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J. 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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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J. J. 케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 1938년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태어나 2013년 사망했다. 196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음악 경력을 시작했으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J. J. 케일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970년 에릭 클랩튼이 그의 곡 "After Midnight"을 녹음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1년 앨범 『Naturally』를 통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 케일의 곡들은 에릭 클랩튼, 린 이너 스키너드 등 여러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으며, 2008년에는 에릭 클랩튼과 함께 작업한 앨범 『The Road to Escondido』로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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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 케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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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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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존 웰든 케일 |
출생 | 미국오클라호마주오클라호마시티 |
사망 | 미국캘리포니아주샌디에이고 |
악기 | 기타, 보컬, 피아노, 키보드, 베이스, 드럼 |
장르 | 아메리카나, 케이준, 블루스, 스왐프 록, 컨트리 록, 레드 더트, 털사 사운드 |
직업 | 음악가, 송라이터,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58년 ~ 2013년 |
레이블 | 셸터, 머큐리, 폴리그램, 버진, 라운더, 실버톤 |
관련 활동 | 에릭 클랩튼, 레온 러셀, 가죽 코팅된 광산 |
웹사이트 | jjcale.com |
2. 생애와 경력
J. J. 케일은 1938년 12월 5일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태어나[35] 털사에서 성장했으며, 1956년 털사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대 초, 털사의 젊은 음악가들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스튜디오 기술자로 일했다.[37] 1960년대 중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과의 혼동을 피하도록 나이트클럽 오너가 'J. J. 케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38][39]
1970년 에릭 클랩튼이 「애프터 미드나잇」을 녹음하며 그의 음악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1971년 첫 앨범 『Naturally』는 블루스, 포크, 재즈가 융합된 독특한 사운드로 호평받았으며,[40] 수록곡 「Crazy Mama」는 1972년 빌보드 핫 100에서 최고 22위를 기록했다.
그의 곡들은 에릭 클랩튼(「애프터 미드나잇」, 「코카인」), 랜디 크로포드(「Cajun Moon」), 웨일론 제닝스(「Clyde」, 「Louisiana Women」), 캔자스(「Bringing It Back」), 캡틴 비프하트 앤 더 매직 밴드[43], 레이너드 스키너드, 브라이언 페리(「Call Me the Breeze」, 「I Got the Same Old Blues」), 톰 페티(「I'd Like to Love You, Baby」), 와이드스프레드 패닉(「Travelin' Light」, 「Ride Me High」), 해리 맹스(「Tijuana」), 카를로스 산타나(「Sensitive Kind」), 허비 맨과 시시 휴스턴(「Cajun Moon」)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리메이크했다.[44]
2013년 7월 26일,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의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5][46]
2. 1. 초기 생애 (1938-1964)
J. J. 케일은 1938년 12월 5일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태어났다.[1] 그는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자랐고, 1956년 털사 센트럴 고등학교(Tulsa Central High School)를 졸업했다. 기타를 배우는 것 외에도 털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음향 엔지니어링의 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녹음 스튜디오를 직접 지었다.[4] 졸업 후 군에 징집되어 일리노이주 랜툴의 공군 훈련 사령부(Chanute Air Force Base)에서 훈련을 받았다. 케일은 "나는 정말 총을 들고 그런 일들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공군에 입대했고, 기술 훈련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전자 공학에 대해 조금 배웠습니다."라고 회상했다.[5] 케일의 믹싱 및 음향 녹음에 대한 지식은 그의 스튜디오 앨범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6]2. 2. 초기 음악 경력 (1964-1970)
다른 젊은 털사 출신 음악가들과 함께 케일은 1964년 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바와 클럽에서 연주했다.[7] 그 해 멜 맥다니엘(Mel McDaniel)이 케일의 곡 "Lazy Me"로 지역 히트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성공을 맛보았다. 1965년 3월, 위스키 어 고 고(Whisky a Go Go)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잡는 데 성공했고,[8] 클럽 공동 소유주인 엘머 발렌타인(Elmer Valentine)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John Cale)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케일의 이름을 J. J. 케일로 바꾸었다.[9] 1966년, 리버티 레코드(Liberty Records)에서 데모 싱글 "자정 이후(After Midnight)" (B 사이드: "Slow Motion")를 녹음했다.[10] 그는 이 싱글의 사본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던 털사 출신 음악가 친구들에게 배포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세션 뮤지션으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자정 이후"를 녹음하여 20위권 히트를 기록하면서 케일의 경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케일은 녹음 아티스트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충분한 돈을 벌 수 없었던 그는 1967년 말 기타를 팔고 털사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털사 출신 음악가 돈 화이트(Don White)와 밴드를 결성했다.2. 3. 명성을 얻다 (1971-1979)
1970년, 에릭 클랩튼이 케일의 "After Midnight"을 자신의 데뷔 앨범에 수록하면서 케일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케일은 1970년 이 곡이 라디오에서 히트하기 전까지 클랩튼이 자신의 곡을 녹음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모조''와의 인터뷰에서 클랩튼의 버전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가난했고, 먹고살 돈도 부족했고, 젊은이도 아니었다. 30대였기에 매우 기뻤다. 돈을 벌게 되어 좋았다."[11]라고 회상했다. 케일의 "After Midnight" 버전은 클랩튼의 열정적인 버전과 매우 다르며, 클랩튼의 버전은 케일의 편곡을 기반으로 한다.이후 케일에게 자신의 음반을 낼 것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1971년 10월 25일 발매된 그의 첫 앨범 ''Naturally''는 그의 스타일을 확립시켰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리처드 크로멜린은 이 앨범을 "블루스, 포크, 재즈의 독특한 혼합으로, 편안한 그루브와 케일의 유려한 기타 연주, 상징적인 보컬이 특징이다. 초기 드럼 머신 사용과 파격적인 믹스는 아메리카나 뿌리 음악 순수주의자들과는 다른 독특하고 시대를 초월한 품질을 부여한다."[13]라고 묘사했다. 1972년, 앨범 수록곡이자 그의 미국 내 최대 히트 싱글인 "Crazy Mama"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22위에 올랐다. 2005년 다큐멘터리 영화 ''To Tulsa and Back''에서 케일은 이 곡을 홍보하기 위해 딕 클라크의 ''아메리칸 밴드스탠드''에 출연할 기회를 제안받았으나, 밴드를 데려갈 수 없고 가사를 립싱크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14]
1983년까지 케일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오디 애쉬워스가 제작한 ''Really''는 케일의 두 번째 앨범으로, 그를 유명하게 만든 "털사 사운드"를 더욱 발전시켰다. 포크, 재즈, 셔플 컨트리 블루스, 록앤롤이 늪처럼 혼합된 스타일이다. 그의 곡들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드럼 머신을 자주 사용하고 보컬을 여러 겹으로 쌓는 등 케일은 앨범을 신중하게 제작했다. 2013년 리디아 허친슨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엔지니어였고, 사운드를 조작하는 것을 좋아했다. 녹음의 기술적인 면을 사랑한다. 아무도 홈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에 나는 녹음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었다."[15]라고 설명했다. 케일은 종종 프로듀서, 엔지니어, 세션 연주자를 겸했다. 그의 보컬은 속삭이는 듯했고, 믹스에 묻히곤 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사운드가 녹음 믹서이자 엔지니어였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며, "이제 모든 기술 덕분에 스스로 음악을 만들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에 그런 식으로 시작했고, 그렇게 했을 때 독특한 사운드를 얻게 되었다."[16]라고 말했다.
케일은 다른 아티스트들만큼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다른 아티스트들이 그의 곡을 녹음하면서 얻는 로열티 덕분에 원하는 대로 녹음하고 투어할 수 있었다. 1974년 Lynyrd Skynyrd가 ''Second Helping'' 앨범에 "Call Me the Breeze"를 녹음하면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그는 러셀 홀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유명해지면 내 삶이 완전히 바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면에 돈을 좀 버는 것은 일을 하러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 외에는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17]라고 말했다.
케일의 세 번째 앨범 ''Okie''에는 가장 많이 녹음된 곡들 중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같은 해 캡틴 비프하트는 ''Bluejeans & Moonbeams'' 앨범에 "I Got the Same Old Blues"(줄여서 "Same Old Blues")를 녹음했는데, 이는 비프하트 앨범에 실린 몇 안 되는 오리지널이 아닌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에릭 클랩튼, 바비 블랜드, Lynyrd Skynyrd, 브라이언 페리도 녹음했다. "Cajun Moon"은 허비 맨이 1976년 앨범 ''Surprises''에서 시시 휴스턴의 보컬로 녹음했고, Poco는 ''Cowboys & Englishmen'' 앨범에서, 랜디 크로포드는 ''Naked and True''(1995)에서 녹음했다.
1976년 앨범 ''Troubadour''에는 "Cocaine"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곡은 이듬해 에릭 클랩튼에게 큰 히트를 안겨주었다. 2004년 다큐멘터리 ''To Tulsa and Back''에서 케일은 "'Cocaine'을 썼을 때 모스 앨리슨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모스 앨리슨 스타일의 칵테일 재즈 스윙으로 곡을 썼다. 오디(프로듀서)가 '존, 그건 정말 좋은 곡이지만, 조금 더 록앤롤, 조금 더 상업적으로 만들어야 해.'라고 해서 '알았어, 친구.'라고 답하고 다시 녹음했다."[18]라고 회상했다. 곡의 의미는 모호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이를 반마약 노래로 묘사하며 "매우 영리하게 반코카인"이라고 언급했다.[18]
1979년 ''5''를 녹음할 무렵, 케일은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크리스틴 레이크랜드를 만났고, 이 앨범은 그녀가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다. 2005년 다큐멘터리 ''To Tulsa and Back''에서 레이크랜드는 B.B. 킹과 웨이론 제닝스가 출연하는 교도소 자선 공연 백스테이지에서 케일을 만났다고 회상한다. 케일과 레이크랜드는 훗날 결혼했다. 윌리엄 룰만은 AllMusic 리뷰에서 "케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는 계속해서 가끔 블루스적이고 단조로운 곡이 담긴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평소보다 더 간결했는데, 많은 트랙에서 기타뿐만 아니라 베이스도 연주했다. 오늘날 들어보면 다이어 스트레이츠 앨범과 너무 비슷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라고 평했다. ''5'' 발매는 1979년 6월 로스앤젤레스의 러셀 파라다이스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레온 러셀과의 주목할 만한 라이브 세션과 일치한다.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영상에는 ''5''에 수록된 "Sensitive Kind", "Lou-Easy-Ann", "Fate of a Fool", "Boilin' Pot", "Don't Cry Sister" 등이 담겨 있다. 레이크랜드도 케일의 밴드와 함께 공연한다.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던 케일은 러셀의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 영상은 2003년 ''J.J. Cale featuring Leon Russell: In Session at the Paradise Studios''로 공식 발매되었다.
2. 4. 1980년대 (1980-1989)
케일은 1980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전화도 없는 트레일러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1982년 발매된 ''Grasshopper''는 내슈빌과 노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으며, 더욱 세련된 프로덕션을 선보이면서 아메리카나로 알려지게 된 다양한 음악 스타일에 대한 케일의 탐구를 이어갔다.[19]1983년 앨범 ''#8''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그는 폴리그램과의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Takin' Care of Business"를 제외하면 ''#8''의 가사는 끊임없이 암울한 주제를 다룬다. 냉소적인 "Money Talks"("소액으로 살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놀랄 것이다…"), "Hard Times", "Unemployment", "Livin' Here Too"는 가혹한 경제적 어려움과 전반적인 삶에 대한 불만을 다루고 있다. 한편, 도발적인 "Reality"는 앨범에서 그가 기록한 많은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약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것으로, "대마초 한 모금, 약간의 코카인, 모르핀 한 방울이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라고 노래하며 "현실이 떠나면 우울함도 떠난다"라고 덧붙였다.[20]
1970년대에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후, 케일은 1980년대 중반에 자신의 녹음 경력을 중단했다. 비록 몇 개의 작은 히트곡을 냈지만, 케일은 대중 홍보에 무관심했고 스포트라이트를 피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그의 앨범은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했다.
1989년 발매된 ''Travel-Log''는 케일이 오랜 프로듀서인 오디 애시워스 없이 직접 제작한 첫 번째 솔로 앨범이었지만, 애시워스는 케일과 함께 오프닝 트랙 "Shanghaid"를 공동 작곡했다. 이 앨범은 "Tijuana"와 "New Orleans"와 같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케일은 컨셉 앨범을 만들 의도가 없었고 노래를 고른 후에야 이를 인식했다고 주장했다.[21]
2. 5. 1990년대 (1990-1999)
1992년, 케일은 《Number 10》 앨범을 발매했는데, 이는 그가 실버톤에서 발매한 두 번째 LP였다. 70년대와 80년대 앨범과 비교했을 때 세션 연주자를 덜 기용했지만, 여전히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22] 그런지와 《MTV 언플러그드》가 유행하던 시대에 케일은 전자 음악과 신시사이저에 몰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저는 70년대와 80년대에 언플러그드, 라이브 같은 것을 했어요. 이제는 그런 것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다른 방향으로 갔죠. 이미 다 해봤어요! ... 전자 음악에 대한 매력이 있어요… 그것은 그 자체로 예술 형태입니다."라고 말했다.[22]1994년의 《Closer to You》는 신시사이저가 두드러지면서 케일의 이전 앨범들과 사운드 변화를 보여주었다. 케일은 12곡 중 5곡에서 이 악기를 사용했다. 2004년 《Vintage Guitar》와의 인터뷰에서 케일은 일부 팬들의 실망감을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케일이 프로듀싱한 《Guitar Man》은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제작한 앨범들과는 달랐다. 이전 앨범들은 많은 세션 연주자들이 참여했지만, 케일은 《Guitar Man》에서 기타리스트이자 백 보컬인 아내 크리스틴 레이크랜드와 오프닝 곡 "Death in the Wilderness"에 참여한 드러머 제임스 크루스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22] AllMusic의 톰 오웬스는 이 앨범에 대해 "그가 《Guitar Man》을 원맨 밴드 형식으로 녹음했지만, 노련한 바 밴드와 함께 만든 것처럼 놀랍도록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라고 평가했다.[22] 록 작가 브라이언 와이즈는 "'Lowdown'은 전형적인 케일 셔플이고, 'Days Go By'는 특정 물질을 피우는 것에 대한 노래에 재즈적인 느낌을 부여하며, 전통적인 'Old Blue'는 그램 파슨스 시대에 더 버즈 버전으로 처음 들었을 수 있는 곡을 재현한다."라고 언급했다.[22] 《Guitar Man》 이후, 케일은 8년 동안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
2. 6. 후기 경력 (2000-2013)
2004년, 에릭 클랩튼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3일간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을 개최했는데, J. J. 케일도 출연했다. 클랩튼은 케일에게 앨범 프로듀싱을 요청했고, 둘은 함께 앨범을 녹음하여 The Road to Escondido를 발매했다.[24] 이 앨범에는 빌리 프레스턴, 데릭 트럭스, 타지 마할, 피노 팔라디노, 존 메이어, 스티브 조던, 도일 브램홀 2세 등 많은 유명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존 메이어 트리오 전체가 여러 방식으로 참여했다.[24] 에스콘디도는 케일의 집 근처 캘리포니아주 밸리 센터,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으며,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와 90년대 초에 에스콘디도에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앨범 제목에 언급된 도로는 밸리 센터 로드이다.[24]이 앨범은 2008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컨템포러리 블루스 앨범 부문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케일은 14곡 중 11곡을 작곡했으며, "Any Way the Wind Blows"와 "Don't Cry Sister"는 케일이 1970년대에 녹음했던 곡을 다시 녹음한 것이다.[24] 2014년 NPR과의 인터뷰에서 클랩튼은 케일이 그의 음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케일의 음악이 "미국 음악의 다양한 본질, 즉 록, 재즈, 포크, 블루스를 모두 요약했다"고 말했다.[26]
2. 7. 사망
케일은 2013년 7월 26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심근 경색으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7][28][29][30] 사후 앨범인 ''Stay Around''는 이전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로 만들어졌으며, 2019년 4월 26일에 발매되었다.2. 8. 사후
2013년 7월 26일,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74세의 나이에 사망했다.[45][46]3. 털사 사운드
(이전 출력이 비어있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와 요약이 제공되어야 '털사 사운드' 섹션 작성이 가능합니다.)
4. 다른 음악가들과의 관계
에릭 클랩튼은 1970년에 케일의 "After Midnight"을 자신의 데뷔 앨범에 수록하여 케일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무명이었던 케일은 이 곡이 라디오에서 히트하기 전까지 클랩튼의 녹음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모조'' 잡지 인터뷰에서 당시 가난했고 30대였기에 돈을 벌게 되어 매우 기뻤다고 회상했다.[11] 케일의 "After Midnight" 버전은 클랩튼의 열정적인 버전과 다르며, 클랩튼 버전은 케일의 편곡을 기반으로 한다.
케일은 이 홍보를 계기로 1971년 10월 25일 자신의 첫 앨범 ''Naturally''를 발매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 앨범을 "블루스, 포크, 재즈의 독특한 혼합"이라고 묘사하며, 그의 초기 드럼 머신 사용과 독특한 믹스가 특징이라고 평가했다.[13] 그의 미국 내 최대 히트 싱글 "Crazy Mama"는 1972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22위에 올랐다.[14]
케일은 다른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곡을 녹음하면서 얻는 로열티 덕분에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Lynyrd Skynyrd가 1974년 "Call Me the Breeze"를 녹음하면서 또 한 번의 행운을 얻었다.[17] 그는 너무 유명해지면 삶이 바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돈을 벌게 되면 일을 하러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 외에는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17]
케일의 세 번째 앨범 ''Okie''에는 캡틴 비프하트, 에릭 클랩튼, 바비 블랜드, Lynyrd Skynyrd, 브라이언 페리 등이 녹음한 "I Got the Same Old Blues"와 허비 맨, Poco, 랜디 크로포드가 녹음한 "Cajun Moon"이 수록되어 있다.[18]
1976년 앨범 ''Troubadour''에는 에릭 클랩튼에게 큰 히트를 안겨준 "Cocaine"이 수록되어 있다. 케일은 이 곡을 모스 앨리슨 스타일의 칵테일 재즈 스윙으로 썼지만,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좀 더 록앤롤 스타일로 다시 녹음했다고 밝혔다.[18] 에릭 클랩튼은 이 곡을 "매우 영리하게 반코카인" 노래라고 묘사했다.[18]
1979년 ''5''를 녹음할 무렵 케일은 크리스틴 레이크랜드를 만났고, 이후 그녀는 그의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 케일과 레이크랜드는 나중에 결혼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케일은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닐 영과 같은 음악가들은 그를 최고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 중 한 명으로 꼽으며 존경을 표했다.[24]
2004년, 에릭 클랩튼은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에서 케일을 만나 함께 앨범을 녹음할 것을 제안했고, The Road to Escondido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빌리 프레스턴, 데릭 트럭스, 타지 마할, 존 메이어 등 많은 유명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에스콘디도는 케일의 집 근처에 있는 도시이며, 앨범 제목에 언급된 도로는 밸리 센터 로드이다. 이 앨범은 최우수 컨템포러리 블루스 앨범 부문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26]
클랩튼은 1969년 델라니 & 보니와 함께 투어를 하면서 털사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고, 케일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케일을 "미국 음악의 다양한 본질, 즉 록, 재즈, 포크, 블루스를 모두 요약"한 음악가라고 평가했다.[26]
5. 디스코그래피
J. J. 케일은 다양한 음반을 발매했으며, 상세한 내용은 J. J. 케일 음반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47]
5. 1. 스튜디오 앨범
발매 연도 | 음반 제목 |
---|---|
1971 | Naturally |
1972 | Really |
1974 | Okie |
1976 | Troubadour |
1979 | 5 |
1981 | Shades |
1982 | Grasshopper |
1983 | #8 |
1990 | Travel-Log |
1992 | Number 10 |
1994 | Closer to You |
1996 | Guitar Man |
2004 | To Tulsa and Back |
2009 | Roll On |
2019 | Stay Around |
5. 2. 라이브 앨범
- 2001년 라이브
5. 3. 협업 앨범
- 1966년 레더 코티드 마인즈의 멤버로서 ''A Trip Down The Sunset Strip''을 발매하였다.
- 2006년 에릭 클랩튼과 함께 ''The Road to Escondido''를 발매하였다.
참조
[1]
웹사이트
Biography
https://www.jjcale.c[...]
JJ Cale official website
2019-04-19
[2]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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