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캇세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크 캇세이는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외야수와 1루수로 활약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미국 대표팀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7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플로리다 말린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밀워키 브루어스 등 여러 팀에서 뛰었다. 2014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타격 코치를 거쳐, 2016년부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벤치 코치, 퀄리티 컨트롤 코치, 3루 코치를 역임했고, 2022년부터 감독을 맡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감독 - 빌리 마틴
빌리 마틴은 뉴욕 양키스에서 이름을 알린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공격적인 "빌리 볼" 야구 스타일로 여러 팀을 이끌었지만 불화와 갈등, 사생활 문제로 해고와 복귀를 반복한 파란만장한 감독이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감독 - 밥 멜빈
밥 멜빈은 선수 시절 포수로 활동했던 미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여러 팀 감독을 역임하며 3차례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 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조경환 (야구인)
조경환은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에서 포수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과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했다. - 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손민한
손민한은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MVP를 수상하고 WBC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인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이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88년 월드 시리즈
1988년 월드 시리즈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했으며, 커크 깁슨의 1차전 끝내기 홈런과 오렐 허샤이저의 MVP 수상으로 기억되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경기이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90년 월드 시리즈
1990년 월드 시리즈는 신시내티 레즈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4승 무패로 꺾고 우승한 대회로, 신시내티 레즈의 탄탄한 불펜과 결정적인 안타를 바탕으로 예상을 깨고 스윕 승리를 거두며 1976년 이후 첫 우승이자 양 팀 모두에게 마지막 월드 시리즈 출전으로 기록되었다.
마크 캇세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포지션 | 외야수 / 감독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출생지 | 캘리포니아주휘티어 |
선수 경력 | |
대학교 |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풀러턴 |
선수 | 마이애미 말린스 (1997-200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1-2003, 2012-201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4-200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8) 보스턴 레드삭스 (2008-2009)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9-2010) 밀워키 브루어스 (2011) |
코치 및 감독 경력 | |
코치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15)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16-2021) |
감독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22-현재) |
수상 | |
골든 스파이크 상 | 1995년 |
국가대표 | |
올림픽 | 1996년 애틀랜타 |
메달 | 동메달 |
MLB 기록 | |
데뷔 (MLB) | 1997년 7월 11일, 플로리다 말린스 |
마지막 경기 (MLB) | 2013년 9월 2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타율 | 0.276 |
홈런 | 127 |
타점 | 720 |
감독 기록 | |
승-패 | 179–307 |
2. 선수 경력
1996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9위)에서 플로리다 말린스에 지명되었고, 같은 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에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38] 1997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998년부터 말린스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주로 외야수(특히 중견수와 우익수)로 뛰었으며,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리그 보살 1위를 기록했다.[5]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1-2003, 2012-201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2004-2007),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8), 보스턴 레드삭스(2008-2009), 시카고 화이트삭스(2009-2010), 밀워키 브루어스(2011) 등 여러 팀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오클랜드 시절인 2004년에는 타율 0.314와 190안타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39] 2008년 애틀랜타 소속으로는 사이클 히트를 달성하기도 했다.[11][42] 커리어 후반에는 1루수로도 출전했으며,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41]
2012년 친정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복귀하여 두 시즌을 더 뛰었고, 2013년 시즌을 끝으로 17년간의 메이저 리그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6] 통산 1,91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6, 1,784안타, 127홈런, 720타점을 기록했다.
2. 1. 아마추어 시절
캘리포니아주 휘티어에서 태어나 샌타페스프링스에서 성장했다.[1] 샌타페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4학년 시즌에는 타율 0.408과 함께 투수로서 4승 0패,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다. 고교 시절 미식축구와 농구 팀에서도 활동했다.[2]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당시에는 드래프트에서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1994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풀러턴에 진학하여 대학 야구 팀인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풀러턴 타이탄스에서 뛰었다. 1994년 여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본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뛰며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3][4]
1995년은 캇세이에게 최고의 해였다. 그는 타율 0.422, 21홈런, 90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쳐 골든 스파이크 상을 수상했다. 또한 대학 월드 시리즈(CWS)에서는 타율 0.563, 3홈런, 10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세 번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당시 외야수뿐만 아니라 마무리 투수로도 활약했는데, 팀의 CWS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5개의 아웃을 직접 처리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5년과 1996년에는 올 아메리카 선수로 선정되었다.
2. 2. 프로 선수 시절
1996년 6월 MLB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9위)에서 플로리다 말린스의 지명을 받았고, 같은 해 애틀랜타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38] 올림픽 종료 후 8월 15일에 말린스와 계약했다.[39]1997년 7월 1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며,[38] 1998년부터 말린스의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다. 2000년까지 3년간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2001년 3월 28일, 매트 클레멘트 등과의 2 대 3 트레이드로 씨저 크레스포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했다.

(2007년 7월 28일)
2003년 11월 26일에는 라몬 에르난데스, 테렌스 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다.[39] 애슬레틱스 이적 첫 해인 2004년에는 리드오프 타자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생애 처음으로 타율 3할을 넘겼고, 개인 최다인 190안타를 기록했다. 2005년에도 팀 내 최고 타율과 개인 최다 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시즌 중 애슬레틱스와 3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40] 하지만 2006년부터는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허리 수술로 인해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41]

(2008년 4월 20일)
2008년 1월 14일, 조이 데바인, 제이미 리치몬드와의 트레이드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했다. 그해 8월 14일에는 사이클 히트와 통산 15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42]

(2008년 9월 10일)
같은 해 8월 27일,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여 부상으로 빠진 J. D. 드류의 자리를 메웠다.[43]
2009년 7월 24일 레드삭스에서 DFA되었고, 7월 28일 브라이언 앤더슨과의 트레이드로 시카고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44]

(2011년 6월 12일)
이후 2011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뛰었고, 2012년에는 9년 만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복귀했다.

(2013년 3월 10일)
2013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 2. 1. 플로리다 말린스
플로리다 말린스는 199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캇세이를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5] 같은 해 6월 드래프트 지명 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에 미국 대표팀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2번 좌익수"로 꾸준히 출장하며 팀 내 2위인 타율 .303을 기록했고, 미국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38] 올림픽이 끝난 후인 8월 15일에 말린스와 계약했다.[39]아마추어 시절 사용하던 금속 배트에서 나무 배트로 성공적으로 적응한 캇세이는 1997년 더블 A팀인 포틀랜드 시독스에서 타율 .307, 17홈런, 61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7월 11일, 데본 화이트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어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38] 하지만 화이트가 복귀하면서 7월 28일 다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갔고,[38] 1997년 메이저 리그에서는 총 14경기에 출전했다.[5]
1998년에는 말린스의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개리 셰필드가 트레이드되면서 캇세이는 우익수로 포지션을 옮겼는데, 이는 그의 강한 어깨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자리였다.[5] 수비에서는 신인 시절인 1998년 20개의 보살로 내셔널 리그 외야수 중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인 1999년에도 같은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 2000년에는 13개의 보살로 리그 전체 우익수 중 가장 많은 보살을 기록했다.[5] 타격 면에서는 이 기간 동안 평균적인 수준을 보였으며, .280 정도의 타율과 함께 간간이 장타와 도루를 기록했다.[5] 전반적으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활약을 보였다.[38]
2. 2. 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차)
2001년 3월 28일, 매트 클레멘트와 에릭 오웬스를 내주고 씨저 크레스포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1][2] 파드리스에서 중견수로 다시 복귀한 캇세이는 타격 실력이 향상되었다.[1] 2001년에는 .291의 타율과 .807의 OPS를 기록했고, 2002년에는 .292의 타율과 .810의 OPS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1]수비에서는 2001년 4개의 외야 어시스트만을 기록했는데, 이는 상대 주자들이 캇세이의 강한 어깨를 의식해 주루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1] 그러나 이후 두 시즌 동안 수비에서 다시 기량을 회복하여 내셔널 리그 중견수 중 수비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1]
2003년에는 타율 .266, OPS .726으로 타격 성적이 하락했다.[1] 시즌 종료 후, 캇세이는 테렌스 롱과 라몬 에르난데스를 받는 조건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1]
2. 2. 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3년 11월 26일, 라몬 에르난데스 및 테렌스 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다.[39]애슬레틱스에서의 첫 시즌인 2004년에는 주로 팀의 리드오프 타자[39] 또는 2번 타자[6]로 활약하며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타율 0.314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넘겼고, 개인 최다인 190개의 안타를 쳤다.[39] 또한, 수비에서는 11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강한 어깨를 보여주었고, 이는 아메리칸 리그 중견수 중 1위에 해당했다.
2005년에는 시즌 초반 팀 타선을 이끌었으나, 후반기에는 등 통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40] 최종 타율은 0.280으로 전년 대비 하락했지만, 팀 내 최고 타율이었으며 특히 좌완 투수를 상대로는 0.324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다.[40] 전년과 같은 수의 홈런과 함께 개인 최다인 82타점을 올렸다.[40] 7월 9일, 애슬레틱스는 캇세이와 3년간 2900만달러 규모의 연장 계약(2008년 시즌까지 유효, 2006년 시즌까지 트레이드 거부권 포함)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6][40] 이 계약으로 뉴욕 양키스 등 다른 팀으로의 트레이드 관련 추측은 일단락되었다.[6]
2006년은 캇세이가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해로, 애슬레틱스는 AL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허리 통증의 영향으로 3년 연속 이어오던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은 중단되었다.[41] 5월 14일 어머니의 날에는 유방암 재단 기금 마련 행사의 일환으로 분홍색 배트를 사용했으며, 이 배트로 홈런을 기록한 소수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올스타전 이후에는 잦은 결장에도 불구하고 타격감을 유지하여 50경기에서 타율 0.326을 기록했고, 7월 22일부터 8월 18일까지는 16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41] 10월 4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ALDS 2차전에서는 데니스 레예스를 상대로 제이슨 켄달을 불러들이는 2점 홈런을 터뜨려 포스트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고, 이는 팀의 4-2 승리에 기여했다.[7] 당시 감독이었던 켄 모카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ALCS에서 단장 빌리 빈이 바비 킬티의 기용을 추천했음에도 모카 감독이 부상 중이던 캇세이를 기용했다가 부진하자, 이것이 모카 감독 해임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41]
2007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 허리 통증이 악화되어 결국 수술을 받게 되었고,[8] 이로 인해 시즌 첫 두 달간 결장했다.[8][41] 6월에 복귀했으나 8월 중순 통증이 재발하면서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다.[41] 결국 부상 여파로 시즌 대부분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으며, 주전으로 자리 잡은 1998년 이후 가장 적은 56경기 출장에 그쳤다.[41]
2. 2. 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8년 1월 14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조이 데바인과 유망주 제이미 리치몬드를 받는 조건으로 캇세이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했다. 이는 주전 중견수였던 앤드루 존스가 FA로 팀을 떠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브레이브스는 캇세이의 연봉 730만달러 중 530만달러를 부담했다.[9][10][42]2008년 8월 14일, 캇세이는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사이클 히트를 달성했다. 이는 1987년 앨버트 홀 이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 선수로는 처음 기록된 것이었다. 그는 7회에 컵스의 투수 밥 하우리를 상대로 우익수 방면 2루타를 쳐 사이클 히트를 완성했으며, 이 안타는 동시에 개인 통산 1,500번째 안타이기도 했다. 캇세이는 9회에 1루타를 추가하며 5안타 경기를 펼쳤는데, 이는 2005년 이후 처음이자 그의 통산 세 번째 5안타 경기였다. 그러나 캇세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브레이브스는 컵스에게 11-7로 패배했다.[11][42]
2. 2. 5. 보스턴 레드삭스
2008년 8월 27일, 마이너 리그 외야수 루이스 수모자를 상대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12][43] 부상자 명단에 오른 J. D. 드류의 대체 선수 역할도 맡았다.[43]마이크 로웰이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케빈 유킬리스가 3루로 이동하면서, 캇세이는 레드삭스의 주전 1루수가 되었다. 션 케이시를 대신하여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주전 1루수로 활약했다. 레드삭스 소속으로 치른 정규 시즌 84타수에서 .226/.286/.345의 타율을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250/.250/.325의 타율을 기록했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2008년 시즌 내내 타구를 정면으로 강하게 쳤음에도 안타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불운한 타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9년 1월 9일, 캇세이는 인센티브를 포함하여 1년 150만달러의 조건으로 레드삭스와 재계약했다.[13] 같은 해 2월에 탈출된 디스크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많은 경기에 결장하지는 않았다.[14]
그러나 2009년 7월 24일, 새로 영입된 애덤 라로쉬에게 로스터 자리를 내주기 위해 레드삭스로부터 지명 할당(DFA)되었다.[15]
2. 2. 6.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9년 7월 28일, 마이너 리그 외야수 브라이언 앤더슨과 현금을 포함한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다.[16][44] 같은 해 11월 5일, 화이트삭스와 1년 150만달러에 재계약했다.[17] 2010년 시즌에는 주로 지명 타자 및 1루수로 10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39, 출루율 .306, 장타율 .376을 기록했다.2. 2. 7. 밀워키 브루어스
2011년 2월 1일, 캇세이는 밀워키 브루어스와 1년 계약에 합의했다. 계약 규모는 80만달러에 인센티브 45만달러였다.[18]
캇세이는 유틸리티 선수로 주로 외야 백업 및 대타로 활약했다. 2011년에는 233타수에서 타율 0.270, 홈런 3개를 기록했다.[19] 2011년까지 그는 통산 120개의 외야 어시스트로, 현역 메이저 리그 선수 중 5위를 기록했다.[20]
2. 2. 8.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차)
2011년 11월 15일, 캇세이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년, 125만달러 계약을 체결했다.[21]캇세이는 종아리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서 2012년 시즌을 시작했다.[22] 그는 2012년 4월 17일에 정규 시즌 데뷔전을 치렀다. 5월에는 허리 부상으로 또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23] 2012년 8월 12일, 캇세이는 2013년까지 파드리스에 머무르는 1년 연장 계약에 130만달러를 받기로 서명했다. 캇세이는 계약 전 55경기에서 타율 .275, 출루율 .333, 장타율 .363, 홈런 1개, 9타점을 기록했다.[24] 캇세이는 해당 시즌 26번의 선발 출장과 대타로 51번 출전하여 타율 .259, 출루율 .314, 장타율 .357을 기록했다. 그의 13개의 대타 안타는 메이저 리그 공동 2위에 해당했다.[25]
2013년에는 캇세이는 코너 외야수와 1루수로 23번 선발 출장했지만, 주로 대타로 104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55타수에서 타율 .194, 출루율 .253, 장타율 .226으로 시즌을 마쳤다. 9월 14일, 캇세이는 2013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26] 캇세이는 9월 26일 펫코 파크에서 열린 마지막 홈 경기에서 특별 행사를 통해 헌정되었다.[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