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타스 호니아티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니키타스 호니아티스는 1150년경 현재 터키의 호나즈 근처인 프리기아의 코나이에서 태어난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이자 관료이다. 그는 형의 영향을 받아 학문적 성장을 이루었고, 앙겔로스 왕조 치하에서 플로브디프 총독, 궁정비서관, 대법관 등 요직을 역임했다.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을 때 베네치아 상인의 도움으로 도시를 탈출하여 니케아 제국에서 저술 활동에 전념했으며, 1217년에 사망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콤네노스 왕조와 앙겔로스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와 12세기 후반 정교회 회의 자료를 담은 신학 서적인 《정통 신앙의 보물》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동로마 제국의 관료 - 바르다스
바르다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고위 관료이자 미카일 3세 치세의 섭정으로, 마그나우라 학원 설립 등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군사적, 외교적 업적을 남겼으나 조카와의 권력 다툼 끝에 암살당했다. - 동로마 제국의 관료 - 미하일 아탈리아티스
미하일 아탈리아티스는 11세기 비잔틴 제국의 법률가, 관리, 역사가이자 작가로, 법학 연구와 관직 생활을 통해 《포네마 노미콘》 편찬, 《디아탁시스》 작성, 그리고 《역사》 기록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그리스의 역사가 - 디미트리오스 비켈라스
디미트리오스 비켈라스는 그리스의 작가이자 사업가, 번역가이며 피에르 드 쿠베르탱을 설득하여 제1회 근대 올림픽을 아테네에 개최하는 데 기여하고 초대 IOC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 그리스의 역사가 - 테살로니카의 에브스타티오스
테살로니카의 에브스타티오스는 12세기 비잔틴 제국의 학자이자 테살로니카 대주교였으며, 고대 그리스 시인에 대한 주석, 신학 논문, 연설, 편지를 저술했고, 1185년 테살로니카 약탈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 니케아 제국 사람 -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핑게르니스)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핑게르니스)는 비잔틴 제국 시대에 여러 귀족 가문과의 혼인 관계를 통해 연결된 인물이다. - 니케아 제국 사람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미하일 4세
11세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였던 미하일 4세는 1034년부터 1041년까지 총대주교로 재임하며 동로마 제국 시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중요한 시기를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였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니키타스 호니아티스 |
원어 이름 | Νικήτας Χωνιάτης |
다른 이름 | 니키타스 아코미나토스 (Νικήτας Ἀκομινάτος) |
출생 | , 콜로사이 |
사망 | 1217년경 |
직업 | 역사가 정치인 |
형제자매 | 미카엘 호니아티스 |
2. 생애
니키타스 호니아티스는 동로마 제국의 중요한 역사가이자 고위 관료였다. 프리기아 지방 코나이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형 미하일 호니아티스의 영향을 받으며 교육을 받았다. 이후 관료로 활동하며 앙겔로스 왕조 치하에서 플로브디프 총독, 메가스 로고테테스(재상) 등 여러 요직을 역임했다. 그는 제3차 십자군과 제4차 십자군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으며, 특히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이후에는 니케아 제국으로 망명하여 저술 활동에 전념하다 1217년경 사망했다. 그는 중세 동로마 제국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니키타스 호니아티스는 1150년경 프리기아 지방 코나이(현재 터키의 호나즈 근처)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코나이의 주교 니케타스가 그에게 세례를 주고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이후 그는 출생지를 따라 "호니아티스"(코니아테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아버지는 그와 그의 형 미하일 호니아티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 교육을 받게 했다. 신학자였던 형 미하일은 니키타스의 어린 시절과 학문적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훗날 형제는 함께 문인으로 알려지게 된다.2. 2. 관료 경력
니키타스는 처음에 공무원 자리를 얻었고, 앙겔로스 왕조 황제 치하에서 메가스 로고테테스(대 로고테테스) 또는 재상과 같은 고위직을 역임했다. 그는 중요한 시기에 테마인 플로브디프(필리포폴리스)의 총독을 지냈다.니키타스가 플로브디프 총독으로 있을 때, 제3차 십자군이 동로마 제국 영토를 통과하게 되었다. 이때 동로마 제국 황제 이사키오스 2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1세가 플로브디프를 공격했지만, 니키타스는 이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이후 그는 궁정 비서관, 장관, 대법관 등 여러 요직을 거쳤다.
2. 3. 제4차 십자군과 이후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여 약탈했을 때(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니키타스의 생명도 위험에 처했다. 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베네치아 상인의 도움으로 도시 밖으로 탈출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이후 니케아로 피신하여 니케아 제국의 황제 테오도르 1세 라스카리스의 궁정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문학 및 저술 활동에 전념했으며, 1217년에 사망했다. 그의 신학 저서인 ''정통 신앙의 보고''는 필사본 형태로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12세기 이단 및 이단 작가에 대한 주요 참고 자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는 중세 동로마 제국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3. 저작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의 대표작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 '''연대기''' (Χρονικὴ Διήγησις|크로니케 디에게시스el, 전 21권): 콤네노스 왕조와 앙겔로스 왕조 시기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특히 동로마 제국의 관점에서 십자군을 묘사하고 있다.
- '''정통 신앙의 보물''' (Θησαυρὸς Ὀρθοδοξίας|테사우로스 오르토독시아스el, 전 27권): 12세기 후반 정교회 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신학 서적이다.
3. 1. 연대기 (Chronike Diegesis)
''Chronike Diegesisel''(《연대기》)는 총 21권으로 구성된 역사서이다. 이 책은 콤네노스 왕조와 앙겔로스 왕조 시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동로마 제국의 관점에서 본 십자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3. 2. 정통 신앙의 보물 (Thesauros Orthodoxfas)
''정통 신앙의 보물''(Thesauros Orthodoxfasel)은 총 27권으로 구성된 신학 서적이다. 12세기 후반 정교회 회의의 자료를 담고 있으며, 당시의 이단 및 이단 작가들에 대한 주요 참고 자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필사본 형태로 완전하게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까지 부분적으로만 출판되었다.4. 평가
중세 동로마 제국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
5. 대중문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1]는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주인공 바우돌리노는 도시 약탈 중에 니키타스를 구출하고, 그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니키타스는 앨런 고든의 추리 소설 ''베네치아 구역의 죽음''(A Death in the Venetian Quartereng)에서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