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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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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석두희천은 700년부터 790년까지 살았던 당나라 시대의 선승으로, 혜능의 제자였던 청원 행사에게 법을 이어받았다. 그는 형산의 남대사에 머물며 가르침을 펼쳤고, 그곳의 바위 위에 살았기에 '돌머리'라는 뜻의 석두로 불렸다. 석두희천은 《산도카이》와 《풀집의 노래》라는 시를 남겼으며, 중도와 연기 사상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로는 약산 유엄, 천황 도오 등이 있으며, 마조 도일의 홍주종과 함께 당나라 선종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석두희천의 유해는 일본과 중국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의 총지사에 육신불이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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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희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석두 희천
『불조정종도영』(1880)의 목판 이미지
법명희천(希遷)
시호무제대사(無際大師)
출생700년
출생지광둥성자오칭 시가오야오 구
사망790년 (90세)
사망지후난성 헝산 시 난타이 사
종교불교
종파선종
칭호기린(麒麟)의 뿔
스승청원행사, 대감혜능
계승자약산유엄
제자약산유엄, 천황도오, 단하천연
저서참동계
생애
활동 시대당나라
주요 활동 지역호남(湖南)
관련 정보
특징남종선 확립에 기여
마조도일과 함께 당대 선종을 대표하는 인물
석두종의 개조
관련 어록석두의 가르침은 금덩이고, 마조는 자잘한 재화인데, 스님은 어찌해서 그런 곳에 머문단 말이오. 속히, 속히 오시오.

2. 생애

석두희천은 700년 광둥 성 가오야오 현에서 진(陳)씨 성으로 태어났다.[1] 어린 나이에 혜능의 제자가 되었으나, 혜능이 입적하기 전 잠시 동안이었다. 이후 혜능의 제자였던 청원 행사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청원행사와의 문답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인정받고 그의 법맥을 이었다.[2]

청원 행사에게 법을 이어받은 후,[2] 후난 성 남악 형산의 남대사에서 가르침을 펼쳤다.[3] 그는 그곳의 큰 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이 때문에 '돌머리'를 뜻하는 석두(石頭)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4] 그의 제자로는 약산 유엄, 천황 도오, 단하 천연 등이 있으며, 마조 도일의 홍주종과 세력을 다투었다.

석두희천은 790년에 입적하였으며, 입적 후 '무제대사(無際大師)'라는 시호를 받았다.[1]

2. 1. 초기 생애

석두희천은 700년 광둥 성 가오야오 현에서 진(陳) 씨 성으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혜능의 제자가 되었으나, 혜능이 입적하기 전 잠시 동안이었다. 이후 석두는 혜능의 제자였던 청원 행사의 제자가 되었다. 행사로부터 법맥을 이은 후,[2] 석두는 후난 성 남악 형산의 남대사에서 가르침을 펼쳤다.[3] 그는 그곳의 큰 바위 위에서 살았는데, 이 때문에 '돌머리'를 뜻하는 석두(Shítóu)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4]

2. 2. 청원행사와의 만남

혜능이 입적하려 할 때, 석두희천은 혜능에게 입적 후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 물었다. 혜능은 '생각 사(思)'를 찾아가라고 답했다. 석두희천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혜능 사후에 좌선을 했다.[12]

상좌는 석두희천에게 스승의 부재중에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자, 석두희천은 혜능이 한 말을 전했다. 상좌는 석두희천의 사형 중 길주에 있는 행사(行思)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석두희천은 청원행사가 있는 정거사로 향했다.[13] 석두희천은 원래 혜능의 제자였으나, 혜능이 입적하자 청원행사를 찾아간 것이다.[14]

청원행사가 어디서 왔냐고 묻자, 석두희천은 혜능이 머물던 조계에서 왔다고 답했다. 청원행사가 무엇을 얻으려 왔냐고 묻자, 석두희천은 조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잃은 것이 없다고 답했다.[15]

청원행사는 그렇다면 조계에는 왜 갔냐고 물었다. 석두희천은 조계에 가지 않았다면 잃은 것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냐고 반문하며, 청원행사에게 혜능을 아는지 물었다.[16]

청원행사가 자신을 아느냐고 묻자, 석두희천은 알아도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답했다. 청원행사는 석두희천을 두고 "뿔 달린 짐승은 많아도 기린의 뿔 하나면 족하다"라고 평가했다. 이 문답을 통해 석두희천은 깨달음의 경지를 인정받고 청원행사로부터 법맥을 이었다.[2]

2. 3. 형산에서의 활동

청원 행사에게 법을 이어받은 후,[2] 후난 성 남악 형산의 남대사에서 가르침을 폈다.[3] 그는 그곳의 큰 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이 때문에 '석두(石頭, 돌머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4]

석두는 많은 제자를 두었지만,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규봉 종밀은 그를 우두종의 일파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로는 약산 유엄, 천황 도오, 단하 천연 등 유명한 선승들이 있으며, 마조 도일의 홍주종과 세력을 다투었다. 천황 도오나 단하 천연은 석두뿐만 아니라 마조에게서도 수행했고, 마조의 제자인 오설 령묵이 석두의 문하에 있었던 것처럼, 양쪽 종파 간에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2. 4. 입적

석두희천은 790년에 입적하였다. 입적 후 '무제대사(無際大師)'라는 시호를 받았다.[1]

3. 사상 및 저술

석두희천은 두 편의 유명한 선불교 시를 남겼다. '''참동계'''는 진리의 본질에 대한 포괄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초암가'''는 은둔하며 명상하는 삶을 찬양한다.[7]

4. 영향

석두희천은 생전에 큰 영향력은 없었으나, 사후 그의 제자인 동산양개의 중요성으로 인해 재조명 받았다. 그의 제자로는 약산유엄, 천황도오 등이 있었다.

육조
혜능
청원행사
0석두희천
1천황도오약산유엄
2용담숭신운암담성
3덕산선감동산양개
4설봉의존조산본적운거도영
5경청도부운문문언조동종8대
6현사사비동산수초도겐
7나한계침운문종소토종
8법안문의
9법안종


4. 1. 중국 선종에의 영향

석두희천은 생전에 큰 영향력이나 명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은둔적인 삶을 살았고 제자가 비교적 적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스승이었다. 석두희천의 사후 수십 년 동안 그의 계보는 지방의 변두리 전통으로 남아 있었다.

석두희천이 후대에 주목받게 된 것은 그의 법맥을 이은 9세기 스승인 동산양개의 영향이 컸다. 마조도일과 석두희천은 당나라 시대의 두 위대한 스승이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는 그들이 죽은 지 수십 년 후의 일이다.

제자로는 약산유엄, 천황도오, 단하천연 등 저명한 선승들이 있으며, 마조도일의 홍주종과 함께 당나라 선종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다만 천황도오나 단하천연은 석두희천뿐만 아니라 마조도일에게서도 수행했으며, 반대로 마조도일의 제자인 오설령묵이 석두희천의 문하에 있었던 것처럼, 양쪽 종파의 문하 간에 교류가 빈번했음을 엿볼 수 있다.

4. 2. 한국 불교에의 영향

석두희천의 선(禪) 사상은 한국 불교, 특히 조동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석두 희천 - 천황 도오 - 용담 숭신 - 덕산 선감 - 설봉 의존으로 이어지는 법맥은 고려 말 태고보우에 의해 한국에 전래되었으며, 조선시대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5. 유해 논쟁

석두희천의 신체 유해, 즉 육신불(미라)의 현재 위치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일본의 석두산 사찰에는 석두희천의 것으로 전해지는 미라가 있다. 여러 일본 자료에서는 이 미라가 신해혁명(1911–1912)의 혼란 속에서 후난성의 한 사찰에서 발생한 화재로부터 일본인 여행자에 의해 구출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중국 측 자료에서는 제2차 중일 전쟁(1937–1945) 동안 일본군에 의해 도난당했다고 주장한다. 연구자 제임스 롭슨(James Robson)은 석두의 시신이 미라화되었다는 증거가 거의 없으며, 석두산 사찰에 안치된 유해는 무지(無寂)라는 또 다른 승려의 유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6]

조동종 대본산 총지사에도 석두희천의 것으로 여겨지는 육신불이 안치되어 있지만, 비공개 상태이다. 원래는 중국 호남의 사찰에 모셔져 있었으나, 신해혁명 당시 사찰이 화재에 휩싸이자 일본인이 보호하여 일본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는 다이쇼 박람회에 출품되었으며, 당시의 사진이 남아있다. 그 후 오메시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일본 미라 연구 그룹을 거쳐 1975년부터 총지사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참조

[1] 간행물 古籍插图库显示 https://archive.toda[...] 2013-01-02
[2] 서적 Manual of Zen Buddhism https://archive.org/[...] Grove Press
[3] 웹사이트 Nantai Temple http://www.chinacult[...] Ministry of Cultur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09-05-09
[4] 서적 The Way of Zen
[5] 서적 Chan Buddhism in Ritual Context Routledge
[6] 문서 Robson 2003, pp. 151–178
[7] 서적 The Art of Just Sitting Wisdom Publications
[8]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9]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10]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11]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12] 웹인용 남종선의 거장 행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13] 웹인용 남종선의 거장 행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14]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15]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16]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17]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석두 희천 - 선종의 기린아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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