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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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유선우는 기원전 114년 아버지 이지사 선우가 죽자 선우가 되었다. 그는 한나라가 남월, 동월과 전쟁 중일 때는 한나라와 충돌을 피했으나, 한 무제가 무력 시위를 하자 곽길을 추방하며 반발했다. 이후 한나라와 화친을 도모하며, 한나라 사신을 억류하고 변경을 침입하기도 했다. 기원전 105년 재위 10년 만에 사망했으며, 아들 아선우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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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선우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작위 | 탱리고도선우 |
휘 | 오유 |
통치 | |
재위 | 기원전 114년 - 기원전 105년 |
전임자 | 이지사선우 |
후임자 | 아선우 |
가계 | |
왕조 | 흉노 |
가문 | 연제씨 |
아버지 | 이지사선우 |
자녀 | 아선우 |
친인척 | 이손 악연구제선우, 도기선우, 윤진선우 |
생애 | |
사망일 | 기원전 105년 |
2. 생애
기원전 114년, 아버지 이지사선우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4]
오유선우 즉위 초, 한나라는 남쪽의 남월과 동월 정벌 중이었다. 《사기》와 《한서》 흉노전에는 흉노가 한나라를 침탈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었으나, 《한서》 무제기에는 기원전 112년 가을 흉노가 오원군을 공격해 태수를 죽였다고 한다. 기원전 111년, 한나라는 남월과 동월을 멸망시킨 후 공손하와 조파노에게 흉노 공격을 명했으나, 이들은 흉노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기원전 110년 겨울, 한 무제는 18만 기병으로 국경에서 무력 시위를 하고, 곽길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오유선우는 곽길을 만나게 한 주객(主客)[5]을 목 베고 곽길을 바이칼호로 유배했으나, 한나라와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며 화친을 모색했다.
한나라는 북지군 출신 왕오 등을 보냈는데, 왕오는 흉노 관습에 따라 절(사신의 부절)을 치우고 얼굴에 먹물을 들여 선우의 천막에 들어갔다. 그는 거짓으로 태자를 한나라에 볼모로 보내겠다고 했다. 기원전 107년, 한나라 사신 양신은 태자를 볼모로 요구했으나, 오유선우는 묵돌선우와 한 고제 시절 맺은 약속과 다르다며 거절했다. 그는 한나라 재물을 탐내 왕오에게 자신이 직접 한나라 천자를 만나러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나라에서 사신 지위가 낮다고 트집을 잡았다. 흉노 고위 인사를 사신으로 보냈으나 병사하자, 한나라가 사신을 죽였다고 의심하여 한나라 사신 노충국을 억류하고 한나라 변경을 침입했다.
이후 오유선우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은 "죽음" 하위 섹션에 자세히 나와있다.
2. 1. 한나라와의 관계
오유선우는 기원전 114년, 아버지 이지사선우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4]오유선우가 즉위했을 무렵, 한나라는 남쪽의 남월과 동월을 정벌하고 있었다. 《사기》와 《한서》 흉노전에서는 흉노가 한나라를 침탈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한서》 무제기에서는 기원전 112년 가을에 흉노가 오원군을 공격하여 태수를 살해했다고 전한다. 기원전 111년, 한나라는 남월과 동월을 멸망시킨 후 공손하와 조파노에게 흉노 공격을 명했으나, 이들은 흉노와 교전하지 못하고 회군했다.[1]
기원전 110년, 한 무제는 18만 기병을 이끌고 국경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며, 곽길을 사신으로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오유선우는 이에 분노하여 곽길을 바이칼호로 유배했다.[2] 그러나 한나라와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며 화친을 모색했다.
한나라는 북지군 출신 왕오 등을 사신으로 보냈는데, 왕오는 흉노의 관습에 따라 사신의 부절을 치우고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등 흉노의 풍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선우의 천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왕오는 거짓으로 태자를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기원전 107년, 한나라 사신 양신은 태자를 인질로 요구했으나, 오유선우는 묵돌선우와 한 고제 시절 맺은 약속(한나라 공주를 흉노에 출가시키고 공물을 바치는 것)과 다르다며 거절했다.
오유선우는 한나라의 재물을 탐내 왕오에게 자신이 직접 한나라 천자를 만나러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나라에서 사신의 지위가 낮다고 트집을 잡았다. 흉노의 고위 인사를 사신으로 보냈으나 병으로 죽자, 한나라가 사신을 죽였다고 의심하여 한나라 사신 노충국을 억류하고 한나라 변경을 침입했다.
기원전 105년, 오유선우는 재위 10년 만에 사망했다.[4]
2. 2. 죽음
기원전 105년, 오유선우는 재위 10년 만에 죽었고, 아들 아선우가 그 뒤를 이었다.[4] 오유선우의 이손(耳孫)은 악연구제선우와 그의 사촌 형제들로 흉노 분열기에 선우가 된 도기선우·윤진선우이다.[3]참조
[1]
서적
Collection of information on peoples in Central Asia in ancient times
[2]
서적
Collection of Information on Peoples in Central Asia in Ancient Times
[3]
서적
Collection of Information on Peoples in Central Asia in Ancient Times
[4]
문서
이지사선우 시절인 기원전 123년, [[우북평군]]에서 쳐들어온 한나라 [[이광]]을 좌현왕이 포위해 많은 손실을 보았으나 이광의 군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이광은 [[장건]]의 구원을 받아 겨우 퇴각했다. 기원전 121년에는 좌현왕이 [[곽거병]]과 싸워 7만 명이 죽거나 사로잡혔고 장군들과 함께 달아났다. 좌현왕이 흉노의 태자에 해당하긴 하지만, 이 좌현왕이 이지사선우의 아들로서 이지사선우를 계승한 오유인지는 기록이 없다.
[5]
문서
흉노의 관직 이름으로 접객을 관장하는 외교 업무를 맡은 것으로 추정되며, 한나라의 [[대홍려|전객]]에 해당한다.
[6]
문서
한나라의 관직 등급으로, 구경·낭장·태수·군위에 상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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