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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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광섭은 대한제국 시기에 출생하여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 시대를 거쳐 1977년 사망한 시인이다. 1927년 시 〈모기장〉을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8년 시집 《동경》을 출간했다. 경성중동고보 영어 교사로 재직하며 극예술연구회에 참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사상 고취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경무대 대통령 비서실 공보국 국장,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5년 뇌출혈 이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대표작으로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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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북도 경성보통학교 동문 - 김동환 (작가)
김동환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로 비판받았으며,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했고,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주목받았으나, 친일 행적으로 인해 비판받았으며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다. -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 동문 - 양주동 (작가)
양주동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문학자, 수필가, 국문학자, 시인, 번역가, 교육자, 언어학자, 정치인으로, 초기 문학 평론가로 데뷔하여 서양 문학을 소개하고 향가와 고려가요 연구에 몰두했으며, 해방 후에는 대학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으나, 말년에는 친일 행적 논란과 사생활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 동문 - 김동환 (작가)
김동환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로 비판받았으며,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했고,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주목받았으나, 친일 행적으로 인해 비판받았으며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다. - 건국포장 수훈자 - 김영랑
김영랑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활동한 시인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서정시와 민족주의적 저항 의식을 담은 시를 동시에 선보였으며, 1935년에 시집 『영랑시집』을 발간했다. - 건국포장 수훈자 - 장기영 (1903년)
장기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제헌 국회의원, 외무부 차관보, 체신부 장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측근으로 활동하다 결별 후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김광섭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한글 이름 | 김광섭 |
한자 이름 | 金珖燮 |
로마자 표기 | Gim Gwang-seop |
인물 정보 | |
출생일 | 1905년 09월 22일 |
출생지 |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군 |
사망일 | 1977년 05월 23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필명 | 호(號)는 이산(怡山) |
본관 | 전주(全州) |
직업 | |
직업 | 시인 번역가 문학평론가 대학 교수 |
활동 기간 | 1927년~1975년 |
경력 |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학력 | |
학력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
가족 | |
부모 | 김인준(부) |
배우자 | 이순학(1902년생~1970년졸) |
자녀 | 2남 2녀 |
친척 | 남관(맏사위) |
수상 | |
수상 내역 | 국민훈장 모란장(1970.03.01.) 건국포장(1977.03.01.) |
웹사이트 | |
웹사이트 | 두피디아 김광섭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안장록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 공훈록 |
2. 생애
김광섭|金珖燮한국어은 1905년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여, 경성중앙고보 3학년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년 연상인 이순학(개명 전 이름은 이학순)과 결혼하였다. 1921년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23년에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로 유학, 1931년 와세다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여 1933년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27년 《경성중동고보 동창회 회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 1931년 중동고보의 영어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3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 서항석, 함대훈, 모윤숙, 노천명 등과 교류하였다. 1938년 첫 시집 《동경》을 출간하였다. 1941년에는 민족 사상 고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6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으나, 1945년 8·15 광복으로 석방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경무대 대통령 비서실 공보국 국장을 지냈으며, 1961년에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5년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창작 활동을 계속하여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했다.
197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같은 해 부인과 사별했다. 1975년 시문학 분야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1977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받았다.
2. 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그는 1905년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1917년 함북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1년 2월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 2학기를 수료하고, 같은 해 3월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 5학년으로 전학하여 1923년 3월에 졸업했다. 1927년 일본 도쿄에 유학하여 1931년 와세다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고, 1933년 8월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2. 2. 문단 활동과 투옥
1927년 《경성중동고보 동창회 회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과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2] 1931년 중동고보 영어 교사로 재직했으며,[2] 1933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하여 서항석, 함대훈, 모윤숙, 노천명 등과 교류했다.[2] 1938년 첫 시집 《동경》을 냈다.[2] 1941년 경성중동고보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일제 시대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특별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2] 1945년 8월 15일 8·15 광복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2. 3. 해방 이후의 활동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을유 해방(8·15 광복)을 맞아, 조국의 해방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났다.[2]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55년 11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1년 1개월 동안 경무대 대통령 비서실 공보국 국장을 지냈다. 1961년 8월부터 1962년 8월까지 1년 동안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잠시 역임했다.1965년 4월 15일, 야구 경기 관람 도중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이후에도 계속 창작 활동을 하여,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했다. 이 시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1969년 9월 21일, 금혼식(결혼 50주년) 간소 피로연 및 하루 앞당긴 65세 생일 잔치 등을 조촐히 치렀으며, 1970년 3월 1일,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6일, 부인 이순학 여사와 사별했다(부인 향년 69세). 1975년 12월 1일, 만 48년간의 시문학 분야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고, 1977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받았다.
2. 4. 말년과 죽음
김광섭|金珖燮한국어은 1965년 4월 15일, 야구 경기 관람 도중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이후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여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했다. 이 시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2]1969년 9월 21일, 금혼식(결혼 50주년) 및 65세 생일 잔치를 조촐히 치렀으며, 1970년 3월 1일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같은 해 1970년 10월 6일, 부인 이순학 여사가 사망했다(향년 69세).[2] 1975년 12월 1일, 48년간의 시문학 활동 은퇴를 선언했고, 1977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받았다. 같은 해 1977년 5월 23일, 73세로 사망했다.[2]
3. 학력
연도 | 학교 | 비고 |
---|---|---|
1917년 3월 | 함북경성보통학교 | 졸업 |
1921년 3월 |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 | 수료 |
1923년 3월 |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 | 졸업 |
1930년 3월 | 일본 도쿄 와세다 제1고등학원 문과 | 전문학사 |
1933년 8월 | 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 영어영문학과 | 학사 |
4. 작품 세계
1931년 창간한 문예월간 동인으로 시작할 이 무렵에, 시작품 《고독(孤獨)》, 《푸른 하늘의 전락》, 《고민의 풍토》 등의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인 성격의 시편들이 대한의 민족 동포들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5. 주요 저서
김광섭은 여러 시집과 자전 문집을 저술하였다. 대표적인 시집으로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등이 있으며, 자전 문집 《나의 옥중기》를 남겼다.
5. 1. 시집
제목 | 출판 연도 |
---|---|
《동경(憧憬)》 | 1938년 |
《마음》 | 1949년 |
《해바라기》 | 1957년 |
《이삭을 주울 때》 | 1965년 |
《성북동 비둘기》 | 1969년 |
《반응-사회시집》 | 1971년 |
《김광섭시전집》 | 1974년 |
《겨울날》 | 1975년 |
5. 2. 자전 문집
- 《나의 옥중기》
6. 평가
1932년부터 1938년까지 김광섭의 작품에는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겪는 고뇌와 민족 의식이 짙게 나타나 있어, 일제강점기 말기 혼돈 짙은 번뇌파(煩惱派) 문학관(文學觀)의 표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7. 사후
2008년 8월 학술지 《한국사 시민강좌》 하반기호(43호)에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특집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을 선정할 때, 건국의 기초를 다진 32명 중 문화, 종교, 언론 부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4]
8. 김광섭을 연기한 배우
- 서재호 - 2010년 《6·25 전쟁과 이승만》, 연극
참조
[1]
웹사이트
김광섭(金珖燮)
http://encykorea.aks[...]
2022-09-07
[2]
웹사이트
김광섭은 누구… 교사·언론·공직 두루 거쳐, ‘자유문학’ 창간 문단활성화
http://www.munhwa.co[...]
2022-09-07
[3]
웹사이트
혼돈의 해방공간서 자유민주주의 초석을 놓다
https://www.donga.co[...]
2008-08-22
[4]
뉴스
혼돈의 해방공간서 자유민주주의 초석을 놓다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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