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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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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경은 춘추 시대 계나라에서 건설되어 연나라의 수도가 된 도시로,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이름이 바뀌었다. 진나라 때 광양군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한 시대에는 범양으로 개명되었다. 후한 시대에는 유주의 주도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민족의 침입과 황건적의 공격을 받았다. 후한 말 유언, 유우 등이 다스렸으며, 공손찬, 원소, 조조 등의 세력 다툼을 거쳤다. 당나라와 후진 시대에는 군사·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으며, 안녹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요나라 시대에는 남경, 금나라 시대에는 중도로 불렸으며, 원나라 때 연경으로 회귀했다. 명나라 시대에 북경으로 개명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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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일반 정보
한국어 표기연경
중국어 간체北京
중국어 번체北京
병음Běijīng
로마자 표기Beijing
옛 이름幽州 (Yōuzhōu, 유주)
薊 (Jì, 계)
燕 (Yān, 연)
中都 (Zhōngdū, 중도)
大都 (Dàdū, 대도)
北平 (Běipíng, 북평)
지도 정보
역사
기원기원전 1045년
수도 지정금나라: 1153년
원나라: 1272년
명나라: 1421년
현재 이름 사용 시작1403년 (명나라 영락제)
지리
위치화북 평원 북서쪽
면적16,410.54 km²
인구 통계
인구 (2020년)21,893,095명
인구 밀도1,334명/km²
행정 구역
구분직할시
16개
없음
정치
시장인용 (殷勇, Yīn Yǒng)
약칭京 (Jīng, 경)
경제
GDP (2023년)4조 3761억 위안
상징
시화국화
시목자작나무
기타
시간대UTC+8 (중국 표준시)
우편 번호100000
지역 번호010
차량 번호판

2. 역사

원나라에 점령된 이후 '''연경'''으로 이름이 돌아왔으며, 대도가 북쪽에 세워졌다.[1] 명나라 시대에 '''북경'''(北京)으로 개명되었으며, 이후 현재까지 이름을 유지하였다.[1]

2. 1. 고대

춘추 시대 계나라가 베이징 지역에 도시를 건설했으며, 연나라가 계나라를 점령한 후 수도로 삼았다.[1] 기원전 222년 진 시황제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이후에는 광양군(廣陽郡)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전한 시대에는 '''범양'''(范陽)으로 개명되어 어양군(漁陽郡)의 중심지가 되었다.[1] 후한 시대에는 유주의 주도 역할을 담당하였다.[1] 중국 본토 북쪽 경계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잦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으며, 후한 말기에는 황건적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1]

2. 2. 중세

후한 말기 유주자사(幽州刺史) 유언이 다스렸으며, 유언이 익주목(益州牧)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새로운 유주목(幽州牧)으로 임명된 유우가 다스렸다. 이후 유우와 대립하여 그를 죽인 공손찬에게 점령되었으며, 그 뒤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킨 원소에 의해 함락되었다. 원소의 세력이 조조에게 멸망한 이후에는 조조의 세력에 속하였으며, 이후 조위서진 시대에도 유주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1]

당나라후진 시대에는 영주(营州)와 대주(代州)에서 군사적 ·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이 근거지로 삼았다.[1] 요나라 시대에 '''남경'''(南京)으로 개명하였으며, 요나라의 남쪽 수도가 되었다.[1] 금나라 시대에 이름을 중도로 고쳤으며, 금나라의 중앙 수도로 결정되었다.[1]

2. 3. 근대

당나라와 후진 시대에 영주(营州)와 대주(代州)에서 군사적 ·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이 근거지로 삼았다. 요나라 시대에 '''남경'''(南京)으로 개명하였으며, 요나라의 남쪽 수도가 되었다. 금나라 시대에 이름을 중도로 고쳤으며, 금나라의 중앙 수도로 결정되었다. 원나라에 점령된 이후에는 '''연경'''으로 회귀하였으며, 북쪽 자리에 대도가 세워진 이후에는 이 명칭으로 불렸다. 명나라 시대에 '''북경'''(北京)으로 개명하였으며, 이후 현재까지 이름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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