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F 12 파운드 12cwt 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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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QF 12 파운드 12cwt 함포는 1887년 윌리엄 암스트롱이 개발한 영국 해군의 속사포이다. 초기 영국 구축함의 주포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어뢰정 방어에도 기여했다. 이후 구축함의 대형화로 인해 위력이 부족해 부포로 전환되거나 퇴역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초계함정 등에 사용되었다.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청일 전쟁 중 도입하여 40구경 41년식 12근 속사포로 국산화하여 사용했으며, 대공포로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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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F 12 파운드 12cwt 함포 | |
---|---|
개요 | |
![]() | |
종류 | 함포, 해안포 |
개발 국가 | 영국 |
운용 | |
사용 시기 | 1894년 - 1945년 |
사용 국가 | 영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
참전 | 제2차 보어 전쟁 영국 식민지 분쟁 1916년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의화단의 난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제원 | |
설계 시기 | 1887년 (1893년) |
무게 | 510 kg (12 cwt (0.6 톤)) |
전체 길이 | 3139.4 mm (10 ft 3 in) |
포신 길이 | 3048 mm (10 ft, 40구경장) |
구경 | 76.2 mm (3 in) |
포탄 종류 | 분리 장전 QF |
장전 방식 | 후장식 |
발사 속도 | 분당 12-15발 |
탄속 | 681 m/s (2,235 ft/s) (영국 기준 2,210 ft/s (1902년), 2,258 ft/s (제1차 세계 대전)) |
최대 사거리 | 10,740 m (11,750 yd, 40° 고각) |
최대 사격 고도 | 5,790 m (70° 고각, 대공포架 탑재 시) |
폐쇄기 | 단동식 나사 |
생산 | |
생산 주체 | 엘스윅 병기 회사 비커스 일본 제강소 캐나다 태평양 철도 지오. 안살도 & C. |
생산량 | Mk I, Mk II: 4,737 문 Mk V: 3,494 문 |
파생형 |
2. 내력
영국 해군은 19세기 후반 후장식 강선포인 암스트롱 포를 도입했으나, 기술적 문제로 전장식으로 회귀했다. 이후 어뢰정의 위협과 기술 발전으로 1879년에 다시 후장포를 채택했다.
2. 1. 개발 배경
영국 해군은 1858년에 후장식 강선포인 암스트롱 포를 채용했지만, 포미 개방 불량이나, 특히 대구경 포에서는 조작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이 시점에서는 장갑 관통력이나 조준 정확도가 전장식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1864년에 다시 전장식으로 회귀하는 것을 결정했다.[3] 그러나 한편, 타국에서는 후장식 강선포의 개발·채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국의 군수 산업은 수출용으로 이 종류의 포 개발을 지속했다.영국 해군도 1879년에는 다시 후장포 장비로 전환했다. 이는 포미 설계 개량으로 후장포의 실용성이 향상된 것과, 장약(발사약)의 진보로 장포신화가 진행되어 전장포가 비실용적이 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기존의 전장포가 지나치게 거대해져, 당시 출현하기 시작한 어뢰정을 추격할 수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4] 이 때문에, 기존의 함포를 대체할 후장포 조달을 진행하는 한편, 1881년, 해군 본부는 어뢰 방어포 개발 요구를 발출했다. 이는 분당 12발이라는 빠른 발사 속도와, 당시 어뢰의 최대 유효 사정거리였던 550m보다 긴 사정거리로 어뢰정을 아웃 레인지 할 수 있는 성능을 요구했으며, 속사포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되었다. 그리고 1887년, 윌리엄 암스트롱이 발표한 혁신적인 속사포 중 하나가 본 포이다.[5][6]
2. 2. 채용과 퇴출
본포는 초기 영국 구축함의 표준 함포로 널리 탑재되었다. 최초의 A급부터 주포로 장착되었으며, F급 구축함 이후에도 부포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외국 구축함의 대형화에 따라, 이 함포로는 구축함과의 교전에서 위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1911년 A급 구축함 '페릿'을 대상으로 한 사격 시험에서 10.2cm 포탄 1발의 위력이 7.6cm 포탄 6발과 맞먹는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1911-1912년도 계획의 K급부터는 폐지되었다.[5]
대형함의 어뢰 방어포로도 널리 사용되었지만, 이후 장포신 50구경 7.6cm포(QF 12파운드 18cwt 함포)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트롤러 등 초계함정에는 널리 탑재되어 계속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트롤선 등에 탑재되어 사용되었다.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청일 전쟁 중 암스트롱사로부터 12파운드 속사포 7문을 긴급 수입하여 40구경 안식 12근 속사포(1908년 이후 "40구경 안식 3인치포", 1917년 이후 "40구경 안식 8cm포")로 장비화했다. 후지의 어뢰 방어포로 탑재된 것 외에도 구축함 등에도 널리 탑재되었다. 초기에는 암스트롱사 제품을 탑재했지만, 이후 40구경 41년식 12근 속사포(1908년 이후 "40구경 41식 3인치포", 1917년 이후 "40구경 41식 8cm포")로 국산화되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고사포(40구경 3년식 8cm 고각포)로도 사용되었다.
3. 설계와 성능
QF 12 파운드 12cwt 함포는 A 튜브, B 튜브, 외통, C 후프(테)로 구성된 포신을 가졌다. 초기 강선은 120구경 길이에서 한 바퀴 회전했지만, 이후 30구경 길이로 한 바퀴 회전하도록 변경되었다. 유압 주퇴 복좌 장치를 갖춘 고각식 또는 중심축식 포가에 장착되었다. 숙련된 포병은 분당 12발의 발사 속도를 낼 수 있었다.[1][2][3]
3. 1. 기술적 특징
포신은 A 튜브, B 튜브, 외통과 C 후프(테)로 구성되어 있다. 강선은 2617mm 길이 16조, 회전도는 120구경 길이로 한 회전이었지만, 이후 30구경 길이로 한 회전으로 변경되었다.[1][2] 유압 주퇴 복좌 장치를 갖춘 고각식 또는 중심축식의 포가에 올려둘 수 있었다. 나사못식의 꼬리 마개를 갖추었고, 숙련된 포병이면 분당 12발의 발사 속도를 발휘할 수 있다.[3]3. 2. 포가
포신은 A 튜브, B 튜브, 외통과 C 후프(테)로 구성되어 있다. 강선은 2617mm 길이 16조, 회전도는 120구경 길이로 한 회전이었지만, 이후 30구경 길이로 한 회전으로 변경되었다.[5] 유압식 현수 복좌기를 갖추고,[5] 고각식 또는 중심축식 포가에 올려둘 수 있었다. 나사못식 꼬리 마개를 갖추었고, 숙련된 포병이면 분당 12발의 발사 속도를 발휘할 수 있다.[5]약실 길이는 393.12mm, 용적율은 1.994 입방 데시미터, 강압은 2,520 kgf/cm² (247 MPa), 초속은 681m/s였다. 최대 사거리는 앙각 40도에서 10,740m, 최대 발사 높이는 앙각 70도에서 5,790m였다.[5]
4. 운용
QF 12파운더 12cwt 함포는 해상 함포와 대공포, 육상 야포와 해안 방어포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청일 전쟁 중 암스트롱사로부터 12파운드 속사포 7문을 긴급 수입하여 40구경 안식 12근 속사포(1908년 이후 "40구경 안식 3인치포", 1917년 이후 "40구경 안식 8cm포")로 장비했다.[11] 전함 "후지"의 어뢰 방어포를 시작으로 구축함 등에도 널리 탑재되었다.[11] 초기에는 암스트롱사 제품을 사용했으나, 이후 40구경 41년식 12근 속사포(1908년 이후 "40구경 41식 3인치포", 1917년 이후 "40구경 41식 8cm포")로 국산화되었다.[11] 영국과 마찬가지로 고사포(40구경 3년식 8cm 고각포)로도 사용되었다.[11]
4. 1. 영국 해군
본포는 초기 영국 구축함의 표준 함포로 널리 탑재되었다. 최초의 A급부터 주포로 장착된 대구경 40구경 10.2cm 포(BL 4인치포 Mk.VIII)를 채용한 F급 이상에서도 부포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외국 구축함이 대형화됨에 따라, 이 함포로는 구축함과의 교전에서 위력이 부족한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강철 층으로 "조립"된 Mk I 및 Mk II 함포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과 이후 많은 구축함에 주포로, 나중에는 잠수함과 어뢰정에 대한 부무장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D급 및 E급 잠수함에 갑판포로 장착되었다.
1939년에 영국 해군에 3,494문의 Mk I 및 Mk II 함포가 남아있었다고 추정된다.[5] 단일 주조로 만들어진 "모노블록" 포신을 가진 많은 Mk V 함포는 구축함과 같은 소형 호위함과 무장 상선에 장착되어 대공포로도 사용할 수 있는 양용 고각-저각 포좌에 탑재되었다.
4. 2. 남아프리카 전쟁 (1899-1902)

이 함포는 원래 고속 해군 함포였으며, 무거운 반동 때문에 고정식 거치에 적합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기동 야포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다.[6]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영국군이 보어 포병에게 열세에 놓이자 영국 해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다른 함포들 중, 16문의 QF 12 파운더 12cwt 함포가 군함에서 내려져 퍼시 스콧 해군 대령이 설계한 즉석 야전 포가에 장착되었다. 이 포가는 단단한 나무 트레일과 소구경 케이프 왜건 바퀴를 사용했다. 약 9144.00m의 사거리는 전쟁 기간 동안 육군에 귀중한 장거리 화력 지원을 제공했다. 이들은 훨씬 짧은 포신과 사거리를 가진 BL 12 파운더 6cwt 및 QF 12 파운더 8cwt과 구별하기 위해 "롱 트웰브"로 알려졌다.[7]
버네 중위는 원래의 전기식 발사 시스템이 이상적인 조건에서는 잘 작동했지만, 야전에서 무기 기술자의 지원과 충전된 배터리의 유지 및 운송이 필요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발사를 위해 타격관으로 전환했다고 보고했으며, 향후 야전 작전에서도 타격을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8]
1900년 1월, 뉴캐슬에서 건조 중이던 일본 전함에서 6문의 함포가 다른 곳으로 전용되었는데, 레이디 뮤가 이 함포들을 구매했고, 뉴캐슬의 엘스윅 병기 회사에서 적절한 야전 포가를 장착하여 남아프리카로 보냈다. 독특하게도, 이 함포들은 육군성에 의해 거부되었고, 남아프리카의 영국 사령관인 프레더릭 로버츠 경에게 직접 기증되어 그의 개인 재산이 되었다. 이들은 "엘스윅 포대"로 알려졌으며, 제1 노섬브리아 왕립 수비 포병대(자원병)에서 모집된 엘스윅 출신 병사들이 운용했다. 엘스윅 함포는 전쟁 기간 동안 사용되었다.[9]
4. 3. 해안 방어
1950년대까지 많은 포가 영국 주변의 항구와 대영 제국 전역의 여러 항구들을 어뢰정과 같은 소형 고속 선박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지면에 고정된 "받침대"에 장착되었다. 1918년 4월 기준으로 영국 주변 해안 방어에는 이러한 포가 103문(모든 종류의 포를 합쳐 총 383문)이 배치되었다.[10] 이들 중 다수는 제2차 세계 대전에도 여전히 사용되었지만, 당시에는 QF 6 파운더 10cwt 쌍열 포좌와 같은 보다 현대적인 유형에 의해 대체되었다.포는 조준수가 왼쪽에 서서 어깨 받침대에 팔을 걸치고 조준하는 동안, 왼손으로는 고각 조절 핸들을 조작하고 오른손으로는 방아쇠가 있는 권총 손잡이를 잡으면서 수동으로 좌우로 움직였다.[6]

4. 4. 대공포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많은 해안 방어포가 개조되어 특별한 바퀴형 이동식 포가에 장착되었고, 간신히 효과적인 이동식 대공포로 사용되었다.[1]4. 5. 일본 해군
일본 제국 해군은 청일 전쟁 중 암스트롱사로부터 12파운드 속사포 7문을 긴급 수입하여 40구경 안식 12근 속사포로 장비했다. 1908년 이후 "40구경 안식 3인치포", 1917년 이후 "40구경 안식 8cm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1] 이 함포는 전함 후지의 어뢰 방어포를 시작으로, 구축함 등에도 널리 탑재되었다.[11] 처음에는 암스트롱사 제품을 사용했으나, 이후 40구경 41년식 12근 속사포(1908년 이후 "40구경 41식 3인치포", 1917년 이후 "40구경 41식 8cm포")로 국산화되었다.[11] 영국 본국과 마찬가지로 고사포 (40구경 3년식 8cm 고각포)로도 사용되었다.[11]4. 6.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76/40 Modello 1916 함포는 QF 12 파운더의 면허 생산 파생형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여러 역할로 사용되었다.5. 현존하는 포
- 제2차 보어 전쟁에 참전한 엘스윅 포대의 포 1문은 런던 왕립 포병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나, 박물관 폐관 후 윌트셔주 라크힐로 이전되었다.[13]
- Mk V 해군 포는 런던 왕립 포병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나, 박물관 폐관 후 윌트셔주 라크힐로 이전되었다.
- 영국 뉴헤이븐 요새에 초기 해안 방어 포가 있다.
- 뉴질랜드 와이오루 육군 기념 박물관에 해안 방어 포가 있다.
- 일본 요코스카의 전함 ''미카사''에 있다.
- 의 포는 1972년경 인양되어 프랑스 생나제르에 전시되어 있다.[14]
- 콘월주 펄머스의 펜데니스 성에 해안 방어 받침대에 있는 12 파운드포가 있다.
- 실론 해군 의용군의 HMS 오버데일 와이크의 포는 현재 SLNS 라나갈레에 보관되어 있다.
- 에식스주 틸버리 요새에 제2차 세계 대전 시대의 전 해군 유형의 훌륭한 예가 장착되어 있다.
- 콘월주 프레드나크 대공포대 박물관에 제1차 세계 대전 시대의 12 파운드포가 해골 형태의 고각 마운트에 장착되어 있다.
- 영국 고스포트 해군 화력 박물관 폭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조
[1]
서적
Naval Weapons of WWII
[2]
서적
Text Book of Gunnery 1902
[3]
서적
서적
1972
[4]
간행물
Gun drill for Q.F. 12-pdr. (12-cwt.) gun (Land service) 1925
http://handle.slv.vi[...]
the War Office
1925
[5]
서적
Naval Weapons of WWII
[6]
서적
서적
1972
[7]
문서
Hall
1978-06
[8]
서적
Burne
1902
[9]
문서
Crook
1969-06
[10]
서적
Farndale
1988
[11]
웹사이트
3"/40 (7.62 cm) 41st Year Type
http://www.navweaps.[...]
[12]
서적
Japanese Artillery Weapons
United States Pacific Fleet and Pacific Ocean Areas
1945-07-01
[13]
웹사이트
History
http://www.army.mod.[...]
2022-01-13
[14]
웹사이트
PunTheHun
https://www.board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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