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61000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U61000은 1980년대 동독에서 개발된 1메가비트 DRAM이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지시에 따라 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ZED)에서 개발되었으며, 코콤 금수 조치로 인해 자체 기술 개발과 서방 장비의 비공식적 수입을 통해 생산되었다. 1988년 최초의 양품 생산이 이루어졌고, 1989년 라이프치히 신년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으나, 동서독 통일 이후 서방 제품의 저렴한 공급으로 인해 경제적 생산은 중단되었다.
1986년 2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ZED)에서 1메가비트 DRAM 개발 프로젝트(Projekt „Mikron“|미크론 계획de)가 시작되었다. 이는 당시 동독에서 생산되던 도시바 기술 기반의 저용량 DRAM을 바탕으로 1990년 양산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2. 역사
코콤의 금수조치로 인해 서방의 첨단 기술과 장비 도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동독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장비 생산, 그리고 비공식적 경로를 통한 서방 장비 확보[20]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 개발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슈타지가 지멘스의 VLSI 기술 문서를 입수하기도 했으나,[15] 실제 개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17][18]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1988년 8월 10일, 최초의 1메가비트 양품 DRAM 생산에 성공했으며,[23] 이는 같은 해 9월 12일 에리히 호네커에게 보고되었다. 개발팀은 이 공로로 동독 국가상을 수상했고, U61000 칩은 1989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그러나 생산 과정에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1988년 약 5,000개,[24] 1989년 약 30,000개[24] 수준의 시제품 생산에 그쳤으며, 최대 수율은 20%에 불과했다.[25] 결국 생산 설비 부족 등의 문제로 대량 생산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고,[24][26] 후속 4메가비트 DRAM 개발 계획도 취소되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코콤 금수 조치가 해제되면서 서방의 저렴하고 성능 좋은 반도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U61000은 경제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또한 독일 마르크 도입으로 기존 동구권 시장 판로마저 막히면서 생산은 중단되었다.
2. 1. 개발 배경
1986년 2월 11일,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ZED)는 3년 안에 1메가비트 DRAM을 개발하고 1990년에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집적 회로 개발 프로젝트(미크론 계획, Projekt „Mikron“de)를 맡게 되었다. 이 개발은 당시 동독에서 생산되던 도시바 기술 기반의 64킬로비트(U6164) 및 256킬로비트(U61256) DRAM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개발 준비 과정에서 슈타지의 대외정보국(HVA) 14과는 지멘스로부터 VLSI 생산 기술 문서를 입수했다.[15][4] 지멘스는 자체 생산을 위해 도시바로부터 해당 기술을 라이선스 받았으며, 대량 생산을 위해 자체 기술을 상당 부분 투입한 상태였다.[16][5] 그러나 ZMD 측 기술자들은 입수한 지멘스 기술 문서가 실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예나에서 개발 중이던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슈타지는 자신들의 노력이 무시당했다고 여겼다.[17][6] 이후 지멘스의 의뢰로 미국 CIA가 진행한 사후 조사에서는 드레스덴에서 개발된 칩에 지멘스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18][7]
코콤(COCOM)의 금수 조치로 인해 동독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장비와 기술을 세계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얻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스테퍼, 전자빔 리소그래피 장치, LPCVD 장치, 이온 밀링 머신, 패키징 공정 장비 등 주요 설비를 칼자이스 예나 및 VEB Elektromat Dresden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해야 했다. 플라즈마 에처 및 이온 임플랜터 장비는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예정이었으나,[19][8] 소련에서 조달한 장비의 품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SED 지도부는 서독 및 다른 서방 국가에서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필요한 장비와 컴퓨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20][9] 이렇게 수입된 장비들은 ZMD 기술자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위해 상당한 수정 및 개조 과정을 거쳐야 했다.[21][22][10]
1988년 8월 10일, 마침내 최초의 1메가비트 양품 DRAM이 생산되어 검증을 통과했다.[23][11] 이 첫 생산품은 같은 해 9월 12일 에리히 호네커에게 보고 및 전달되었다. 해당 DRAM 개발팀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 Nationalpreis der DDR|독일 민주 공화국 국가 공로상de을 수상했다. 이듬해인 1989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는 U61000이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88년 ZMD의 시제품 생산 라인에서는 약 5,000개의 U61000 칩이 생산되었고,[24][12] 1989년에는 생산량이 30,000개로 늘어났으나,[24] 생산 수율은 최대 20%에 머물렀다.[25][13] 칩 개발 자체는 1990년 초에 완료되었지만, KME 에르푸르트의 ESO III 공정으로 양산을 이전하려던 계획은 필요한 생산 설비 부족 문제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24][26][14] 4메가비트 DRAM 개발도 계획되었으나, 양산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최종적으로 취소되었다.
1990년 7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금수 조치가 해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동독에서 어렵게 개발한 반도체의 서방 원본 제품들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U61000의 경제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독일 마르크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의 거래도 끊기면서 생산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했다.
2. 2. 슈타지의 기술 정보 수집
1986년 2월 11일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ZED)는 3년 내에 1메가비트 DRAM을 개발하고 1990년에 양산하는 '미크론 계획'(Projekt „Mikron“)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계획은 당시 동독에서 도시바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하던 64킬로비트(U6164) 및 256킬로비트(U61256) DRAM을 바탕으로 1메가비트 DRAM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개발 준비 과정에서 슈타지의 대외정보국(Hauptverwaltung Aufklärung, HVA) 제14과(SWT)는 지멘스로부터 VLSI 생산 기술 문서를 입수했다.[15][4] 지멘스는 해당 기술을 도시바로부터 라이선스 받아 자사 제품 생산에 사용하고 있었으며, 대량 생산을 위해 자체적인 기술을 상당 부분 투입한 상태였다.[16][5]
그러나 ZMD의 개발자들은 슈타지가 입수한 기술 문서가 실제 개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예나에서 진행 중이던 개발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17] 이에 슈타지 측은 자신들의 노력이 과학자들에게 무시당했다고 느끼며 실망감을 표했다.[6][17] 이후 지멘스의 의뢰로 미국 CIA가 진행한 사후 조사에서는 드레스덴에서 개발된 U61000 칩에 지멘스의 기술 문서가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7][18]
당시 코콤(COCOM)의 금수조치로 인해 동독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첨단 장비와 기술을 국제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스테퍼, 전자빔 리소그래피, LPCVD, 이온 밀링 머신, 패키징 공정 장비 등 핵심 설비를 칼자이스 예나 및 VEB Elektromat Dresden에서 자체적으로 개발 및 생산해야 했다. 반응성 이온 에칭 장비와 이온 주입 장비 등 다른 중요 장비는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예정이었다.[8][19] 하지만 소련에서 조달한 장비의 품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는 서독을 포함한 서방 국가에서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필요 장비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9][20] 이렇게 들여온 장비들은 ZMD 기술자들이 원하는 사양에 맞춰 사용하기 위해 상당한 수정 및 개량 작업을 거쳐야 했다.[10][21][22]
2. 3. 코콤 금수 조치와 자체 개발 노력
코콤의 금수조치로 인해 동독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국제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획득할 수 없었다.[8][19] 이러한 제약 속에서 동독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에 힘써야 했다. 스테퍼, 전자 빔 리소그래피 장치, LPCVD 장치, 이온 밀링 장비, 패키징 공정 장비 등 핵심 제조 장비들은 칼자이스 예나와 드레스덴의 VEB Elektromat Dresden에서 직접 개발하고 생산했다.[8][19]
플라즈마 에칭 장치와 이온 주입 장치는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예정이었으나,[8][19] 소련에서 조달한 장비의 품질이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20] 결국 SED 지도부는 서독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필요한 장비와 고성능 컴퓨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서독의 외국 무역법 및 서방 연합국의 규제, 코콤 규정에 저촉되는 행위였다.[9][20] 이렇게 들여온 장비들은 ZMD(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 기술자들이 본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상당한 수정과 기술적 개량을 거쳐야 했다.[10][21][22]
이러한 노력 끝에 1988년 8월 10일, 마침내 U61000 1메가비트 DRAM의 첫 양품이 생산되었고 시험 장비를 통한 검증을 완료했다.[11][23] 첫 생산품은 같은 해 9월 12일 에리히 호네커에게 전달되었다.[11] DRAM 개발에 참여한 연구팀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 동독 국가상을 수상했으며,[11] U61000 칩은 1989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았다.[11]
ZMD의 시제품 생산 라인에서는 1988년에 약 5,000개의 U61000 칩이 생산되었고,[12][24] 1989년에는 30,000개로 생산량이 늘었다.[12] 하지만 생산 수율은 최대 20%에 불과하여 양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13][25] 칩 개발 자체는 1990년 초에 완료되었으나, 에르푸르트 KME 공장에서의 본격적인 양산은 필요한 제조 설비 부족 문제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14][24][26] 차세대 4메가비트 DRAM 개발도 계획되었지만, 양산 준비가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취소되었다.[14]
1990년 6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기술 금수 조치가 해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서방 세계에서 생산된 동급의 메모리 칩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동독에서 생산된 U61000은 경제성을 완전히 상실했다.[14] 또한 동독 마르크가 도입되고 기존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의 교역 관계가 변화하면서 수출 판로도 막히게 되었다.[14]
2. 4. 개발 과정 및 성과
1986년 2월 11일,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는 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Zentrum Mikroelektronik Dresden, ZMD)에 '미크론 계획'(Projekt „Mikron“)이라는 새로운 집적 회로 개발 프로젝트를 지시했다. 목표는 3년 안에 1메가비트 DRAM을 개발하고 1990년부터 양산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개발은 당시 드레스덴에서 생산되던 도시바 기술 기반의 64킬로비트(U6164) 및 256킬로비트(U61256) DRAM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개발 준비 과정에서 슈타지의 대외정보국(Hauptverwaltung Aufklärung, HVA) 14과는 지멘스로부터 VLSI 생산 기술 문서를 입수했다.[15][4] 이 기술은 지멘스가 자사 생산을 위해 도시바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았고, 대량 생산을 위해 자체 기술을 상당 부분 투입한 것이었다.[16][5] 그러나 ZMD 측 기술자들은 입수한 기술 문서가 실제 개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예나에서 진행 중이던 개발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슈타지는 자신들의 노력이 무시당했다고 여기며 불만을 표했다.[17][6] 이후 지멘스의 의뢰로 미국 CIA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드레스덴에서 개발된 칩에 지멘스 기술이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18][7]
코콤(COCOM)의 금수조치로 인해 동독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장비와 기술을 세계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스테퍼, 전자빔 리소그래피 장치, LPCVD 장치, 이온 밀링(이온 빔 에칭) 장치, 패키징 공정 장비 등 주요 설비를 칼자이스 예나와 VEB Elektromat Dresden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해야 했다. 플라즈마 에칭 장치(반응성 이온 에칭)와 이온 주입 장치는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하려 했으나,[19][8] 소련에서 조달한 장비의 품질이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SED 지도부는 서독 및 다른 서방 국가에서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장비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20][9] 이렇게 들여온 장비들은 ZMD 기술자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위해 상당한 수정과 기술적 개량을 거쳐야 했다.[21][22][10]
1988년 8월 10일, 마침내 최초의 1메가비트 양품 DRAM이 생산되어 검증 장비를 통한 테스트를 통과했다.[23][11] 이 첫 생산품은 1988년 9월 12일 에리히 호네커에게 전달되며 성과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같은 해, DRAM 개발에 참여한 연구팀은 동독 국가상을 수여받았다. 이듬해인 1989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는 U61000이 금메달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생산 실적은 다음과 같다.
칩 개발 자체는 1990년 초에 완료되었으나, 양산을 담당하기로 했던 KME 에르푸르트의 ESO III 공장은 필요한 생산 설비 부족 문제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24][26][14] 당초 4메가비트 DRAM 개발도 계획되었지만, 양산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최종적으로 취소되었다.
1990년 6월(또는 7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코콤의 기술 규제가 철폐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동독의 컴퓨터 산업체들은 서방 세계의 동등한 성능의 메모리 칩을 훨씬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독일 마르크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소련 및 동유럽 국가로의 수출 판로도 막히면서 U61000은 경제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생산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2. 5. 생산 및 한계
1986년 2월 11일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는 드레스덴 마이크로일렉트로닉 연구소(ZED)에 3년 내에 1메가비트 DRAM을 개발하고 1990년에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크론 계획'(Projekt „Mikron“)을 지시했다.[15] 개발은 당시 동독에서 생산 중이던 도시바 기술 기반의 64킬로비트(U6164) 및 256킬로비트(U61256) DRAM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슈타지의 대외정보국은 지멘스의 VLSI 생산 기술 문서를 입수했으나,[15][4] ZMD의 개발자들은 입수한 기술이 자체 개발 방향과 맞지 않아 실제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17][6] 슈타지는 자신들의 노력이 무시당했다고 여겼다.[17][6] 지멘스가 의뢰한 미국 CIA의 사후 조사에서도 드레스덴에서 개발된 칩에 지멘스 기술이 사용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18][7]코콤(COCOM)의 금수조치 때문에 동독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서방의 첨단 장비와 기술을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스테퍼, 전자빔 리소그래피, LPCVD, 이온 밀링 머신, 패키징 공정 장비 등 핵심 설비를 칼자이스 예나와 VEB Elektromat Dresden 등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해야 했다.[19][8] 플라즈마 에처나 이온 임플랜터 같은 일부 장비는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하려 했으나,[19][8] 소련제 장비의 품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SED 지도부는 서독을 포함한 서방 국가에서 비공식적인 경로로 장비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20][9] 이렇게 들여온 장비들은 ZMD 기술자들이 원하는 성능을 내도록 상당한 수정과 개량 과정을 거쳐야 했다.[21][22][10]
1988년 8월 10일, 마침내 첫 1메가비트 양품 DRAM 생산에 성공하여 검증을 완료했다.[23][11] 이 첫 생산품은 같은 해 9월 12일 에리히 호네커에게 전달되었다.[11] DRAM 개발팀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88년 동독 국가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는 U61000 칩이 금메달을 받았다.
그러나 생산에는 여러 한계가 따랐다. 1988년 ZMD의 시제품 생산 라인에서는 약 5,000개의 U61000이 생산되었고,[24][12] 1989년에는 생산량이 30,000개로 늘었지만,[24] 수율은 최대 20% 수준에 머물렀다.[25][13] 칩 개발은 1990년 초에 완료되었으나, 양산을 담당할 예정이었던 KME 에르푸르트의 ESO III 공장은 필요한 생산 설비 부족 문제로 인해 실제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24][26][14] 당초 계획되었던 4메가비트 DRAM 개발 역시 양산 준비가 어렵다는 이유로 최종 취소되었다.
결정적으로 1990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코콤 규제가 해제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방 세계의 동급 메모리 반도체를 훨씬 저렴한 가격에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게 되자, 동독 내 컴퓨터 산업은 더 이상 비싸고 생산량이 부족한 U61000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졌다. 또한 독일 마르크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소련 및 동유럽 수출 시장마저 잃게 되면서 U61000은 경제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생산이 중단되었다.
2. 6. 동서독 통일과 경제적 실패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코콤의 금수조치가 해제되었다.[9] 1990년 6월 기술 규제가 철폐되고[10] 7월부터는 서방 세계에서 생산된 동등한 성능의 반도체를 더 저렴한 가격으로 원활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10] 이로 인해 U61000은 경제성을 상실하여 생산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었다.[10] 또한 동독 지역에 독일 마르크가 도입되면서,[10] 그동안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소련 및 동유럽 국가로의 판로도 막히게 되었다.[10]3. 기술 사양
(내용 없음)
3. 1. 개요
U61000은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 칩으로, 주요 사양은 다음과 같다.- DRAM 용량: 1024k x 1 비트
- 액세스 시간: 100 ns - 120 ns
4. 갤러리
참조
[1]
웹사이트
http://www.bild.bund[...]
[2]
서적
EMC 2004: 20th European Mask Conference
https://books.google[...]
[3]
웹사이트
http://www.bild.bund[...]
[4]
서적
Die Industriespionage der DDR
edition ost, Berlin
2009
[5]
뉴스
Siemens hinkt mit Megachip hinterher.
http://www.computerw[...]
Computerwoche
1987-02-13
[6]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7]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8]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9]
서적
Deckname „Saale“, High-Tech-Schmuggler unter Schalck-Golodkowski.
Dietz Verlag Berlin
1999
[10]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11]
방송
Wettlauf mit der Zeit (60) – Das Mega-Projekt oder die hemmungslosen Optimisten.
독일텔레비전방송
1988-09-16
[12]
웹사이트
Massenproduktion von DDR-Megabitchip war „gar nicht machbar“
http://computer-oige[...]
computer-oiger.de
2011-09-11
[13]
논문
Looking back: Artwork and mask making in Dresden for the East German megabit chip project.
20th European Conference on Mask Technology for Integrated Circuits and Microcomponents
2004
[14]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15]
서적
Die Industriespionage der DDR.
edition ost, Berlin
2009
[16]
뉴스
Siemens hinkt mit Megachip hinterher
https://www.computer[...]
Computerwoche
1987-02-13
[17]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18]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19]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20]
서적
Deckname „Saale“, High-Tech-Schmuggler unter Schalck-Golodkowski.
Dietz Verlag Berlin
1999
[21]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22]
뉴스
Was aus Honeckers Megachip wurde.
Sächsische Zeitung
2015-03-23
[23]
방송
Wettlauf mit der Zeit (60) – Das Mega-Projekt oder die hemmungslosen Optimisten.
Fernsehen der DDR
1988-09-16
[24]
웹인용
Massenproduktion von DDR-Megabitchip war „gar nicht machbar“
http://computer-oige[...]
2011-09-11
[25]
논문
Looking back: Artwork and mask making in Dresden for the East German megabit chip project.
20th European Conference on Mask Technology for Integrated Circuits and Microcomponents
2004
[26]
서적
Silicon Saxony – die Story
edition Dresden
20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