 비용과 한국전력공사의 전력 손실 비용까지 추가되어 '천문학적인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또한, 대한민국이 직접 대북 송전 외에도 경수로 무상 제공을 별도로 규정했다는 점도 논란이 되었다.

2007년 8월 3일, 한국은 5만 톤의 중유 제공을 완료했다. 유황 2.5%인 저유황 중유로 톤당 400USD였으며, 보험료와 운송비 등을 포함해 모두 2220억이 소요되었고, SK에너지의 울산항 전용부두에서 선박으로 공급했다.[3] 이 비용은 남북협력기금 예비비에서 충당했다. 그러나 2007년 12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된 중유가 저품질이라는 주민들의 불만이 보도되기도 했다.[4]

2008년 11월 13일, 미국은 일본이 납북자 송환 문제를 이유로 중유 제공을 반대하자 일본 부담분 5만 톤을 대신 선적했다. 원래 미국 부담 5만 톤은 한국이 대신 공급하기로 하고 미국은 중유 5천 톤에 해당하는 소형 발전기만 제공하기로 했다. 5개국은 모두 100만 톤의 중유(5000억 정도)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5][6][7]

2013년 6월 28일,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과 중국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촉구했다.

3.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2006년 7월 4일(미국 시각)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같은 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실시하여 9·19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1]

북한은 9·19 공동성명 체결 이후에도 여러 불만을 제기했다. 2005년 12월 15일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은 '3대 장벽' 제거를 요구하며, 남한이 북한 현충원 참배를 금지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3대 장벽은 다음을 의미한다.

분야내용
정치상대방 비난 중지, 상대방 인사 방문지 제한 금지
군사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
경제전략물자 수출통제 해제



북한은 2006년 5월 25일 실시된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 훈련, 그리고 매년 8월에 실시되는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에 대해 9·19 공동성명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동원되는 미국의 항공모함, 전투기, 구축함 등이 공격용 무기이며, 미국 군함에는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2월, 북한은 중유 200만 톤을 요구했다는 일본의 보도가 있었으나, 천영우 본부장은 이를 부인했다.[2] 이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50만 톤보다 4배 많은 양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북한에 제공된 중유가 저품질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4]

2008년 6월 27일,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 참관하에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되었다. 같은 해 11월, 미국은 일본이 납북자 문제로 중유 제공을 반대하자 일본 부담분 5만 톤을 대신 선적했다.[5][6] 2009년 3월, 북한은 중유 지원 지연을 이유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8]

2013년, 북한은 9·19 공동성명을 자신들이 먼저 위반한 것이 아니라 한국, 미국, 일본이 먼저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공동성명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강조했다.

3. 3. 미국

2013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9·19 공동성명의 재이행 의사를 천명하였다.[9] 2013년 4월 15일, 존 케리 국무장관은 9.19 공동성명 공약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2006년 5월 25일,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 훈련이 실시되자 북한은 9.19 공동성명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공동성명에는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훈련에는 미국의 재래식 공격무기인 항공모함, 전투기, 구축함이 동원되며, 미국 군함에는 공격무기인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은 매년 변함없이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나, 북한은 공격용 재래식 무기와 공격용 핵무기를 갖고 훈련하는 것은 중대한 군사도발이며 군사적으로 보복하겠다고 매년 주장한다.

2007년 2월 15일, 존 볼턴 등 미국 보수파들은 6자회담 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재탕이라고 비판했다.[2] 비핵화의 대가로 중유를 제공하는 것은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아이디어이다.

2008년 11월 13일, 미국은 중유 5만 톤 선적을 완료했다. 일본은 납북자 송환이 없다며 중유 제공을 반대해 일본 부담분 5만 톤을 미국이 대신 선적한 것이다. 원래 미국 부담 5만 톤은 한국이 대신 공급하기로 하고 미국은 중유 5천 톤에 해당하는 소형 발전기만 제공하기로 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8년간 350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였으나 2002년 제2차 북핵위기로 합의가 파기된 경험 때문에, 미국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5] 당초 일본 대신 호주나 EU를 고려했으나, 미국이 대신 중유를 부담하기로 했다.[6]

3. 4. 중국

2005년 4차 6자회담 의장국은 중국이었으며, 6자 간 이견이 심해 최종 타결이 어려워지자 초안 수정을 금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을 압박하여 최종 타결을 이끌어냈다.[1]

2013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이 채택되었고, 한국과 중국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촉구했다.[2]

3. 5. 일본

일본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납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5] 2008년 11월 13일, 미국이 중유 5만 톤 선적을 완료했을 때, 일본은 납북자 송환이 없다며 중유 제공을 반대하여 일본 부담분 5만 톤을 미국이 대신 선적하기도 했다.[5] 당초 일본 대신 호주나 EU를 고려했으나, 미국이 대신 중유를 부담하기로 결정했다.[6]

4. 9.19 공동성명의 파기와 재논의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체결되었다. 이 성명은 중국의 주도하에 미국 부시 행정부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 대표, 대한민국 노무현 정부정동영 통일부 장관, 천영우 6자회담 한국 대표 등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2006년 7월 4일(미국 시각)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같은 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9·19 공동성명을 사실상 파기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2005년 12월 15일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3대 장벽' 제거를 요구하며 남한 현충원 참배 제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 독수리 훈련,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 등 한미 연합 훈련이 지속되자, 북한은 이를 9·19 공동성명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2007년에는 비핵화 대가로 중유 제공이 논의되었으나, 존 볼턴 등 미국 보수파들은 제네바 합의의 재탕이라며 비판했다. 2008년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냉각탑 폭파가 이루어졌지만, 중유 지원 지연 문제 등으로 북한은 핵 불능화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2013년,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은 9·19 공동성명 이행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고,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공동성명 이행이 촉구되었다. 러시아도 6자회담 진전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이 먼저 공동성명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강조했다.

4. 1. 파기 과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06년 7월 4일(미국시각) 대포동 2호를 발사하여 협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1] 대포동에서 대포동 2호 1발과 깃대령 851 부대에서 노동 1호와 스커드 미사일 5발을 발사했다. 이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단행하여 9·19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파기하였다.[1]

2006년 5월 25일,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 훈련이 실시되었다. 북한은 9.19 공동성명의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항의했다. 한미연합훈련에는 미국의 재래식 공격무기인 항공모함, 전투기, 구축함이 동원되며, 미국 군함에는 공격무기인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은 매년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나, 북한은 공격용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갖고 훈련하는 것은 중대한 군사도발이라며 군사적 보복을 주장한다.[1]

2006년 8월에는 한미연합훈련인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이 실시되었다. 북한은 이 훈련을 군사도발이라고 비난한다.[1]

2013년 7월 2일, 북한은 9.19 공동성명을 자신들이 먼저 위반한 것이 아니고, 한국, 미국, 일본이 먼저 위반하여 자신들도 더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동성명에는 "행동 대 행동"이라고 규정되어 있다.[1]

4. 2. 재논의 과정

2013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9·19 공동성명의 재이행 의사를 천명하였다.[9]

  • 2013년 4월 15일 -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9·19 공동성명 공약을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 2013년 6월 28일 - 한중 정상회담 결과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촉구했다.
  • 2013년 7월 2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9·19 공동성명을 자신들이 먼저 위반한 것이 아니고, 한국, 미국, 일본이 먼저 위반하여 자신들도 더는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동성명에는 "행동 대 행동"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 2013년 9월 2일 - 러시아 외무장관은 6자회담 진전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5. 9.19 공동성명의 한계와 의의

9·19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었지만, 여러 한계점도 가지고 있었다.
한계점:


  • 검증 메커니즘 부재: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 시설 폐기 및 핵 프로그램 중단을 검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명시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를 확인하고 제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 의혹: 공동성명 발표 이후에도 북한은 핵 개발을 지속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공동성명을 사실상 파기하였다.
  • 미국 등 관련국의 소극적 태도: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거부하고, 대북 금융 제재를 강화하는 등 공동성명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북한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공동성명의 이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의의:

  •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 합의: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 포기, 한반도 비핵화, 관계 정상화 등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이후 북핵 협상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 6자 회담 재개 및 진전: 공동성명은 교착 상태에 빠졌던 6자 회담을 재개시키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 남북 관계 개선: 공동성명은 남북 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북 간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며, 이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


결론적으로, 9·19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합의였지만, 검증 메커니즘 부재, 관련국의 소극적 태도 등 여러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6자 회담 재개 및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6.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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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사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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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9월 19일

| 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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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2월 15일

|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은 '3대 장벽' 제거를 요구. 북한 대표단은 남한 현충원에 참배했지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 현충원에 참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음.

북한이 제거를 요구한 '3대 장벽'
정치상대방에 대한 비난 중지, 상대방 인사 방문지 제한 금지
군사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
경제전략물자 수출통제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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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5월 25일

|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 훈련 실시. 북한은 9·19 공동성명 위반이라며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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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7월 4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포동 2호 최초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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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8월

|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 실시. 북한은 군사도발이라고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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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9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차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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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2월 11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중유 200만 톤을 요구했다는 일본 보도에 대해 천영우 본부장은 부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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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2월 15일

| 존 볼턴 등 미국 보수파들이 6자회담 결과에 불만 표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재탕이라고 비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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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8월 3일

| 한국, 5만 톤 중유 제공 완료. 유황 2.5%인 저유황 중유로 톤당 400USD. SK에너지 울산항 전용부두에서 선박으로 공급. 남북협력기금 예비비에서 충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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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22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된 중유가 저품질이라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는 보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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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7일

| 성 김 국무부 한국과장 참관 하에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냉각탑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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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1월 13일

| 미국, 중유 5만 톤 선적 완료. 일본은 납북자 송환이 없다며 중유 제공을 반대해 일본 부담분 5만 톤을 미국이 대신 선적. 5개국은 모두 100만 톤(약 5억)의 중유를 지원하기로 함.[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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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17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유 지원 지연을 이유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속도 늦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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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4월 15일

| 미국 존 케리 국무장관, 9·19 공동성명 공약 이행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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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28일

|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 채택. 한국과 중국, 9·19 공동성명 이행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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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2일

| 북한, 9·19 공동성명을 자신들이 먼저 위반한 것이 아니고, 한국, 미국, 일본이 먼저 위반해 북한도 더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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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9월 2일

| 러시아 외무장관, 6자회담 진전 희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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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뉴스 https://news.naver.c[...]
[2] 뉴스 https://news.naver.c[...]
[3] 뉴스 https://news.naver.c[...]
[4] 뉴스 https://news.naver.c[...]
[5] 뉴스 https://news.naver.c[...]
[6] 뉴스 https://news.naver.c[...]
[7] 뉴스 https://news.naver.c[...]
[8] 뉴스 https://news.naver.c[...]
[9] 뉴스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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