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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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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정당은 1963년 창당된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적 정권 교체를 추구했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을 후보로 내세웠으나 박정희에게 패배했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1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되었다.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주도하며 활동하다가 1965년 민주당과 통합하여 민중당으로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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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 [정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민정당
로마자 표기Minjeongdang
한자 표기民政黨
약칭CRP
창당일1963년 6월 28일
해산일1965년 5월 8일
해산 이유인민당으로 통합
전신민주당
후신민중당
국가대한민국
이념 및 성향
정치 성향자유주의 (대한민국)
조직
관련 활동
기타

2. 역사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은 윤보선을 후보로 내세웠으나,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게 1.5%p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2위를 기록했다.[4][5] 같은 해 11월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0.1%의 득표율을 얻어 41석을 확보하며 제1야당이 되었다.[4][5]

2. 1. 창당 배경

4·19 혁명5·16 군사정변 이후 자유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자유당 출신 인사들은 여러 파벌로 나뉘었다. 배종덕처럼 새로운 정당 창당을 추진하는 세력, 김법린과 같이 이후 창당될 민정당에 합류하려는 세력, 이활처럼 군사정변 세력이 주축이 된 민주공화당에 합류하려는 세력, 그리고 이범석과 같이 독자적인 정당 창당을 모색하는 세력 등이 있었다.[2][3]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내려졌던 정치 활동 규제 조치가 해제되면서, 1963년 1월 27일 민정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이후 같은 해 5월 14일에 정식으로 창당되었다. 창당 초기에는 민주당이나 신정당 등 다른 보수 야당과 힘을 합쳐 통합 야당을 결성하고자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둘러싼 이견으로 인해 '국민의당' 결성은 무산되었고, 민정당은 여기서 탈퇴하여 같은 해 9월 12일에 다시 독자적인 당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민정당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적 정권 교체를 기본 노선으로 확정하고, 대표 최고 위원에는 김병로를,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는 윤보선을 선출하였다.[4][5]

2. 2. 창당 과정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 활동 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3], 1963년 1월 27일에 민정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고[3], 같은 해 5월 14일에 공식적으로 창당되었다.[3]

초기에는 민주당이나 신정당 등 다른 보수 야당과 연합하여 통합 야당을 결성하고자 ‘국민의당’ 결성에 참여하려 했다.[3] 그러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다른 당과 의견이 맞지 않아 ‘국민의당’에서 탈퇴하였다.[3]

이후 민정당은 1963년 9월 12일에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당을 재정비했다.[3] 이 대회에서는 당의 기본 노선으로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적 정권 교체를 채택하였으며, 대표최고위원에는 김병로를,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는 윤보선을 선출했다.[3]

2. 3. 주요 활동 및 해산

민정당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적 정권 교체를 기본 노선으로 내세웠다. 1963년 9월 12일 당 대회를 열어 대표 최고 위원에 김병로를,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윤보선을 선출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후보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맞붙었으나, 약 15만 표(1.5%p)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2위를 기록했다.[4]

그러나 같은 해 11월에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0.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1석을 확보하여 제1야당이 되었다.[4][5] 이후 민정당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던 한일회담을 '굴욕 외교'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대했다. 이를 위해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다른 야당들과 공동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야권 통합 움직임 속에서 민정당은 1964년 12월 26일 자유민주당을 흡수 통합했으며, 이어 제2야당인 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65년 5월 3일, 두 정당은 통합하여 민중당을 창당하였고, 이로써 민정당은 해산되었다. 민중당의 창당은 제3공화국 시기 최초의 통합 야당 결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3. 역대 지도부

대수역대 대표직함임기비고
1김병로대표최고위원1963년 5월 14일 ~ 1963년 9월 12일국민의당 참여 위해 사퇴
2윤보선대표최고위원1963년 9월 12일 ~ 1965년 2월 22일국민의당 참여 위해 사퇴
3윤보선총재1965년 2월 22일 ~ 1965년 5월 3일민중당으로 신설합당


4. 평가

민정당은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활동한 주요 야당 중 하나로, 민주주의 회복과 정권 교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1963년 대선에서는 박정희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정권 교체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민정당이 주도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은 당시 대한민국민족주의 정서를 대변하고,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5. 주요 선거 결과

(내용 없음)

5. 1. 대통령 선거

선거후보득표수득표율결과
1963년윤보선4,546,61445.1%낙선


5. 2. 국회의원 선거

선거대표득표수득표율 (%)의석 수순위결과
지역구전국구합계
1963년 제6대 총선윤보선1,870,97620.12714412위제1야당


6. 역대 전당대회


민정당, 신정당, 민우당의 통합 야당으로 추진되던 국민의당 창당대회가 민정계와 비민정계의 갈등으로 파행되었다. 9월 10일 민정당을 제외한 채 국민의당이 등록되자, 9월 12일 민정당은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윤보선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민정당 후보로 다시 추대했다. 또한 국민의당에 참여한 김병로 대표 등의 사표를 수리하고, 신임 대표에 윤보선 전 대통령을 선출하는 등 지도부 보궐선거를 실시하였다.

  • 1965년 2월 22일: 민정당 제2차 전당대회 속개
  • * 재야 정당과의 합당 수임 기관으로 중앙상무위원회에 전권 위임
  • * 총재제 채택
  • * 지도위원제와 합동회의 신설
  • * 총재에 윤보선 대표 추대
  • * 부총재에 김도연, 전진한, 윤제술 선출
  • * 당면 정책 채택

민정당과 민주당의 통합 교섭 30인 전권 대표들은 만장일치로 양당의 합당을 의결하고 합당 선언문을 채택했다. 민정당 윤보선 총재와 민주당 박순천 대표가 합당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민정당과 민주당은 민중당으로 신설 합당되었다.

참조

[1] 서적 Elections in Asia and the Pacific : a data handbook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2] 웹사이트 자유당(自由黨) http://encykorea.aks[...] 2019-04-20
[3] 웹사이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19-04-20
[4] 서적 Elections in Asia and the Pacific : a data handbook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5] 웹사이트 IPU PARLINE database: REPUBLIC OF KOREA, election archives http://archive.ipu.o[...]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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