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소 (처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양소(楊素, ? ~ 606년)는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으며, 수나라 개국 1등공신으로, 수나라 문제 양견과 수 양제를 보좌하며 권력을 누렸으나, 수 양제의 시샘으로 인해 파직된 뒤 사사되었다. 그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도록 도왔고,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킬 때 대장군으로 활약했으며, 황태자 양광을 책봉하는 데 기여했다. 605년 상서령이 되었고, 낙양 건설을 담당했으나, 이듬해 승상에 임명된 후 파직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아들 양현감은 후에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다.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는데, 북주의 무제인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폐하께옵서는 저의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시옵니다!"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우문옹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자, 아내인 정씨가 탄원하여 남편 양소의 잘못을 빌자, 우문옹은 그를 특사시켰다고 한다.
2. 생애
양소는 그 이후,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세우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589년에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기 위해 출병하자, 양소는 대장군 겸 개봉자사로서 원정에 출정했고, 그 원정군의 대총관인 진왕 양광을 보좌하였다. 이후, 진이 멸망되자, 양소는 진의 황제였던 진숙보의 딸 낙창공주를 자신의 측실로 삼기도 했다. 그 공으로 형주총관의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592년에는 조정에서 제일 높은 벼슬인 상서우복야의 벼슬과 월국공(越國公)의 작위 또한 받았다. 그리고 이 때에 고경, 장형, 우문술 등이 출세하여 벼슬을 받았다.
598년에는 서돌궐을 대패시켰으며, 600년에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자, 그 자리에 차남인 양광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604년에 양견이 병이 들자, 양광은 양소와 담합하여 부황 양견을 시해한다.
605년에는 상서령에 봉해졌고, 동도인 낙양의 건설도 담당하였다. 이듬해에 승상 겸 사도의 직책을 받고, 초공(楚公)으로 봉해졌으나 양광의 시샘을 받아 파직된 뒤 결국은 사사당했다. 그의 장남인 양현감은 훗날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2. 1. 북주 시기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다.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는데, 북주의 무제인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폐하께옵서는 저의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시옵니다!"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우문옹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자, 아내인 정씨가 탄원하여 남편 양소의 잘못을 빌자, 우문옹은 그를 특사시켰다고 한다.
양소는 그 이후,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세우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2. 2. 수나라 건국과 활약
양소는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고,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으나, 무제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라는 폭언을 퍼부었고, 이로 인해 감옥에 갇혔으나 아내 정씨의 탄원으로 특사되었다.
이후 양소는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가 양견을 도와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건국하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589년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기 위한 원정에 대장군 겸 개봉자사로서 출정했고, 원정군의 대총관인 진왕 양광을 보좌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 양소는 진의 황제였던 진숙보의 딸 낙창공주를 측실로 삼았다. 그 공으로 형주총관의 벼슬을 받았다. 592년에는 상서우복야의 벼슬과 월국공(越國公)의 작위를 받았고, 이 때에 고경, 장형, 우문술 등이 출세하여 벼슬을 받았다.
598년 서돌궐을 대패시켰으며, 600년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자, 양광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604년 양견이 병이 들자, 양광과 담합하여 부황 양견을 시해했다.
605년 상서령에 봉해졌고, 동도인 낙양 건설을 담당했다. 이듬해에 승상 겸 사도의 직책을 받고 초공(楚公)으로 봉해졌으나, 양광의 시샘을 받아 파직된 뒤 결국 사사당했다. 그의 장남 양현감은 훗날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2. 3. 수 양제 시기와 죽음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다.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는데, 북주의 무제인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폐하께옵서는 저의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시옵니다!"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우문옹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자, 아내인 정씨가 탄원하여 남편 양소의 잘못을 빌자, 우문옹은 그를 특사시켰다고 한다.
양소는 그 이후,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세우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589년에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기 위해 출병하자, 양소는 대장군 겸 개봉자사로서 원정에 출정했고, 그 원정군의 대총관인 진왕 양광을 보좌하였다. 이후, 진이 멸망되자, 양소는 진의 황제였던 진숙보의 딸 낙창공주를 자신의 측실로 삼기도 했다. 그 공으로 형주총관의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592년에는 조정에서 제일 높은 벼슬인 상서우복야의 벼슬과 월국공(越國公)의 작위 또한 받았다. 그리고 이 때에 고경, 장형, 우문술 등이 출세하여 벼슬을 받았다.
598년에는 서돌궐을 대패시켰으며, 600년에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자, 그 자리에 차남인 양광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604년에 양견이 병이 들자, 양광은 양소와 담합하여 부황 양견을 시해한다.
605년에는 상서령에 봉해졌고, 동도인 낙양의 건설도 담당하였다. 이듬해에 승상 겸 사도의 직책을 받고, 초공(楚公)으로 봉해졌으나 양광의 시샘을 받아 파직된 뒤 결국은 사사당했다. 그의 장남인 양현감은 훗날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3. 가계
손자 : 양대(楊臺) - 혹은 양숭본(楊崇本). 당나라에서 송주(宋州)자사를 지냈다.
손녀 : 양(楊)씨 - 이름 미상. 후에 당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3. 1. 자녀
4. 평가
5. 양소가 등장한 작품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