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레인 데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러레인 데이는 미국의 배우로, 본명은 라 레인 존슨이다. 1937년 영화 《스텔라 달라스》로 데뷔하여 RKO 픽처스와 MGM과 계약을 맺고, 《해외 특파원》에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1941년 "할리우드의 내일의 스타"로 선정되었으며, 이후 《위험한 여자》 등 여러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세 번의 결혼을 하였으며, 1951년 자신의 이름을 딴 텔레비전 쇼를 진행하는 등 텔레비전 활동도 했다. 말년에는 환경 문제에 대한 캠페인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2007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이 헌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유타주의 공화당 당원 - 토머스 S. 몬슨
토머스 스펜서 몬슨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제16대 회장으로, 유타 대학교 경영학 학사, 데저릿 뉴스 프레스 경영직 역임 후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받아 고든 비 힝클리 회장 서거 후 교회 회장이 되어 사망할 때까지 봉직했으며, 보이스카우트 운동 참여와 저술 활동으로도 알려졌다. - 유타주의 공화당 당원 - 제임스 우즈
제임스 우즈는 1947년생 미국 배우이자 제작자로, MIT 중퇴 후 연기 경력을 시작해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고, 2023년에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제작 총괄을 맡았으며, 보수적인 정치 성향과 트위터 활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 미국의 텔레비전 토크 쇼 진행자 - 우피 골드버그
우피 골드버그는 미국의 배우, 코미디언, 작가, 사회 운동가, 방송인으로서, 영화 《컬러 퍼플》로 데뷔하여 《고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시스터 액트》 시리즈 주연, 《스타 트렉: 차세대》 출연, 《뷰》 공동 진행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EGOT 수상자가 되었으며, 사회 운동 및 기업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 미국의 텔레비전 토크 쇼 진행자 - 시빌 셰퍼드
시빌 셰퍼드는 1950년생 미국의 배우, 모델, 가수로, 《마지막 영화쇼》로 데뷔하여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고, 《문라이팅》 등 다양한 작품 활동과 사회 운동 참여를 통해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 미국의 여자 라디오 배우 - 린다 게리
린다 게리는 미국의 성우이자 배우이며, 194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등에서 활동하다 1995년 사망했다. - 미국의 여자 라디오 배우 - 메리 맥카티
메리 맥카티는 5세부터 뮤지컬 아역 배우로 활동하며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브로드웨이 등에서 활약한 미국의 배우, 가수, 댄서, 안무가로, 10세에 6개 국어 노래와 뛰어난 댄스 실력을 보였고 연극 《안나 크리스티》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러레인 데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라 레인 존슨 |
다른 이름 | 라레인 존슨 |
출생일 | 1920년 10월 13일 |
출생지 | 미국 유타주 루즈벨트 |
사망일 | 2007년 11월 10일 |
사망지 | 미국 유타주 아이빈스 |
안장 장소 |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37년–1986년 |
정당 | 공화당 |
개인사 | |
배우자 | 레이 헨드릭스 (1942년 결혼, 1947년 이혼) 레오 듀로처 (1948년 결혼, 1960년 이혼) 마이클 그릴리케스 (1961년 결혼, 2007년 사별) |
자녀 | 5명 |
주요 작품 | |
영화 | 해외 특파원 위험한 여인 |
2. 생애
러레인 데이는 1920년 10월 13일 유타주 루즈벨트에서 라 레인 존슨(La Raine Johns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몰몬교 신자였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곡물 상인이자 유트 인디언 부족의 통역관이었다. 이후 가족은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고, 롱 비치 플레이어스와 함께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1938년 롱 비치 폴리테크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2][6]
1937년 영화 《스텔라 달라스》로 데뷔하여, RKO 픽처스를 거쳐 1939년 MGM과 계약했다.[5] MGM에서 루 에어스 주연의 7편의 닥터 키다레 시리즈에서 간호사 메리 라몬트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9] 1940년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해외 특파원》에서 캐롤 피셔 역을 맡아 주목받았고,[4][10] 1941년에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망한 "미래의 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11]
1946년 MGM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RKO와 계약하여 5년간 매년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영화당 100000USD를 받기로 했다.[2] 1940년대에는 ''럭스 라디오 극장''과 ''더 스크린 길드 극장''에서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했다.[13][14] 195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텔레비전 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2] 1952년 5월에는 뉴욕 라디오 방송국 WMGM에서 심야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기도 했다.[15] 1960년대 이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결혼은 세 번 했다. 1961년 3월 7일, 텔레비전 프로듀서 마이클 그리릴케스와 세 번째 결혼을 하였다.[23]
데이는 후기 성도 교회 신자였으며, 리처드 닉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치 활동도 했다.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닉슨을 만나기도 하였다.[28]
1971년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책을 썼다.[4] 세 번째 남편이 사망한 후 2007년 3월 고향인 유타주로 돌아왔다. 2007년 11월 10일 유타주 아이빈스에 있는 딸 지지 벨의 집에서 87세에 사망했다.[9][3]
2. 1. 초기 생애
1920년 10월 13일, 유타주 루즈벨트에서 라 레인 존슨(La Raine Johns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 신자였던 부유한 가정의 8남매 중 하나였다.[1] 부모는 클래런스 어윈 존슨과 아다 M. 존슨이었다.[2] 아버지는 곡물 상인이자 유트 인디언 부족의 통역관이었다. 그녀에게는 쌍둥이 남동생 라마가 있었다. 그녀의 증조부는 초기 몰몬교 개척자 찰스 C. 리치였다.[3][4]가족은 나중에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그녀는 롱 비치 플레이어스와 함께 연기 경력을 시작했으며, 친구이자 동시대인이었던 로버트 미첨도 함께했다.[6][5] 그녀는 조지 워싱턴 주니어 고등학교를 다녔고, 1938년 롱 비치 폴리테크닉 고등학교를 졸업했다.[2][6]
2. 2. 경력
1937년 영화 《스텔라 달라스》로 데뷔하여, RKO 픽처스를 거쳐 1939년 MGM과 계약했다.[5] MGM에서 《닥터 키다레를 부르며(1939)》로 시작하는 루 에어스 주연의 7편의 닥터 키다레 시리즈에서 간호사 메리 라몬트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9]1940년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해외 특파원》에서 캐롤 피셔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4][10] 1941년에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망한 "미래의 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11] 같은 해 월리스 베리와 라이오넬 배리모어가 출연한 서부극 코미디 《나쁜 남자》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상대역을 맡았다.
1946년 MGM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RKO와 계약하여 5년간 매년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영화당 100000USD를 받기로 했다.[2] 1940년대에는 ''럭스 라디오 극장''과 ''더 스크린 길드 극장''에서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했다.[13][14]
195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텔레비전 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2] 1952년 5월에는 뉴욕 라디오 방송국 WMGM에서 심야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기도 했다.[15] 1960년대 이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2. 3. 결혼
러레인 데이는 세 번 결혼했다. 1942년 제임스 레이 헨드릭스와 첫 번째 결혼을 했고, 세 자녀를 입양했으나 1946년 이혼했다.[2][16][17][18] 1947년 1월 20일, 헨드릭스와의 잠정 이혼을 허가받았으나, 재혼하기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 했다.[19]1947년 1월 21일, 데이는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로 가서 두 번째 이혼 판결을 받았다. 그날 늦게, 텍사스주 엘파소로 가서 야구 감독 레오 듀로처와 결혼했다. 그러나 데이가 헨드릭스와의 잠정 이혼을 허가한 판사는 멕시코 이혼이 불법이며, 1년의 대기 기간을 지키지 않아 텍사스 결혼 역시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결국 데이와 듀로처는 1년 후인 1948년 2월 16일 캘리포니아주 산타 모니카에서 재혼했다.[20]
뉴욕으로 이사한 후, 데이는 야구를 이해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모두 읽었다. 1951년 야구 작가 협회 뉴욕 지부로부터 명예를 얻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2] 듀로처와의 결혼 생활 동안, 데이는 "야구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렸다. 듀로처가 뉴욕 자이언츠를 감독하는 동안, 그녀는 《자이언츠와 함께한 날》(1952)을 썼다.[21] 또한 뉴욕 자이언츠 홈 경기 전 15분짜리 텔레비전 인터뷰 프로그램 《자이언츠와 함께한 날》을 진행하기도 했다. 데이와 듀로처는 1960년 6월 이혼했다.[22]
1961년 3월 7일, 데이는 텔레비전 프로듀서 마이클 그리릴케스와 결혼하여 두 딸, 다나 라레인(1962년 11월 13일 출생)과 지지(1964년 10월 6일 출생)를 낳았다.[23][24]
2. 4. 종교 및 정치 활동
데이는 후기 성도 교회 신자였다. 그녀는 평생 동안 욕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알코올, 커피, 차를 마시지 않았다. 2007년 사망할 때까지 몰몬교 신앙을 유지하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위안을 줍니다."라고 말했다.[25] 1961년 몰몬 태버내클 합창단과 함께 미국 자유의 정신에 헌정된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인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라''(Let Freedom Ring)에 출연했다.[26]데이는 스스로 "매우 공화당원"이라고 묘사했다.[27] 그녀는 리처드 닉슨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196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그를 만나 "미국인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인물이라고 평했다.[28] 1952년에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1980년과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랜 할리우드 친구이자 전 동료 배우인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하며, 낸시 레이건과 함께 "로널드 레이건은 내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그의 지성, 능력, 그리고 기독교적 형제애는 매우 감동적이며, 그의 리더십 방식은 훌륭하다. 나는 그와 함께 영화 ''배드 맨''과 단편 영화에 출연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우리 국민 전체가 레이건 부부와 같은 훌륭한 사람들의 리더십을 가지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29]
2. 5. 말년과 죽음
러레인 데이는 1970년대에 '미국을 더 좋게 만들기' 캠페인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공유하기 위해 전국을 여행했다.[31] 1971년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책을 썼다.[4] 세 번째 남편이 사망한 후 2007년 3월 고향인 유타주로 돌아왔다. 2007년 11월 10일 유타주 아이빈스에 있는 딸 지지 벨의 집에서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87세에 사망했다.[9][3] 그녀의 시신은 캘리포니아주로 옮겨졌으며, 2007년 11월 15일 할리우드 힐스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32]3. 출연 작품
원제
Stella Dallas
Tarzan Finds a Son
Foreign Correspondent
The Bad Man
Journey for Margaret
Mr. Lucky
The Story of Dr. Wassell
Bride by Mistake
The Locket
Tycoon
I Married a Communist
The High and the Mighty
The 3rd Voice
Murder on Flight 502
Murder, She Wr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