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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형 증기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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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가형 증기 기관차는 1899년 경인철도주식회사가 미국에서 수입하여 경인선에 투입한 차륜배치 2-6-0 형식의 증기 기관차이다. 미국 브룩스 사에서 제작되었으며, 4대가 도입되어 1899년 6월 17일 인천에서 조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모가' 또는 '모가이' 급으로 불리며 만주 지역에서도 운행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으로 각각 분배되었다. 1960년대까지 운행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폐차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동인천역 북광장에 조형물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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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형 증기 기관차
기본 정보
이름조선총독부 철도 모가이형 증기 기관차 (모ガイ)
경인철도 1–4
경부철도 100호대
한국국철 모가1형 (모가1)
조선철도 모가하형 (모가하)
종류증기 기관차
차륜 배열2-6-0
궤간표준궤
제작브룩스 기관차 공장
제작년도1899년
생산량4량
규격
차륜 직경1,070 mm
전체 길이9,132 mm
전체 폭2,642 mm
전체 높이3,405 mm
축중약 5톤
동륜 중량29.45톤
기관차 중량34.3톤
연료 종류석탄
연료 용량1.36톤
물 용량3.63 m³
보일러 압력10.0 kgf/cm²
화격자 면적1.21 m²
연관 면적52.6 m²
화실 면적6.6 m²
전열 면적59.2 m²
소형 연관 직경122 x 51 mm
실린더 수2개
실린더 크기350 x 560 mm
밸브 기구스티븐슨 밸브 기어
최대 속도55 km/h
견인력53.4 kN
운용
운영 기관경인철도 (1899–1903)
경부철도 (1903–1906)
조선총독부 철도 (1906–1945)
한국국철 (1945–)
조선철도 (1945–)
운영 등급센테츠: 모가이
KNR: 모가1
KSR: 모가하
차량 번호경인/경부: 1–4
센테츠: 모가이1–모가이4
인도 날짜1899년 6월 17일
퇴역 날짜1930년대?
이미지
1899년 브룩스에서 제작한 경인철도 2호
1899년 브룩스에서 제작한 경인철도 2호. 배송 직후 제거된 "S. & C. R.R. Seoul–Chemulp" 레터링에 유의하십시오.

2. 역사

모가형 증기 기관차는 1899년 경인선 개통을 위해 미국의 브룩스 기관차 제작소(Brooks Locomotive Works)에서 제작되어 도입된 대한제국 최초의 증기 기관차 중 하나이다.[1] 경인철도주식회사 소속으로 처음에는 1~4번의 번호를 부여받아 운행을 시작했다.

'모가형'이라는 이름은 이 기관차의 차륜 배치 2-6-0 형식을 뜻하는 미국식 명칭 '모걸(Mogul)'을 일본식으로 축약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 및 만주 지역에서 특정 형식의 기관차를 부르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1903년 경인선경부선 철도 회사에 인수되면서 기관차 번호는 101~104번으로 변경되었고,[1] 1906년 경부선 국유화 이후에는 남만주철도로 이관되었다. 남만주철도에서는 이 기관차들을 1918년 '모가(モガ|모가일본어)'급, 1938년에는 '모가이(モガイ|모가이일본어)'급으로 재분류하며 관리했다.[1]

만철 푸러급 증기 기관차 등 신형 기관차가 도입되면서 모가형은 점차 주력 운행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퇴역 시기는 불분명하여, 1930년대에 퇴역했다는 설[1]1947년 남만주철도 자산 분할 당시까지 운행했다는 기록[3]이 공존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남만주철도 자산이 분할될 때, 4대의 모가형 기관차 중 3대는 대한민국으로, 1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갔다.[3]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 교통백서에 모가형으로 추정되는 기관차 2량의 보유 기록이 있으나, 그 이후의 기록은 없어 정확한 폐차 시기는 알 수 없다. 현재 동인천역 북광장에는 모가형 증기 기관차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2. 1. 도입 배경

경인선 철도 부설권은 원래 미국인 사업가 제임스 모스가 확보했으나, 자금 조달 문제 등으로 일본 자본에 넘어가 경인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1899년 경인선 개통을 위해 미국의 브룩스 기관차 제작소(Brooks Locomotive Works)에서 제작한 증기 기관차 4대를 도입했다.[1]

이 기관차들은 부품 상태로 대한제국 인천으로 운송되어, 1899년 6월 17일 현지 공장에서 조립이 완료되었다.[1] 형식은 선두 차축 1개와 동력 차축 3개를 가진 2-6-0 차륜 배치의 탱크 기관차로, 별도의 탄수차(텐더) 없이 기관차 자체에 물과 석탄을 싣고 운행하는 구조였다.[1] 처음에는 1번부터 4번까지 번호가 부여되었고, 완충기와 체인 연결기가 장착되었으나, 이후 1904년에서 1905년 사이에 재니 커플러로 교체되었다.[1]

'모가형'이라는 이름은 이 기관차의 차륜 배치인 2-6-0 형식을 뜻하는 미국식 명칭 '모걸(Mogul)'을 일본식으로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이는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과 만주 지역 철도 현장에서 특정 형식의 기관차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도입된 모가형 기관차는 차축 하나당 견딜 수 있는 무게(차축 하중)가 약 5톤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곧 운행에 부족한 성능임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같은 형식의 기관차는 더 이상 추가로 도입되지 않았다.[1]

2. 2. 경인선 운행

모가형 증기 기관차는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인천역 - 노량진 구간 운행을 위해 도입되었다. 1899년 6월, 미국의 브룩스 기관차 제작소(Brooks Locomotive Works)에서 제작한 4대의 2-6-0T 탱크 기관차가 부품 단위로 인천에 도착하여, 같은 해 6월 17일 인천공장에서 조립이 완료되었다.[1] 이 기관차들은 1번부터 4번까지의 번호를 부여받았다. 4대의 모가형 기관차와 함께 객차 6량, 화차 28량이 도입되어 경인선에 투입되었다.

초기에는 완충기와 체인 연결기를 사용했으나, 1904년에서 1905년경 재니 커플러로 교체되었다.[1] 모가형은 별도의 텐더 없이 물과 석탄을 싣는 탱크 기관차였으며, 차축 하중은 약 5ton으로 추정된다.[1] '모가'라는 이름은 차륜배치 2-6-0 형식 증기기관차의 미국식 명칭 "모걸(Mogul)"을 축약한 것으로, 이후 일제 강점기 하 한국 및 만주 지역 철도 현장에서 사용되는 명칭 관습의 시초가 되었다.

경인선은 1903년 경부선 철도에 인수되었고, 모가형 기관차의 번호는 101번부터 104번으로 변경되었다.[1] 1906년 경부선이 국유화된 이후에는 남만주철도로 이관되어, 푸러형 증기 기관차가 도입되기 전까지 일반 용도로 사용되었다.[1] 1918년 남만주철도는 이 기관차들을 '''모가'''(モガ|모가일본어)급으로 지정하고 기존 번호(101-104)를 유지했으며, 1938년 재분류 시에는 '''모가이'''(モガイ|모가이일본어)급으로 변경하고 모가이1부터 모가이4까지 새로운 번호를 부여했다.[1]

모가형 기관차는 추가 도입 없이 이후 대량 도입된 푸러형 증기 기관차 등에 의해 점차 대체되면서 본선 운행 빈도는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퇴역 시기에 대해서는 1930년대라는 설[1]1947년 남만주철도 자산 분할 당시까지 운행했다는 기록[3]이 공존한다. 자산 분할 시 3대는 대한민국한국철도공사 전신 조직으로, 1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철도성으로 넘어갔다.[3]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 교통백서에 모가형으로 추정되는 기관차 2량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 기록이 없어 정확한 폐차 시기는 불명확하다. 현재 동인천역 북광장에 모가형 증기 기관차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2. 3.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모가형이라는 이름은 차륜배치 2-6-0 형식 증기기관차의 미국식 명칭인 "모걸(Mogul)"을 축약한 것으로, 이는 이후 일제강점기 하 한국 및 만주 지역 철도 현업에서 열차 명칭을 붙이는 관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경인선은 1903년 경부선에 인수되었고, 이때 모가형 기관차의 번호는 101–104로 변경되었다. 1906년 경부선이 국유화된 이후에는 남만주철도로 이관되어 일반 용도 기관차로 사용되다가, 점차 만철 푸러급 증기 기관차 등 대량 도입된 기관차들에 의해 대체되어 본선 운행 빈도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1]

1918년 남만주철도는 이 기관차들을 モガ|모가일본어급으로 지정하고 경부선 시절의 번호(101–104)를 유지했다. 이후 1938년 남만주철도의 재분류에서 モガイ|모가이일본어급으로 변경되었고, 번호는 모가이1호부터 모가이4호까지로 다시 바뀌었다.[1]

모가형 기관차는 1930년대에 퇴역했다고 전해지지만,[1]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인 1947년 남만주철도 자산 분할 과정에서 4대 중 3대는 남한의 한국철도공사 전신 조직으로, 1대는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으로 배정되었다.[3]

대한민국에서의 정확한 폐차 시기는 불명확하다. 1960년대 교통백서의 기관차 보유 목록에 모가형으로 추정되는 기관차가 2량 기록되어 있으나, 그 이후의 기록은 없어 정확한 폐차 시기를 알 수 없다. 현재는 동인천역 북광장에 조형물로 남아 있다.

3. 구조 및 특징

모가형 증기 기관차는 앞쪽에 2개의 바퀴(전륜)와 뒤쪽에 6개의 구동 바퀴(동륜)를 가진 2-6-0 차륜 배치를 채택했다. 이 기관차는 별도의 탄수차 없이 물과 석탄을 기관차 본체에 직접 싣는 탱크식 기관차이다. 차륜 배치로 미루어 볼 때, 바퀴 축 하나당 약 5ton 정도의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경편철도(가벼운 철도) 노선에 더 적합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낮은 축중과 선로를 잘 따라가도록 설계된 2-6-0 방식의 차륜 배치는 당시 건설 및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경인선의 환경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설계는 곧 한계에 부딪혔고, 이후 같은 형식의 기관차는 더 이상 도입되지 않았다.[1]

미국의 브룩스 기관차 제작소(Brooks Locomotive Works)에서 총 4대의 2-6-0T 탱크 기관차가 경인선을 위해 제작되었다. 이 기관차들은 분해된 상태로 인천으로 운송되어 1899년 6월 17일에 조립되었다.[1] 초기에는 1번부터 4번까지 번호가 매겨졌고, 완충기와 체인 연결기를 사용했으나, 1904년에서 1905년 사이에 재니 커플러로 교체되었다. 1903년 경인선경부선 운영 주체에 인수되면서 기관차 번호는 101번부터 104번으로 변경되었다. 1906년 경부선이 국유화된 이후에는 남만주철도로 넘어가 만철 푸러급 증기 기관차가 도입될 때까지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1]

1918년, 남만주철도는 이 기관차들을 '''모가'''(モガ|모가일본어)급으로 분류하고 경부선 시절의 번호(모가101–모가104)를 유지했다. 1938년 남만주철도의 기관차 분류 체계가 개편되면서 '''모가이'''(モガイ|모가이일본어)급으로 변경되었고, 번호는 모가이1호부터 모가이4호까지로 다시 매겨졌다. 이 기관차들은 1930년대에 퇴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1] 1947년 남만주철도 자산 분할 과정에서 3대는 남한의 한국철도공사 전신 조직으로, 1대는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으로 배정되었다.[3]

'''모가형 증기 기관차 주요 제원'''
항목제원
동륜상 중량29.45ton
연료 종류석탄
연료 탑재량1.36ton
물 용량4.5m3
화상 면적1.21m2
화실 전열 면적6.6m2
연관 전열 면적52.6m2
전전열 면적59.2m2
실린더 수2개
실린더 크기 (직경x행정)350mm x 560mm
밸브 장치스티븐슨식


4. 운행 구간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인천역 - 노량진 구간에서 처음 운행되었다.[1]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의 구체적인 운행 상황은 명확하지 않으나, 1903년 경부선에 인수되었고 1906년 경부선 국유화 이후 남만주철도로 이관되었다. 남만주철도에서는 만철 푸러급 증기 기관차로 대체될 때까지 일반 용도로 사용되었다.[1]

1930년대에 퇴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1] 1947년 남만주철도 자산 분할 시 3대는 남한의 한국철도공사로, 1대는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으로 배정되었다.[3]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의 실제 운행 여부나 운행 구간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5. 사진

1906년 한국의 모가형 증기 기관차. 완충기와 체인 연결기를 참고.

참조

[1] 서적 한국철도차량 100년사 Korea Rolling Stock Technical Corp. 1999
[2] 서적 The railroad pocket-book: a quick reference cyclopedia of railroad information https://books.google[...] New York, Derry-Collard; London, Locomotive Publishing Company (US-UK co-edition)
[3] 웹사이트 North and South Korea Steam Locomotives http://web.pernet.ne[...] 200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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