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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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이드스크린은 영화 및 텔레비전에서 넓은 화면 비율을 지칭하며, 1950년대 영화에서 입체감을 높이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시네마스코프, 비스타비전, 시네라마 등 다양한 방식이 개발되었으며, 1990년대 이후 텔레비전에서도 와이드스크린이 도입되어 16:9 화면 비율이 일반화되었다. 현재는 디지털, 고화질 텔레비전, DVD, 블루레이 등 다양한 디지털 소스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 화면의 가로세로 비율은 4:3(횡종비 1.33)이었으나, 1950년대 전반에 들어 화면 비율을 넓혀 입체감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등장했다.
초기 TV 방송의 화면 비율은 4:3(1.33:1)으로, 이는 TV가 처음 상업적으로 판매될 당시 대부분의 영화 화면 비율과 동일했다. 따라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이 4:3 비율로 제작된 1930년대와 1940년대 영화들은 TV 화면 전체를 채워 방영될 수 있었다.
2. 영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20세기 폭스사가 실용화한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이다. 이는 촬영 시 특수한 애너머픽 렌즈를 사용하여 일반 영화 필름에 가로로 압축된 영상을 기록하고, 영사 시 다시 원래 비율로 복원하여 2.5:1의 넓은 화면을 만드는 방식이다. 시네마스코프는 오늘날 가장 널리 보급된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파라마운트사는 35mm 필름을 가로 방향으로 뉘어 촬영하는 비스타비전(VistaVision) 방식을 개발했다. 이 방식은 1.65:1에서 1.85:1 사이의 화면 비율을 가지며, 화질이 선명하다는 장점이 있어 시네마스코프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다. 시네마스코프와 비스타비전은 종종 입체 음향 기술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보다 더 넓은 화면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로 시네라마(Cinerama)가 등장했다.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된 이 방식은 3대의 35밀리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하고 3대의 영사기로 상영하여 매우 넓은 시야각(약 146°)을 제공했다.[12] 1950년 영화 ''이것이 시네라마다''가 제작되면서 시네라마의 유행이 시작되었다.
2. 1. 역사
와이드스크린은 1897년 영화 ''코벳-피츠시몬스 싸움''The Corbett-Fitzsimmons Fight영어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영화는 당시 100분 길이로 가장 긴 영화였을 뿐만 아니라, 프레임당 5개의 천공이 있는 63mm 이스트만 코닥 필름으로 촬영된 최초의 와이드스크린 영화이기도 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일부 단편 영화, 뉴스 영화, 그리고 장편 영화에서 와이드스크린이 시도되었다. 특히 아벨 강스 감독의 1927년작 ''나폴레옹''Napoléon프랑스어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이 폴리비전이라고 명명한 방식으로 제작된 와이드스크린 시퀀스를 포함했다. 클로드 오탕-라라 감독은 앙리 크레티앙이 개발한 초기 와이드스크린 공정을 사용하여 1928년 영화 ''불을 지펴라''Pour construire un feu프랑스어를 만들었는데, 이 공정은 훗날 1952년 20세기 폭스가 시네마스코프를 개발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조지 K. 스포어와 P. 존 베르그렌이 개발한 실험적인 내추럴 비전(Natural Vision) 와이드스크린 공정은 63.5mm 필름을 사용했으며 2:1의 화면비를 가졌다. 1926년에는 이 방식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촬영한 영화가 개봉되었고,[1][2] 1927년에는 J. 스튜어트 블랙턴이 감독하고 베시 러브와 찰스 레이가 출연한 영화 ''아메리카인'' ''깃발 제작자''The American|디 아메리칸영어 The Flag Maker|더 플래그 메이커영어 제작에 사용되었으나, 이 영화는 극장에 개봉되지 못했다.
1929년 5월 26일, 폭스 영화사는 뉴욕 시에서 폭스 그랜드 뷰(Fox Grandeur) 공정으로 제작된 ''폭스 그랜드 뷰 뉴스''와 뮤지컬 영화 ''폭스 무비톤 폴리스 오브 1929''Fox Movietone Follies of 1929영어를 개봉했다. 이어서 자넷 게이노어, 찰스 파렐, 그리고 당시 12세였던 베티 그레이블이 코러스 걸로 출연한 뮤지컬 영화 ''해피 데이즈''Happy Days영어가 1930년 2월 13일 뉴욕 록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존 맥코맥 주연, 프랭크 보제지 감독의 뮤지컬 영화 ''송 오브 마이 하트''Song o' My Heart영어는 1930년 3월 17일 완성되었으나 와이드스크린 버전은 개봉되지 않았고 현재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5mm 버전은 1930년 3월 11일 뉴욕에서 개봉). 존 웨인과 타이론 파워 시니어가 출연한 서부극 ''더 빅 트레일''The Big Trail영어 역시 폭스 그랜드 뷰 공정으로 제작되어 1930년 10월 2일 할리우드의 그라우먼즈 차이니즈 극장에서 초연되었다.[3] 이 영화들은 모두 70mm 폭스 그랜드 뷰 공정으로 제작되었다.
다른 영화사들도 와이드스크린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RKO 라디오 픽처스는 진 아서, 루이 볼하임, 로버트 암스트롱이 출연한 ''데인저 라이트''Danger Lights영어를 1930년 8월 21일, 조지 K. 스포어가 발명한 65mm 내추럴비전 공정으로 개봉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는 롤랜드 웨스트 감독의 ''더 배트 휘스퍼스''The Bat Whispers영어를 1930년 11월 13일, 마그나필름(Magnifilm)이라는 70mm 와이드스크린 공정으로 개봉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1930년 ''송 오브 더 플레임''Song of the Flame영어과 ''키스멧''Kismet영어을 비타스코프(Vitascope)라는 와이드스크린 공정으로 개봉했다. MGM은 판톰 스크린(Fantom Screen)이라는 시스템을 실험한 후, 리얼라이프(Realife)라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1930년 ''더 그레이트 메도우''The Great Meadow영어를 촬영했지만, 관객의 관심 감소로 인해 이 공정으로 개봉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1932년까지 계속된 대공황으로 인해 영화 스튜디오들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와이드스크린 개발 및 제작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1950년대에 들어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영화 관람객 수가 줄어들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영화계는 다시 와이드스크린 포맷에 주목하게 되었다.[4]
1950년대 전반, 기존 영화의 표준 화면 비율인 1.33:1(가로:세로=4:3)보다 가로 비율을 크게 늘려 입체감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와이드스크린 영화 시대가 열렸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20세기 폭스가 실용화한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이다. 이는 촬영 시 렌즈 앞에 원통형 렌즈를 덧붙인 애너머픽 렌즈(anamorphic lens)를 사용하여 일반 35mm 필름에 가로 방향으로 압축된 이미지를 기록한다. 영사할 때도 동일한 애너머픽 렌즈를 사용하여 원래의 넓은 화면으로 복원하는 방식이며, 화면 비율은 2.5:1에 달했다. 이 방식은 19세기 말에 처음 고안되었으나 20세기 폭스에 의해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오늘날 가장 널리 보급된 와이드스크린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파라마운트사는 35mm 필름을 가로 방향으로 뉘어서 촬영하여 25.3×37.4mm 크기의 더 넓은 화면을 확보하는 비스타비전(VistaVision) 방식을 개발했다. 이렇게 촬영된 필름은 일반 영사기로 상영할 수 없기 때문에, 촬영된 네거티브 이미지를 90° 회전시킨 후 축소하여 인화하고, 필름을 세로로 보내는 일반 영사기에 광각 렌즈를 부착하여 상영했다. 비스타비전의 화면 비율은 1.65:1에서 1.85:1 사이로, 시네마스코프와 기존 표준 화면의 중간 정도였다. 이 방식은 촬영 시 화면 크기가 커서 화질이 매우 선명하다는 장점이 있어 시네마스코프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일부 감독들은 화면 왜곡이 발생하는 애너머픽 렌즈 대신 비스타비전과 같은 비(非) 아나모픽 방식을 선호하기도 했다.[4] 시네마스코프와 비스타비전은 모두 입체 음향 기술과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보다 더 넓은 화면을 구현하려는 시도로 시네라마(Cinerama)가 등장했다. 시네라마는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1950년 본격적인 시네라마 영화 ''이것이 시네라마다''This is Cinerama영어가 제작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네라마는 동일한 초점 거리의 렌즈를 장착한 3대의 35mm 촬영기를 동시에 사용하여 약 146°에 달하는 넓은 화각을 촬영하고, 상영 시에도 3대의 영사기를 동시에 사용하여 거대한 곡면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식이었다.[12]
2. 2. 종류
일반적인 영화의 화면 비율은 세로와 가로의 비율이 3:4(횡종비 1.33)이지만, 1950년대 전반에는 화면 비율을 넓혀 입체감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등장했다. 와이드스크린은 이미 1897년 영화 ''코벳-피츠시몬스 싸움''에서 처음 사용된 바 있다. 이 영화는 당시 100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뿐만 아니라, 프레임당 5개의 천공이 있는 63mm 이스트만 코닥 필름으로 촬영된 최초의 와이드스크린 영화이기도 했다.
1920년대 후반, 일부 단편 영화, 뉴스 영화, 장편 영화 등에서 와이드스크린이 시도되었다. 특히 아벨 강스 감독의 1927년 영화 ''나폴레옹''의 마지막 장면은 폴리비전(Polyvision)이라는 와이드스크린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클로드 오탕-라라는 앙리 크레티앙이 개발한 초기 와이드스크린 기술을 사용하여 1928년 영화 ''불을 지펴라''(Pour construire un feu프랑스어)를 만들었는데, 이 기술은 훗날 1952년 20세기 폭스가 시네마스코프를 개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조지 K. 스포어와 P. 존 베르그렌은 63.5mm 필름을 사용하고 2:1의 화면비를 갖는 실험적인 내추럴 비전(Natural Vision) 와이드스크린 방식을 개발했다. 1926년에는 이 방식으로 촬영된 나이아가라 폭포 영상이 공개되었고,[1][2] 1927년에는 J. 스튜어트 블랙턴 감독, 베시 러브, 찰스 레이 주연의 영화 ''아메리카인''(The American) 제작에 사용되었으나 극장 개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29년 5월 26일, 폭스 영화사는 뉴욕 시에서 폭스 그랜드 뷰(Fox Grandeur)라는 70mm 필름 방식을 공개하며 ''폭스 그랜드 뷰 뉴스''와 ''폭스 무비톤 폴리스 오브 1929''를 상영했다. 이 방식으로 제작된 다른 영화로는 뮤지컬 영화 ''해피 데이즈''(1929), 존 맥코맥 주연의 ''송 오브 마이 하트''(Song o' My Heart, 1930), 존 웨인 주연의 서부극 ''더 빅 트레일''(The Big Trail, 1930) 등이 있다.[3]
RKO는 1930년 8월, 진 아서, 루이 볼하임, 로버트 암스트롱 주연의 ''데인저 라이트''(Danger Lights)를 조지 K. 스포어가 발명한 65mm 내추럴비전 방식으로 개봉했다. 같은 해 11월,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는 롤랜드 웨스트 감독의 ''더 배트 휘스퍼스''(The Bat Whispers)를 마그나필름(Magnafilm)이라는 70mm 와이드스크린 방식으로 개봉했다. 워너 브라더스 역시 비타스코프(Vitascope)라는 와이드스크린 방식으로 ''송 오브 더 플레임''과 ''키스멧''(둘 다 1930년)을 개봉했다. MGM은 판톰 스크린(Phantom Screen) 실험 이후 리얼라이프(Realife)라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더 그레이트 메도우''(The Great Meadow, 1930)를 촬영했으나, 실제 이 방식으로 개봉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1932년 대공황으로 인해 영화사들이 제작비를 절감하면서 와이드스크린에 대한 관심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이후 1953년,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영화 관객이 감소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다양한 와이드스크린 방식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주요 와이드스크린 방식은 다음과 같다.2. 2. 1. 마스크 와이드스크린 (플랫)
마스크 와이드스크린 (또는 플랫) 방식은 1953년 4월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 방식은 구면 렌즈를 사용하여 네거티브 필름에 아카데미 비율로 이미지를 촬영한 뒤, 프로젝터에서 상영할 때 금속 조리개 판(aperture plate)을 이용해 이미지의 위아래를 가려서(masking) 극장 스크린 사양에 맞는 와이드스크린 화면비를 만든다. 또는 인쇄나 촬영 단계에서 미리 해당 영역을 가리는 하드 매트(hard matte)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극장에서는 여전히 조리개 판으로 정확한 영역을 맞춘다.
이 방식의 단점은 필름 이미지의 일부 영역만 전체 화면으로 확대하기 때문에, 필름 그레인(입자)이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스크 와이드스크린 형식으로 극장에서 상영되도록 만들어지지만, 텔레비전 방영 시에는 위아래를 가리지 않은 전체 프레임, 즉 오픈 매트(open matte) 방식으로 송출되기도 한다. 이 경우 촬영 감독은 극장 상영용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기준으로 구도를 잡으면서도, 오픈 매트 상영 시 화면에 나올 수 있는 마이크나 조명 장비 등이 보이지 않도록 전체 프레임을 관리해야 한다.
표준적인 '플랫' 와이드스크린의 화면비는 1.66:1, 1.75:1, 1.85:1, 2:1 등이 있으며, 이 중 1.85:1 비율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2. 2. 2. 35mm 아나모픽
35mm 아나모픽 방식은 시네마스코프, 파나비전 및 여러 유사한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와이드스크린 구현 기술이다. 촬영 단계에서 애너머픽 렌즈(anamorphic lens)라는 특수 렌즈를 사용하여 영상의 가로 폭을 압축하여 표준 35mm 필름에 기록한다. 이 때문에 필름 원본에는 피사체가 세로로 길쭉하게 왜곡된 상이 찍힌다. 영사 시에는 프로젝터에 장착된 또 다른 애너머픽 렌즈를 통해 압축된 영상을 원래의 가로세로 비율로 확대하여 넓은 화면을 만들어낸다.
시네마스코프는 이 방식을 처음으로 널리 알린 시스템으로, 촬영 시 렌즈 앞에 실린드리컬 렌즈(cylindrical lens)를 결합한 애너머픽 렌즈를 사용한다. 이 기술 자체는 19세기 말 앙리 크레티앙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으며, 이후 20세기 폭스가 1952년 시네마스코프라는 이름으로 상용화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아나모픽 방식으로 촬영된 영화는 일반적으로 2.39:1 화면비로 상영된다. 과거에는 사용된 사운드 포맷에 따라 2.66:1 (초기 자기 사운드 방식 기준), 2.55:1 (4트랙 자기 사운드 방식 기준), 2.35:1 (초기 모노 광학 사운드 및 후기 스테레오 방식 기준) 등 다양한 비율이 사용되기도 했다. 네거티브 필름 자체의 화면비는 보통 2.66:1이며, 드물게 2.55:1 또는 2.35:1 비율을 갖는다. 상영 화면비가 2.39:1(또는 2.40:1)로 조정된 주된 이유는 필름 편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네거티브 필름 연결 자국(splice)을 화면에서 더 효과적으로 가리기 위한 기술적인 권장 사항 변경 때문이었다.
2. 2. 3. 슈퍼 게이지
슈퍼 게이지 방식은 필름 네거티브의 전체 프레임을 사용하여 촬영하는 기술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사운드 트랙을 위해 남겨두었던 영역까지 포함하여 "전체" 조리개(full aperture|풀 애퍼처eng)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무성 영화 시절에는 표준이었고, 아나모픽 네거티브 촬영에서도 흔히 사용되었다. 촬영된 네거티브는 이후 편집 과정에서 인쇄물을 축소하거나 잘라내어, 최종적으로 사운드 트랙이 포함된 상영용 필름(release print|릴리스 프린트eng)에 맞게 조정된다. 이 방식의 장점 중 하나는 유연성인데, 예를 들어 슈퍼 35 포맷으로 촬영된 경우, 거의 모든 종류의 상영 표준 화면 비율로 최종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2. 2. 4. 대형 게이지
70mm 필름을 사용하는 대형 게이지 방식은 표준 35mm 필름 프레임보다 가로, 세로 모두 더 큰 필름 면적을 활용한다. 70mm 필름 프레임은 표준 35mm 프레임보다 2배 넓고, 높이도 더 크다(필름 천공 기준 5개 대 4개). 이 덕분에 70mm로 촬영하고 영사하면, 일반적인 35mm 필름보다 4배 이상 넓은 이미지 영역을 확보하여 훨씬 뛰어난 화질을 제공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는 제작비 등의 문제로 70mm 필름으로 전체 영화를 촬영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비교적 최근 작품으로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햄릿(1996),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2012),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에이트(2015) 등이 있다. 과거에는 아나모픽 방식으로 촬영된 대규모 예산 영화에서 CGI나 블루 스크린 합성이 필요한 특수효과 장면 촬영에 70mm 필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아나모픽 방식이 특수효과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많은 사운드 채널을 활용하기 위해 35mm로 촬영된 영화를 70mm 필름으로 확대 인화하여 일부 대도시의 특별 상영회(로드쇼)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이 도입되고 극장에 설치된 70mm 영사기 수가 줄어들면서 70mm 상영은 점차 사라졌다. 다만, 최근에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중심으로 35mm 필름을 아이맥스 규격으로 확대하여 상영하는 경우가 있다.
아나모픽 렌즈를 70mm 필름과 함께 사용하는 아나모픽 70mm 방식도 있다. "울트라 파나비전 70" 또는 "MGM 카메라 65"로 알려진 이 방식은 훨씬 더 넓고 높은 품질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으로 1959년작 벤허 리메이크에 사용되었으며, 2.76:1이라는 극도로 넓은 화면비를 구현했다. 이는 장편 영화 역사상 가장 넓은 화면 비율 중 하나이다. 아나모픽 70mm 방식은 매우 높은 제작 비용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지만, 광활한 풍경이나 수천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는 거대한 장면을 담아야 하는 벤허와 같은 서사 영화(epic film)에서 선호되었다. 현재 이 시스템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2. 2. 5. 다중 렌즈 카메라 / 다중 프로젝터
아벨 강스는 그의 서사 영화 ''나폴레옹''(1927)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폴리비전(Polyvision)이라는 3-프로젝터 방식을 개척했다. 이 방식은 1.33:1 비율의 이미지 3개를 나란히 배치하여 총 4:1의 종횡비를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상영하는 데 따르는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이 형식으로 영화를 상영하기를 꺼리거나 상영할 수 없었다.
이후 더 넓은 화면을 구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시네라마(Cinerama)가 등장했다. 시네라마는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1950년 본격적인 시네라마 영화인 ''이것이 시네라마다''가 제작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12] 초기 시네라마 시스템은 동일한 초점 거리의 렌즈를 장착한 3대의 35밀리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하여 가로 방향으로 약 146°의 넓은 화각을 담아냈고,[12] 상영 시에는 동시에 작동하는 3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결과물인 3개의 필름을 곡선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2.89:1이라는 매우 넓은 종횡비를 구현했다.
나중에 제작된 시네라마 영화들은 70 mm 아나모픽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이렇게 얻어진 넓은 화면의 이미지는 광학 인쇄기를 통해 3개로 나뉘어 최종적으로 3개의 필름으로 인쇄되었다. 시네라마 방식의 기술적인 단점들은 시네라마 문서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진다. 3대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시네라마 방식으로 촬영된 장편 극영화는 ''더 원더풀 월드 오브 더 브라더스 그림''과 ''서부 정복'' 단 두 편뿐이며, 후자의 일부 장면은 실제로는 울트라 파나비전으로 촬영되었다. 특수한 시네라마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간헐적으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이 형식은 현재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1956년과 1957년 사이에는 소련에서 키노파노라마(Kinopanorama)라는 시스템이 개발되었는데, 이는 원래의 3-카메라 시네라마 방식과 대부분의 측면에서 동일했다.
2. 2. 6. 아나모픽 70mm
70mm 필름에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울트라 파나비전" 또는 "MGM 카메라 65"라고 알려져 있다. 이 방식은 훨씬 더 넓고 높은 품질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1959년 영화 ''벤허'' 리메이크 제작에 사용되어, 당시 장편 영화 중 가장 넓은 화면비 중 하나인 2.76:1을 구현했다. 아나모픽 70mm 형식은 매우 높은 제작 비용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벤허''와 같이 넓은 파노라마 풍경이나 수천 명의 엑스트라와 거대한 세트가 등장하는 대규모 서사 영화 촬영에는 선호되었다. 이 시스템은 현재 쓸모없게 되었다.
3. 텔레비전
하지만 원래 와이드스크린으로 제작된 영화를 4:3 비율의 TV로 방송할 때는 화면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영화 화면의 좌우를 잘라내는 팬 앤 스캔 방식이나 화면 중앙부만 보여주는 방식이 흔히 사용되었다. 때로는 슈퍼 35 포맷 영화의 경우, 촬영 시 의도적으로 가렸던 화면 상하단의 매트 영역을 제거하고 네거티브 필름의 전체 영역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는 감독이 의도한 구도와 달라지거나 촬영 장비(붐 마이크 등)가 화면에 노출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현재 텔레비전은 16:9 화면 비율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와이드스크린 영화나 방송 콘텐츠를 화면 잘림이나 상하단의 검은 띠(레터박싱) 없이 온전히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상업용 와이드스크린 TV가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8][10], 와이드스크린 방식의 TV 방송도 점차 도입되었다.[9]
특히 디지털 방송과 고화질(HD) 기술의 발전은 와이드스크린 콘텐츠의 보급을 크게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DVD, 블루레이와 같은 디지털 저장 매체나 HDTV 방송은 기본적으로 16:9 화면 비율을 지원하며, 와이드스크린 TV와 함께 고화질 영상을 즐기는 표준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11]
3. 1. 와이드스크린의 도입과 전환
최초의 상업용 와이드스크린 TV 모델은 1992년 일본에서 출시되었으며[8], NTV를 시작으로 1995년에는 EDTV 와이드스크린 방송이 시작되었다.[9] 미국에서는 1993년 톰슨 컨슈머 일렉트로닉스의 RCA CinemaScreen이 최초의 와이드스크린 TV로 출시되었다.[10]
유럽에서는 PAL과 프랑스의 SECAM 표준 화질 시스템이 미국의 NTSC 표준보다 해상도가 높아, TV에서 영화를 레터박스 처리했을 때의 화질 저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했다.[11] 또한, PAL의 확장 기술인 PALplus가 개발되어, 전용 수신기와 방송국의 지원이 있다면 PAL 신호를 576개의 수직 해상도를 유지하며 16:9 비율로 표시할 수 있었다. 일반 PAL 수신기는 PALplus 방송을 16:9 이미지를 4:3 화면에 맞게 레터박스 처리하여 수신했으며, 이때 검은색 막대 부분에 약간의 색상 노이즈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색상 신호 내부에 숨겨진 추가 정보를 활용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NTSC 아날로그 방송을 위한 유사한 와이드스크린 시스템으로는 Clear-Vision이 있었다.
PALplus 기술과 DVB 기반의 디지털 위성, 지상파, 케이블 방송에서의 와이드스크린 지원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서 와이드스크린이 대규모로 채택된 국가는 벨기에, 아일랜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북유럽 국가, 영국 등 일부에 한정되었다. 특히 유럽 위성 방송의 와이드스크린 채널 절반 이상이 이들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영국은 1990년대 후반 디지털 지상파 텔레비전 도입과 함께 와이드스크린 전환을 본격화했으며, 2000년 7월 1일 'C-Day'부터는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와이드스크린 형식으로 제작하여 전달하도록 요구했다.
와이드스크린 텔레비전은 주로 디지털 방식의 고화질 텔레비전(HDTV) 수신기나 표준 화질(SD) DVD 플레이어 등 디지털 영상 소스와 함께 사용된다. 디지털 영상은 기본적으로 16:9 비율의 고화질 형식이거나, 아나모픽 압축 기술을 사용한 표준 화질 영상으로 와이드스크린 TV에 제공된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표준 화질 영상을 디코딩하는 장치는 TV 화면 비율에 맞춰(16:9 또는 4:3) 적절한 포맷으로 출력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제작자가 영상에 필요한 팬 앤 스캔 데이터를 포함시킨 경우, 4:3 화면에서도 팬 앤 스캔 모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데이터가 없으면 레터박스나 중앙 잘라내기 방식이 사용된다.
2006년에는 HD DVD와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도입되었으나, 도시바는 2008년 초 HD DVD 플레이어 생산을 중단했다. 또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소비자용 캠코더에서도 HD 비디오 형식을 지원하게 되면서,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와이드스크린 영상을 볼 수 있는 선택지가 더욱 다양해졌다.
3. 2. 현대 와이드스크린 TV
와이드스크린 텔레비전은 일반적으로 디지털 방식, 고화질 텔레비전 (HDTV) 수신기 또는 표준 화질 (SD) DVD 플레이어 및 기타 디지털 텔레비전 소스와 함께 사용된다. 디지털 자료는 와이드스크린 TV에 기본적으로 16:9 (1.78:1) 화면 비율의 고화질 형식 또는 아나모픽 압축된 표준 화질 영상으로 제공된다. 디지털 표준 화질 영상을 디코딩하는 장치는 연결된 TV의 화면 비율(16:9 또는 4:3)에 맞춰 출력 방식을 조절할 수 있다. 16:9 TV에는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포맷을 그대로 출력하고, 4:3 TV의 경우 제작자가 필요한 패닝 데이터를 포함했다면 팬 앤 스캔 모드를 사용하며, 해당 데이터가 없다면 레터박싱이나 중앙 부분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화면을 맞춘다.
유럽에서는 DVB 기반의 디지털 위성,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이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면서 보급이 확산되었으며, 특히 벨기에, 아일랜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북유럽 국가 및 영국 등에서 적극적으로 채택되었다.[11]
2006년에는 차세대 고화질 매체인 HD DVD 및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도입되었다. 도시바가 2008년 초 HD DVD 플레이어 생산을 중단하면서 블루레이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소비자용 캠코더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HD 비디오 형식을 지원하게 되면서 일반 사용자들도 직접 와이드스크린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와이드스크린 TV에서 고화질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더욱 확장시켰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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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Niagara Falls' (1926)"
http://www.silentera[...]
[2]
서적
The American Film Institute Catalog Feature Films: 1911–20
The American Film Institute
[3]
간행물
Magnified Grandeur
http://www.in70mm.co[...]
..in70mm
2013-06-27
[4]
웹사이트
North by Northwest
[5]
웹사이트
The Art of Filmmaking: Pablo Larrain
2016-11-28
[6]
웹사이트
Projecting and Excavating the Past: An Interview with Pablo Larraín
http://www.filmcomme[...]
2016-11-28
[7]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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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
Focal Press/Elsevier
2013-06-27
[8]
웹사이트
Japanese Taking to Wide-Screen TV
https://www.ny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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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Corporate History
https://www.ntv.co.j[...]
2024-01-06
[10]
웹사이트
RCA offering widescreen television
https://www.upi.com/[...]
[11]
웹사이트
NTSC vs PAL: What are they and which one do I use?
2014-08-21
[12]
문서
와이드 스크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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