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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브로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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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제프 브로이어는 184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의사이자 생리학자이다. 그는 호흡의 반사적 특성에 대한 미주신경의 역할을 최초로 증명하여 헤링-브로이어 반사를 발견했고, 어른스트 마흐와 함께 평형 감각이 내이의 반고리관 내 림프의 움직임으로부터 관리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브로이어는 안나 O.로 알려진 베르타 파펜하임의 히스테리 치료를 통해 대화 요법의 효과를 확인하고 정신분석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히스테리 연구》를 저술했으나, 프로이트와의 견해 차이로 인해 협력 관계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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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브로이어
기본 정보
1877년 사진
출생1842년 1월 15일
출생지오스트리아 제국,
사망1925년 6월 20일
사망지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오스트리아,
직업의사, 생리학자, 정신과 의사
학력빈 대학교
사상과 학문
분야정신분석학
영향지그문트 프로이트
업적헤링-브로이어 반사, 히스테리 연구, 최면 카타르시스 요법
이름 (표기)
영어 발음/ˈbɹɔɪər/ (BROY-ur)
독일어 발음/ˈbʁɔʏɐ/

2. 생애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고 내과의사로 활동했다. 그는 빈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요한 오폴처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1868년 마틸데 알트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며, 이후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1894년 빈 과학 아카데미의 통신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나치 정권 하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

2. 1. 초기 생애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브로이어는 빈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종교를 가르쳤다. 브로이어의 어머니는 그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으며 8살까지는 아버지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다.

1858년 빈의 Akademisches Gymnasium|아카데미셰스 김나지움de을 졸업한 뒤, 1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하고 빈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1867년 의학 시험에 합격하였고, 대학에서 내과의사 요한 오폴처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1868년에는 마틸데 알트만(Mathilde Altmann)과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2. 2. 가족의 비극

브로이어는 1868년 마틸데 알트만과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그의 딸 도라는 나치에 의해 강제 추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다른 딸 마가레테 쉬프는 1942년 9월 9일 테레지엔슈타트 유대인 거주구에서 사망했다. 브로이어의 손녀인 한나 쉬프 역시 나치에 의해 투옥된 동안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2. 3. 학문적 업적 및 사망

1894년, 빈 과학 아카데미의 통신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3. 신경생리학 연구

의 군의학교에서 에발트 헤링 밑에서 연구하며 신경생리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호흡의 반사적 특성에 대한 미주신경의 역할을 처음으로 증명했으며,[2] 이 메커니즘은 훗날 헤링-브로이어 반사로 명명되었다.

또한 1873년에는 물리학자 어른스트 마흐와는 독립적으로,[3] 내이의 반고리관 속 내림프의 움직임 정보를 뇌가 받아들여 평형 감각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프리드리히 골츠가 평형 감각 기관의 존재를 밝힌 이후, 그 작동 원리를 규명한 중요한 연구였다.

3. 1. 헤링-브로이어 반사

의 군의학교에서 에발트 헤링 밑에서 일하며, 호흡의 반사적 특성에 대한 미주신경의 역할을 처음으로 증명했다.[2] 이는 이전의 생리학적 믿음과는 다른 발견이었으며, 과학자들이 폐와 신경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숨을 들이쉴 때(흡기) 폐가 확장되면 폐의 확장 수용체가 자극을 받는다. 이 신호는 미주신경을 통해 뇌의 연수로 전달되어, 더 이상의 흡기를 억제하게 된다. 이 메커니즘은 오늘날 헤링-브로이어 반사로 알려져 있다.[2]

3. 2. 평형 감각 연구

평형 감각이 세 개의 반고리관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1870년 생리학자 프리드리히 골츠에 의해 먼저 발견되었지만, 골츠는 평형 감각 기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후 1873년, 브로이어는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어른스트 마흐와 서로 독립적으로[3] 평형 감각(즉, 머리의 불균형 인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발견했다. 그는 평형 감각이 내이의 반고리관 내 내림프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뇌가 받아 관리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브로이어는 반고리관이 신체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확정했다.

4. 정신분석학의 선구적 역할

브로이어는 안나 O.(베르타 파펜하임의 가명)의 치료를 통해 정신분석학의 발전에 중요한 초석을 놓았다. 그는 히스테리 증상을 겪던 안나 O.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대화 요법'과 '정화법'(카타르시스)으로 발전시켰다.[4][5] 이는 정신질환 치료에 있어 대화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체계화하려 시도한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브로이어는 젊은 시절의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초기 정신분석학 발전에 협력했다. 두 사람은 안나 O. 사례를 포함한 연구 결과를 1895년 『히스테리 연구』로 출판하며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8] 이 연구에서 브로이어는 히스테리의 원인을 다양한 외상에서 찾는 등 보다 개방적이고 절충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하여, 이후 프로이트가 집중하게 될 성적 원인론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었다.[9]

비록 이후 프로이트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브로이어의 '대화 요법' 발견과 초기 연구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체계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했으며, 그 자체로 정신 치료 역사에서 선구적인 업적으로 인정받는다.[7][10] 1894년에는 빈 과학 아카데미의 통신 회원으로 선출되어 학문적 기여를 인정받았다.[11]

4. 1. 안나 O. 치료

브로이어는 1880년대 안나 O.(베르타 파펜하임의 가명)라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안나 O.는 쇠약, 두통, 사지 마비, 감각 마비, 시각 장애, 언어 장애, 의식 소실, 환각 등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었다.[4]

브로이어는 안나 O.가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안나 O.는 이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굴뚝 청소'라고 불렀으며, '대화 요법'이라는 보다 진지한 명칭도 직접 만들었다.[5] 브로이어는 이 치료법을 '정화법'(카타르시스)이라고 명명했다. 이 방식은 이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요법의 기초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젊은 의학도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의 멘토링을 받았으며, 안나 O. 사례에 대해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6] 프로이트는 훗날 "이전에는 누구도 이러한 방법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제거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하며, 브로이어의 치료법이 최초의 성공 사례였음을 인정했다.[7]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1895년 공동 저서 『히스테리 연구』에서 안나 O. 사례를 포함한 여러 사례 연구와 그들의 논의를 기록했다. 이 연구는 정신분석 실천의 형성적 기초가 되었으며, 특히 환상, 히스테리, 그리고 카타르시스의 개념과 방법 정립에 브로이어가 크게 기여했다.[8] 그러나 두 사람의 관점에는 차이가 있었다. 브로이어는 히스테리의 원인으로 다양한 종류의 외상을 포함한 여러 요인을 고려하며 다른 연구자들의 공로도 인정하는 절충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프로이트는 성적 갈등을 히스테리의 단일하고 핵심적인 원인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9]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이후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4. 2. 프로이트와의 협력과 갈등

브로이어는 당시 젊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멘토였으며, 프로이트가 의학계에 자리를 잡도록 도왔다. 어니스트 존스는 "프로이트는 안나 O.(베르타 파펜하임의 가명)의 사례에 대해 듣는 것에 매우 흥미를 느꼈고...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회상했다.[6] 프로이트 자신도 1909년 저서 ''정신분석에 관한 다섯 강의''에서 "나는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이었는데... 브로이어가 처음으로(1880~2년) 이 절차를 사용했다... 이전에는 누구도 이러한 방법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제거한 적이 없었다"고 인정했다.[7] 안나 O.가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관찰한 브로이어의 치료법(안나 O.는 이를 "대화 요법" 또는 "굴뚝 청소"라 불렀고, 브로이어는 "정화법"이라 칭함)은 프로이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5]

1895년, 프로이트와 브로이어는 안나 O.와 다른 히스테리 환자들의 사례 연구를 담은 『히스테리 연구』를 공동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 실천의 형성적 기초가 되었으며, 특히 환상, 히스테리, 그리고 카타르시스의 개념과 방법이 브로이어의 주요 공헌이었다."[8]

그러나 두 사람은 점차 소원해졌다. 루이 브레거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프로이트가 명성을 가져다줄 단일 이론, 특히 성적 갈등이라는 원인에 집착한 반면, 브로이어는 다양한 외상을 포함한 여러 요인을 기술하고 피에르 자네와 같은 다른 연구자들의 공로를 인정하며 "절충주의"적 태도를 보였다고 분석했다.[9] 브로이어는 히스테리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다양한 방법에 열려 있었던 것이다.[9] 브로이어는 프로이트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성적 문제가 신경증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1907년 동료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공식을 내리는 사람이다. 이것은 내 생각에 과도한 일반화로 이어지는 심리적 필요이다"라고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9]

프로이트는 나중에 브로이어에게 적대적으로 변해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고, 브로이어가 안나 O.의 성적 관심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10][9]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며, 브로이어는 안나 O.가 아픈 동안 수년간 그녀의 치료에 계속 관여했다.[9]

5. 저서


  • 요제프 브로이어 · 루돌프 크로박: 〈외상열에 관한 연구. 실험적 연구〉. 《빈 의학 연감》(Med. Jb.), 빈 22/4권 (1867년), 3-12쪽.
  • 〈두 가지 수포병 사례〉. 《빈 의학 주간지》(Wiener medizinische Wochenschrift) 18권 (1868년), 178-179쪽, 210-213쪽.
  • 〈질병에서의 고유 열의 행동〉. 《빈 의학 주간지》(Wiener medizinische Wochenschrift) 18권 (1868년), 982-985쪽, 998-1002쪽.
  • 〈미주신경을 통한 호흡의 자기 조절〉. 《빈 과학 아카데미 회보》(Sitzungsberichte d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Wien), 수학-자연과학부 58/2권 (1868년), 909-937쪽.
  • 〈세나토르의 ‘고유 열과 발열에 관한 연구’에 대한 논평〉. 《병리 해부학 아카이브》(Arch. path. Anat.), 베를린 46권 (1869년), 391-392쪽.
  • 〈미로의 반규관에 대하여〉. 《빈 일반 의학 신문》(Allg. Wien. med. Ztg.) 18권 (1873년), 598쪽, 606쪽.
  • 〈정적 감각(평형 기관)에 관한 연구. 예비 보고〉. 《빈 의사 협회지》(Anz. Ges. Ärzte, Wien) 1873년, 9호 (1873년 12월 17일), 31-33쪽.
  • 〈귀 미로의 반규관 기능에 대하여〉. 《빈 의학 연감》(Med. Jb.), 빈 (1874년), 72-124쪽.
  • 〈정적 감각(평형 기관, 귀 미로의 전정 기관)에 관한 연구. 두 번째 보고〉. 《빈 의학 연감》(Med. Jb.), 빈 (1875년), 87-156쪽.
  • 〈귀 반규관에 대한 새로운 실험〉. 《생리학 아카이브》(Arch. Physiol.) 44권 (1889년), 135-152쪽.
  • 〈이석 기관의 기능에 대하여〉. 《생리학 아카이브》(Arch. Physiol.) 48권 (1891년), 195-306쪽.
  • 요제프 브로이어 · 지그문트 프로이트: 〈히스테리 현상의 정신적 메커니즘에 대하여. 예비 보고〉. 《신경학 중앙지》(Neurol. Zbl.) 12권 (1893년), 4-10쪽, 43-47쪽; 동시에 《빈 의학 회보》(Wien. med. Blätter) 16권 (1893년), 33-35쪽, 49-51쪽.
  • 〈유방염에 대하여〉. 《빈 의학 프레스》(Wien. med. Presse) 35권 (1894년), 1028쪽.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요제프 브로이어: 『히스테리 연구』(Studien über Hysterie). 프란츠 도이티케, 라이프치히 + 빈 1895년.
  • 〈반규관과 공간 감각에 대하여〉. 《생리학 아카이브》(Arch. Physiol.) 68권 (1897년), 596-648쪽.
  • 요제프 브로이어 · 알로이스 크라이들: 〈원심력 작용 중의 시야의 겉보기 회전에 대하여〉. 《생리학 아카이브》(Arch. Physiol.) 70권 (1898년), 494-510쪽.
  • 〈다윈주의의 위기와 목적론〉. 1902년 5월 2일 강연. 《강연과 토론》(Vorträge und Besprechungen) (1902년), 4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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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력서〉 [1923년]. 요제프 브로이어 박사 (1842-1925). 빈, 발행연도 없음 [1927년]. 9-24쪽.
  • 〈텔레파시적 문서〉. 《움샤우》(Umschau) 28권 (1924년), 215-216쪽.
  • 마리 폰 에브너-에센바흐 · 요제프 브로이어: 《서간집. 1889-1916》. 베르크란트 출판사, 빈 1969년.

참조

[1] 웹사이트 Josef Breuer | Austrian physician http://www.britannic[...] 2023-06-16
[2] 웹사이트 Breuer, Josef (1842-1925) – Encyclopedia of Psychology http://www.findartic[...] 2004-12-13
[3] 웹사이트 The Emergence of Vestibular Science http://www.aro.org/a[...] Audiology and Neurotology 2011-07-21
[4]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the Mind Oxford
[5] 서적 Freud: A Life for our Times London
[6] 서적 The Life and Work of Sigmund Freud London
[7] 서적 Five Lectures on Psycho-Analysis Penguin
[8] 서적 Companion
[9] 웹사이트 A Discussion of my book: A Dream of Undying Fame: How Freud Betrayed His Mentor and Invented Psychoanalysis, and two articles by Dr. Norman Costa http://www.3quarksda[...] 2010-05
[10] 서적 Reading Freud London
[11] 서적 Freud and Jung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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