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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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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법안종은 중국 선사 청량 문익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선종의 한 종파이다. 설봉 의존을 통해 석두 희천과 혜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법안종은 오대 십국 시대에 남당과 오월에서 번성했다. 법안종은 '교선일치'를 내세우며 선종의 혁신을 추구했다. 고려 광종 때 영명연수의 제자들이 법안종을 고려에 전파하여 크게 발전했지만, 송나라 시대에 쇠퇴하여 임제종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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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종

2. 역사

청량 문익은 '오가' 관념의 시초가 된 『종문십규론』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동종청원행사를 8대 제자로 두었다. 그는 남당을 건국한 이변의 초청을 받아 수도 금릉으로 들어가, 교종과 선종의 일치를 중시하며 선종의 혁신을 추진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특히 강남 지방에 있던 남당과 오월 두 나라에서 번성했는데, 오월에서는 국왕 전씨 일족이 영명도잠, 천태덕소, 영명연수 등 법안종에 속하는 승려들을 보호하여 그 종세가 크게 번창했다.

송나라 시대가 되자 천태덕소와 영명연수의 계통은 쇠퇴했다. 대신 청량태흠과 귀종의유의 계통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청량태흠의 문하에서는 운거도제와 영은문승 사제 등이 활약했지만, 점차 쇠퇴하여 마침내 북송 말에는 그 계통이 단절되었다.[1]

원나라의 고봉원묘는 그 종풍을 "상명"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2. 1. 기원

법안종은 중국 선사 청량 문익(885–958)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

설봉 의존을 통해 법안종과 운문종은 석두 희천과 혜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봉은 당나라 말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선(禪) 스승 중 한 명이었으며, "널리 영향력 있는 선 센터가 설봉 의존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당나라의 통제력 상실과 그에 따른 불교 기관에 대한 지원 감소는 설봉과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 기반 선(禪)으로 이어졌다.

952년에 편찬된 ''조당집''(祖堂集)은 임제 의현을 언급하는 최초의 문서로, 설봉 의존의 계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조당집은 이 계보를 마조와 홍주종의 유산의 상속자로 묘사하지만, 설봉 의존의 계보는 석두 희천(700–79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설봉 의존의 법 제자인 조경 문등(884–972)의 두 제자에 의해 쓰여졌다.

육조
혜능 (638–713)
청원 행사 (660–740)
석두 희천 (700–790)
천황 도무 (748–807)
용담 숭신 (8/9세기)
덕산 선감 (782–865)
0설봉 의존 (822–908)
1경청 도부 (ca.863–937)운문 문언 (864–949)
2현사 사비 (835–908)동산 수초 (910–990)
3나한 귀진 (867–928)운문종
4법안 문익 (885–958)
법안종


2. 2. 오대 십국 시대의 발전

오대 십국 시대 동안 법안종은 남당(강서성)과 오월에서 주된 종파가 되었다.[1] 법안종은 "선과 가르침의 조화"라는 의미의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전파했는데, 이는 나중에 선종의 중요한 구호 중 하나가 된 '교외별전'(敎外別傳), 즉 "가르침 밖의 특별한 전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1]

청량 문익은 '오가' 관념의 시초가 된 『종문십규론』을 저술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조동종의 청원행사를 8대 제자로 두었다. 그는 남당을 건국한 이변의 초청을 받아 수도 금릉으로 들어가, 교종과 선종의 일치를 중시하며 선종의 혁신을 추진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특히 강남 지방에 있던 남당과 오월 두 나라에서 번성했는데, 오월에서는 국왕 전씨 일족이 영명도잠, 천태덕소, 영명연수 등 법안종에 속하는 승려들을 보호하여 그 종세가 크게 번창했다. 특히 천태덕소는 오월왕 전숙으로부터 국사에 임명되었으며, 영명연수는 고려광종의 요청에 따라 승려 36명을 받아들여 법안종을 고려에 널리 퍼뜨렸다.

2. 3. 고려 시대의 전래와 융성

법안문익 스님이 창시한 법안종은 천태덕소, 영명연수에게 법이 전해졌다. 고려 광종은 왕건의 셋째 아들이자 고려의 4대 왕으로, 법안종 3대 조사인 영명연수 스님을 사모하여 학승 36명을 중국에 유학시켰다. 그 중 원공국사 지종이 영명연수로부터 법을 받아 고려에 전했다.[1] 중국에서는 법안종이 쇠퇴하여 임제종에 흡수되었으나, 고려에서는 크게 발달하였다.[1] 당시 법안종 승려로서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로는 도봉 혜거국사, 적연국사 영준, 진관국사 석초 등이 있다.[1]

2. 4. 송나라 시대의 쇠퇴와 임제종으로의 흡수

법안문익이 창시한 법안종은 천태덕소, 영명연수에게 법이 전해졌다. 고려 광종은 법안종 3대 조사인 영명연수를 사모하여 학승 36명을 중국에 유학시켰다. 그 중 원공국사 지종이 영명연수로부터 법을 받아 고려에 전했다. 송나라 시대에 중국에서는 법안종이 쇠퇴하여 임제종에 흡수되었으나, 고려에서는 크게 발달했다. 당시 법안종 승려로서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로는 도봉 혜거국사, 적연국사 영준, 진관국사 석초 등이 있다.[1]

송나라(960–1279) 시대에 걸쳐, 법안종은 위앙종, 운문종과 함께 점차 임제종에 흡수되었다.[1]

특히 강남 지방에 있던 남당과 오월 두 나라에서 번성했는데, 오월에서는 국왕 전씨 일족이 영명도잠, 천태덕소, 영명연수 등 법안종에 속하는 승려들을 보호하여 그 종세가 크게 번창했다. 천태덕소는 오월왕 전숙으로부터 국사에 임명되었으며, 영명연수는 고려 광종의 요청에 따라 승려 36명을 받아들여 법안종을 고려에 널리 퍼뜨렸다.[1]

송나라 시대가 되자 덕소와 연수의 계통은 쇠퇴했다. 대신 청량태흠과 귀종의유의 계통이 주류를 이루었다. 태흠의 문하에서는 운거도제와 영은문승 사제 등이 활약했지만, 점차 쇠퇴하여 마침내 북송 말에는 그 계통이 단절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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