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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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왜관읍은 경상북도 칠곡군에 위치한 읍으로, 1905년 경부선 왜관역 설치와 함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으로 변경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일본인 거주지였으며, 한국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였다. 현재는 가톨릭교회의 영향이 크며, 가실성당, 신나무골 성지, 왜관수도원 등이 위치해 있다. 경부고속도로 왜관 나들목과 경부선 왜관역이 있으며, 왜관초등학교 등 여러 학교가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왜관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포함지, 칠곡 왜관성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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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읍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왜관 |
한자 표기 | 倭館 |
![]() | |
행정 구역 | |
국가 | 대한민국 |
광역시/도 | 경상북도 |
시/군/구 | 칠곡군 |
읍/면/동 | 왜관읍 |
왜관읍 정보 | |
면적 | 54.12km2 |
세대 | 13,557 (2016년 12월 31일 기준) |
인구 | 32,651명 (2022년 3월 기준) |
법정리 | 9개 |
행정리 | 44개 |
반 | 398개 |
읍사무소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2번도로길 16 (왜관리 281-9) |
읍사무소 홈페이지 | 왜관읍사무소 |
2. 역사
조선시대에 왜관(倭館)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는데,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되었다. 왜관(Waegwan)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일본인 거주지"를 의미하며, 이는 조선 시대에 일본인 염상(鹽商)들이 이 마을을 자주 거쳐 갔음을 시사한다.
1939년 여름, 대구사범학교(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의 한국인 및 일본인 학생들이 경부선 철도 건설을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7월 26일, 왜관 사건(왜관사건)으로 알려진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 시위에서 한국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에 항의했다. 그 결과, 학생 7명이 퇴학당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 천주교가 전파된 본거지로 교육, 문화 면에서 천주교의 영향이 크며, 인근에 가실성당(1895년 설립)과 신나무골 성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1952년 설립)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전쟁 때 낙동강 전투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1959년부터 미군 부대 캠프 캐럴이 자리잡고 있다.
2. 1. 조선시대 왜관
조선시대에 왜관(倭館)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되었다. 왜관(Waegwan)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일본인 거주지"를 의미하며, 이는 조선 시대에 일본인 염상(鹽商)들이 이 마을을 자주 거쳐 갔음을 시사한다.1939년 여름, 대구사범학교(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의 한국인 및 일본인 학생들이 경부선 철도 건설을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7월 26일, 왜관 사건(왜관사건)으로 알려진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 시위에서 한국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에 항의했다. 그 결과, 학생 7명이 퇴학당했다.
2. 2. 일제강점기 왜관
조선시대에 왜관(倭館)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는데,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되었다. 왜관(Waegwan)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일본인 거주지"를 의미하며, 이는 조선 시대에 일본인 염상(鹽商)들이 이 마을을 자주 거쳐 갔음을 시사한다.1939년 여름, 대구사범학교(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의 한국인 및 일본인 학생들이 경부선 철도 건설을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7월 26일, 왜관 사건(왜관사건)으로 알려진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 시위에서 한국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에 항의했다. 그 결과, 학생 7명이 퇴학당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 천주교가 전파된 본거지로 교육, 문화 면에서 천주교의 영향이 크며, 인근에 가실성당(1895년 설립)과 신나무골 성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1952년 설립) 등이 자리잡고 있다.
2. 3. 한국 전쟁과 왜관
조선시대에 왜관(倭館)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으나,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위치에 설치되면서 왜관읍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되었다.1950년 8월과 9월 한국 전쟁 초기, 왜관 주변은 대구로 남하하려는 북한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도시 북동쪽의 낮은 산에는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현지에서 "자고산"으로 불리며, 군사 보고서에서는 303고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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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트 R. 게이 소장과 델 플럼켓 중장의 명령으로, 1950년 8월 3일 미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수백 명의 피난민이 건너는 동안 왜관의 다리를 폭파했다. 이들은 피난민들 속에 변장한 북한군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 다리의 양쪽 부분은 왜관의 두 부분 사이를 연결하는 보행자 통로로 재연결되었다.
1950년 8월 27일, 이 지역을 장악했던 퇴각하는 북한군은 303고지에서 40명 이상의 미국 포로를 사살했으며, 이들 중 5명이 살아남았다.
2. 4. 현대의 왜관
조선시대에 왜관(倭館)은 현 왜관읍의 낙동강 맞은 편인 약목면 관호리에 있었는데,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의 '''왜관역'''이 현 왜관읍 지역에 설치되면서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 '''왜관면'''이 되었다.경상북도 지역에서 천주교가 전파된 본거지로 교육, 문화 면에서 천주교의 영향이 크며, 인근에 가실성당(1895년 설립)과 신나무골 성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1952년 설립) 등이 있다. 한국 전쟁 때 낙동강 전투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1959년부터 미군 부대 캠프 캐럴이 있다.
2. 5. 연혁
1914년 4월 1일 파미면과 노곡면을 왜관면으로 합면하였다.[1] 1949년 8월 13일 왜관읍으로 승격하였다.[2] 1983년 2월 15일 석적면 아곡동을 편입하였다.[3] 왜관(Waegwan)이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일본인 거주지"를 의미하며, 이는 조선 시대에 일본인 염상(鹽商)들이 이 마을을 자주 거쳐 갔음을 시사한다.1939년 여름, 대구사범학교(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의 한국인 및 일본인 학생들이 경부선 철도 건설을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7월 26일, 왜관 사건(왜관사건)으로 알려진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 시위에서 한국인 학생들은 일본인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에 항의했다. 그 결과, 학생 7명이 퇴학당했다.
3. 행정 구역
왜관읍의 행정 구역은 왜관리, 금남리, 금산리, 낙산리, 매원리, 봉계리, 삼청리, 석전리, 아곡리로 구성되어 있다. 왜관리는 행정복지센터 소재지이다.
4. 지리
5. 교통
경부고속도로 왜관 나들목이 있다. 국도 제4호선이 지나간다. 경부선 왜관역이 있다.
간선 도로로는 다음과 같은 도로들이 있다.
구분 | 도로 이름 |
---|---|
대로 | 강변대로, 칠곡대로 |
로 | 관문로, 호국로, 중앙로, 공단로, 봉계로, 석적로, 석전로, 현대로 |
길 | 2번도로길, 2산업단지1길, 2산업단지2길, 2산업단지3길, 2산업단지4길, 가실1길, 가실2길, 강창1길, 강창2길, 구상길, 군청1길, 군청2길, 군청3길, 군청4길, 군청5길, 금남1길, 금남2길, 금남3길, 금남4길, 금남5길, 금남6길, 금남7길, 남부1길, 남부2길, 남부3길, 닥실길, 달오1길, 달오3길, 동산1길, 동산2길, 매원1길, 매원2길, 매원3길, 매원4길, 매원새마길, 반계3길, 보병1길, 보병2길, 봉계1길, 봉계2길, 부동1길, 부동2길, 부동3길, 삼청1길, 삼청2길, 삼청3길, 삼청4길, 삼청5길, 삼청6길, 소공원길, 시장1길, 시장2길, 아곡1길, 아곡2길, 아곡3길, 아곡4길, 아곡5길, 오솔1길, 오솔2길, 외기1길, 외기2길, 자고산1길, 자고산2길, 자조1길, 자조2길, 전원1길, 전원2길, 전원3길, 전원4길, 평장1길, 평장2길, 평장3길, 평장4길, 평장5길, 평장6길, 평장7길, 회동1길, 회동2길, 회동3길, 회동4길, 회동5길, 달오2길, 봉계3길 |
5. 1. 간선 도로
구분 | 도로 이름 |
---|---|
대로 | 강변대로, 칠곡대로 |
로 | 관문로, 호국로, 중앙로, 공단로, 봉계로, 석적로, 석전로, 현대로 |
길 | 2번도로길, 2산업단지1길, 2산업단지2길, 2산업단지3길, 2산업단지4길, 가실1길, 가실2길, 강창1길, 강창2길, 구상길, 군청1길, 군청2길, 군청3길, 군청4길, 군청5길, 금남1길, 금남2길, 금남3길, 금남4길, 금남5길, 금남6길, 금남7길, 남부1길, 남부2길, 남부3길, 닥실길, 달오1길, 달오3길, 동산1길, 동산2길, 매원1길, 매원2길, 매원3길, 매원4길, 매원새마길, 반계3길, 보병1길, 보병2길, 봉계1길, 봉계2길, 부동1길, 부동2길, 부동3길, 삼청1길, 삼청2길, 삼청3길, 삼청4길, 삼청5길, 삼청6길, 소공원길, 시장1길, 시장2길, 아곡1길, 아곡2길, 아곡3길, 아곡4길, 아곡5길, 오솔1길, 오솔2길, 외기1길, 외기2길, 자고산1길, 자고산2길, 자조1길, 자조2길, 전원1길, 전원2길, 전원3길, 전원4길, 평장1길, 평장2길, 평장3길, 평장4길, 평장5길, 평장6길, 평장7길, 회동1길, 회동2길, 회동3길, 회동4길, 회동5길, 달오2길, 봉계3길 |
6. 문화
6. 1. 문화재
왜관읍에는 천연기념물 제146호 왜관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포함지가 있다. 경북문화재자료 제245호 묵헌종택과 제275호 해은고택도 왜관읍에 위치해 있다. 장진홍기념비, 칠곡 매원동 고분, 국가등록문화재 제727호 칠곡 왜관성당이 있다. 303고지 기념비와 왜관 수도원도 왜관읍의 주요 문화재이다.6. 2. 종교
왜관읍에는 303고지 기념비와 왜관 수도원이 있다.7. 교육
왜관읍에는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2개교(남고, 여고)가 있다.
초등학교는 왜관초등학교, 왜관중앙초등학교, 낙산초등학교, 매원초등학교, 왜관동부초등학교가 있다.
중학교는 왜관중학교, 석전중학교, 순심여자중학교, 순심중학교가 있다.
고등학교는 순심고등학교, 순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8. 주거
대한주택공사에서 건설한 왜관주공 아파트 단지가 왜관리에 2곳, 석전리에 1곳 있다. 왜관주공 2단지는 삼능건설㈜에서 건설하여 2002년 10월에 입주하였고, 왜관주공 3단지는 ㈜신일에서 건설하여 2007년 11월에 입주하였다. 석전리의 왜관주공 4단지는 2008년 7월에 입주하였다.
9. 기타
9. 1. 관련 드라마
로드 넘버원 (2010년)9. 2. 주요 시설
303고지 기념비와 왜관 수도원이 있다.9. 3. 주요 사건
1950년 8월과 9월 한국 전쟁 초기 단계에서 왜관 주변 지역은 대구로 남하하려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현재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을 기리는 기념비가 도시 북동쪽을 내려다보는 낮은 산에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현지에서 "자고산"으로 불리며, 군사 보고서에서는 303고지로 알려져 있다.북한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8월 3일 미군은 수백 명의 피난민이 건너는 동안 왜관의 다리를 폭파했다. 이 사건은 호바트 R. 게이 소장과 델 플럼켓 중장의 명령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피난민들 속에 변장한 북한군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 다리의 양쪽 부분은 왜관의 두 부분 사이를 연결하는 보행자 통로로 재연결되었다.
이 지역에서 자행된 만행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1950년 8월 27일, 이 지역을 장악했던 퇴각하는 북한군은 303고지에서 40명 이상의 미국 포로를 사살했다. 이들 중 5명이 살아남았다.
참조
[1]
법령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위치·관할구역변경및부·군의명칭·위치·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1913-12-29
[2]
법령
대통령령 제156호 읍설치에관한건
1949-08-13
[3]
법령
대통령령 제11027호 시·군·구·읍·면의관할구역변경및면설치등에관한규정
198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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