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국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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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국공주는 1215년 금나라가 몽골 제국과의 화의를 위해 칭기즈 칸에게 보낸 공주이다. 몽골의 침공으로 수도가 포위되자, 금나라 조정은 화의를 결정하고 기국공주를 칭기즈 칸에게 보내 화의의 증표로 삼았다. 칭기즈 칸의 비가 된 기국공주는 '군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집사》에 따르면 아리크부카가 카라코룸을 다스리던 시기까지 생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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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국공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기국공주 |
원래 이름 | 岐國公主 |
작위 | 몽골 제국 카툰 |
재위 | 1215년-1227년 |
왕조 | 금조 → 몽골 제국 |
가문 | 왕기얀부 |
인물 정보 | |
아버지 | 폐제 소 |
어머니 | 흠성부인 원씨 |
배우자 | 칭기스 칸 (1215년 결혼) |
사망일 | 1264년? |
시호 | 공주황후 (公主皇后) |
2. 생애
1211년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 때 몽골군은 금나라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했고, 1215년(정우 3년) 금나라 수도 중도가 포위되었다. 금나라 조정에서는 항전파 고기와 화의파 완안복흥(금나라 종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고, 몽골 제국과 일시적인 화의를 하자는 완안복흥의 안이 채택되었다. 이에 선종은 사촌인 기국공주를 강화 목적으로 칭기즈 칸에게 보냈고, 완안합달이 호위했다.[1] 몽골군은 기국공주를 화의의 증표로 받고 일시적으로 화북에서 철수했다.[2]
칭기스 칸의 비가 된 기국공주는 정비 다음가는 높은 지위를 받았고, '군지'라는 이름으로 몽골 제국 내에서 알려졌다. 이후 기국공주의 활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집사》 「칭기스 칸 기」에 따르면 아리크부카가 카라코룸을 다스리던 시기까지 생존했다고 한다.[3]
2. 1. 몽골과의 화친
1211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1차 침공했을 때, 몽골군은 금나라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했다. 1215년(정우 3년) 금나라 수도 중도가 포위되자, 금나라 조정에서는 항전파 고기와 화의파 완안복흥(금나라 종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그 결과 몽골 제국과 일시적인 화의를 하자는 완안복흥의 안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선종은 사촌인 기국공주를 강화의 목적으로 칭기즈 칸에게 보냈고, 완안합달이 호위했다.[1] 몽골군은 화의의 증표로 기국공주를 받고 일시적으로 화북에서 철수했다.[2]2. 2. 칭기즈 칸의 비
1211년 몽골 제국의 제1차 금나라 침공 당시, 몽골군은 금나라 군대를 각지에서 격파했다. 1215년(정우 3년)에는 금나라의 수도 중도가 포위되었다.[1] 포위된 금나라 조정에서는 항전파 고기와 화의파 완안복흥(금나라 종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고, 그 결과 몽골 제국과의 일시적인 화의를 주장하는 완안복흥의 안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사촌 선종에 의해 강화 목적으로 기국공주가 선택되었으며, 금나라 종실 완안합달의 호위 아래 칭기즈 칸에게 보내졌다. 이는 화의의 증표로, 몽골군은 일시적으로 화북에서 철수했다.[2]칭기스 칸의 비가 된 기국공주는 정비 다음가는 높은 지위를 받았으며, 몽골 제국 내에서는 '군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국공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집사》 「칭기스 칸 기」에 따르면 아리크부카가 카라코룸을 다스리던 시기까지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3]
2. 3. 생애 후반
칭기스 칸의 비가 된 기국공주는 정부인 다음가는 높은 지위를 받았으며, 몽골 제국 내에서는 '군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 이후 기국공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집사》 「칭기스 칸 기」에 따르면 아리크부카가 카라코룸을 다스리던 시기까지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3]참조
[1]
서적
金史』巻112列伝50
[2]
서적
聖武親征録
[3]
서적
村上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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