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김동환 (작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동환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로 비판받는 시인이자 수필가로, 1901년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다.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중퇴 후 귀국하여 기자로 활동하며 시 창작을 시작했다. 1925년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주목받았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 시를 발표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다. 광복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기소되었으며,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다. 그의 친일 행적은 여러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아들 김영식은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함경북도 경성보통학교 동문 - 김광섭 (시인)
    김광섭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시인으로, 《문예월간》 동인으로 등단하여 고독과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시를 발표했으며, 산업화 시대 인간 소외를 다룬 〈성북동 비둘기〉가 대표작이고, 해방 후에는 공보국 국장과 대학교수 등을 역임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 동문 - 김광섭 (시인)
    김광섭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시인으로, 《문예월간》 동인으로 등단하여 고독과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시를 발표했으며, 산업화 시대 인간 소외를 다룬 〈성북동 비둘기〉가 대표작이고, 해방 후에는 공보국 국장과 대학교수 등을 역임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 동문 - 양주동 (작가)
    양주동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문학자, 수필가, 국문학자, 시인, 번역가, 교육자, 언어학자, 정치인으로, 초기 문학 평론가로 데뷔하여 서양 문학을 소개하고 향가와 고려가요 연구에 몰두했으며, 해방 후에는 대학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으나, 말년에는 친일 행적 논란과 사생활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 김동인 - 발가락이 닮았다
    김승옥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성병으로 생식 능력을 잃은 M과 그의 아내 사이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
  • 김동인 - 붉은 산
    붉은 산은 만주를 배경으로 만주인 지주에게 죽임당한 김 첨지의 복수를 위해 나선 삵, 정익호의 죽음을 통해 민족의식을 드러내는 소설이다.
김동환 (작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김동환
김동환
본명김삼룡
한자金三龍
출생1901년 1월 7일
출생지함경북도 경성군
사망1950년
사망지불명
직업시인, 작가
국적한국
사조신경향파
영향 받은 인물톨스토이
학력
학력배재고등학교 졸업
주요 작품
주요 작품《국경의 밤》
《북청 물장수》
수상
수상신경향파 시인으로 활동

2. 학력

3. 생애

김동환은 1901년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면 금성리에서 태어나, 청나라 만주와 러시아 제국 연해주를 거쳐 함경북도 경성군 어대진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20년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유학, 도요 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수학하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했다.

함북 청진부의 《북선일일보》, 경성부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1924년부터 창작을 시작, 〈적성(赤星)을 손가락질 하며〉로 등단했다. 1925년 장편 서사시국경의 밤》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는 국경 지대 고향에서 얻은 북방적 정서와 강한 낭만성, 민요풍의 향토적인 언어가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삼천리와 삼천리문학을 운영하던 삼천리사를 배경으로 친일 단체 활동과 전쟁 지원 시를 발표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다.[3]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친일파 708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이인석을 칭송하며 지원병 참전을 촉구하는 시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1943) 등 총 23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졌다.[3] 흥아보국단, 조선임전보국단 등 여러 친일단체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3] 3남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했다.[4]

1948년 한국민주당 당무위원 겸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을 잠시 역임 후 탈당했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기소, 1949년 특별형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949년 시문학 분야에서 은퇴,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북괴 인민군에게 납북될 때까지 서울 마포 자택에서 지냈다.

3. 1. 초기 생애 및 문학 활동

1901년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면 금성리에서 출생하였고, 만저우 지역 지린지린(길림)과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역(연해주)의 프리모르스키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를 거쳐,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군 어대진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냈다. 1920년 3월 경성중동고등보통학교졸업한 후, 같은 해 6월에 일본 도쿄에 건너가 유학하여, 이듬해 1921년 3월부터 도요 대학영어영문학과에서 수학하다가, 1923년 10월에 관동 대지진으로 인하여 3학년 당시에 중퇴하고 귀국했다.

함북 청진부에서 발행된 《북선일일보》를 비롯하여, 경성부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1924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 발표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 하며〉가 본격적인 등단작이다.

이듬해 장편 서사시국경의 밤》(1925년)으로 인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문학 작품의 두드러진 시적 특색으로는 국경 지대인 자신의 고향에서 얻은, 북방적 정서와 억세고도 강한 낭만성, 향토적인 느낌을 주는 민요풍의 언어를 들 수 있다.

3. 2.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

일제강점기 말기에 종합월간지 《삼천리》와 문학지 《삼천리문학》을 운영하던 삼천리사를 배경으로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을 위한 시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친일 활동을 하였다.[3]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친일파 708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지원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이인석을 칭송하며 젊은이들에게 참전할 것을 촉구하는 시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1943)을 비롯하여 총 23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졌다.[3] 이는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수록자 가운데 5위에 해당하는 편수임에도, 창작 작업보다는 단체 활동을 통한 친일 행적이 더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흥아보국단, 조선임전보국단,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국민동원총진회, 대화동맹, 대의당 등 많은 친일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3]

3남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이는 친일파로 지적되는 인물의 후손이 조상의 친일 혐의를 인정한 드문 예로 종종 인용된다.[4]

3. 3. 광복 이후와 납북

1948년 9월부터 1948년 10월까지 한 달간 한국민주당 당무위원 겸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 직위를 잠시 역임한 후 한국민주당을 탈당하였다. 1948년 1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기소되었으며, 이듬해(1949년) 3월까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집행으로 성립된 특별형사재판에서 주요 피고인 가운데 일원으로 회부되기도 하였다.

1949년 9월 21일, 시문학 작가 분야에서 등단 25년여만에 은퇴를 선언하였고, 이듬해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북괴의 인민군에게 끌려가 북으로 납치될 때까지 서울 마포 자택에서 조용히 지냈다.

4. 친일 행적에 대한 평가 및 논란

일제강점기 말기에 삼천리사를 배경으로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을 위한 시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친일 활동을 하였다. 2002년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친일파 708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3]

지원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이인석을 칭송하며 젊은이들에게 참전할 것을 촉구하는 시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1943)을 비롯하여 총 23편의 친일 작품이 밝혀졌다. 이는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수록자 가운데 5위에 해당한다. 창작 작업보다는 단체 활동을 통한 친일 행적이 더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흥아보국단, 조선임전보국단,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국민동원총진회, 대화동맹, 대의당 등 많은 친일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3]

3남 김영식이 김동환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사과한 예는 친일파로 지적되는 인물의 후손이 조상의 친일 혐의를 인정한 드문 예로 종종 인용된다.[4]

5. 가족 관계

관계이름출생-사망비고
아버지김석구
어머니마윤옥
이전 배우자신원혜1903년 6월 19일[6] ~ 1993년 4월 25일[7][8]
재혼한 배우자최정희1912년 12월 3일 ~ 1990년 12월 21일소설가
첫째 아들김영사1927년 ~ ?신원혜 소생, 요절
둘째 아들김영창1930년 ~ ?신원혜 소생, 요절
셋째 아들김영식1934년 ~신원혜 소생
첫째 딸김영주1939년 ~신원혜 소생
둘째 딸김지원1942년 ~ 2013년최정희 소생
셋째 딸김채원1946년 ~최정희 소생



김동환의 두 번째 부인은 소설가 최정희이며, 최정희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딸 김지원김채원도 소설가이다.

6. 주요 작품 목록

참조

[1] 문서 아명
[2] 문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시문학 작가 및 수필 작가
[3] 저널 친일문학 작품목록 http://www.artnstudy[...] 2007-10-03
[4] 뉴스 "부친의 '친일 죄과' 민족 앞에 사죄" - [인터뷰] '친일문인' 파인 김동환 3남 김영식씨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2-08-17
[5] 문서 김동환 아버지의 죽음
[6] 문서 김동환 출생지
[7] 문서 김동환 거주지
[8] 문서 김동환의 결혼 및 납치
[9] 문서 봄이 오면 작곡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