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홍
1. 개요
장진홍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1916년 조선보병대 제대 후 광복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18년 만주와 러시아에서 독립군 훈련을 시도했으며, 3·1 운동 당시 일제의 탄압을 기록하여 미군에 전달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하여 6명의 부상을 입혔고, 이후 안동과 영천에서의 추가 테러를 계획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일본으로 피신했다가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자결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구미시에 동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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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살한 정치인 -
민영환
민영환은 1861년 서울에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고 요직을 거치며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한 개화파 인물로,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자결했으며 그의 유서는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한국의 자살한 정치인 -
김상옥 (1890년)
김상옥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3·1 운동 후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1923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후 일본 군경과 총격전 중 자결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활동했으며 아나키즘을 수용하기도 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한국 사람에 관한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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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 육군 장교 -
이동휘
이동휘는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신민회 활동, 독립군 양성, 한인사회당 조직,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고려공산당 창당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대 육군 장교 -
이육사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는 의열단 활동, 투옥, 루쉰과의 교류, 저항시 창작 등의 활동을 펼치다 순국하여 사후 시집이 출간되었고 한국 문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장진홍은 경상북도 칠곡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황실 경호 명목으로 남겨진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다. 1916년 제대 후, 이내성의 소개로 비밀 결사인 광복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8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부대 훈련을 시도했고, 1919년 3·1 운동 당시에는 일제의 탄압 과정을 조사, 기록하여 김상철에게 전달하여 번역본을 배포하게 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위축되자, 이내성의 소개로 폭탄 제조법을 배워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켰다. 1927년 10월 16일 폭탄을 제조,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전달하여 경찰 4명 등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안동과 영천에서의 추가 테러를 계획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일본 오사카시로 피신했으나, 1929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자결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구미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2.1. 독립운동 투신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면서 황실 경호 명목으로 남겨놓은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고, 1916년 조선보병대에서 제대한 뒤 동향 선배인 이내성의 소개로 비밀 결사인 광복단에 가입하여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가 이국필과 함께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독립군 부대의 군사 훈련을 시도한 바 있으며, 1919년 3·1 운동 때는 가산을 팔아 전국을 다니면서 일제의 3·1 운동 탄압 과정을 조사, 기록한 뒤 미군으로 복무 중인 김상철에게 전달하여 번역본을 배포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효과적인 독립 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3·1 운동 이후 국내의 독립 운동이 위축되자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중, 광복단 동지인 이내성의 소개로 전문가에게 폭탄 제조법을 배우게 된 것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폭탄을 직접 제조할 수 있게 된 장진홍은 경상북도 도지사와 경상북도 경찰부, 조선은행 대구지점(지금의 하나은행 대구기업금융센터지점 자리),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의 목표물을 정해 단독 거사를 계획했다.
1927년 10월 16일 칠곡의 집에서 폭탄을 제조하여 대구까지 운반한 뒤, 이를 선물 상자로 위장한 채 심부름꾼을 시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전달했다. 은행원이 눈치를 채고 경찰을 부르면서 바깥에 옮겨둔 폭탄 상자가 폭발하여 경찰 4명을 포함한 6명이 부상을 입었고, 장진홍은 무사히 달아났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친척인 장용희에게 안동의 주요 시설을 폭파할 수 있도록 폭탄을 제조하여 전달했으며, 친구 김사실과 함께 영천에서의 거사를 위한 폭탄도 제조했다. 이 두 번의 후속 폭탄 테러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2.2. 만주 및 러시아 망명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가 이국필과 함께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독립군 부대의 군사 훈련을 시도한 바 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가산을 팔아 전국을 다니면서 일제의 3·1 운동 탄압 과정을 조사, 기록한 뒤 미군으로 복무 중인 김상철에게 전달하여 번역본을 배포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효과적인 독립 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3·1 운동 이후 국내의 독립 운동이 위축되자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중, 광복단 동지인 이내성의 소개로 전문가에게 폭탄 제조법을 배우게 된 것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2.3. 3.1 운동 참여와 기록
1919년 3·1 운동 당시 장진홍은 가산을 팔아 전국을 다니면서 일제의 3·1 운동 탄압 과정을 조사, 기록한 뒤 미국군으로 복무 중인 김상철에게 전달하여 번역본 배포를 부탁하였다. 이는 효과적인 독립 운동을 위한 노력이었다. 3·1 운동 이후 국내의 독립 운동이 위축되자, 장진홍은 광복단 동지인 이내성의 소개로 전문가에게 폭탄 제조법을 배우게 되었고, 이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2.4.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의 독립 운동이 위축되자, 장진홍은 광복단 동지인 이내성의 소개로 전문가에게 폭탄 제조법을 배웠다. 이것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폭탄을 직접 제조할 수 있게 된 장진홍은 경상북도 도지사, 경상북도 경찰부, 조선은행 대구지점(지금의 하나은행 대구기업금융센터지점 자리),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을 목표물로 정해 단독 거사를 계획했다.
1927년 10월 16일 장진홍은 칠곡의 집에서 폭탄을 제조하여 대구까지 운반한 뒤, 이를 선물 상자로 위장한 채 심부름꾼을 시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전달했다. 은행원이 눈치를 채고 경찰을 부르면서 바깥에 옮겨둔 폭탄 상자가 폭발하여 경찰 4명을 포함한 6명이 부상을 입었고, 장진홍은 무사히 달아났다.
2.5. 추가 폭탄 테러 미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친척인 장용희에게 안동의 주요 시설을 폭파할 수 있도록 폭탄을 제조하여 전달했으며, 친구 김사실과 함께 영천에서의 거사를 위한 폭탄도 제조했다. 이 두 번의 후속 폭탄 테러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