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에 수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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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샤르에 수헤테는 기원전 3550년경에 건설되어 기원전 2300년경에 버려진 고대 도시 유적이다. 현재 이란 동부에 위치하며, 과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1900년대 초에 발견되어 여러 차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묘지, 주거 지역, 장인 구역, 기념물 구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적에서는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는 술잔, 인공 안구, 보드 게임, 뇌 수술 흔적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샤르에 수헤테는 인더스 문명과 관련이 있으며,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 기준을 충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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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에 수헤테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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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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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 이란 |
지역 | 시스탄 |
유형 | 해당사항 없음 |
구성 요소 | 해당사항 없음 |
길이 | 해당사항 없음 |
너비 | 해당사항 없음 |
면적 | 해당사항 없음 |
부피 | 해당사항 없음 |
지름 | 해당사항 없음 |
둘레 | 해당사항 없음 |
높이 | 해당사항 없음 |
건축가 | 해당사항 없음 |
재료 | 해당사항 없음 |
건설 시기 | 기원전 3550년 |
폐기 시기 | 기원전 2300년 |
시대 | 후기Chalcolithic 청동기 시대 |
문화 | 헬만드 문화 |
종속 대상 | 해당사항 없음 |
점유자 | 해당사항 없음 |
사건 | 해당사항 없음 |
발굴 | 해당사항 없음 |
고고학자 | 해당사항 없음 |
상태 | 폐허 |
소유권 | 해당사항 없음 |
관리 | 해당사항 없음 |
대중 접근 | 가능 (08:00–19:00) |
기타 지정 | 해당사항 없음 |
웹사이트 | 해당사항 없음 |
건축 양식 | 해당사항 없음 |
건축 세부 사항 | 해당사항 없음 |
참고 사항 | 해당사항 없음 |
세계유산 지정 정보 | |
명칭 | 샤흐레 소흐테 |
지정 날짜 | 2014년 (제38차 회의) |
지정 번호 | 1456 |
지정 기준 | ii, iii, iv |
지정 유형 | 문화 |
지역 | 아시아-태평양 |
2. 고고학
이 유적지는 1900년대 초 아우렐 스타인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조사되었다.[4][5] 이후 1967년부터 이탈리아 아프리카 및 오리엔트 연구소 Istituto italiano per l'Africa e l'Oriente|IsIAOita 소속 마우리치오 토시(Maurizio Tosi)가 이끄는 팀이 본격적인 유적 발굴을 시작하여 1978년까지 진행했다.[6][7][8] 발굴 작업은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97년, S.M.S. 사자디(S.M.S. Sajjadi)가 이끄는 이란 문화유산 관광 기구 팀에 의해 재개되었으며,[9][10] 현재까지도 새로운 발견이 간헐적으로 보고되고 있다.[11]
샤르에 수헤테 유적의 규모, 고대 환경, 시대별 변화, 주요 구역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이 유적은 고고학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다음의 기준들을 충족한다.
- '''기준 (2)''':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 조형물, 도시계획, 경관 유형의 증거를 보여주는 유산.
- '''기준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하거나 적어도 뛰어난 증거를 보여주는 유산.
- '''기준 (4)''':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축, 건축 복합체, 기술, 기념물, 도시계획, 경관의 뛰어난 전형이 되는 유산.
2. 1. 유적의 규모와 환경
이 유적지는 1900년대 초 아우렐 스타인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조사되었다.[4][5]1967년부터 이탈리아 아프리카 및 오리엔트 연구소 Istituto italiano per l'Africa e l'Oriente|IsIAOita 소속 마우리치오 토시가 이끄는 팀이 유적 발굴을 시작하여 1978년까지 진행했다.[6][7][8] 이후 중단되었던 발굴 작업은 1997년, S.M.S. 사자디가 이끄는 이란 문화유산 관광 기구 팀에 의해 재개되었으며,[9][10] 현재도 새로운 발견이 간헐적으로 보고되고 있다.[11]
처음에는 유적지의 면적이 151ha로 추정되었으나, 현재는 200ha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12] 최대 건설 면적은 약 120ha였다.[13] 샤르에 수헤테는 도시 시대 초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으며,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인 루트 사막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하지만 고대에는 기후가 훨씬 온화했으며, 도시 근처의 하문 호수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주변에 습지가 많았다. 또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는 주요 아케메네스 제국의 중심지이자 고고학 유적지인 다한에 골라만(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이 있다.[14]
샤르에 수헤테 유적 남서부에는[25] 25ha 규모의 광대한 묘지가 있으며, 이곳에는 약 25,000개에서 40,000개의 고대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5]
이 정착지는 기원전 3550년경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16] 2021년 마시모 비달레의 강연에 따르면, 이 도시는 총 4단계의 문명을 거쳤으며, 최종적으로 버려지기 전까지 세 차례의 화재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이탈리아 고고학 탐험대는 이 도시가 기원전 1800년경에 버려졌다고 보았으나, 바바라 헬윙과 하산 파젤리 나실리가 이끄는 이탈리아-이란 공동 고고학 탐험대가 인근 유적인 타페 그라지아니에서 확보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샘플을 분석한 결과, 폐기 시점을 기원전 2350년경으로 수정했다.[17] 최근 연구에서는 이 폐기 시점을 기원전 2300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2022년에 발표된 샤르에 수헤테(2018–2019) 후기 발굴 조사(구역 26, 33, 35, 36 기반)에 따른 새로운 연대기 및 층서 순서는 다음과 같다.[18]
2. 2. 묘지
(내용 없음)2. 3. 연대기 및 층서
이 유적지는 1900년대 초 아우렐 스타인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조사되었다.[4][5] 본격적인 발굴은 1967년부터 이탈리아 아프리카 및 오리엔트 연구소(IsIAO)의 마우리치오 토시(Maurizio Tosi)가 이끄는 팀에 의해 시작되어 1978년까지 이어졌다.[6][7][8] 이후 중단되었던 발굴 작업은 1997년, S.M.S. 사자디(S.M.S. Sajjadi)가 이끄는 이란 문화유산 관광 기구 팀에 의해 재개되었으며,[9][10] 현재도 새로운 발견이 보고되고 있다.[11]유적지의 면적은 과거 151ha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200ha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12] 최대 건설 면적은 약 120헥타르였다.[13] 샤르에 수헤테는 도시 시대 초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으며,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인 루트 사막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고대에는 기후가 훨씬 온화했으며, 도시 근처의 하문 호수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주변에 많은 습지가 있었다.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는 주요 아케메네스 제국의 중심지이자 고고학 유적인 다한에 골라만(Dahan-e Gholaman, 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이 있다.[14]
샤르에 수헤테 남서부에는[25] 25ha에 달하는 광대한 묘지가 있으며, 이곳에는 약 25,000개에서 40,000개의 고대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5]
이 정착지는 기원전 3550년경에 형성되었다.[16] 마시모 비달레(Massimo Vidale)의 2021년 강연에 따르면, 이 도시는 4단계의 문명을 거쳤고, 최종적으로 버려지기 전에 세 번의 큰 화재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이탈리아 고고학 탐험대는 이 도시가 기원전 1800년경에 버려졌다고 보았으나, 바바라 헬윙(Barbara Helwing)과 하산 파젤리 나실리(Hassan Fazeli Nashli)가 이끄는 이탈리아-이란 공동 고고학 탐험대가 인근 유적인 '''타페 그라지아니'''(Tappe Graziani)에서 얻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샘플을 분석한 결과, 폐기 시점은 기원전 2350년경으로 수정되었다.[17] 현재 이 폐기 시점은 기원전 2300년경으로 여겨진다. 2022년에 발표된 샤르에 수헤테 후기 발굴 조사(2018–2019)에서 26, 33, 35, 36 구역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연대기 및 층서 순서는 다음과 같다.[18]
각 시대별 상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2. 3. 1. 제1기 (기원전 3550–3000년)
제1기(기원전 3550년~3000년경) 동안, 샤르에 수헤테는 이미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 지역, 이란의 퀘타 계곡과 밤푸르 계곡의 유적들과 밀접한 관계를 보였다. 또한 후제스탄과 파르스의 원 엘람 도시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20]이 시기의 토기는 10, 9, 8단계에서 전형적으로 몸체는 밝은 색조를 띠고, 문디가크 III과 동부 발루치스탄(특히 퀘타 계곡)의 도자기와 매우 유사한 풍부한 장식을 보이며,[21] 나마즈가 III 도자기와 유사한 장식적 특징을 나타냈다.[1] 또한 이 시기에는 테페 야흐야 IVC(기원전 3400~3000년경)와 테페 야흐야 IVB6에서와 같은 회색 줄무늬 연마 도기가 나타났으며, 파키스탄의 날 도기의 다색 조각도 존재했다.[1]
기원전 3000년경, 샤르에 수헤테의 도공들은 북쪽으로 750km 떨어진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자기 양식을 재현했고, 남쪽으로 약 400km~500km 떨어진 파키스탄 케치-마크란-이란 발루치스탄 지역에서 다른 도자기들이 수입되었으며, 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문디가크 (칸다하르) 지역의 도자기들도 수입되었다.[19]
7단계 말, 기원전 3000년경에 도시의 대부분이 화재로 파괴되었다. 특히 동부 주거 지역과 중앙 지구에서는 "재로 채워지고 지붕 빔의 타버린 잔해로 채워진 불에 탄 석고가 있는 방"들이 발견되었다.[20]
2. 3. 2. 제2기 (기원전 3000–2600년)
제2기(기원전 3000~2600년경) 동안[1] 샤르에 수헤테는 인더스 문명 이전 중심지와 교류했으며, 밤푸르 계곡과의 접촉도 계속되었다.[20] 이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여러 단계로 나뉜다.초기인 6단계에서는 파괴되었던 정착촌이 재건되었으나, 일부 가옥은 복구되지 않았다.[20] 엔리코 아스칼론의 33구역 발굴 결과, "건축가의 집"과 동부 건물 유적은 기원전 3000년에서 2850년 사이의 것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밝혀졌다.[22] 이후 "법원의 집"이라 불리는 건물 폐허는 기원전 2850년에서 2620년 사이의 것으로 측정되었고, 그 위 2개 층은 아스칼론에 의해 기원전 2620년에서 2600년 사이의 "불법 점거" 시기로 간주되었다.[22] 고고학자 사자디에 따르면, 이 시기 샤르에 수헤테 유적 전체 면적은 약 80ha에 달했다.[25]
이 시기 샤르에 수헤테는 문디가크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다흐샨 광산에서 채굴된 라피스 라줄리는 문디가크를 거쳐 샤르에 수헤테로 유입되었으며, 두 정착촌 간의 긴밀한 관계는 학자들이 헬만드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중요했다.[20]
6단계와 5단계에서는 도시 규모와 도자기 기술 모두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더 미세한 원료와 진보된 소성 기술을 사용하여 더 조밀한 몸체-페이스트를 가진 도자기가 생산되었다. 이 시기 도기는 밤푸르 III-IV 단계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며, 주로 황갈색 및 회색 바탕에 갈색과 검은색 장식이 있는 형태였다.[21]
후기인 4단계에서는 도시 모습이 변화하여 거대한 포위벽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건물이 건설되었다. 도기는 페인트 장식이 사라지고 표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매장 유물을 통해 인구 간의 사회 경제적 차이가 확인되었으나, 이 단계 말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서부 이란에서 수입된 상품이 사라지는 등 외부 교류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20]
2. 3. 3. 제3기 (기원전 2600–2400년)

제3기와 제2기(기원전 2600–2400년경) 동안, 샤르에 수헤테에서는 거대한 둘레 벽을 가진 대형 건물들이 계속해서 건설되었다. 이 시기 도자기는 제2기의 특징이었던 채색 장식을 잃고 표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무덤 양식을 통해 인구 집단 간의 사회 경제적 차이가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20] 이 시기에도 문디가크, 밤푸르, 그리고 인더스 문명의 도시들과 활발한 접촉과 교역이 이루어졌다.[20] 샤르-이 수헤테의 33 구역(중앙 지구와 기념물 지역 사이에 위치)에 있는 "33 건물"은 엔리코 아스칼론(Enrico Ascalone) 팀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2600년에서 2450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22]
한편, 고고학자 자리지(Jarriage), 디디에(Didier), 키브론(Quivron)은 샤르-이 수헤테의 제1기, 제2기, 제3기가 문디가크의 제3기와 제4기와 고고학적으로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다.[23]
제3기 3단계의 도자기 생산은 이전 시대의 도자기와는 다른 형태와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 초기에 도자기에서 발견되던 단순한 장식 모티프는 점차 더 정교해졌다. 또한, 밤푸르 IV와 테페 야흐야 IV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검은색 장식이 있는 회색 반죽 도자기가 더 많이 나타났으며, 이 시기 말에는 몸체가 얇고 장식이 없는 작은 사발도 등장했다.[21]
무덤에서는 종교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화려한 다색 도자기가 다수 발견되었는데,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날(Nal) 유적에서도 유사한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이를 근거로 일부 학자들은 샤르-이 수헤테의 다색 도자기가 수입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가베로(Mugavero, 2008)와 같은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도자기가 샤르-이 수헤테에서 각각 남쪽으로 3km, 30km 떨어진 인근의 테페 다쉬(Tepe Dash)와 테페 루드-에 비야반(Tepe Rud-e Biyaban)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 도자기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21]
2. 3. 4. 제4기 (기원전 2400–2300년)
제4기는 기원전 2400년에서 2300년경에 해당한다.[1] 이 시기는 "불탄 궁전" 또는 "불탄 건물"의 발굴을 통해 알려졌으며, 고고학자들은 샤르에 수헤테가 이 시기에 거의 밤푸르 계곡 및 칸다하르 지역과 독점적으로 교류했다고 본다. 이는 전형적인 밤푸르 V 및 VI 양식의 도기를 통해 확인된다. 1972년에는 도시 서부 지역에서 다량의 부싯돌, 청금석, 터키석이 집중된 가공 작업장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독특한 유적으로 여겨진다.[20]
최근 발굴에서는 엔리코 아스칼로네가 샤르에 수헤테 33구역에서 기원전 2450년에서 2350년 사이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된 폐기 단계를 발견했다.[22] 고고학자 마시모 비달레는 이 단계를 샤르에 수헤테 전체 정착지의 마지막 번성 시기로 간주한다.[17]
또한, 2014-2015년 발굴 시즌 동안 이란 고고학자 S.M.S. 사자디와 호세인 모라디는 제4기 26구역의 두 건물 사이 긴 통로에서 반기둥 시스템을 발견했다. 마시모 비달레는 이것이 프랑스 원정대가 수년 전 메르가르에서 발견하여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한 유적과 매우 유사하며, 반기둥이 있는 "완전한 궁전" 단지의 일부라고 본다.[17]
2. 3. 5. 제5기 (기원전 2100–2000년)
샤르에 수헤테의 '불탄 건물'은 기원전 2350년에서 2200년 사이에 버려졌다가, 제5기(기원전 2100–2000년경)에 다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1] 이는 고고학자 라파엘레 비스치오네가 1979년에 발표한 보정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근거로 한 아스칼로네의 주장이다.[1]그러나 마시모 비달레는 이 시기의 거주가 이전 도시 점유의 일부 생존 흔적일 뿐이며, '도시 시스템' 자체는 기원전 2350년을 넘어서 지속되지 않았다고 본다.[17] 이 '불탄 건물'을 발굴했던 M. 토시와 R. 비스치오네는 해당 건물이 기원전 2000년경에 발생한 '파괴적인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추정했다.[17]
2. 4. 도시 구역
이 유적지는 원래 151ha 면적으로 생각되었으나, 현재는 200ha로 확인되었다.[12] 최대 건설 면적은 약 120ha에 달했으며,[13] 도시 시대 초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현재는 루트 사막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대에는 기후가 훨씬 온화했으며, 도시 근처의 하문 호수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주변에 습지가 많았다. 또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는 주요 아케메네스 제국의 중심지이자 고고학 유적지인 다한에 골라만(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이 자리 잡고 있다.[14]정착은 기원전 355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16] 마시모 비달레의 2021년 강연에 따르면, 이 도시는 4단계의 문명을 거쳤고 버려지기 전에 세 번 불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고고학 탐험대는 초기 연구에서 도시가 기원전 1800년경에 버려졌다고 보았으나, 이후 이탈리아-이란 공동 탐험대가 인근 유적지 '''타페 그라지아니'''에서 얻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기원전 2350년경에 버려졌다고 수정했다.[17] 현재는 기원전 2300년경에 버려진 것으로 여겨지며, 2018~2019년 발굴 조사(구역 26, 33, 35, 36)를 바탕으로 2022년에 발표된 새로운 연대기 및 층서 순서는 다음과 같다:[18]
이 유적지에서는 여러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 S.M.S. 사자디[25]는 샤르에 수헤테 유적지를 다음과 같이 5개의 주요 구역으로 나누었다.
# '''동부 주거 지역''': 유적지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다. 이곳 북쪽의 불탄 건물 내부 발굴 과정에서 제1기 시대의 도기가 발견되었다.[8]
# '''거대한 중앙 지역''' (또는 '''중앙 구역'''): 깊은 지형적 함몰에 의해 서쪽, 남쪽, 동쪽 지역과 분리된다. 이 구역 내에는 "항아리의 집"으로 알려진 장소가 있으며, 이곳에서 다른 도기들과 함께 코트 디지안 양식의 항아리가 발견되었다.[26]
# '''장인 구역''': 유적지의 북서부에서 확인되었다.[27]
# '''기념물 구역''': 장인 구역의 동쪽에 위치하며, 여러 개의 높은 언덕은 다양한 건축물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일부 도기 가마가 기념물 구역 근처와 유적지 북서부에서 발견되었으나, 대부분의 용기는 마을 외부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25]
# '''묘지 구역''' (또는 '''샤르에 수헤테 묘지'''): 유적지의 남서부를 차지하며 면적은 거의 25ha에 달한다.[25] 이곳에는 약 25,000개에서 40,000개의 고대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15] 대부분의 매장은 제1기와 제2기에 이루어졌지만, 이후 두 시기에 해당하는 매장도 일부 발견된다.[25]
3. 주요 발견물
기원전 3178년경으로 추정되는 흙으로 만든 술잔이 발견되었는데, 이 술잔에는 염소가 움직이는 듯한 연속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를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사례로 간주한다. 이 유물의 연대는 샤르에 수헤테 문화가 발전하고 번성했던 초기인 제1기에 해당한다.[28][29]
이러한 발견들은 샤르에 수헤테가 고대 문명의 중요한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며, 유적지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기여했다. 등재 기준은 다음과 같다.
4. 다른 초기 문화와의 관계
제1기(기원전 3550년~3000년경) 동안, 샤르에 수헤테는 이미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 지역, 이란의 퀘타 계곡과 밤푸르 계곡의 유적들과 밀접한 관계를 보였다. 또한 후제스탄과 파르스의 원 엘람 도시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20]
이 시기의 토기는 10, 9, 8단계에서 전형적으로 몸체는 밝은 색조를 띠고, 문디가크 III과 동부 발루치스탄(특히 퀘타 계곡)의 도자기와 매우 유사한 풍부한 장식을 보이며,[21] 나마즈가 III 도자기와 유사한 장식적 특징을 보인다.[1] 또한 이 시기에는 테페 야흐야 IVC(기원전 3400~3000년경)와 테페 야흐야 IVB6에서와 같은 ''회색 줄무늬 연마 도기''가 나타났으며, 파키스탄의 날 도기의 다색 조각도 존재했다.[1]
기원전 3000년경, 샤르에 수헤테의 도공들은 북쪽으로 750km 떨어진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자기 양식을 재현했고, 남쪽으로 약 400km~500km 떨어진 파키스탄 케치-마크란-이란 발루치스탄 지역에서 다른 도자기들이 수입되었으며, 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문디가크 (칸다하르) 지역의 도자기들도 수입되었다.[19]
7단계 말, 기원전 3000년경에 도시의 대부분이 화재로 파괴되었다. 특히 동부 주거 지역과 중앙 지구는 "재로 채워지고 지붕 빔의 타버린 잔해로 채워진 불에 탄 석고가 있는 방"을 보였다.[20]
제2기(기원전 3000~2600년경) 동안[1] 샤르에 수헤테는 또한 인더스 문명 이전 중심지와도 접촉했고, 밤푸르 계곡과의 접촉은 계속되었다.[20] 이 시기 6단계 동안 정착촌이 재건되었지만 파괴된 일부 가옥은 재건되지 않았다.[20] 엔리코 아스칼론의 최근 샤르에 수헤테 33구역 발굴 결과, 소위 "건축가의 집"과 동부 건물은 기원전 3000년부터 2850년까지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받은 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2]
"법원의 집"이라고 불리는 건물의 폐허는 고고학자 아스칼론에 의해 기원전 2850~2620년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받았고, 그 다음 2층은 그에 의해 33구역의 "불법 점거"로 간주되었으며, 그는 기원전 2620~2600년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했다.[22] 그러나 고고학자 사자디에 따르면, 샤르에 수헤테 전체 부지는 이 시기에 거의 80ha에 달했다.[25] 이 시기에 문디가크와의 접촉이 밀접했던 것으로 보이며, 라피스 라줄리는 바다흐샨 광산에서 문디가크를 거쳐 샤르에 수헤테로 들어왔고, 두 정착촌의 관계는 학자들이 헬만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20]
이 시기는 6단계와 5단계에서 도시 규모와 도자기 기술 모두에서 상당한 발전을 나타냈는데, 이 기간 동안 더 미세한 원료와 진보된 소성 기술을 사용한 결과, 더 조밀한 몸체-페이스트를 가진 도자기와 밤푸르 III-IV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도기가 생산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생산 및/또는 수입된 대부분의 도자기는 갈색과 검은색 장식이 있는 황갈색 및 회색 제품이었다.[21] 4단계에서는 대규모 건물이 거대한 포위벽으로 건설되면서 도시가 변화했고, 도기는 페인트 장식을 잃고 표준화되었으며, 매장은 인구 간의 사회 경제적 차이를 보여주었지만, 이 단계 말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서부 이란에서 수입된 상품이 사라졌다.[20]
3기와 2기(기원전 2600–2400년경)에, 거대한 둘레 벽을 가진 대형 건물들이 계속 건설되었고, 도자기는 2기의 채색 장식을 잃고 표준화되었으며, 매장은 인구 간의 사회 경제적 차이를 계속 보여주었다.[20] 문디가크, 밤푸르, 그리고 인더스 문명 도시들과의 접촉과 무역이 계속되었다.[20] 샤르-이 수헤테 33 구역(중앙 지구와 기념물 지역 사이에 위치)에 속하는 "33 건물"은 엔리코 아스칼론의 팀에 의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2600–2450년으로 밝혀졌다.[22]
한편, 고고학자 자리지, 디디에, 키브론은 샤르-이 수헤테의 1, 2, 3기가 문디가크의 3기와 4기와 고고학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23]
3기 3단계의 도자기 생산은 이전 시대의 도자기와는 다른 형태와 묘사를 특징으로 했으며, 이 시기 초기에 도자기에서 원래 발견된 단순한 장식 모티프가 더 정교해졌고, 밤푸르 IV와 테페 야흐야 IV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검은색 장식의 회색 페이스트 도자기가 더 많이 나타났으며, 이 시기 말에는 얇은 몸통의 작은 장식 없는 사발도 나타났다.[21]
무덤에서 종교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풍부한 다색 도자기가 발견되었으며,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의 날에서도 유사한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일부 학자들은 샤르-이 수헤테의 다색 도자기가 수입품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무가베로(2008)와 같은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생산이 샤르-이 수헤테에서 각각 남쪽으로 3km, 30km 떨어진 인근 테페 다쉬와 테페 루드-에 비야반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제안하며 이 도자기가 지역산이라고 주장했다.[21]
제4기(기원전 2400~2300년경)는[1] "불탄 궁전" 또는 "불탄 건물" 발굴을 통해 알려졌으며,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에 샤르에 수헤테가 거의 배타적으로 밤푸르 계곡 및 칸다하르 지역과 접촉했다고 본다. 이는 전형적인 밤푸르 V 및 VI 도기에서 입증된다. 1972년 도시 서부 지역에서 대량의 부싯돌, 청금석, 터키석이 집중된 가공 작업장이 발견되었는데, 이 유적은 이 지역에서 독특한 것으로 여겨진다.[20] 반면, 엔리코 아스칼로네는 최근 발굴에서 샤르에 수헤테 33구역에서 기원전 2450~2350년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된 폐기 단계를 발견했다.[22] 그러나 이 단계는 최근 고고학자 마시모 비달레에 의해 샤르에 수헤테 전체 정착지의 마지막으로 번성한 도시 점령 시기로 여겨졌다.[17]
이란 고고학자 S.M.S. 사자디와 호세인 모라디는 (2014-15) 발굴 시즌 동안 샤르에 수헤테 제4기 26구역의 두 건물 사이의 긴 통로에서 반기둥 시스템을 발견했으며, 마시모 비달레는 이를 프랑스 원정대가 수년 전 메르가르에서 발견하여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반기둥이 있는 "완전한 궁전" 단지의 일부라고 본다.[17]
샤르-이 소흐테 문명은 기원전 3200년에서 2350년 사이에 번성했으며, 인더스 문명의 첫 번째 단계와 일치했을 수 있다. 샤르-이 소흐테의 제3기 및 제4기와 문디가크 제4기의 마지막 부분은 초기 하라파 3A 및 후기 하라파 3B의 일부와 동시대이다.[17]
샤다드는 발굴 중인 또 다른 광대한 유적지로 관련이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이의 사막 지역인 시스탄 분지에서 약 900개의 청동기 시대 유적이 기록되었다.[36]
5. 세계 유산
샤르에 수헤테는 다음의 세계 유산 기준을 충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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