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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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범일지는 독립운동가 김구가 집필한 자서전으로, 김구의 삶과 독립운동 과정을 담고 있다. 1929년경에 쓰인 상권과 1943년에 쓰인 하권, 그리고 1946년부터 1947년 사이에 추가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구의 유년 시절, 독립운동 투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해방 이후 활동 등 그의 생애 전반을 다루고 있으며, 깊은 애국 정신과 함께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드러낸다. 백범일지는 김구의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되어 내용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독립운동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부록으로 실린 〈나의 소원〉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47년 처음 출판된 이후 다양한 판본으로 발행되었고, 문화적 영향력을 지니며, 몽골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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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일지 | |
|---|---|
| 기본 정보 | |
![]() | |
| 원제 | 백범일지 |
| 원어 | 한국어 (한자 및 한글) |
| 저자 | 김구 |
| 삽화가 | 미상 |
| 국가 | 중국에서 쓰여짐, 대한민국에서 출판됨 |
| 장르 | 자서전 |
| 출판사 | 국사편찬위원회 (1947) |
| 출판일 | 1947년 12월 15일 |
| 쪽수 | 미상 |
| 관련 문화재 지정번호 | 대한민국 보물 1245호 |
| 위키문헌 | 백범일지 |
| 표기 | |
| 한글 | 『백범일지』 |
| 한자 | 白凡逸志 |
| 로마자 표기 | Baekbeomilji |
| 기타 로마자 표기 | Paekpŏmilchi Baekbeom ilji |
| 관련 정보 | |
| 관련 드라마 | 백범일지 |
| 관련 재단 | 재단법인 김구재단 |
2. 집필 시기 및 구성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이 서로 다른 시기에 집필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세 차례의 집필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상편은 1929년경 김구가 53세 때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하편은 1943년경 67세 때 충칭에서 출판을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으며, 상하이 시절부터 충칭 시절까지의 독립운동 여정을 담고 있다. 하편의 마지막 부분은 1946년부터 1947년경 김구가 귀국한 후 덧붙여졌다.[1]
상편은 만년필로, 하편은 붓을 사용하여 작성되었으며, 초고는 국한문 혼용이었으나 출판 과정에서 순 한글 문장으로 수정되었다. 1947년 12월 15일 도서출판 국사원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여러 차례 재판되었으며, 1960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에 의해 개정판이 발행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3]
2. 1. 상권 (1929년)
1929년 김구가 53세 되던 해에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지난 독립운동 사실을 회고하며 집필하였다. 상권은 만년필에 국한문 혼용으로 쓰였으며, 두 아들인 인(仁)과 신(信)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우리집과 내 어릴 적」, 「기구한 젊은 때」, 「방랑의 길」, 「민족에 내놓은 몸」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1]상권 첫머리에는 『여인신양아서(與仁信兩兒書)』라는 제목으로 아들 인(仁)과 신(信)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으나, 백범의 친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백범일지상권(白凡逸志上卷)』이라는 제목 아래 「조선과 가정(祖先과 家庭)」, 「출생급유년시대(出生及幼年時代)」 두 편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상권 집필 때 쓴 것이 아니라 하권 집필 때 쓴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일지(逸志)가 시작되나 첫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2. 2. 하권 (1943년)
白凡逸志중국어 하권은 백범 김구가 67세 되던 해인 1943년경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하였다고 책머리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붓을 사용하여 국한문 혼용체로 작성되었다.[2]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부터 충칭 시절까지의 독립운동 여정을 담고 있으며, 「3·1운동의 상해」, 「기적 장강 만리풍」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1]2. 3. 하권 추가 부분 (1946-1947년)
의 하편 마지막 부분은 김구가 해방 이후 귀국하여 임시정부 환국 및 삼남 순회 등의 내용을 1946년부터 1947년 경에 추가로 작성한 것이다.[1]3. 주요 내용
『백범일지』는 김구의 자서전으로, 독립운동 투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해방 이후 활동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에 기록된 역사의 기술은 김구가 당시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민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좌우 합작을 추구했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회의감을 가졌던 김구의 관점을 반영한다.
하편은 김구가 주도한 1932년 한인애국단의 두 차례에 걸친 항일거사로 인해 상해를 떠나 충칭으로 옮겨가며 쓴 것으로, 「3·1운동의 상해」, 「기적 장강 만리풍」 등의 제목 아래 민족해방을 맞게 되기까지 투쟁 역정을 기록하고 있다.
『백범일지』는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김구의 아들 김신에 의해 처음 발행되었으며, 이후 국내외에서 10여 종이 출판되었다.
3. 1. 유년 시절 및 성장 과정
김구는 17살 때 조선 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학에 입문하여 19세에 팔봉접주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공격하였다. 21살 때는 국모의 원한을 갚는 거사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에 입산,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백범일지』는 김구의 자서전으로, 김구의 선조로부터 시작하여 김구의 어린 시절, 청년 시대를 거쳐 독립운동 지사로 활동하기에 이르기까지를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상편은 1929년 김구가 53세 되던 해에 상해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년 정도 독립운동을 회고하며 국한문혼용체로 김인, 김신 두 아들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우리집과 내 어릴 적」, 「기구한 젊은 때」, 「방랑의 길」, 「민족에 내놓은 몸」 등의 순서로 기록하고 있다.
3. 2. 독립운동 투신
1905년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과 강제로 체결한 乙巳勒約|을사늑약중국어 이후, 김구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1] 김구는 안중근과 안명근 의사의 의거에 관여하였다.[1]3. 3.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1919년 3·1 운동 직후 김구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경무국장을 맡았고, 이후 내무총장을 거쳐 1926년에는 국무령에 취임하였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으며, 이듬해인 1940년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항일무장부대를 편성, 1941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상하이 이후 충칭까지 27년간 임시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틈틈이 기록한 친필 원본은 임시정부의 1차 사료이자 독립운동사 연구 및 위인 전기 사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2]
3. 4. 해방 이후 활동
1945년 광복 후,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자격으로 환국하였다. 임시정부 환국이나 삼남 순회 등의 내용은 1945년 말 정도에 추가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3] 김구는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 국가 건설을 염원하였으며, 이러한 염원은 『백범일지』 하편 뒤에 붙은 「나의 소원」에 잘 나타나 있다.[3]4. 사료적 가치와 한계
『백범일지』는 김구가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부터 충칭 시절까지 27년간 임시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틈틈이 써놓은 친필 원본이라는 점에서 1차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책은 임시정부의 활동과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3]
1997년 6월 12일에는 백범일지 원본 필사본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문화재 제124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몽골어로 번역되어 몽골 대학교에 배포되기도 했다.[4] 2019년 2월 26일,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RM은 시상식 연설에서 백범일지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5]
4. 1. 비판적 관점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처음으로, 아들 김신에 의해 초간 발행된 이후 국내외에서 10여 본이 중간(重刊)되었다.[11][12] 그러나 자료나 보조 자료 없이 오로지 김구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집필했기 때문에 치하포 사건과 같이 내용이 왜곡, 과장되는 등 서술 내용과 시기가 모순되는 경우가 많고 인명, 지명 등에도 착오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11][12]또한,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임시정부 주석의 관점에서 잘 묘사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고려공산당의 총격 사건만 언급하는 등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비평도 존재한다. 민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좌우 합작을 중시했던 김구였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회의감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 기록된 역사의 기술은 김구가 당시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읽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5. 〈나의 소원〉
〈나의 소원〉은 『백범일지』 본문 뒤에 실린 글로, 동포에게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47년 국사원에서 『백범일지』를 출판할 때 춘원 이광수가 윤문하면서, 김구가 쓴 『백범일지』 서문을 참고하여 부록으로 추가하였다. 이때 이광수의 사상이 반영되었다는 비평도 존재한다.[13]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이 글에 실린 "나의 소원"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3] 2019년 2월 26일,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RM은 시상식 연설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5]
6. 출판 현황
1947년 12월 15일 도서출판 국사원에서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초판이 출판되었다. 해방 직후 집필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나의 소원」이 부록으로 추가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재판되었고, 1960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개정판을 발행했다. 2010년 기준 대한민국 출간 백범일지는 다음과 같다.
| 판본 | 역자/저자 | 출판사 | 출간일 |
|---|---|---|---|
| 《백범일지》 | 도진순 역 | 돌베개 | 2002년 8월 1일 |
| 《쉽게 읽는 백범일지》 | 도진순 역 | 돌베개 | 2005년 11월 23일 |
| 《김구 백범일지 (만화)》 | 김세라 저 | 주니어 김영사 | 2009년 10월 12일 |
| 《어린이 백범일지》 | 장세현 저 | 푸른나무 | 2008년 10월 13일 |
|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읽는 백범일지》 | 신경림 역 | 나남 | 2008년 1월 10일 |
7. 문화적 영향
백범일지 원본 필사본은 1997년 6월 12일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문화재 제1245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독립운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이 책에 실린 나의 소원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명하게 인용되고 있다.[3]
2009년에는 몽골어로 번역되어 몽골 대학교에 배포되었다.[4]
2019년 2월 26일,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RM은 시상식 연설에서 백범일지의 구절을 인용했다.[5]
참조
[1]
논문
백범일지 (白凡逸志) Baekbeom Ilji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7-15
[2]
뉴스
孫世一의 비교 傳記 (64)
http://monthly.chosu[...]
2023-05-01
[3]
웹사이트
Baekbeom ilji (Diary of Kim Gu), Volumes 1 (1929) and 2 (1943) - Heritage Search
https://english.cha.[...]
2023-02-22
[4]
웹사이트
History
https://www.kimkoo.o[...]
2023-07-21
[5]
뉴스
방탄소년단 RM ‘백범 김구’ 말 인용한 수상 소감 화제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
https://www.asiatoda[...]
2023-07-07
[6]
서적
解説
平凡社
1973
[7]
간행물
보물지정및변경지정
문화체육부장관
1997-06-14
[8]
뉴스
[단독] ‘백범일지’ 김구 친필 서명본 나왔다
http://www.hani.co.k[...]
한겨레
2018-08-28
[9]
뉴스
[주목 이 책]김구의 가슴뭉클한 생애…세세한 고증·해설 주해본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08-07-25
[10]
뉴스
[신동립 잡기노트]“백범 김구, 박정희 덕분에 영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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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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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본 펴낸 도진순 교수 "국민 애독서 '백범일지' 참모습 찾았죠."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7-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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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九에게 이런 모습이? '백범일지' 판본따라 달라지는 그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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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8-09-20
[13]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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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4]
웹사이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http://www.kimkoo.or[...]
20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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