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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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1808년 독일에서 태어난 역사가이다. 그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문헌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833년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를 출판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헬레니즘 시대를 정의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킬 대학교와 예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프로이센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드로이젠은 프로이센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를 저술하는 등 19세기 독일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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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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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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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요한 구스타프 베른하르트 드로이젠 |
출생일 | 1808년 7월 6일 |
출생지 | 트레프토우, 포메라니아 주, 프로이센 왕국(현재 폴란드) |
사망일 | 1884년 6월 19일 |
사망지 |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주, 독일 제국 |
교육 | |
출신 학교 | 베를린 대학교 (박사, 1831년) |
경력 | |
소속 기관 | 베를린 대학교 킬 대학교 예나 대학교 |
철학적 배경 | |
학파 | 역사주의 |
주요 관심사 | 역사적 방법 |
주요 사상 | 인식(erkennen) – 설명(erklären) – 이해(verstehen) 구별 |
영향을 준 인물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아우구스트 뵈크 |
영향을 받은 인물 | 빌헬름 딜타이 |
학위 논문 | |
논문 제목 | De Lagidarum regno Ptolemaeo IV Philometore rege |
학위 수여 년도 | 1831년 |
2. 생애
드로이젠은 1808년 7월 6일 포메라니아(현재 폴란드의 트렙토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요한 크리스토프 드로이젠(요한 크리스토프 드로이젠)은 군목이었으며, 어린 드로이젠은 해방 전쟁 중 일부 군사 작전을 목격했다.[6] 이러한 경험은 그가 프로이센 왕국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슈테틴의 김나지움(김나지움)과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육받았다.[6] 1826년부터 3년간 베를린 대학교에서 아우구스트 보이크에게 문헌학을, 헤겔에게 철학을 배웠다. 1829년에는 그라우에 클로스터의 교사가 되었고, 1833년부터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사강사(프리바트도첸트)로,[6] 1835년부터는 무보수 교수로 강의했다. 1833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 치하의
이 기간 동안 드로이젠은 고전 고대를 연구했고, 1832년에는 아이슈킬로스 번역을, 1835년에서 1838년에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각색을 출판했다.[8] 1833년에 출판된 그의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ssen)는 오랫동안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9] 그는 알렉산더의 그리스 계승자들을 다룬 ''헬레니즘의 역사''(Geschichte des Hellenismus)를 출판하고, 알렉산더의 정복과 로마 제국의 등장 사이의 시대를 가리키는 "헬레니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0]
1840년 킬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지만, 프로이센 왕국의 강화와 독일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고전학 연구를 포기하고 정치 논객으로 활동했다. 1851년 예나 대학교로 이직하면서 역사학 연구에 복귀했고, 1859년 베를린 대학교에 초빙되어 사망할 때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역사가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그의 아들이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1808년 7월 6일 포메라니아(현재 폴란드의 트렙토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요한 크리스토프 드로이젠(요한 크리스토프 드로이젠)은 군목이었으며, 어린 드로이젠은 해방 전쟁 중 일부 군사 작전을 목격했다.[6] 이러한 경험은 그가 프로이센 왕국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그는 슈테틴의 김나지움(김나지움)과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육받았다.[6] 1826년부터 3년간 베를린 대학교에서 아우구스트 보이크에게 문헌학을, 헤겔에게 철학을 배웠다. 1829년에는 그라우에 클로스터의 교사가 되었고, 1833년부터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사강사(프리바트도첸트)로,[6] 1835년부터는 무보수 교수로 강의했다. 1833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 치하의
이 기간 동안 드로이젠은 고전 고대를 연구했고, 1832년에는 아이슈킬로스 번역을, 1835년에서 1838년에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각색을 출판했다.[8] 1833년에 출판된 그의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ssen)는 오랫동안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9] 그는 알렉산더의 그리스 계승자들을 다룬 ''헬레니즘의 역사''(Geschichte des Hellenismus)를 출판하고, 알렉산더의 정복과 로마 제국의 등장 사이의 시대를 가리키는 "헬레니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0]
1840년 킬 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지만, 프로이센 왕국의 강화와 독일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고전학 연구를 포기하고 정치 논객으로 활동했다. 1851년 예나 대학교로 이직하면서 역사학 연구에 복귀했고, 1859년 베를린 대학교에 초빙되어 사망할 때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역사가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그의 아들이다.
2. 2. 학문적 경력
드로이젠은 1833년 첫 저서인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ßende)로 당대 역사가 중 석학 반열에 올랐다. 그는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시대명칭으로 "헬레니즘(Hellenismusd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 이후 드로이젠은 좀더 최근의 역사 영역을 연구하였다. 저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Geschichte der preußischen Politikde, 1855년~1886년)는 프로이센-소독일주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서술으로 평가된다.1826년부터 3년 동안 베를린 대학교에서 고전학자인 아우구스트 보이크에게 문헌학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게 철학을 배웠다. 1829년 중등 교육 자격을 얻어 베를린의 그라우엔 수도원 부속 김나지움 교사가 되었다. 3년 후 『프톨레마이오스 6세 치하의
1833년 베를린 대학교 사강사직에 임명되었고, 1835년에는 초빙 교수로 승진했다. 1840년 킬 대학교의 초청으로 정교수가 되었지만, 이 시기에 프로이센 왕국의 강화와 독일 통일이라는 목표를 위해 고전학 연구를 포기하고 정치 논객으로서 활동에 전념했다. 1851년, 올뮈츠 협정에 따라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 계획을 포기하자 예나 대학교로 이직한 것을 계기로 역사학 연구에 복귀하여, 1859년 베를린 대학교에 초빙되어 사망할 때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2. 3. 정치 참여와 프로이센 중심 역사관
드로이젠은 1833년 첫 저서인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ßende)로 당대 역사가 중 석학 반열에 올랐다. 그는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시대명칭으로 "헬레니즘(Hellenismusd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6] 이후 드로이젠은 좀더 최근의 역사 영역을 연구하였다. 저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Geschichte der preußischen Politikde, 1855년~1886년)는 프로이센-소독일주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서술으로 평가된다.1840년, 드로이젠은 킬 대학교 역사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엘베 공국의 권리 옹호를 위한 정치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6]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달만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역사적 지식을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방 의회에 봉사하는 데 사용했으며, 1844년 공국에서 왕위 계승 법을 변경하려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8세 국왕의 주장에 항의하는 지방 의회의 성명서를 작성했다.[6] 이 문제는 1852년 런던 의정서를 통해 외교적으로 협상되었고, 궁극적으로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및 프로이센 연합군 간의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해결되었다.
1848년, 드로이젠은 혁명적인 프랑크푸르트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헌법 초안 작성 위원회의 서기로 활동했다.[6] 그는 프로이센의 주도권을 확고히 지지했으며, 이것을 독일 통일의 유일한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 보았다.[14] 드로이젠은 1849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황제의 자리를 거부한 후 프랑크푸르트 의회에서 탈퇴한 최초의 의원 중 한 명이었다.[6][15] 그 후 2년 동안 드로이젠은 공국들의 대의를 계속 지지했으며, 1850년에는 칼 잠베르와 함께 덴마크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관계사인 ''Die Herzogthümer Schleswig-Holstein und das Königreich Dänemark seit dem Jahre 1800''(함부르크, 1850)을 출판했다. 같은 해 런던에서 ''The Policy of Denmark towards the Duchies of Schleswig-Holstein''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이 저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했으며, 덴마크와의 투쟁에서 공국의 권리에 대한 독일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
1851년, 올뮈츠 협정에 따라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 계획을 포기하자 예나 대학교로 이직하였다.
2. 4. 후기 생애와 프로이센 역사 연구
드로이젠은 1833년 첫 저서인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ßende)로 당대 역사가 중 석학 반열에 올랐다. 그는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시대명칭으로 "헬레니즘(Hellenismusd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6][17] 이후 드로이젠은 좀더 최근의 역사 영역을 연구하였다. 저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Geschichte der preußischen Politikde, 1855년~1886년)는 프로이센-소독일주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서술으로 평가된다.1851년 이후, 드로이젠은 예나 대학교 교수직에 임명되었고, 1859년에는 베를린으로 불려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6][17] 1851년 그는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 백작(Ludwig Yorck von Wartenburg)의 전기를 출판했는데(베를린, 1851–1852), 이것은 일반적으로 독일어로 쓰인 최고의 전기 중 하나로 여겨진다.[16] 그리고 나서 그는 ''프로이센 정치사''(Geschichte der preussischen Politik), 혹은 영어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The History of Prussian Politics)라는 그의 위대한 작업을 시작했다(베를린, 1855–1886). 총 7권이 출판되었고, 마지막 권은 사후에 출판되었으며, 총 32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작업이었다. 이 책은 1756년까지 프로이센 군주국의 성장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담고 있다.[6][17]
3. 역사관 및 역사학적 특징
드로이젠의 청년기는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폰 슈타인과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에 의한 프로이센 개혁과 겹치는 시대이며, 독일 국민으로서의 자각이 싹트던 시대였다. 그의 『프로이센 정치사』는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에 눈뜨기를 기대하며 쓰여졌다. 조국 프로이센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은 드로이젠의 저술 활동에 일관되게 작용하고 있다.
헤겔의 "이념이 역사를 통해 지배한다"는 생각을 드로이젠은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실천과 윤리를 강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이상으로부터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 때문에 "역사학에서의 피히테"라고 불리기도 한다.
드로이젠이 "역사학의 베이컨"이라는 칭호로 부르는 빌헬름 폰 훔볼트의 역사적 이념설(Histrische Ideenlehre)에서는 이념은 현실과 떨어져 고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현실 속에서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노력이나 돌발적으로 발생한 자유 의지에 의한 행위도 지배적인 이념의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헤겔의 견해에 드로이젠은 동의하지 않는다.
3. 1. 헬레니즘 개념
드로이젠은 1833년 첫 저서인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ßende)로 당대 역사가 중 석학 반열에 올랐다. 그는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시대명칭으로 "헬레니즘(Hellenismusd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 이후 드로이젠은 좀더 최근의 역사 영역을 연구하였다. 저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Geschichte der preußischen Politikde, 1855년~1886년)는 프로이센-소독일주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서술으로 평가된다.헤겔의 "이념이 역사를 통해 지배한다"는 생각을 드로이젠은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실천과 윤리를 강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이상으로부터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 때문에 "역사학에서의 피히테"라고 불리기도 한다.
드로이젠이 "역사학의 베이컨"이라는 칭호로 부르는 빌헬름 폰 훔볼트의 역사적 이념설(Histrische Ideenlehre)에서는 이념은 현실과 떨어져 고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현실 속에서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노력이나 돌발적으로 발생한 자유 의지에 의한 행위도 지배적인 이념의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헤겔의 견해에 드로이젠은 동의하지 않는다.
3. 2. 역사 방법론
드로이젠의 청년기는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폰 슈타인과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에 의한 프로이센 개혁과 겹치는 시대이며, 독일 국민으로서의 자각이 싹트던 시대였다. 그의 『프로이센 정치사』는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에 눈뜨기를 기대하며 쓰여졌다. 조국 프로이센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은 드로이젠의 저술 활동에 일관되게 작용하고 있다.헤겔의 "이념이 역사를 통해 지배한다"는 생각을 드로이젠은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실천과 윤리를 강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이상으로부터 역사를 해석하는 경향 때문에 "역사학에서의 피히테"라고 불리기도 한다.
드로이젠이 "역사학의 베이컨"이라는 칭호로 부르는 빌헬름 폰 훔볼트의 역사적 이념설(Histrische Ideenlehre)에서는 이념은 현실과 떨어져 고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현실 속에서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노력이나 돌발적으로 발생한 자유 의지에 의한 행위도 지배적인 이념의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헤겔의 견해에 드로이젠은 동의하지 않는다.
4. 주요 저서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은 다양한 역사서를 저술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1833년에 출간된 『알렉산드로스 대왕사』(Alexander der Große - Die Biographie)와 1836년과 1843년에 걸쳐 전 2권으로 출간된 『헬레니즘의 역사』(Geschichte des Hellenismus)가 있다. 1846년에는 『독립전쟁에 관한 강의』(Vorlesungen über die Freiheitskriege)를 출간했고, 1851년에는 『요르크 전』(York von Wartenburg - Ein Leben in preußischer Pflichterfüllung)을 출간했다.
드로이젠의 주요 역작 중 하나는 1855년부터 1886년까지 집필한 『프로이센 정치사』(Geschichte der preußischen Politik)이다. 이 책은 1855년 『건국』(Die Gründung)을 시작으로, 1857년 『영토 시대』(Die territoriale Zeit), 1865년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국가』(Der Staat des Großen Kurfürsten), 1869년 『프리드리히 1세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역사에 관하여』(Zur Geschichte Friedrich I. und Friedrich Wilhelm I. von Preußen), 그리고 1886년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도 1858년 『사학 개요』(Grundriss der Historik), 1864년 『푸펜도르프 비판』(Zur Kritik Pufendorfs), 1876년 『근세사 논집』(Abhandlungen zur neueren Geschichte), 그리고 1893년에서 1894년 사이에 출간된 『고대사 소론집』(Kleine Schruften zur antiken Geschichte) 등이 있다. 『사학 개요』는 樺俊雄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되어 쇼와 12년 도강서원에서 출판되었다.
5. 유산 및 영향
드로이젠은 1833년 첫 저서인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Geschichte Alexanders des Großende)로 이미 당대 역사가 중 최고 수준의 학자로 인정받았다.[6] 그는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의 시기를 가리키는 시대 명칭으로 "헬레니즘(Hellenismusd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6] 이후 드로이젠은 좀 더 최근의 역사 영역을 연구하였다. 저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Geschichte der preußischen Politikde, 1855년~1886년)는 프로이센-소독일주의 역사관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서술로 평가된다.[6]
후년에 드로이젠은 거의 전적으로 프로이센 역사에 매달렸다.[6] 1851년 이후 그는 예나 대학교 교수직에 임명되었고, 1859년에는 베를린으로 불려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6] 1851년 그는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 백작의 전기를 출판했는데(베를린, 1851–1852), 이것은 일반적으로 독일어로 쓰인 최고의 전기 중 하나로 여겨진다.[16] 그리고 나서 그는 ''프로이센 정치사''(Geschichte der preussischen Politik), 혹은 영어로 ''프로이센 정치의 역사''(The History of Prussian Politics)라는 그의 위대한 작업을 시작했다(베를린, 1855–1886).[6][17] 총 7권이 출판되었고, 마지막 권은 사후에 출판되었으며, 총 32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작업이었다.[6] 이 책은 1756년까지 프로이센 군주국의 성장에 대한 완전한 역사를 담고 있다.[6] 이 책은 드로이젠의 다른 모든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드러나는 개성과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동적 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추적하는 경향을 보여준다.[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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