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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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동주(1966년)는 기업인 출신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보수 단체 집회에 참여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박정희 동상 복원, 맥아더 동상 철거 반대 등 시민 운동을 펼쳤으며, 2004년 자유민주수호청년연합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했다. 또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지지하고, 5.16 기념행사를 주관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사 발표에 반발하여 소송을 벌였으며, 언론 감시 활동과 월간 박정희 발행을 통해 보수적 입장을 대변했다. 2013년 신장 질환으로 사망했으며, 생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희생된 군경을 추모하고, 친일인명사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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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196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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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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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 1966년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기업인 |
학력 | |
학교 |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
경력 | |
직책 | (주)다원씨앤씨 대표이사 (주)다원아이엔티 대표이사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수석부회장 |
기타 경력 |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부회장 한국정보문화콘텐츠학회 이사 국회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 |
활동 | |
주요 활동 | 5.16 행사 기획 및 주도 정보문화콘텐츠 개발 및 정책 수립 |
수상 | 대한민국 디지털콘텐츠 대상 (2004년) 정보통신부 장관상 (2006년) |
사회 활동 | |
사회 기여 | 장애인 정보화 지원 소외 계층 디지털 교육 지원 |
기타 정보 | |
언론 인터뷰 | 김동주 대표 “5.16 행사, 국민 친화적 축제로 만들 것” |
2. 생애
김동주는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1990년대 중반부터 김영삼, 김대중에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집회에 참석했고, 2000년대 초에는 프리존, 폴리젠, 신혜식의 독립신문 등에서 논객으로 활동하였다.
2001년 11월 5일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의 옛 6관구 사령부 인근에 있던 박정희 동상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6관구 사령부는 박정희 소장이 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이 있던 곳이라 박정희 동상이 있었다. 이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민족문제연구소, 민노총 사람들과 홍익대학교 동문회 일부가 흉상에 밧줄을 걸어 무너뜨렸다.[2]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와 민노총, 홍익대학교 동문회 측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에 예산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었다.[2] 이때 땅에 떨어지면서 동상의 코가 납작해지고 얼굴이 훼손되었다. 김동주는 일부 시민들과 함께 자비를 들여 땅에 떨어져 금이 간 박정희 흉상을 용접, 복구하였고, 이후 영등포구청이 흉상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2]
1998년 이후 인천 자유공원의 더글러스 맥아더 동상 철거 여론이 나오자 그는 철거 주장을 하는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반대하였다.
2004년 6월 서울특별시에서 자유민주수호청년연합 창립에 참여하고,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 그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사수 결의대회에 참여하였다. 11월 6일 시민단체인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 모임(박알모)을 조직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2005년 1월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상영반대 일인 무언시위를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법원 앞에서 개최하였다. 5월부터 5.16 기념행사를 준비, 5월 15일과 5월 16일 제1회 5.16혁명 기념식을 영등포 문래공원에서 개최하였다. 8월에는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 소책자 3만부를 직접 인쇄, 발행하여 8월 14일과 8월 15일 서울특별시 시내에서 무료배포하였다.
2006년 김동주는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운동을 시작했다. 3월 보수, 자유진영 단체 27개가 참여하는 민족문제연구소 해체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신혜식과 함께 공동위원장에 피선되었다. 같은 해 운영하던 회사를 처분하고 시민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활동하며 방송, 언론 활동을 하였다.
2006년 5월에는 서울특별시장 후보자 오세훈의 선거 지원 유세에 참여하였다. 같은 달 오세훈 지원 유세에 나섰던 박근혜가 카터칼로 피습을 당하자, 김동주는 서대문에서 피습사건수사 참관인 구성에 참관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박근혜 피습 관련 엄정수사촉구 시위를 서대문과 광화문에서 주관하였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로 취임하였다. 6월 27일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 집회에서 MBC 노조와의 끝장대결을 선언했다.[27] 김동주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시연의 최대 목적은 ‘MBC 노조 해체’다.[28]"라고 밝혔다.
2013년 3월, MBC 노조의 파업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한 그는 김재철 사장 해임안 처리에 대해 야권과 여권 일부 이사들의 야합 가능성을 제기하며 비판했다.[31][32]
2012년 7월 1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논객연합 결성에 참여하여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12] 같은 해 12월에는 운영 문제로 2008년부터 중단되었던 월간 박정희를 재창간하며, "애국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민잡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12][17][29]
2013년 10월 신장 질환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으나, 12월 3일 병세가 악화되어 다시 입원했다. 그는 12월 17일 사망하기 직전 "지금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이니 의병이 일어나야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33]
2. 1. 생애 초반
김동주는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1990년대 중반부터 김영삼, 김대중에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집회에 참석했고, 2000년대 초에는 프리존, 폴리젠, 신혜식의 독립신문 등에서 논객으로 활동하였다.2001년 11월 5일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의 옛 6관구 사령부 인근에 있던 박정희 동상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6관구 사령부는 박정희 소장이 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이 있던 곳이라 박정희의 동상이 있었다. 이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민족문제연구소, 민노총 사람들과 홍익대학교 동문회 일부가 흉상에 밧줄을 걸어 무너뜨렸다.[2]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와 민노총, 홍익대학교 동문회 측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에 예산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었다.[2] 이때 땅에 떨어지면서 동상의 코가 납작해지고 얼굴이 훼손되었다. 김동주는 일부 시민들과 함께 자비를 들여 땅에 떨어져 금이 간 박정희 흉상을 용접, 복구하였고, 이후 영등포구청이 흉상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2]
1998년 이후 인천 자유공원의 더글러스 맥아더 동상 철거 여론이 나오자 그는 철거 주장을 하는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반대하였다.
2. 1. 1. 초기 활동
김동주는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1990년대 중반부터 김영삼, 김대중에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집회에 참석했고, 2000년대 초에는 프리존, 폴리젠, 신혜식의 독립신문 등에서 논객으로 활동하였다.2001년 11월 5일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옛 6관구 사령부 인근에 있던 박정희 동상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이때 김동주는 일부 시민들과 함께 자비를 들여 땅에 떨어져 금이 간 박정희 흉상을 용접, 복구하였다. 6관구 사령부는 박정희 소장이 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이 있던 곳이라 박정희의 동상이 있었다. 이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민족문제연구소, 민노총 사람들과 홍익대학교 동문회 일부가 흉상에 밧줄을 걸어 무너뜨렸다.[2]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주노총, 홍익대학교 동문회 측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에 예산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었다.[2] 이때 땅에 떨어지면서 동상의 코가 납작해지고 얼굴이 훼손되었다. 김동주는 박계천과 함께 사비를 들여 보수하여 이후 영등포구청이 흉상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2]
1998년 이후 인천 자유공원의 더글러스 맥아더 동상 철거 여론이 나오자 그는 철거 주장을 하는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반대하였다.
2. 1. 2. 기업인, 시민 운동
1990년대 중반부터 김영삼, 김대중에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집회에 참여하였고, 2000년대 초에는 프리존, 폴리젠, 신혜식의 독립신문 등에서 논객으로 활동하였다.2001년 11월 5일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주도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의 옛 6관구 사령부 인근에 있던 박정희 동상이 강제로 끌어내려지자, 김동주는 일부 시민들과 함께 자비를 들여 땅에 떨어져 금이 간 박정희 흉상을 용접, 복구하였다. 6관구 사령부는 박정희 소장이 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수도방위 사령부의 전신이 있던 곳이라 박정희의 동상이 있었다. 이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민족문제연구소, 민노총 사람들과 홍익대학교 동문회 일부가 흉상에 밧줄을 걸어 무너뜨렸다.[2]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주노총, 홍익대학교 동문회 측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에 예산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었다.[2] 이때 땅에 떨어지면서 동상의 코가 납작해지고 얼굴이 훼손되고 말았다. 김동주는 박계천과 함께 사비를 들여 보수하여 이후 영등포구청이 흉상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2]
1998년 이후 인천 자유공원의 더글러스 맥아더 동상 철거 여론이 나오자 그는, 철거 주장을 하는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반대하였다. 2004년 6월 서울특별시에서 자유민주수호청년연합 창립에 참여하고, 자유민주수호청년연합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과 국보법폐지국민연대에 반대하였고, 그해 9월 16일부터 9월 18일까지 국민행동본부와 '박사모' 등과 함께 서울특별시 광화문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결의대회에 참여, 연사의 한 사람으로 연단에 섰다. 이때 김동주 자유수호청년연합 사무총장은 "북한 김정일은 적화통일이 달성될 때 남한 인구 4000만을 가차없이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주장했다.[3] 김동주는 "이에 따르면 여러분도 나도 다 이 자리에 없는 것이다, 틈만 나면 과거사 정리를 내뱉는 좌파 위선자들은 본인들이 과거사 정리대상임을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그는 일부 단체의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시위에 맞서, 박정희 기념관 반대시위 근처에서 일부 시민들을 이끌고 박정희 기념관 찬성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2004년 11월 6일 시민단체인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 모임(약칭 박알모)을 조직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보수, 반공 단체의 집회에도 꾸준히 참여하였다. 2005년 1월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상영반대 일인 무언시위를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법원 앞에서 개최하였다.
2005년 5월부터 5.16 기념행사를 준비, 5월 15일과 5월 16일 제1회 5.16혁명 기념식을 영등포 문래공원에서 개최하였다. 2005년 8월에는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 소책자 3만부를 직접 인쇄, 발행하여 8월 14일과 8월 15일 서울특별시 시내에서 무료배포하였다.
그러나 2001년의 개보수 이후에도 박정희 동상의 코는 다시 떨어져나갔고 2006년 김동주와 박계천은 다시 사비 400만원을 들여 박정희 흉상의 코를 복원했다. 김동주 대표는 "각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며 "각하한테 죄스러운 마음이었는데 고치고 나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4]
2. 1. 3. 민문연과의 갈등
2005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한 3000여 명을 친일인사로 발표한 것에 반발, ‘민문연’을 ‘친북단체’로 규정하고 친일인사 편찬 작업을 ‘이적행위’로 비판하자 ‘민문연’측이 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협의’로 소송을 제기했다.[5] 이 소송은 2007년 7월 3심까지 1년 11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는 보수 청년단체 활동과 동시에 소송자료 준비를 병행하였다.2006년 3월 3일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민형사상의 소송을 당했는데, 지난해 12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다. 명예훼손 부분은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현판파괴와 업무방해 등의 죄를 물어 2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형사부문 벌금은 별도이다.
1심에서는 법원이 명예훼손을 인정, 총 2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2007년 7월 2심에서는 “‘친북’ ‘이적행위’란 말은 더 이상 처벌 위험성을 담고 있거나 반사회적 성향을 뜻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들이 정치적 이념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것일 뿐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5] 그러나 최종 판결에서 ‘업무방해’라는 협의는 인정 돼 재판부는 ‘민문연’에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5]
2. 2. 시민사회 운동과 박정희 기념 활동
김동주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시위에 맞서, 기념관 찬성 집회를 열었다. 2004년 11월 6일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 모임(박알모)을 조직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2005년 1월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상영 반대 일인 시위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앞에서 열었다.2005년 5월부터 5.16 기념행사를 준비, 5월 15일과 5월 16일 제1회 5.16혁명 기념식을 영등포 문래공원에서 개최하였다. 2005년 8월에는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 소책자 3만 부를 발행하여 서울 시내에서 무료 배포하였다.
2006년에는 박정희 동상 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김동주는 박정희 흉상의 코가 떨어진 것을 보고 사비 400만원을 들여 복원하며, "각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4]
2. 2. 1. 보수 시민단체 활동
2004년 6월 서울에서 자유민주수호청년연합 창립에 참여하고, 자유민주수호청년연합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3]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과 국보법폐지국민연대에 반대하였고, 그해 9월 16일부터 9월 18일까지 국민행동본부와 '박사모' 등과 함께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결의대회에 참여, 연사의 한 사람으로 연단에 섰다. 이때 김동주 자유수호청년연합 사무총장은 "북한 김정일은 적화통일이 달성될 때 남한 인구 4000만을 가차없이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주장했다.[3] 김동주는 "이에 따르면 여러분도 나도 다 이 자리에 없는 것이다, 틈만 나면 과거사 정리를 내뱉는 좌파 위선자들은 본인들이 과거사 정리대상임을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3]
김동주는 일부 단체의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시위에 맞서, 박정희 기념관 반대시위 근처에서 일부 시민들을 이끌고 박정희 기념관 찬성 집회를 벌였다. 2004년 11월 6일 시민단체인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 모임(약칭 박알모)을 조직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이후 보수, 반공 단체의 집회에도 꾸준히 참여하였다. 2005년 1월 영화 '그 때 그 사람들' 상영반대 일인 무언시위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앞에서 개최하였다.
2005년 5월부터 5.16 기념행사를 준비, 5월 15일과 5월 16일 제1회 5.16혁명 기념식을 영등포 문래공원에서 개최하였다. 2005년 8월에는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 소책자 3만부를 직접 인쇄, 발행하여 8월 14일과 8월 15일 서울시내에서 무료배포하였다.
2001년의 개보수 이후에도 박정희 동상의 코는 다시 떨어져나갔고, 2006년 김동주와 박계천은 다시 사비 400만원을 들여 박정희 흉상의 코를 복원했다. 김동주는 "각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며 "각하한테 죄스러운 마음이었는데 고치고 나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4]
2005년 9월 인천광역시 인천자유공원에서 개최된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반대집회에 참여하였다. 2005년 11월부터 네티즌구국연합 출범 조직 추진위원장을 맡아, 2005년 12월 서울에서 네티즌구국연합을 발족하였다. 2005년 12월 인천자유공원에서 '자유사랑 맥아더사랑 특별 콘서트'를 주최하고 연예인들을 섭외, 행사를 주관하였다. 그해 보수 청년단체 '새로운 물결 21'을 창설하고 대표로 취임하였다.
2006년 1월 김동주는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2013년 10월까지 민족문제연구소의 폐지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민문연 해체, 폐쇄의 이유로 비전문가들과 정치적으로 편파적인 사람들이 국론분열과 원한 풀이 목적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바로 폐쇄 운동을 추진하는 이유라고 역설하였다. 2006년 3월 보수, 자유진영 단체 27개가 참여하는 민족문제연구소 해체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신혜식과 함께 공동위원장에 피선되었다. 2006년 운영하던 회사를 처분하고 시민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활동하며 방송, 언론 활동을 하였다.
2006년 3월 남민전 사건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되자 남민전 사건 당시의 도심 게릴라 출몰과 민투위 강도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다.
2006년 5월에는 서울특별시장 후보자 오세훈의 선거 지원 유세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5월 오세훈 지원 유세에 나섰던 박근혜가 카터칼로 피습을 당하자, 김동주는 박근혜 피습 직후 서대문에서 피습사건수사 참관인 구성에 참관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박근혜 피습 관련 엄정수사촉구 시위를 서대문과 광화문에서 주관하였다.
2. 2. 2. 박근혜 피습사태 전후
2006년 5월 20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신촌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중 피습을 당했다. 김동주는 이 사건 수사에 참관인으로 참여했는데, 5월 23일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지는지 우리가 감시·관리해야 한다. 경찰서장에게 참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참관인 명단은 김동주가 직접 작성했으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7]같은 날 오후,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예비역대령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과 한나라당 당직자들로 구성된 참관인 8명의 입회가 허락되었다. 이들은 2명씩 4개조를 짜서 5월 20일 오후 11시쯤부터 다음 날 오후 3시까지 이어진 조사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7]
2. 2. 3. 월간 박정희 발행
2004년 11월 6일 시민단체인 박정희 바로알리기 국민 모임(약칭 박알모)을 조직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2005년 8월에는 '진정한 독립투사 박정희' 소책자 3만 부를 직접 인쇄, 발행하여 8월 14일과 8월 15일 서울 시내에서 무료 배포하였다.[3]2. 2. 4. 언론 감시 활동
2006년 운영하던 회사를 처분하고 시민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활동하며 방송, 언론 활동을 하였다.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로 취임하였다. 신부전증으로 병원 입원 권고를 받았지만 통원치료를 하며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 활동과 월간 박정희 발행, 언론 감시 활동을 계속하였다.
2012년 6월 27일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대표 김동주, 이하 공시연 )’ 집회에서 MBC 노조와의 끝장대결을 선언했다.[27] 김동주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시연의 최대 목적은 ‘MBC 노조 해체’다.[28]"라고 밝혔다. 그는 “출구는 하나 밖에 없다. 노조가 복귀한다면 대한민국의 좌경화가 강화 될 것이기 때문에 노조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모든 단체와 연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28]
2. 3. 생애 후반
김동주는 2012년 7월 1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논객연합 결성에 참여하여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12] 같은 해 12월에는 운영 문제로 2008년부터 중단되었던 월간 박정희를 재창간하며, "애국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민잡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12][17][29]2013년 3월, MBC 노조의 파업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한 그는 김재철 사장 해임안 처리에 대해 야권과 여권 일부 이사들의 야합 가능성을 제기하며 비판했다.[31][32]
2013년 10월 신장 질환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으나, 12월 3일 병세가 악화되어 다시 입원했다. 그는 12월 17일 사망하기 직전 "지금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이니 의병이 일어나야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33]
2. 3. 1. 논객 활동과 월간 박정희 재창간
2012년 7월 1일 서울에서 인터넷 신문 게시판과 아스팔트에서 활동하는 보수, 자유주의 논객 40여 명이 참석한 전국논객연합 결성에 참여하여 부회장에 선출되었다.2012년 12월 초 '월간 박정희' 대표는 운영 등의 문제로 2008년 1월 잠정 중단한 월간 박정희지의 재발행을 4년 만에 결정했다.[12] 그는 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애국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민잡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12] 김 대표는 "독자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월간 박정희'는 발행인(김동주)의 민족문제연구소와의 지루한 법적소송과 무가지로 제작되면서 누적된 제작비용에 대한 부담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휴간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독자여러분의 거듭되는 재발행 요청과 혼란한 현실에 대한 시대적 사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월간 박정희'는 애국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민잡지로 거듭나겠다"고 재창간에 나선 각오를 밝혔다.[17][29] 12월 5일 월간 박정희 2012년 11, 12월호 합본을 출간하고 이후 매월 월간 박정희지를 발간하였다.
2. 3. 2. MBC 사장 해임처리 사건 전후
2013년 3월 12일부터 김동주는 MBC 노조의 파업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하였다. 그는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를 놓고 여당과 거래를 하려고 했던 데서 보듯 민주당은 공정방송이 아닌 MBC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무슨 짓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김재철 사장을 쳐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31] 그는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가 특정 개인에 대한 원한을 품은 정당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면 국민 모독이자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다.[31]3월 25일 국회가 김재철 해임처리안을 다음날 처리하기로 가결하자, 김동주는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며, 야권 추천 이사들의 김재철 사장 해임 주장에 여권 일부 이사들이 동조한 것은 야합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32] 그는 또한 보수진영 일각에서 거론되는 MBC 사장 후보들에 대해 “이들을 추천하는 이들은 그들이 애국진영의 검증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들 얘기지 애국진영에서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며 비판했다.[32]
2. 3. 3. 입원과 최후
2013년 10월 신장질환으로 서울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였다. 그해 12월 3일 다시 지병인 신장질환이 위독해져 서울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12월 17일 사망하였다. 사망 직전 그는 "지금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이니 의병이 일어나야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33]3. 사상과 신념
김동주는 노무현 정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와 현대사 왜곡에 맞서기 위해 월간 박정희를 창간했다고 밝혔다.[17] 그는 5.16 군사 정변을 구국의 혁명으로 규정하며, 매년 5월 16일 기념행사를 주관해왔다. 다만, 정통 우파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기존의 주먹구구식 행사에서 벗어나 국민 친화적인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1] 2012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4]
김동주는 언론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를 맡아 공영 방송이 언론 노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비판하며, MBC 노조와의 끝장대결을 선언하기도 했다.[27] 그는 언론 노조가 방송 보도나 뉴스 논조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월권행위라고 주장했다.[34] 미디어 오늘에 대해서는 MBC 노조의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35]
또한, 김동주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경을 추모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36] 그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36]
김동주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대해서는 현대판 인민재판이며, 국론분열을 노린 정치적인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의 부친과 조부는 대부분 친일인명사전에서 빠졌다며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6]
3. 1. 월간 박정희 창간 이유
2006년 9월 25일 그는 월간 박정희의 창간 이유에 대해 "노무현 정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와 현대사 왜곡에 맞서 국민에게 올바른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목표[17]"로 펴냈다고 한다.3. 2. 박정희 5.16 기념행사 주관 이유
2005년 5월 16일부터 김동주는 매년 5월 16일 5.16 기념행사와 참배 활동을 주도하였다.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혁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영등포구 문래공원(6관구 사령부터)에서 5.16 기념 행사를 이어온 김동주는 "좌우(左右) 진영논리가 팽팽히 맞서던 시절에는 어떤 식으로든 5.16을 기념하는 행사가 절실했다"며 "그러나 몇십 년 만에 정통 우파정권이 들어선 지금은 주먹구구식의 식상한 행사, 행사를 위한 행사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1]그는 늘 5.16 군사 정변은 구국의 혁명이라 주장하여 일부 진보쪽 인사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5.16행사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특히 어린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깊이 공감하는 국민 친화적인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며 “올해는 차분하게 숨 고르기를 하고 남은 1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여 내년부터는 많은 분이 ‘아! 바로 이거다’ 하고 무릎을 탁 치는 새로운 개념의 획기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큰 기대를 하셔도 좋다”고 밝혔다.[1]
2012년 8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혁명 50주년인 지난해 20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며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4]
3. 3. 언론의 공정성 관련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로 취임하였다. 그는 공영 방송이 언론 노조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보았으며, 노조가 방송 편성권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34] 그는 언론 노조는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권익, 노동권 보호에만 치중해야지 방송 보도나 뉴스 논조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34]2012년 6월 27일 ‘공정방송을 위한 시민연대(약칭 공시연)' 집회에서 그는 MBC 노조와의 끝장대결을 선언했다.[27]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시연의 최대 목적은 ‘MBC 노조 해체’다."라고 밝혔다.[28] 김동주는 “노조가 복귀한다면 대한민국의 좌경화가 강화 될 것이기 때문에 노조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모든 단체와 연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28] 그는 “공영방송이 언론노조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건 어제오늘이 아니다”라며 “국정원을 무력화시키려고 체제수호의 최후 보루를 흔드는 건 결국 북한 입장만 대변하는 꼴이다. 사실상 노조가 종북과 연결돼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34]
2012년 9월 미디어 오늘 기자의 MBC 잠입 사태에 대해서도 미디어 오늘은 사라져야 할 언론이라 주장했다. 김동주는 미디어 오늘의 보도행태에 대해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미디어오늘이란 매체는 MBC 노조의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언론이 아니다”라며 “MBC 노조, 더 나아가 종북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지일 뿐이고 왜곡·날조를 통해 독자를 현혹하는, 건전한 사회에서는 필요 없는 없어져야 할 매체”라고 비판했다.[35]
3. 4. 5.18 광주 희생 군경 관련
그는 매년 5월 18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경의 묘소에 참배하며 잔을 부었다. 2013년 5월 18일에도 월간 박정희 발행인 김동주 대표는 자유북한군인연합의 임천용 대표와 함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사, 순직한 군경의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잔을 부었다.[36]김동주 대표는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할진데 국가의 광주사태 진압명령에 의해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었다”며 “고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형제이고, 친구였을 터인데 방치되다시피 한 이들의 묘역을 지켜보며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36] 그는 모든 생명은 살려고 태어났지 죽고 싶은 생명은 없다고 강조하고, 5.18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당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나가서 희생된 군인, 경찰들의 존재는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한탄했다. 그는 또 일부 진영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하지만, 동의대 사건 당시 희생된 순직 군경과 용산 참사 당시 희생된 김모 순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추모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이들은 대한민국의 군인과 경찰로서 국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지만 그 숭고한 희생은 처참하게 버림받은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36]
3. 5.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관점
김동주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현대판 인민재판이며, 국론분열을 노린 정치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의 부친과 조부는 대부분 빠졌다며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6]2009년 11월 8일 효창공원 인터뷰에서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은 비전문가들이 내놓은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수단이라 주장했다. 당시‘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대표였던 그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힘든 집단이 국론을 분열하려 내놓은 정파적인 모략”이라며 “앞으로 법적인 대응도 고려하겠다”고 주장하였다.[37]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사 명단발표에 분노한 이유는 그들이 정략적 목적에 눈이 멀어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학자적 양심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친일행위가 구체적이고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들이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부친은 친일인사명단에서 모두 제외시키는 편협함을 보여줬습니다.[6]"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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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대표 “5.16 행사, 국민 친화적 축제로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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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대통령 지하벙커 처리 고심… 구청 “철거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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