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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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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속사포는 빠른 재장전을 가능하게 하는 포미 장치를 갖춘 후장식 무기로, 탄피형 탄약을 사용한다. 반동 완충기를 통해 포신의 복귀 속도를 높이고, 무연 화약을 사용해 연기를 줄여 조준 정확도를 향상시켰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으로 구형 무기에 비해 빠른 발사 속도를 구현했으며,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각국에서 개발 및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대공 방어 및 CIWS(Close-In Weapon System)로 활용되며,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함대공 미사일과 함께 방공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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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포
개요
유형포병
특징높은 발사 속도 (구경 대비)

2. 특징

속사포는 빠른 재장전을 가능하게 하는 포미 장치를 갖춘 후장식 무기이며, 탄피형 탄약을 사용하고, 반동 완충기를 통해 반동을 줄여 빠른 발사를 가능하게 한다.[8] 또한, 무연 화약을 사용하여 연기가 적게 발생하여 포병의 시야를 확보했다.[8]

이러한 혁신 덕분에 속사포는 기존 무기보다 훨씬 빠르게 조준된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엘스윅 병기 회사(Elswick Ordnance Company) 4.7인치 포는 1887년에 47.5초 만에 10발을 발사했는데, 이는 동급 5인치 후장식 포보다 거의 8배나 빠른 속도였다.[8]

2. 1. 빠른 발사 속도

속사포는 포미 장치를 갖춘 후장식 무기로, 탄피형 탄약을 사용하여 재장전 시간을 줄였다.[8] 반동 완충기를 통해 반동을 제어하여 발사 후 신속하게 동일 위치로 복귀해 지속적인 사격이 가능하다.[8]

2. 2. 개선된 화약

무연 화약 (니트로셀룰로스, 니트로글리세린, 또는 코다이트)을 사용하여 화약보다 훨씬 적은 연기를 생성하여 포병 대원이 여전히 표적을 볼 수 있게 하였다.[8] 이러한 혁신은 포병의 시야를 확보하여 더 정확한 조준을 가능하게 했다.

2. 3. 탄약

속사포는 포탄과 추진제를 모두 포함하는 탄피형 탄약을 사용한다.[8] 이는 탄약통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영국 해군에서는 탄피를 사용하는 후장포(탄피포)를 속사포(Quick-firing, QF영어)라고 칭하고, 약낭을 사용하는 후장포(낭포; Breech-loading, BL영어)와 구별했다.[8]

3. 역사

초기 화포는 발사 속도에 대한 요구가 크지 않았지만, 병기 발달과 전술 변화로 발사 속도 향상이 중요해졌다.[8] 영국의 윌리엄 암스트롱은 크림 전쟁에서 영국군 포병대가 중포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1857년 경량 고성능 암스트롱 포를 개발하여 시험 사격했다. 암스트롱 포는 포신 내 강선(라이플링)을 가진 강선포로 사격 정확도를 높였고, 후장식 장전 방식으로 발사 속도도 향상시켰다.

초기 모델은 개방 불량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수출용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프로이센크루프 사도 유사한 화포를 개발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제국은 속사포 개발과 장비에 열중했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 제국 육군은 31년식 속사포, 러시아 제국 육군은 푸틸로프식 속사포를 장비하여 속사포를 장비한 군대끼리 최초로 교전했다. 러시아 속사포는 포신 후좌 기구가 있었지만, 프랑스의 M1897 75mm 야포에 비하면 과도기적 설계였다.

M1897 75mm 야포는 포퇴복좌기를 탑재한 포신 후좌식의 시초였다. 1900년대 중반 유럽에서는 포신 후좌식 야포가 주류였고, 일본도 1905년 38식 야포를 채용했다. 전차 발달로 속사포는 대전차포로도 사용되었으며, 일본 제국 육군1936년 94식 37mm포를 가제식화했다.

3. 1. 해군에서의 사용



함포는 아웃레인지 전법으로 적함의 포를 제압하고 장갑함을 격파해야 했기에 대구경화 및 중포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사정거리와 파괴력 향상은 발사 속도 및 선회·앙각 속도 저하를 가져왔고, 이는 어뢰정과의 교전을 어렵게 만들었다.[1] 이러한 상황에서 고속, 경쾌한 어뢰정에 대응하기 위해 주포인 중포 외에 호치키스 QF 3파운드포와 같은 중·소구경 속사포가 함께 탑재되었다.

영국 해군은 탄피를 사용하는 후장포(탄피포)를 속사포(Quick-firing, QF영어)로, 약낭을 사용하는 후장포(낭포; Breech-loading, BL영어)와 구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203mm 구경의 속사포가 장갑순양함의 주포로 탑재되는 등 대구경화가 진행되었으나, 인력 장전의 어려움과 속사 효과 감소 문제로 인해 구경을 타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항공기 발달에 따라 속사포는 대공병기로 고각포와 조합되어 사용되었다. 소구경은 파괴력이 낮고, 대구경은 속사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워 3인치 구경 포가 주로 사용되었다. 항공기 성능 향상으로 더 빠른 발사 속도가 요구되면서 장전 작업을 기계화한 반자동포가 등장했고, 이것이 특히 속사포로 불리게 되었다. 해상자위대에서는 50구경 3인치포 중 수동 장전 방식의 Mk.22는 완사포(슬로우 파이어), 반자동화된 Mk.33는 속사포(래피드 파이어)로 구분했다.

고성능화된 속사포는 시한 신관 (VT신관) 및 사격 통제 레이더와 결합하여 기관포를 대신해 근거리 방공의 주역을 맡기도 했다. 대함 미사일 위협으로 CIWS로서 기관포가 부활한 후에도, 자동화된 속사포는 함대공 미사일, CIWS와 함께 방공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3. 1. 1. 초기 발전

1881년, 영국 해군은 분당 최소 12발을 발사할 수 있는 속사포를 찾고 있었다. 이는 어뢰어뢰정의 개발로 인해 해상 지배력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1]

최초의 실용적인 속사 경포는 1880년부터 영국에서 제작된 1인치 노르덴펠트포였다.
목판화로 묘사된 영국 해군 포병이 1인치 노르덴펠트포로 사격하는 모습, 최초의 실용적인 속사포
이 포는 1870년대 후반에서 1880년대 초반에 새로운 소형 고속 어뢰정에 대항하여 더 큰 군함을 방어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경화된 팁과 황동 자켓이 있는 단단한 강철 탄환을 발사했다.

이 포는 1연장, 2연장, 4연장 버전으로 사용되었다. 탄약은 포구 위의 호퍼에서 중력에 의해 공급되었으며, 각 포신에 대해 별도의 열로 나뉘었다. 포수는 포의 오른쪽에 있는 레버를 앞뒤로 움직여 여러 개의 포신을 장전하고 발사했다. 레버를 뒤로 당기면 발사된 탄피가 추출되고, 앞으로 밀면 모든 포신에 새 탄약이 장전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앞으로 움직이면 모든 포신이 차례로 빠르게 발사되었다.

이 포는 1880년대 중반에 새로운 오트키스와 노르덴펠트 "QF" 포(약 1.36kg 무게의 폭발성 "통상 첨두" 탄을 발사)의 등장으로 대 어뢰정 방어용으로 대체되었다.

3. 1. 2. 오트키스와 노르덴펠트

1880년대 중반, 오트키스와 노르덴펠트는 어뢰정 방어 능력을 향상시킨 47mm 및 57mm 구경의 속사포를 개발했다.[1] 프랑스 회사 오트키스는 1886년부터 경량 47mm 해군포인 QF 3파운더를 생산했으며, 이 포는 영국 해군에 "Ordnance QF 3 pounder Hotchkiss"로 채택되었다.[2]

영국 해군 갑판에 장착된 QF 3파운더 오트키스, 최초의 현대식 QF 포, 1915년

3. 1. 3. 주력함 탑재

1889년, 영국 해군은 QF 4.7인치포를 HMS ''Sharpshooter''에 도입했고,[3] 1891년에는 QF 6인치 MK 1을 HMS ''Royal Sovereign''에 탑재했다.[3] 속사포는 전함 드레드노트급 이전의 전함의 핵심 특징이었으며, 상대 전함의 상부 구조를 파괴하고, 화재를 일으키며, 적의 포병 승무원을 죽이거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3]

3. 2. 육군에서의 사용

속사 4.7인치포는 콜렌소 전투에서 "퍼시 스콧" 포가에 장착되었다.


블라디미르 바라노프스키는 1872-75년에 초기 속사 야포를 개발했고,[4] 1882년 러시아 군대에 의해 공식 채택되었다.[5] 1897년 프랑스 육군은 75mm M1897 야포를 채택하면서 속사 야포를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다른 국가들도 속사 기술을 빠르게 모방했다.

QF 4.7인치포는 처음에 해군용 및 해안 포병용으로 제조되었다.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영국군은 장거리 보어 포병에 화력에서 뒤쳐졌다. 1899~1900년 레이디스미스 포위전 동안 HMS ''Terrible''의 퍼시 스콧 대위는 보어의 롱 톰포에 대응하기 위해 케이프타운 해안 방어에서 약 11.94cm포 2문을 가져와 임시 목재 고정 포좌를 고안했다.[6] 스콧은 통상적인 고정식 해안 또는 함선 포좌에서 4.7인치포를 제거하여 이동식 포가를 임시로 만들었는데, 반동 완충기가 없어 작동시에는 포의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드래그 슈(drag shoe)와 포가 케이블을 포 앞의 강력한 지점에 부착해야 했다.[6] 이 포는 왕립 해군 승무원이 운용했으며, 운반을 위해 최대 32마리의 황소가 필요했다.[6]

러일 전쟁(1904~05년)은 속사 포병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첫 번째 전쟁이었다.[7] 속사 곡사포는 실용적인 간접 사격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전통적인 곡사포는 사선 밖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조준하고 재장전하는 데 매우 느렸다. 속사 무기는 강력한 간접 포격을 수행할 수 있었고, 이는 20세기 동안 이들의 주요 운용 방식이었다.

19세기 후반 유럽 제국은 속사포 개발・장비에 열을 올렸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 제국 육군은 31년식 속사포, 러시아 제국 육군은 푸틸로프식 속사포를 장비하여, 속사포를 장비한 군대끼리 교전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러시아 측 속사포는 포신 후좌 기구를 갖추고 있어 우수했지만, 프랑스의 M1897 75mm 야포에 비하면 과도기적 설계였다.

M1897 75mm 야포는 포퇴복좌기를 탑재하여 포신 후좌식의 효시가 되었다. 1900년대 중반에는 유럽에서 이미 포신 후좌식 야포가 주류였고, 일본도 1905년 38식 야포를 채용했다. 전차가 발달하면서 속사포는 대전차포로도 사용되었고, 일본 제국 육군1936년 94식 37mm포를 가제식화했다.

3. 2. 1. 초기 개발



1872-75년, 블라디미르 바라노프스키가 초기 속사 야포를 개발했다.[4] 이 포는 1882년 러시아 군대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5] 초기 모델은 미절개의 개방 불량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영국 육군에서의 채용은 늦어졌지만, 수출용으로는 인기를 얻었으며, 프로이센크루프 사도 이와 유사한 화포를 개발했다.

육상에서 속사 야포는 1897년 75mm M1897 야포를 시작으로 프랑스 육군에 의해 처음 채택되었으며, 이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다른 국가들도 속사 기술을 빠르게 모방했다.

3. 2. 2. 프랑스 육군의 채택

1897년, 프랑스 육군은 75mm M1897 야포를 채택하면서 속사 야포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며, 이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4]

3. 2. 3. 제2차 보어 전쟁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영국군은 장거리 보어 포병에 화력에서 뒤쳐졌다. HMS ''Terrible''의 퍼시 스콧 대위는 1899~1900년 레이디스미스 포위전 동안 보어의 롱 톰포에 대응하기 위해 케이프타운 해안 방어에서 약 11.94cm포 2문을 가져와 임시 목재 고정 포좌를 고안했다.[6]

스콧은 군대에 중(重)야포를 제공하기 위해 통상적인 고정식 해안 또는 함선 포좌에서 4.7인치포를 제거하여 이동식 포가를 임시로 만들었다. 이 임시 포가에는 반동 완충기가 없었으므로, 작동시 포의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드래그 슈(drag shoe)와 포가 케이블을 포 앞의 강력한 지점에 부착해야 했다.[6] 이 포는 왕립 해군 승무원이 운용했으며, 운반을 위해 최대 32마리의 황소가 필요했다.[6]

3. 2. 4. 러일 전쟁

속사 포병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첫 번째 전쟁은 1904~05년의 러일 전쟁이었다.[7] 일본 제국 육군은 31년식 속사포를, 러시아 제국 육군은 M1900 76mm 야포를 사용했다.[7] 러시아 측의 속사포는 포신 후좌 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31년식 속사포보다 우수했지만, 프랑스의 M1897 75mm 야포에 비하면 과도기적인 설계였다.

M1897 75mm 야포의 포미부

3. 2. 5. 대전차포

전차가 발달하면서, 속사포는 대전차포로도 사용되었고, 일본 제국 육군에서는 1936년에 94식 37mm포를 가제식화했다.[8]

94식 37mm포

4. 현대의 속사포

함포가 대구경화 및 중포화되면서 발사 속도 등이 저하되어 어뢰정과의 교전이 어려워짐에 따라 함재포로서의 속사포가 등장하였다. 원거리 교전에서 고속 경쾌한 어뢰정과의 교전에 속사포의 존재 의의가 인정되어, 주포로서의 중포 외에 호치키스 QF 3파운드포 등 중·소구경의 속사포도 함께 탑재되었다.[1]

영국 해군에서는 탄피를 사용하는 후장포(탄피포)를 속사포(Quick-firing|QF영어)로 칭하고, 약낭을 사용하는 후장포(낭포; Breech-loading|BL영어)와 구별했다.[2] 시간이 지나면서 속사포도 대구경화가 진행되어 203mm 구경의 속사포가 장갑순양함의 주포로 탑재되기도 했다.[3] 그러나 대구경화로 인해 인력 장전이 어려워 속사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여 구경을 타협하기도 했다.[3]

4. 1. 함재포의 발전

항공기의 발달에 따라 속사포는 고사포로 활용되었으며, 소구경은 파괴력이 낮고 대구경은 속사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워 3인치 구경 정도의 포가 주로 사용되었다.[3] 항공기 성능 향상에 따라 더 빠른 발사 속도가 요구되어 장전 작업을 기계화한 반자동포가 등장했고, 이것이 특히 속사포로 불리게 되었다.[3] 해상자위대에서는 50구경 3인치포 중 수동 장전 방식의 Mk.22는 완사포, 반자동화된 Mk.33은 속사포로 구분했다.[4]

4. 2. 자동화된 속사포

현대의 속사포는 자동화를 거쳐, 함대공 미사일CIWS와 함께 방공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4] 시한 신관(VT신관) 및 사격 통제 레이더와 결합하여 근거리 방공 능력이 향상되었다.[4]

참조

[1] 서적 Almanac of American Military History, Volume 1 https://books.google[...] ABC-CLIO
[2] 문서
[3] 간행물 Steam, Steel and Shellfire: The Steam Warship, 1815-1905 Book Sales
[4] 뉴스 2,5 дм. (63,5 мм.) конная и горная пушки обр. 1877 г. http://ww1.milua.org[...] 2012-09-07
[5] 웹사이트 История артиллерии с середины XIX в. до 1917 г. http://www.artillery[...] Military Historical Museum of Artillery, Engineers and Signal Corps 2012-09-07
[6] 문서 Hall 1971
[7] 간행물 Fire-Power: The British Army: Weapons and Theories of War, 1904-1945 Allen and Unwin
[8] 간행물 일본대백과전서 https://kotobank.jp/[...] 주식회사DIGITALIO 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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