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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맬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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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리 맬런은 1869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요리사로, 장티푸스 보균자였음에도 증상이 없어 본인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1900년부터 1907년까지 뉴욕 일대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여러 가정에 장티푸스를 퍼뜨려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녀는 강제 격리되었으나, 석방 후 가명을 사용해 다시 요리사로 일하다가 재격리되어 사망할 때까지 노스 브라더 섬에서 격리 생활을 했다. 맬런 사건은 무증상 보균자의 위험성을 알리고, 공중 보건과 개인의 인권 사이의 균형에 대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현재까지도 감염병 예방 및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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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맬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흰색 머리 여성이 병상에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
1909년의 맬런
다른 이름메리 브라운
장티푸스 메리
직업요리사
알려진 이유무증상 장티푸스 보균자
개인 정보
출생일1869년 9월 23일
출생지쿡스타운, 티론주, 아일랜드
사망일1938년 11월 11일
사망 장소노스 브라더 섬, 뉴욕, 미국
사인뇌졸중
안장 장소세인트 레이먼드 묘지, 브롱크스, 뉴욕, 미국

2. 생애

메리 맬런은 1869년 북아일랜드 티론 주에서 태어나 1884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 와 시민권을 취득했다. 1900년부터 1907년까지 요리사로 일했다. 1900년 뉴욕 마머로네크에서 일한 지 2주 만에 마을 주민들이 장티푸스에 걸렸고, 1901년 맨해튼의 한 가정집에서는 가족들이 발열설사 증세를 보였으며 세탁부가 사망했다. 1906년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에서는 가족 11명 중 10명이 장티푸스로 병원에 입원했다.

맬런이 직장을 옮길 때마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자, 1906년 말 장티푸스에 걸린 가족이 머물던 별장 주인은 의학자 조지 소퍼를 고용했다. 소퍼는 맬런이 장티푸스 전파와 관련이 있음을 의심했지만, 주소를 찾지 못해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집사 두 명이 장티푸스로 입원하고 딸이 사망한 집에서 맬런을 발견했으나, 그녀는 만남을 거부했다.

2. 1. 어린 시절

1869년 북아일랜드 티론 주 쿡스타운에서 태어났다. 1883년 혹은 1884년 14세(혹은 15세)의 나이로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당시 아일랜드는 1840년대 후반 감자 기근으로 인한 식량난과 빈곤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메리 맬런도 그중 한 명이었다.

2. 2. 요리사 경력과 장티푸스 전파

1900년부터 1907년까지 메리 맬런은 뉴욕시 지역에서 8가구의 요리사로 일했으며, 그중 7가구에서 장티푸스가 발생했다.[4] 맬런이 요리사로 고용된 지 2주 만에 뉴욕주 마마로넥 주민들이 장티푸스에 걸렸다. 1901년에는 맨해튼으로 이사해 일하던 가정집에서 가족들이 발열설사 증세를 보였고, 맬런은 이후 변호사 집에서 일했으나 8명 중 7명이 병에 걸리자 그곳을 떠났다.[4]

1904년 6월, 맬런은 부유한 변호사 헨리 길시에게 고용되었고, 곧 7명의 하인 중 4명이 병에 걸렸다. 길시의 가족들은 별도로 거주하여 감염되지 않았지만, 맬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주 턱시도 파크로 이사하여 조지 케슬러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2주 후, 케슬러 집의 세탁 노동자가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세인트 조셉 지역 의료 센터로 옮겨졌고, 이는 맬런의 장티푸스 사례 중 처음으로 기록된 사례였다. 세탁 노동자는 곧 사망했다.[4]

1906년 8월, 맬런은 롱아일랜드의 뉴욕주 오이스터 베이에서 부유한 은행가 찰스 엘리엇 워렌의 가족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4] 맬런은 워렌 가족이 오이스터 베이에서 집을 임대했을 때 함께 갔는데, 8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가족 11명 중 6명이 장티푸스에 걸렸다. 당시 그곳에서 진료하던 세 명의 의사는 오이스터 베이에서 장티푸스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5] 집주인은 장티푸스 발생으로 집의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여 감염원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을 고용했지만, 그들은 수도관 등에서 장티푸스균을 발견하지 못했다.[5]

조지 소퍼는 오이스터 베이 발병 이후 고용된 조사관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장티푸스 발병의 원인을 규명하려 노력했다. 당시 장티푸스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발병 사례에 한 아일랜드인 여성 요리사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발병이 시작된 후 일반적으로 주소를 남기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파크 애비뉴 발병은 맬런이 감염원임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소퍼는 이 사건이 진행 중일 때 이를 알게 되었고 맬런이 요리사임을 발견했다.[4]

소퍼는 맬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질병을 퍼뜨린다고 비난했지만, 맬런은 조각용 포크로 그를 위협하며 격렬하게 거부했다.[4][6] 맬런이 검체 채취를 거부하자, 소퍼는 그녀의 5년간의 고용 이력을 정리했고, 맬런을 요리사로 고용한 8가구 중 7가구 구성원이 장티푸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7] 그는 맬런의 남자 친구가 사는 곳에서 다시 만남을 주선하여 소변과 대변 검체를 제공하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맬런은 장티푸스는 어디에나 있고 오염된 음식과 물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재차 협조를 거부했다. 당시에는 건강 보균자라는 개념이 의료 종사자조차 알지 못했다.[4]

소퍼는 1907년 6월 15일 ''미국 의학 협회 저널''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8] 그는 맬런이 "완벽한 건강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고 기록했다.[9]

조지 소퍼는 역학적인 조사를 끈기 있게 진행하여 메리가 고용된 가정의 대부분에서 그녀가 온 직후 장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결과로부터, 소퍼는 메리가 장티푸스균의 보균자가 아닐까 의심하였다.

3. 뉴욕시 보건청의 개입, 1차 격리 (1907~1910)

사라 조세핀 베이커 박사의 개입으로 뉴욕시 보건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메리 맬런을 구금했다. 검사 결과 메리의 대변에서 살모넬라균(장티푸스균)이 검출되었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메리는 노스 브라더 섬에 격리되었다.

조지 소퍼는 뉴욕 시 보건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조사관들은 맬런이 장티푸스 보균자임을 파악했다. 새라 조세핀 베이커는 맬런을 앰뷸런스에 강제로 태웠다. 맬런은 윌라드 파커 병원으로 이송되어 구속되었고, 샘플을 강제로 제공해야 했다. 그녀의 대변 샘플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장티푸스균은 감염원이 그녀의 담낭에 있음을 나타냈다. 심문 과정에서 맬런은 손을 거의 씻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당시에는 세균설이 아직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4]

1907년 3월 19일, 맬런은 노스 브라더 섬에 격리 수용되었다. 격리 기간 동안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대변 및 소변 샘플을 제공했다. 맬런은 자신이 질병을 옮긴다고 믿지 않는다며 담낭 제거를 거부했다. 당시에는 담낭 제거 수술이 위험했고, 그 수술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10]

소퍼의 논문이 ''미국 의학 협회 저널''에 게재된 후, 맬런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명을 얻었다.[11]

1910년 2월 19일, 맬런은 "직업(요리사)을 변경할 준비가 되었으며, 석방 시 감염으로부터 접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위생적인 예방 조치를 취하겠다는 선서 진술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격리에서 풀려나 본토로 돌아갔다.[15]

위생사 조지 소퍼는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장티푸스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을 의뢰받아 역학 조사를 끈기 있게 진행했다. 그 결과, 메리가 고용된 가정의 대부분에서 그녀가 온 직후 장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퍼는 메리가 장티푸스균의 보균자가 아닐까 의심하여, 1907년에 메리가 고용되었던 뉴욕 근교의 부유한 저택을 방문했다.

소퍼는 메리에게 소변과 대변 샘플 제출을 요구했으나, 메리는 격분하며 거절했다. 뉴욕시 보건 위생국의 허먼 빅스는 소퍼의 생각에 동의하여, 의사 사라 조세핀 베이커를 보내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그러나 메리가 큰 금속제 포크를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결국 경찰 5명이 함께 가서 메리를 강제로 연행했다.

뉴욕시 보건 위생국에서 세균학적인 검사 결과, 그녀의 변에서 장티푸스균이 검출되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노스 브라더 섬의 병원에 수용, 격리되었다.

3. 1. 격리 중 논란

사라 조세핀 베이커 박사가 개입하여 경찰력을 동원해 메리 맬런을 구금했다.[1] 메리는 자신이 건강 보균자라는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며 격리에 불응했다. 뉴욕시 보건 당국은 메리의 담낭에 장티푸스균이 서식한다고 판단, 담낭 제거 수술을 권유했으나 메리는 거부했다.

조지 소퍼는 메리가 고용된 가정에서 장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역학 조사로 밝혀냈다. 소퍼는 메리에게 소변과 대변 샘플 제출을 요구했으나, 메리는 격분하며 거절했다. 소퍼는 뉴욕시 보건 위생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사라 조세핀 베이커가 메리를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경찰 5명이 동원되어 메리를 강제로 연행했다.

뉴욕시 보건 위생국의 세균 검사 결과, 메리의 변에서 장티푸스균이 검출되었다. 메리는 노스 브라더 섬의 병원에 격리되었다. 메리는 자신이 건강 보균자(무증상 보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건강 보균자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메리 자신도 완고한 성격이었으며, 아일랜드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도 이러한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메리는 1909년, 뉴욕시 보건부를 상대로 격리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메리는 독자적인 검사를 통해 장티푸스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았고, 더욱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확신했다. 소송 중에도 메리는 격리된 상태에서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고, 이 사건은 "Typhoid Mary"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소송은 패소했지만, 이를 계기로 메리는 1910년, 식품 관련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거주지를 밝히는 조건으로 격리에서 해방되었다.

4. 2차 격리 (1915~1938)

맬런은 석방 후 요리사보다 수입이 적은 세탁부로 일했지만, 얼마 후 팔에 상처를 입고 감염되어 6개월간 일할 수 없었다.[16] 몇 년 후, 맬런은 '브레쇼프(Breshof)'나 '브라운(Brown)'과 같은 가명을 사용하며 다시 요리를 시작했고, 보건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레스토랑, 호텔, 온천 시설 등에서 일했다. 맬런이 일한 거의 모든 곳에서 장티푸스가 발생했지만, 그녀는 자주 직업을 바꿨기 때문에 소퍼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4]

1915년, 맬런은 슬론 여성 병원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중 25명을 감염시키고 2명을 사망하게 했다. 수석 산부인과 의사 에드워드 B. 크래긴은 소퍼에게 연락하여 조사를 요청했고, 소퍼는 하인들의 말과 필체를 통해 맬런을 확인했다.[16] 맬런은 도망쳤지만, 경찰은 롱아일랜드에서 친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그녀를 체포했다.[4][15] 1915년 3월 27일, 맬런은 노스 브라더 섬으로 다시 격리되었다.[15][16]

4. 1. 격리 중 생활 및 사망

1915년 3월 27일 메리 맬런은 노스 브라더 섬에 있는 수용소에 격리되어 여생을 보냈다. 그 후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리버사이드 병원에서 격리된 채로 남은 생을 보냈다. 병원 내에서는 간호사, 간병인, 연구실 기술 보조원으로 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1] 1932년 심장마비로 신체 마비가 왔고, 6년 후인 1938년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소아과 병동 근처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다. 1938년 11월 11일, 69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했다.[20] 시신은 화장되었고, 유해는 브롱크스에 있는 세인트 레이몬드 묘지에 묻혔다.[21][22] 장례식에는 아홉 명이 참석했다.

일부 자료에서는 부검 결과 맬런의 담낭에서 살아있는 장티푸스균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한다.[4][23] 그러나 조지 소퍼는 부검이 없었다고 기록했으며, 다른 연구자들은 이것이 맬런 사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5. 의학적 의의

일반적으로 20세기 초의 의학 상식으로는 보균자의 경우 임상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맬런은 보균자이면서도 임상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무증상 보균자'''(혹은 건강보균자)였으므로, 미국 의학 협회 저널에도 여러 번 서술되었고 무증상 보균자가 나오게 되는 첫 사례가 되었다.[1]

맬런의 사후, 병리 해부 결과 그녀의 담낭에 장티푸스균 감염 부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음식과 함께 소화관으로 들어간 장티푸스균은 이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의 세포 내에서 분해를 면한 채 증식하여, 장간막림프절에서 비장 등으로 전신에 감염을 퍼뜨리는 동시에 발열, 비종, 장미진 등 장티푸스 특유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장티푸스균이 담낭에만 감염된 경우에는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 담낭 내부에 정착하며(특히 담석이 있는 경우에 일어나기 쉽다), 평생 동안 균이 담즙에 섞여 장으로 배출되는 것이 밝혀졌다.[1] 맬런의 사례에서는 최초의 장티푸스균 감염이 약했고, 본인의 저항력이 이에 이겼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동시에 장티푸스에 대한 항체 등의 면역을 획득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불현성 감염)으로 생각된다.[1] 그러나 변에 섞여 계속 배출된 장티푸스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맬런의 손가락 등에 부착되어 있었고,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손 씻기를 소홀히 했을 때 음식에 섞여 주변 사람들에게 감염된 것으로 생각된다.[1]

6. 윤리적, 법적 문제

맬런 사건은 무증상 보균자를 처음으로 강제 격리한 사례로, 이로 인해 발생한 윤리적, 법적 문제는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맬런이 최소 122명을 감염시켰고, 그중 5명이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28] 다른 자료에서는 맬런으로 인해 최소 3명이 사망했다고 보고 있지만, 정확한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맬런으로 인한 사망자가 50명에 달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2013년 ''소화기학 연보''의 한 기사에서는 맬런의 사례가 아픈 사람들을 보호하고 질병으로부터 보호받는 방법에 대한 도덕적 교훈을 줄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맬런 사망 당시 뉴욕 보건 당국이 400명 이상의 다른 건강한 ''살모넬라 타이피'' 보균자를 확인했지만, 다른 사람은 강제로 감금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질병 보균자의 지위를 개선하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한 강화된 의학적, 법적, 사회적 치료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에는 감염과 싸울 항생제가 없었고, 담낭 제거 수술은 위험하고 때로는 치명적이었다.[28] 일부 현대 전문가들은 장티푸스 박테리아가 대식세포에 통합되어 장 림프절이나 비장에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맬런의 체포와 강제 격리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맬런이 질병을 옮긴 사람들의 10%가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28] 맬런이 자신이 보균자임을 알고 있었다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그녀의 체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맬런이 자신이 보균자라는 것을 몰랐고, 당시 무증상 보균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맬런은 아프다고 느끼지도 않았다는 점을 들어[29] 체포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메리 맬런의 상황은 공중 보건과 개인의 인권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논의되며, "사악한 감염원"과 "불운한 사회적 피해자"라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전자는 맬런이 첫 격리 후 가명을 사용해 다시 요리사 직업을 얻어 감염을 일으킨 것을 근거로 그녀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또는 "세기의 대악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가사 사용인 중 요리사가 우대받았던 사회적 배경과 맬런 자신이 보균자임을 믿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러한 주장을 비판 없이 지지하기는 어렵다.

또한, 당시 뉴욕에 맬런 외 100~200명의 장티푸스균 보균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맬런만 격리되어 자유를 빼앗겼다는 점은 비판받으며, 아일랜드계 이민에 대한 차별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맬런이 47명의 감염자와 3명의 사망자를 낸 것도 사실이다.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명은 공중 보건 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재, 특히 음식을 다루는 사람의 위생 관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7. 사회적 영향 및 평가

'장티푸스 메리'라는 표현은 질병 전파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17] 메리 맬런에 대한 평가는 크게 '사악한 감염원'이라는 시각과 '불운한 사회적 피해자'라는 시각으로 나뉜다.[17][18][19]

전자의 경우, 맬런이 자신이 장티푸스 보균자임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요리사 일을 계속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항생제가 없었고 맬런으로 인해 감염된 사람들의 10%가 사망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든다.[28]

반면 후자의 경우, 맬런이 자신이 보균자라는 사실을 몰랐고, 당시 무증상 보균자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맬런은 아프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도 건강했으며, 질병은 담낭에 잠복해 있었다고 한다.[29]

또한, 맬런이 아일랜드계 이민자였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당시 뉴욕에는 맬런 외에도 많은 장티푸스 보균자들이 있었지만, 유독 맬런만이 가혹하게 격리 조치되었고, 이는 아일랜드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이라는 것이다.

8.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메리 맬런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감염병 예방 및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메르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공중 보건 시스템 강화와 개인의 자유 및 권리 존중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메리 맬런 사건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판단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한국 사회의 보건 정책 수립 및 시민 의식 함양에 기여할 수 있다.[19] 맬런의 사례는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무증상 보균자의 존재에 대한 훌륭한 증거를 제공한 최초의 사례였다.[19]

9. 대중문화

일본의 괴담 중 하나인 에이즈 메리는 '''메리 맬런'''이 그 기원 중 하나로 거론된다. 에이즈 보균자 중에는 임상적 증상을 보이지 않는 무증상 보균자가 있기 때문이다.[17]

마블 코믹스의 슈퍼빌런 캐릭터인 타이포이드 메리 피스크는 메리 맬런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31]

랩 음악 그룹 헤일 메리 맬론의 이름은 맬런의 사례에서 유래했다.[32]

TV 드라마 ''더 닉'' 시즌 1에서는 멜리사 맥미킨이 메리 맬런을 연기했으며, 그녀가 여러 부유한 가정에 최초로 감염시킨 사건을 다소 허구적으로 각색했다. TV 드라마 ''웨어하우스 13'' 시즌 3에서는 맬런의 부엌칼이 유물로 등장했다.[34] 이 유물은 칼을 동시에 잡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질병을 전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메리 베스 케인의 소설 ''피버''(2013)는 메리 맬런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아라키 히로히코의 단편 만화 ''장티푸스의 메리''가 울트라 점프 2003년 9월호에 게재되었으며, 단행본 "변인 편굴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가네모리 오사무의 저서 『병마라는 악의 이야기 - 장티푸스 메리』 (치쿠마 서방 [치쿠마 프리머 신서], 2006년)가 출간되었다.

드라마 『인 핸드』 2화 (TBS 텔레비전 계열 「금요 드라마」, 2019), 드라마 『블랙리스트』 시즌 4-12 나탈리 루카, 드라마 『스콜피온』 시즌 1 제2화 등에서 메리 맬런 사건이 언급되었다.

참조

[1] 뉴스 'Typhoid Mary' Dies Of A Stroke At 68. Carrier of Disease, Blamed for 51 Cases and 3 Deaths, but Immune https://www.nytimes.[...] 1938-11-12
[2] 서적 The Gospel of Germs: Men, Women, and the Microbe in American Life
[3] 서적 Typhoid Mary: An Urban Historical
[4] 웹사이트 Who was Typhoid Mary? http://www.straightd[...] 2000-08-14
[5] 웹사이트 Dinner With Typhoid Mary https://orauportal.f[...]
[6] 논문 The work of a chronic typhoid germ distributor https://zenodo.org/r[...] 1907-06-15
[7] 서적 Death in the Pot Prometheus Books
[8] 뉴스 Dinner with Typhoid Mary 2007
[9] 웹사이트 Dinner With Typhoid Mary https://orauportal.f[...]
[10] 논문 The sad and tragic life of Typhoid Mary 1996-03-15
[11] 웹사이트 In Her Own Words https://www.pbs.org/[...] NOVA PBS
[12] 서적 Death in the Pot Prometheus Books
[13] 에피소드 The Most Dangerous Woman In America https://www.youtube.[...] 2004-10-12
[14] 웹사이트 Topics in Chronicling America - Typhoid Mary https://www.loc.gov/[...] The Library of Congress 2014-10-09
[15] 웹사이트 Food Science Curriculum http://www.isbe.net/[...]
[16] 웹사이트 Typhoid Mary: Villain or Victim? https://www.pbs.org/[...] PBS Online 2004-10-12
[17] 논문 Review of Typhoid Mary https://www.jstor.or[...] 1999
[18] 뉴스 #TyphoidMary – now a hashtag – was a maligned immigrant who got a bum rap https://theconversat[...]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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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웹사이트 Epidemiology http://uhaweb.hartfo[...] 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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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서적 Punishing Disease: HIV and the Criminalization of Sickness https://www.jstor.or[...]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8
[29] 웹사이트 User account https://infoweb.news[...]
[30] 웹사이트 Dictionary Reference Website: Typhoid Mary https://dictionary.r[...] Dictionary.reference.com
[31] 웹사이트 Typhoid Mary http://www.comicvine[...] Comic 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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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뉴스 The Knick Recap: Open or Closed? https://www.vulture.[...] 2014-09-20
[34] 에피소드 Trials 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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