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스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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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티브 스톤턴은 아일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던도크 FC, 리버풀 FC, 애스턴 빌라 FC 등에서 활약했으며, 아일랜드 공화국 국가대표팀으로 102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 1990년, 1994년, 2002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93년 FAI 올해의 시니어 국제 선수, 1989년 FAI 올해의 영 국제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 달링턴 FC의 감독과 선덜랜드 AFC의 스카우트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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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스톤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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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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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스티븐 스톤턴 |
출생일 | 1969년 1월 19일 |
출생지 | 던도크, 아일랜드 |
키 | 185cm |
포지션 | 수비수 |
클럽 경력 | |
선수 경력 | 1985-1986: 던도크 1986-1991: 리버풀 1987: → 브래드퍼드 시티 (임대) 1991-1998: 애스턴 빌라 1998-2000: 리버풀 2000: → 크리스털 팰리스 (임대) 2000-2003: 애스턴 빌라 2003-2005: 코번트리 시티 2005: 월솔 |
총 출전 횟수 | 481회 |
총 득점 횟수 | 21골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팀 | 1987-1989: 아일랜드 U-21 1988-2002: 아일랜드 |
U-21 출전 횟수 | 4회 |
U-21 득점 횟수 | 0골 |
국가대표 출전 횟수 | 102회 |
국가대표 득점 횟수 | 8골 |
감독 경력 | |
감독 | 2006-2007: 아일랜드 2009-2010: 달링턴 |
2. 선수 경력
스티브 스톤턴은 던도크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눈에 띄어 리버풀로 이적했다.[4] 리버풀에서 데뷔 시즌에 힐스버러 참사를 겪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FA컵 우승과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애스턴 빌라로 이적하여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리그 컵 우승 2회 등 전성기를 보냈다. 리버풀로 복귀했다가 다시 애스턴 빌라로 돌아가는 등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발하게 선수 생활을 했다. 코벤트리 시티와 월솔을 거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아일랜드 공화국 소속으로는 세 번의 FIFA 월드컵(1990년 FIFA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에 모두 출전하였으며,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로이 킨이 선수단을 떠난 후 주장으로 활약하며 1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1] A매치 102경기 출전 기록을 세우고 은퇴했다.
2. 1. 클럽 경력
스티브 스톤턴은 던도크에서 뛰던 중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눈에 띄어 리버풀로 이적했다. 이후 애스턴 빌라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리버풀로 복귀했다가 다시 애스턴 빌라로 돌아가는 등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발하게 선수 생활을 했다. 코벤트리 시티와 월솔을 거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 1. 1. 던도크 FC
던도크에서 태어난[1] 스톤턴은 다재다능한 스포츠 선수였다. 데 라 살 칼리지를 졸업했고, 고향 팀인 던도크에서 축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게일식 축구도 했다. 라우스 U-16 팀으로 출전했고, Clan na Gael과 함께 라우스 시니어 챔피언십 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유소년 레벨에서 지역 팀인 St Dominic's에서도 뛰었다.1985-1986 시즌에 던도크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연도 | 팀 |
---|---|
1985-1986 | 던도크 |
2. 1. 2. 리버풀 FC
스티브 스톤턴은 17세의 나이로 고향 클럽인 던도크에서 뛰는 모습을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 감독에게 발탁되어 1986년 9월 2일에 20000GBP의 이적료로 영입되었다.[4]처음 두 시즌 동안 리저브 팀에서 보냈고, 1987-88 시즌에는 부상당한 칼 고다드를 대신하여 브래드포드 시티로 8경기를 임대 가기도 했다. 1988년 9월 17일 안필드에서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1-1 리그 경기에서 리버풀 데뷔전을 치렀다. 인상적인 활약 덕분에, 전년도에 리그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 주변 선수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팀에 남았다. 데뷔 3일 뒤인 9월 20일에 첫 골을 넣었지만, 그의 80분 골은 아스널 FC가 센테너리 트로피 준결승에서 2-1로 승리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장 앨런 한센의 부상으로 주전 레프트 백인 게리 에이블렛이 센터백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 결과 스톤턴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강력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서 인상적이고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리버풀이 다시 한번 우승 경쟁을 하는 데 기여했다.
힐스버러 참사 이후, 1989년 4월 15일 FA컵 준결승전에서 97명의 팬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는데, 스톤턴은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로하고 많은 장례식에 참석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또한 한 달 뒤 재경기를 치른 FA컵 준결승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리버풀은 노팅엄 포레스트 FC를 3-1로 이겼다.
스톤턴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 출전했는데, 연장전 시작과 함께 교체되었다. 리버풀은 머지사이드 라이벌 에버튼 FC를 3-2로 꺾었다. 그러나 시즌은 리버풀이 아스널과의 안필드에서 열린 우승 결정전에서 리그 타이틀을 놓치면서 실망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아스널은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고, 경기 종료 몇 초를 남기고 1-0으로 앞서 있었다. 시즌 마지막 킥과 거의 동시에 마이클 토마스가 리즈 수비의 중앙을 뚫고 득점하며, 리버풀이 두 번째 리그 및 FA컵 더블을 달성하는 것을 막았다. 이는 아직 어떤 잉글랜드 클럽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었다.
다음 해, 스톤턴은 리버풀이 리그 타이틀을 탈환하는 데 다시 자주 기여했다. 1989년 10월 4일, 리그 컵 경기에서 위건 애슬레틱을 상대로 교체 출전하여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리버풀에서의 첫 골을 놀라운 방식으로 기록했다.[4] 다음 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크루 알렉산드라를 상대로, FA컵에서 블랙번 로버스를 상대로 두 골을 더 넣었다.[5][6] 그러나 1990-91 시즌은 그가 1991년 8월 7일에 1100000GBP에 애스턴 빌라 FC로 이적하기 전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새로운 감독 그라엠 수네스는 선수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유럽 대회 규정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스톤턴은 외국인으로 분류되었고, 팀당 4명 이상 출전할 수 없었다. 보스만 판결 (회원국 팀에서 EU 시민에 대한 쿼터 폐지 포함)은 1995년에 통과되었다.
빌라와의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던 1998년 7월 3일, 공동 감독 로이 에반스와 제라르 울리에가 그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면서 놀랍게도 리버풀로 복귀했다.
1999년 9월 27일, 안필드에서 열린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산데르 베스터벨트가 프란시스 제퍼스와 싸우다 퇴장당한 후, 리버풀이 세 명의 교체 선수를 모두 사용한 상황에서 스톤턴은 경기의 마지막 15분을 골키퍼로 뛰었다. 그는 리버풀에서의 두 번째 시절에 한 골을 기록했는데, 1999년 9월 헐 시티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7]
두 번째 머지사이드 시절은 2년 동안 지속되었고, 이후 자유 계약으로 떠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6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트랜미어 로버스 상대로 한 골을 기록한 짧은 임대 기간을 거친 후,[8] 2000년 11월 23일 그리스팀 올림피아코스와의 UEFA 컵 2-2 무승부 경기에서 리버풀 소속으로 148번째이자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안필드로 소환되었다.[9]
2. 1. 3. 애스턴 빌라 FC
스톤턴은 1991년 8월 17일 힐스보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데뷔전을 치렀고, 골까지 기록하여 빌라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곧 전설적인 빌라 선수 폴 맥그레스와 함께 빌라 수비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은 1991-92 시즌에 7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그는 첫 프리미어리그 시즌에서 클럽이 우승 경쟁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빌라는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했고 2위에 만족해야 했다.다음 시즌 그는 부상당한 빌라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복수에 성공하는 데 기여하며 리그 컵 우승 메달을 획득했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국내 3관왕을 놓침). 리그 컵 메달로 그의 국내 메달 세트가 완성되었다. 1994-95 시즌에는 클럽의 감독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정기적으로 팀의 주장을 맡았다. 1995-96 시즌은 스톤턴에게 복합적인 시즌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리즈 유나이티드를 3-0으로 완승하는 훌륭한 경기의 비출전 교체 선수로 또 다른 리그 컵 메달을 획득했지만, 여러 부상으로 인해 출전 시간이 제한되었다.
다음 두 시즌 동안 그는 다시 수비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1996-97 시즌 UEFA 컵 8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는 또한 빌라에서 뛰는 동안 코너킥에서 골을 넣기도 했다. 한편, 리그에서는 1996-97 시즌 5위, 1997-98 시즌 7위를 기록하며 과도기적인 빌라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도왔다.
2000년 12월 7일, 그는 다시 자유 계약으로 애스톤 빌라에 합류했다. 그는 구단의 남은 리그 경기 중 14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두 시즌 동안 정기적으로 출전했다. 그는 빌라에서 두 번째로 뛰는 동안 한 골을 넣었는데, 이 골은 FC 취리히와의 인터토토컵 경기에서 나왔다.[10]
2. 1. 4. 기타 클럽
스톤턴은 1991년 애스턴 빌라 FC로 이적하여 1998년까지 활약하였다. 1991년 8월 17일 힐스보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셰필드 웬즈데이 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골까지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에 기여했다.[1] 그는 곧 폴 맥그레스와 함께 빌라 수비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고, 1991-92 시즌에 팀이 7위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1]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인 1992-93 시즌에는 팀이 우승 경쟁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밀려 2위에 머물렀다.[1]1993-94 시즌에는 풋볼 리그 컵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컵 우승 메달을 획득했다.[1] 1994-95 시즌에는 팀의 주장 역할도 수행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1] 1995-96 시즌에는 리즈 유나이티드 FC를 3-0으로 꺾고 리그 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출전 시간이 제한되었다.[1]
1996-97 시즌과 1997-98 시즌에는 다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팀이 리그에서 각각 5위와 7위를 기록하고, 1996-97 시즌 UEFA 컵 8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1] 그는 빌라에서 뛰는 동안 코너킥으로 골을 넣기도 했다.[1]
1998년 리버풀 FC로 잠시 복귀하였다가, 2000년 다시 애스턴 빌라로 복귀하여 2003년까지 활약하였다.
2003년 8월, 스톤턴은 코벤트리 시티 FC로 이적하여 2005년까지 75경기에 출전했다.[1] 2003년 8월 16일 하이필드 로드에서 열린 월솔 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1]
2005년 8월, 스톤턴은 월솔 FC로 이적하여 10경기에 출전했고, 코치 보조 역할도 수행했다.[1] 2005년 섣달 그믐날 블랙풀 FC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1]
2. 2. 국가대표팀 경력
스티브 스톤턴은 튀니지와의 친선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며 아일랜드 공화국 데뷔전을 치렀다.[1] 잭 찰턴 감독과 함께 199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은 사상 처음으로 FIFA 월드컵 결선에 진출했다.[1] 당시 선수단 막내였던 스톤턴은 아일랜드 공화국이 8강에 진출하는 동안 왼쪽 수비수로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아일랜드는 개최국에 패했다.[1]그는 또한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아일랜드 공화국을 대표하여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1] 아일랜드 공화국은 2라운드에서 네덜란드에게 패했다.[1]
아일랜드 공화국은 유로 96과 1998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스톤턴은 여전히 팀에서 정기적으로 선발되었다.[1]
아일랜드 공화국은 이란과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2002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1] 스톤턴은 테헤란에서 열린 2차전에서 아일랜드 팀의 주장을 맡았다.[1] 12년 전 아일랜드의 첫 번째 월드컵에서 스톤턴의 주장이었던 미크 매카시 코치는 그를 선수단에 선발했고, 로이 킨이 선수단을 떠난 후 그를 주장으로 임명했다.[1]
스톤턴은 다시 한번 토너먼트의 아일랜드 공화국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6월 5일 독일과의 1-1 조별 경기 무승부는 매우 특별하고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는데, 그는 자국을 위해 100경기에 출전한 최초의 아일랜드인이 되었다.[1] 셰이 기븐 앞에서 게리 브린과 함께 인상적인 중앙 수비 파트너십을 형성했다.[1] 스톤턴은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00경기 출전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였다.[1] 2010년 FIFA 월드컵 아일랜드 예선 캠페인이 끝날 때까지 그는 전 팀 동료 셰이 기븐, 케빈 킬베인과 함께 공동 기록 보유자였지만, 두 선수(로비 킨과 함께)는 그 이후 스톤턴의 출전 기록을 따라잡았다.[1]
아일랜드의 대회는 다시 한 번 2라운드에서 마무리되었는데, 경기가 1-1로 끝난 후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에게 패했다.[1] 스톤턴은 102경기 출전이라는 국가 기록을 세운 후 즉시 국제 축구에서 은퇴를 발표했다.[1] 그는 아일랜드의 13번의 월드컵 결선 경기에서 모두 출전한 유일한 선수이다.[1]
그는 두 차례나 코너킥으로 직접 득점을 기록했다.[1] 첫 번째 골은 1992년 6월 7일 보스턴에서 열린 US컵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2-0으로 이겼을 때 나왔고, 두 번째 골은 1993년 3월 31일 더블린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에서 북아일랜드를 3-0으로 이겼을 때 나왔다.[1] 그는 아일랜드가 출전한 3번의 FIFA 월드컵 모두에 유일하게 멤버로 참가했으며, 모든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1]
3. 감독 경력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스톤턴은 2008년 2월 4일 리즈 유나이티드의 신임 감독 게리 맥앨리스터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32] 그러나 리즈는 스톤턴 부임 후 첫 달 동안 승리하지 못하다가 3월 1일 스윈던 타운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2008년 12월, 맥앨리스터 감독이 5연패 후 해임되자 스톤턴도 리즈를 떠났다.[33]
3. 1.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아일랜드 공화국이 2006년 FIFA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면서 브라이언 커 감독의 임기가 종료되었다. 이에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는 후임 감독 선임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고, 2008년 유럽 선수권 대회 예선전을 이끌 "세계적인" 관리 팀을 임명할 것을 약속했다.[11] 초기에는 알렉스 퍼거슨,[12] 테리 베나블스,[13] 바비 롭슨[14] 등이 거론되었으나, 2006년 1월 12일 월솔에서 선수 겸 수석 코치로 해임된 스톤턴이 다음 날 공식적으로 커의 후임자로 임명되었다.[15] 잉글랜드 감독 출신 바비 롭슨 경이 국제 컨설턴트, 전 아스톤 빌라 팀 동료 케빈 맥도널드가 코치로 합류하여 그를 보좌했다.[15] 스톤턴의 임명은 제한적인 코칭 및 감독 경험으로 인해 다소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16][17]스톤턴은 국제 감독 경력 초기에 "약간의 동화"와 같은 시작을 보였다. 2006년 3월 1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데미언 더프, 로비 킨 (처음으로 아일랜드 공화국 주장), 리암 밀러의 득점으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두 번의 친선 경기에서 칠레에게 1-0, 네덜란드에게 4-0으로 패했다. 네덜란드전 패배는 아일랜드가 40년 만에 기록한 최악의 홈 경기 패배였다.
네덜란드 경기 전에는 팀 호텔 밖에서 한 남자가 총으로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고,[19] 이는 모조 우지 기관총으로 밝혀졌다.[19] 이 사건은 스톤턴과 FAI 모두에게 홍보 재앙이었다.[20] 또한 FAI가 앤디 리드의 국가대표팀 복귀 소식을 그의 전 소속 클럽인 토트넘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리드는 당시 찰턴 소속이었다.[21]
이러한 상황에서 스톤턴은 독일과의 첫 공식 경기에서 1-0으로 패했다. 2006년 10월 7일, UEFA 유로 2008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아일랜드는 키프로스에게 니코시아에서 5-2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스톤턴은 독일전 퇴장으로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키프로스전 패배 이후 스톤턴은 사임 압박을 받았으며,[22] FAI는 다음 경기인 체코와의 홈 경기 결과에 따라 감독을 즉시 해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23] 체코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스톤턴은 잠시 압박에서 벗어났다.
산마리노를 상대로 5-0 승리 (옛 랜스다운 로드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를 거두었으나, 이후 경기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경기 종료 4분 전 스티븐 아일랜드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며 힘겹게 승점 3점을 획득했다. 이 경기로 인해 감독 사임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24]
이후 아일랜드는 웨일스와 슬로바키아를 상대로 홈에서 1-0으로 연승을 거두며 UEFA 유로 2008 예선 D조 2위 경쟁에 뛰어들었다. 2007년 8월 22일 오르후스에서 덴마크와의 비공식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25]
그러나 9월, 아일랜드는 슬로바키아 원정에서 2-2 무승부, 프라하에서 체코에게 1-0 패배를 당하며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10월에는 크로크 파크에서 독일과 0-0, 키프로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26]
팬들의 불만 속에서 FAI는 10월 23일 긴급 회의를 소집하여 스톤턴의 거취를 논의했다.[27] 스톤턴은 사임을 거부하고 4년 계약을 모두 채우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26] 2007년 10월 23일, FAI와의 비공개 회의 끝에 스톤턴의 21개월간의 감독 생활은 종료되었다.[29][30] 그는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감독으로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대표팀을 맡은 돈 기븐스로 교체되었다.[31]
3. 2. 기타 감독 경력
아일랜드 공화국이 2006년 FIFA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면서 브라이언 커 감독의 임기가 종료되었다.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는 후임 감독으로 스톤턴을 임명했는데, 이는 그의 부족한 경력으로 인해 다소 충격적인 결정이었다.[16][17] 바비 롭슨 경이 국제 컨설턴트, 케빈 맥도널드가 코치로 합류하여 그를 보좌했다.[15]스톤턴은 감독 부임 후 가진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가진 팀의 수준이 앞으로 다가올 도전에 엄청난 경험과 재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보스입니다. 저는 감독입니다. 결국 제가 말하는 것이 다이며,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밝혔다.[18]
스톤턴의 감독 경력 초반은 성공적이었다. 스웨덴과의 데뷔전에서 3-0 승리를 거두었으나,[18] 이후 칠레와 네덜란드에 연패하며 어려움을 겪었다.[19] 특히 네덜란드전 0-4 패배는 아일랜드의 40년 만의 최악의 홈 경기 패배였다.
UEFA 유로 2008 예선에서 아일랜드는 독일에 패하고, 키프로스에 2-5로 대패하며 위기를 맞았다.[22] 스톤턴은 사임 압박을 받았으나,[22] 체코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한숨 돌렸다. 이후 산마리노를 5-0으로 대파했지만, 경기 막판에 결승골을 넣어 2-1로 힘겹게 승리하면서 다시 비판에 직면했다.[24]
웨일스와 슬로바키아를 연파하며 반등하는 듯했으나, 슬로바키아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체코에 패하며 UEFA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2007년 10월 23일, FAI는 긴급 회의 끝에 스톤턴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30] 그의 후임으로는 돈 기븐스가 임시 감독을 맡았고, 이후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31]
4. 수상 내역
'''리버풀'''
- 풋볼 리그 1부 디비전: 1989-90
- FA컵: 1988-89
- FA 채리티 실드: 1988, 1990 (공동 우승)
'''아스톤 빌라'''
'''개인'''
4. 1. 클럽
스톤턴은 17세의 나이로 고향 클럽인 던독에서 뛰는 모습을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 감독에게 발탁되어 1986년 9월 2일에 20000GBP의 이적료로 영입되었다.[4]그는 처음 두 시즌을 리저브 팀에서 보냈고, 1987-88 시즌 동안 부상당한 칼 고다드를 대신하여 브래드포드 시티로 8경기를 임대 뛰기도 했다. 1988년 9월 17일 안필드에서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1-1 리그 경기에서 리버풀 데뷔전을 치렀다. 인상적인 활약으로 인해, 그는 전년도에 리그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 주변 선수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팀에 남았다. 인상적인 데뷔 이후, 3일 뒤인 9월 20일에 첫 골을 넣었지만, 그의 80분 골은 아스널 FC가 센테너리 트로피 준결승에서 2-1로 승리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장 앨런 한센의 부상으로 인해, 주전 레프트 백인 게리 에이블렛이 센터백으로 이동해야 했다. 따라서 스톤턴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강력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서 인상적이고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리버풀이 다시 한번 우승 경쟁을 하는 데 기여했다.
힐스버러 참사 이후, 1989년 4월 15일 FA컵 준결승전에서 97명의 팬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는데, 스톤턴은 슬픔에 잠긴 가족들을 위로하고 많은 장례식에 참석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또한 한 달 뒤 재경기를 치른 FA컵 준결승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리버풀은 노팅엄 포레스트 FC를 3-1로 이겼다.
스톤턴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 출전했는데, 연장전 시작과 함께 교체되었다. 리버풀은 머지사이드 라이벌 에버튼 FC를 3-2로 꺾었다. 그러나 시즌은 리버풀이 아스널과의 안필드에서 열린 우승 결정전에서 리그 타이틀을 놓치면서 실망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아스널은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고, 경기 종료 몇 초를 남기고 1-0으로 앞서 있었다. 시즌의 마지막 킥과 거의 동시에 마이클 토마스가 리즈 수비의 중앙을 뚫고 득점하며, 리버풀이 두 번째 리그 및 FA컵 더블을 달성하는 것을 막았다. 이는 아직 어떤 잉글랜드 클럽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었다.
다음 해, 스톤턴은 리버풀이 리그 타이틀을 탈환하는 데 다시 자주 기여했다. 1989년 10월 4일, 그는 리그 컵 경기에서 위건 애슬레틱을 상대로 교체 출전하여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리버풀에서의 첫 골을 놀라운 방식으로 기록했다.[4] 다음 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크루 알렉산드라를 상대로, FA컵에서 블랙번 로버스를 상대로 두 골을 더 넣었다.[5][6] 그러나 1990-91 시즌은 그가 1991년 8월 7일에 1100000GBP에 애스턴 빌라로 이적하기 전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새로운 감독 그라엠 수네스는 선수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유럽 대회 규정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스톤턴은 외국인으로 분류되었고, 팀당 4명 이상 출전할 수 없었다. 보스만 판결 (회원국 팀에서 EU 시민에 대한 쿼터 폐지 포함)은 1995년에 통과되었다.

스톤턴은 1991년 8월 17일 힐스보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데뷔전을 치렀고, 골까지 기록하여 빌라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곧 전설적인 빌라 선수 폴 맥그레스와 함께 빌라 수비의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은 1991-92 시즌에 7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그는 첫 프리미어리그 시즌에서 클럽이 우승 경쟁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빌라는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했고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다음 시즌 그는 부상당한 빌라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복수에 성공하는 데 기여하며 리그 컵 우승 메달을 획득했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국내 3관왕을 놓침). 리그 컵 메달로 그의 국내 메달 세트가 완성되었다. 1994-95 시즌에는 클럽의 감독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정기적으로 팀의 주장을 맡았다. 1995-96 시즌은 스톤턴에게 복합적인 시즌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리즈 유나이티드를 3-0으로 완승하는 훌륭한 경기의 비출전 교체 선수로 또 다른 리그 컵 메달을 획득했지만, 여러 부상으로 인해 출전 시간이 제한되었다.
다음 두 시즌 동안 그는 다시 수비의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1996-97 시즌 UEFA 컵 8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는 또한 빌라에서 뛰는 동안 코너킥에서 골을 넣기도 했다. 한편, 리그에서는 1996-97 시즌 5위, 1997-98 시즌 7위를 기록하며 과도기적인 빌라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도왔다. 빌라와의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던 그는 1998년 7월 3일 공동 감독 로이 에반스와 제라르 울리에가 그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면서 놀랍게도 리버풀로 복귀했다.
1999년 9월 27일, 안필드에서 열린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산데르 베스터벨트가 프란시스 제퍼스와 싸우다 퇴장당한 후, 리버풀이 세 명의 교체 선수를 모두 사용한 상황에서 스톤턴은 경기의 마지막 15분을 골키퍼로 뛰었다. 그는 리버풀에서의 두 번째 시절에 한 골을 기록했는데, 1999년 9월 헐 시티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7]
그의 두 번째 머지사이드 시절은 2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후 그는 자유 계약으로 떠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6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트랜미어 로버스 상대로 한 골을 기록한 짧은 임대 기간을 거친 후,[8] 그는 2000년 11월 23일 그리스팀 올림피아코스와의 UEFA 컵 2-2 무승부 경기에서 리버풀 소속으로 148번째이자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안필드로 소환되었다.[9] 2000년 12월 7일, 그는 다시 자유 계약으로 아스톤 빌라에 합류했다. 그는 구단의 남은 리그 경기 중 14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두 시즌 동안 정기적으로 출전했다. 그는 빌라에서 두 번째로 뛰는 동안 한 골을 넣었는데, 이 골은 FC 취리히와의 인터토토컵 경기에서 나왔다.[10]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코벤트리 시티 FC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2005년에는 월솔 FC에서 뛰었다.
그의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 | 팀 | 비고 |
---|---|---|
1985-1986 | 던독 FC | |
1986-1991 | 리버풀 FC | |
1987 | 브래드포드 시티 AFC | 임대 |
1991-1998 | 애스턴 빌라 FC | |
1998-2000 | 리버풀 FC | |
2000 | 크리스탈 팰리스 FC | 임대 |
2000-2003 | 애스턴 빌라 FC | |
2003-2005 | 코벤트리 시티 FC | |
2005 | 월솔 FC |
4. 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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