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아른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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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돌프 아른하임은 1904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예술 심리학자이자 영화 이론가이다. 베를린 대학교에서 심리학, 철학, 미술사 등을 공부하고, 게슈탈트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시지각과 예술의 관계를 연구했다. 1930년대 초 나치의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여, 세라 로렌스 칼리지,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시각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요 저서로는 『예술과 시각적 지각』, 『시각적 사고』, 『중심의 힘』 등이 있으며, 그의 이론은 현대 시각 예술 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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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아른하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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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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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루돌프 아른하임 |
출생 | 1904년 7월 15일 |
출생지 | 독일 제국 베를린 |
사망 | 2007년 6월 9일 |
사망지 | 미시간주 앤 아버 |
국적 | 독일-미국 |
학력 | |
모교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
박사 지도교수 | 막스 베르트하이머 |
학문적 조언자 | 볼프강 쾰러 쿠르트 레빈 |
경력 | |
직업 | 영화 이론가 심리학자 |
사상과 업적 | |
주요 업적 | 형식주의 영화 이론 |
주요 저서 | 『예술로서의 영화』 『미술과 시각』 |
2. 초기 생애 및 교육
루돌프 아른하임은 1904년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근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2]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은 샤를로텐부르크의 카이저담으로 이사하여 1930년대 초까지 그곳에서 살았다.[1]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3]
아버지 게오르크 아른하임은 작은 피아노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공장을 물려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루돌프는 학업을 계속하기를 원했고, 아버지는 루돌프가 일주일의 절반은 대학에서, 나머지 절반은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동의했다.[2] 결국 루돌프가 대학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자, 아버지는 그가 학업에 전념하도록 허락했다.[1][2]
어릴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루돌프는 15세 또는 16세 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초판본 책을 구입하며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1][3]
베를린 대학교에서 아른하임은 실험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미술사와 음악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1][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막스 베르트하이머, 볼프강 쾰러 등 저명한 교수진이 있었던 베를린 대학교에서[3] 아른하임은 막스 베르트하이머와 볼프강 쾰러의 지도 하에 게슈탈트 심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2. 1. 초기 생애
루돌프 아른하임은 1904년 알렉산더 광장 근처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2]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족은 샤를로텐부르크의 카이저담으로 이사하여 1930년대 초까지 그곳에서 살았다.[1]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에 대한 관심을 일찍부터 보였다.[3]그의 아버지 게오르크 아른하임은 작은 피아노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공장을 물려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루돌프는 학업을 계속하기를 원했고,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일주일의 절반은 대학에서, 나머지 절반은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동의했다.[2] 결국 루돌프는 대학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공장에서는 피아노의 기계 장치에 대한 질문으로 직원들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학업에 전념하도록 허락했다.[1][2]
루돌프는 어릴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15세 또는 16세 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초판본 책을 구입했던 것을 기억했다.[3] 이는 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키웠다.[1]
2. 2. 베를린 대학교
아른하임은 베를린 대학교에서 실험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미술사와 음악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1][2] 당시 베를린 대학교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막스 베르트하이머, 볼프강 쾰러 등 저명한 교수진이 있었다.[3] 아른하임은 이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막스 베르트하이머와 볼프강 쾰러의 지도 하에 게슈탈트 심리학을 깊이 연구했다.3. 경력
아른하임은 베를린 대학교에서 심리학, 철학, 미술사, 음악을 공부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등 저명한 교수진 아래서 게슈탈트 심리학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1928년 박사 학위를 받은 후, ''Stachelschwein''과 ''Die Weltbühne'' 등에서 영화 평론가로 활동했다. 1933년 나치를 피해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6년간 영화와 라디오에 대한 글을 썼고,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 방송 공사에서 번역가로 일했다.[1][2][3]
1940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세라 로렌스 칼리지 심리학 교수 및 사회 연구 신학교 객원 강사로 재직하며, 록펠러 재단 및 구겐하임 재단 펠로우십을 받았다. 1951년 ''예술과 시각적 지각: 창의적 시각의 심리학''을 집필했다.[2] 1968년 하버드 대학교 예술 심리학 교수로 초빙되었고, 1974년 은퇴 후 미시간 대학교 객원 교수로 10년간 재직했다. 미국 미학회 및 미국 심리학회 주요 직책을 역임하고, 1976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펠로우로 선출되었다.[2]
3. 1. 초기 경력 (독일)
아른하임은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심리학을 전공하고자 했다. 당시 심리학은 철학의 한 분과였기 때문에, 아른하임은 실험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미술사와 음악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2][3] 막스 베르트하이머와 볼프강 쾰러가 심리학과에 있었기 때문에, 심리학은 대부분 게슈탈트 심리학을 다루었다.[3] 192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1]1920년대 중반, 아른하임은 ''Stachelschwein''에 영화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1] 한편, 그는 자신의 작품을 ''Die Weltbühne''의 편집장인 지크프리트 야콥손에게 보냈고, 야콥손은 이를 받아들였다. 야콥손이 1928년에 사망하자, 오시에츠키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아른하임은 1933년까지 문화 분야에서 일했다.[1] 1932년 가을, 아른하임은 나치가 권력을 잡기 약 3개월 전에 ''Berliner Tageblatt''에 에세이를 게재했다.[1] 그 에세이는 찰리 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의 본질과 콧수염이 인간의 성격 측면에서 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3] 이 에세이의 시기와 1933년 나치 때문에 그의 저서 ''예술로서의 영화''의 판매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아른하임의 몇몇 친구들은 그에게 나라를 떠나라고 조언했고, 1933년 8월,[1][3] 그는 로마로 이주했다.
3. 2. 이탈리아와 영국 시절
1933년 8월, 아른하임은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이후 6년 동안 영화와 라디오에 대해 글을 썼다.[2]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 방송 공사(BBC)에서 전시 번역가로 일했다.[2]3. 3. 미국으로의 이주와 학문적 성취
1940년, 아른하임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시에 정착했다. 런던에서의 암흑 생활과는 달리 뉴욕의 밝은 불빛은 그에게 "망명의 끝"을 알리는 듯했다.[2] 1943년, 그는 세라 로렌스 칼리지의 심리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사회 연구 신학교에서 객원 강사로도 활동했다.[2]이 시기에 아른하임은 두 개의 중요한 상을 받았다. 록펠러 재단 펠로우십을 통해 컬럼비아 대학교 라디오 연구소에서 미국 청취자들에게 미치는 비누 오페라의 영향을 연구했다.[2] 또한 1942년에는 구겐하임 재단 펠로우십을 받아 예술에서의 지각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2] 그는 게슈탈트 이론을 시각 예술에 적용하는 저술을 계획했으나, 공간, 표현, 움직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출판을 연기했다.[2] 1951년, 아른하임은 다시 록펠러 재단 펠로우십을 받아 강의를 쉬고 ''예술과 시각적 지각: 창의적 시각의 심리학''을 집필했다.[2]
3. 4. 하버드 대학교와 미시간 대학교
아른하임은 1968년 하버드 대학교 예술 심리학 교수로 초빙되어 6년간 재직했다.[2] 하버드 비주얼 아트 카펜터 센터는 르 코르뷔지에가 미국에서 설계한 유일한 건물이자 모듈 이론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그에게 중요한 건물이었다.[3] 1974년 아내 메리와 함께 미시간주 앤아버로 은퇴했고,[2] 미시간 대학교 객원 교수로 10년간 재직했다.[2] 미국 미학회 회장을 2번, 미국 심리학회 심리학 및 예술 분과 회장을 3번 역임했다.[2] 1976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펠로우로 선출되었다.[2]4. 주요 이론 및 저술 활동
아른하임은 게슈탈트 심리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의 지각 과정을 분석하고, 시각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을 사용하여 예술을 더 잘 이해하려고 시도했으며, 개인적 편견, 직관 및 표현의 중요한 측면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대 초반에 가장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남은 생을 그것을 확장하는 데 보낸다고 하였다.[3] 아른하임이 가진 생산적이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삶과 세상의 의미가 세상의 패턴, 형태, 색상에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그러한 패턴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예술 작품이 단순한 매력적인 형태와 색상의 조합이 아니라 시각적 사고이자 표현 수단이라고 믿었다. 예술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세상이 당신의 생각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볼 수 있는 방법이며, 예술의 기능은 우리의 존재와 같은 어떤 것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1][3]
4. 1. 예술과 시각적 지각
《Art and Visual Perception: A Psychology of the Creative Eye영어》(《예술과 시각적 지각: 창의적 눈의 심리학》) (1954)에서 아른하임은 게슈탈트 심리학 이론을 시각 예술에 적용하여, 예술 작품의 지각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개인적 편견, 직관,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학적 방법론과 예술적 직관의 조화를 추구했다.[3] 이 책은 1974년에 개정되었으며, 1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서적 중 하나가 되었다.《Visual Thinking영어》(《시각적 사고》) (1969)에서 아른하임은 사고 대 지각, 지성 대 직관의 차이에 도전하며, 언어가 지각보다 앞서고 단어가 사고의 디딤돌이라는 가정을 비판한다. 그는 감각적 지식은 우리가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감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보았다. 또한 시각적 지각은 우리가 경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지각은 사고와 강하게 동일시되고 예술적 표현은 사고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The Power of the Center: A Study of Composition in the Visual Arts영어》(《중심의 힘: 시각 예술에서의 구도 연구》) (1982)에서 아른하임은 동심원 및 격자 공간 패턴에서 예술과 건축의 상호 작용을 다루며, 형태와 내용이 불가분하고 예술가가 창조한 패턴은 인간 경험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3]
아른하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대 초반에 가장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남은 생을 그것을 확장하는 데 보낸다. 아른하임의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삶과 세상의 의미가 세상의 패턴, 형태, 색상에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그러한 패턴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예술 작품이 단순한 매력적인 형태와 색상의 조합이 아니라 시각적 사고이자 표현 수단이라고 믿었다. 예술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세상이 당신의 생각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예술의 기능은 우리의 존재와 같은 어떤 것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1] 그는 지각 심리학, 예술, 건축, 영화에 관한 15권의 책을 저술했다.[2]
4. 2. 시각적 사고
Visual Thinking영어''(1969)에서 아른하임은 언어가 지각보다 앞서고 단어가 사고의 디딤돌이라는 기존의 통념에 도전했다. 감각적 지식은 우리가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감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시각적 지각은 우리가 경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아른하임은 또한 지각이 사고와 강하게 동일시되며 예술적 표현이 사고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주장했다.[3]4. 3. 중심의 힘
The Power of the Center: A Study of Composition in the Visual Arts영어(1982)에서 아른하임은 동심원 및 격자 공간 패턴에서 예술과 건축의 상호 작용을 다룬다. 그는 형태와 내용이 불가분하다고 주장하며, 예술가가 창조한 패턴은 인간 경험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말한다.[3]4. 4. 기타 저술
아른하임은 지각 심리학, 예술, 건축, 영화에 관한 15권의 책을 저술했다.[2] 『예술과 시각적 지각: 창의적 눈의 심리학』(1954)에서 과학을 사용하여 예술을 더 잘 이해하려고 시도했으며, 개인적 편견, 직관 및 표현의 중요한 측면을 염두에 두었다. 15개월이 걸려 완성했지만, 사실상 한 번에 썼다고 느꼈다고 한다. 1974년에 개정되었으며, 1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서적 중 하나가 되었다.[3]『시각적 사고』(1969)는 사고 대 지각, 지성 대 직관의 차이에 도전한다. 여기서 아른하임은 언어가 지각보다 앞서고 단어가 사고의 디딤돌이라는 가정을 비판한다. 감각적 지식은 우리가 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감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시각적 지각은 우리가 경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아른하임은 또한 지각이 사고와 강하게 동일시되며 예술적 표현이 사고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주장한다.[3]
『중심의 힘: 시각 예술에서의 구도 연구』(1982)에서 아른하임은 동심원 및 격자 공간 패턴에서 예술과 건축의 상호 작용을 다룬다. 그는 형태와 내용이 불가분하다고 주장하며, 예술가가 창조한 패턴은 인간 경험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말한다.[3]
아른하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대 초반에 가장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남은 생을 그것을 확장하는 데 보낸다. 아른하임의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삶과 세상의 의미가 세상의 패턴, 형태, 색상에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그러한 패턴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예술 작품이 단순한 매력적인 형태와 색상의 조합이 아니라 시각적 사고이자 표현 수단이라고 믿었다. 예술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세상이 당신의 생각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예술의 기능은 우리의 존재와 같은 어떤 것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1][3]
5. 저서
- 1928: Experimentell-psychologische Untersuchungen zum Ausdrucksproblem|표현 문제에 대한 실험 심리학적 연구de. ''Psychologische Forschung, 11'', 2–132.
- 1932: Film als Kunst|예술로서의 영화de. 베를린: Ernst Rowohlt. 개정판: 1974, 1979, 2002.
- 1933/1936: Rundfunk als hörkunstde/Radio as Sound|청각 예술로서의 라디오/소리의 라디오영어
- 1943: Gestalt and art|게슈탈트와 예술영어.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2'', 71–5.
- 1949/1966: Toward a Psychology of Art|예술 심리학으로영어. 버클리 및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54/1974: Art and Visual Perception: A Psychology of the Creative Eye|예술과 시각 지각: 창의적인 눈의 심리학영어. 버클리 및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57: Film as Art|예술로서의 영화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Film als Kunst|예술로서의 영화de, 1932의 개정 및 요약본.]
- 1962/1974: Picasso's Guernica|피카소의 게르니카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69: Visual Thinking|시각적 사고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71: Entropy and Art|엔트로피와 예술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72/1996: Anschauliches Denken|생생한 사고de. Zur Einheit von Bild und Begriff|그림과 개념의 통일성de. 초판 1972, 현재 쾰른: DuMont Taschenbuch 1996.
- 1977: The Dynamics of Architectural Form|건축 형태의 역학영어. 버클리 및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77: Kritiken und Aufsätze zum Film|영화에 대한 비평과 에세이de. (Hrsg.: Helmut H. Diederichs) 뮌헨: Hanser.
- 1979: Radio als Hörkunst|청각 예술로서의 라디오de. 뮌헨: Hanser. 개정판: 2001 (Suhrkamp).
- 1982/88: The Power of the Center: A Study of Composition in the Visual Arts|중심의 힘: 시각 예술에서의 구도 연구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86: New Essays on the Psychology of Art|예술 심리학에 관한 새로운 에세이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89: Parables of Sun Light: Observations on Psychology, the Arts, and the Rest|햇빛의 비유: 심리학, 예술 및 기타에 대한 관찰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90: Thoughts on Art Education|예술 교육에 대한 생각영어. 로스앤젤레스: 게티 교육 센터.
- 1992: To the Rescue of Art|예술 구출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96: The Split and the Structure|분할과 구조영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
- 1997: Film Essays and Criticism|영화 에세이 및 비평영어. 위스콘신 대학교 출판부.
- 2004: Die Seele in der Silberschicht|은색 층의 영혼de. (Hrsg.: Helmut H. Diederichs) 프랑크푸르트암마인: Suhrkamp.
- 2009: I baffi di Charlot. Scritti italiani sul cinema 1932-1938|샤를로의 콧수염. 1932-1938년 영화에 관한 이탈리아어 저술it. (Ed.: Adriano D'Aloia) 토리노: Kaplan.
- 2012: Cinema como Arte. As técnicas da linguagem audiovisual|예술로서의 영화. 시청각 언어의 기술pt. (Transl.: Marco Bonetti) 니테로이: Muiraquitan.
아른하임의 저서는 한국어로도 번역되었으며, 상세 목록은 "한국어 번역본" 하위 섹션에 있다.
5. 1. 한국어 번역본
제목 | 번역자 | 출판사 | 출판 연도 |
---|---|---|---|
예술로서의 영화 | 사사키 노리오 | 오라이샤 | 1933년 |
예술로서의 영화 | 시가 노부오 | 미스즈 서방 | 1960년 |
미술과 시각: 아름다움과 창조의 심리학 (상, 하) | 하타노 칸지, 세키 게이오 | 미술출판사 | 1964년 |
예술 심리학을 위하여 | 우에 쇼지 | 다비드사 | 1971년 |
시각적 사고: 창조 심리학의 세계 | 세키 게이오 | 미술출판사 | 1974년 |
건축 형태의 다이내믹스 (상, 하) | 이누이 마사오 | SD선서, 카시마 출판회 | 1980년 |
중심의 힘: 미술에서의 구도 연구 | 세키 게이오 | 키노쿠니야 서점 | 1983년 |
엔트로피와 예술: 질서와 무질서에 관한 고찰 | 세키 게이오 | 창언사 | 1985년 |
예술 심리학 | 세키 게이오 | 지유샤 | 1987년 |
참조
[1]
웹사이트
The Intelligence of Vision: An Interview with Rudolf Arnheim
http://www.cabinetma[...]
[2]
웹사이트
Rudolf Arnheim: The Little Owl on the Shoulder of Athene
https://www.jstor.or[...]
[3]
웹사이트
A Conversation with Rudolf Arnheim
https://www.jstor.or[...]
[4]
뉴스
Rudolf Arnheim, 102, Psychologist and Scholar of Art and Ideas, Dies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07-06-14
[5]
웹사이트
The Intelligence of Vision: An Interview with Rudolf Arnheim
http://www.cabinetma[...]
[6]
웹사이트
Rudolf Arnheim: The Little Owl on the Shoulder of Athene
http://www.jstor.org[...]
[7]
웹사이트
アルンハイム
https://kotobank.jp/[...]
『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
[8]
웹사이트
『芸術としての映画』ルドルフ・アルンハイム
http://artscape.jp/a[...]
art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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