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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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석남은 1939년 만주 봉천에서 출생하여, 여성과 어머니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 예술가이다. 1985년 여성주의 미술 단체 '시월모임'을 결성하고, 1986년에는 대한민국 여성주의 미술의 시원으로 평가받는 '시월모임' 2회전을 개최했다. 1996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고, 1997년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테이트 미술관, 퀸즐랜드 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여성 억압, 모성, 가족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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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윤석남 |
로마자 표기 | Yun Seok-nam |
한글 표기 | 윤석남 |
출생일 | 1939년 |
출생지 | 만주, 중국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미술가 |
웹사이트 | 윤석남 공식 웹사이트 |
학력 | |
대학교 | 성균관대학교 |
대학원 | 프랫 인스티튜트 |
경력 | |
활동 분야 | 미술 |
주요 활동 | 여성주의 미술 운동 참여 |
외부 링크 | |
네이버 캐스트 | 네이버 캐스트 |
여성 조선 인터뷰 | 여성조선 인터뷰 |
기타 | |
참고 자료 | 스미소니언 매거진 기사 |
2. 생애
1939년 만주 봉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가이다.[10][11][12]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윤백남이다.[10][13] 광복 전까지 만주에서 생활했으며, 195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슬하에서 6남매와 함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10][11][12]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가 마흔 살 무렵 뒤늦게 미술계에 입문했다.[10][11][14][13] 정식 미술 교육 배경 없이 서예를 시작으로 그림을 독학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으며, 특히 어머니와 주변 여성들의 삶을 다룬 초기 작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0][11][14][13]
1985년 김인순, 김진숙 등 동료 작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여성주의 미술의 시작을 알린 '시월모임'을 결성하고 활동을 주도했다.[12] 이후 여성의 삶과 역사, 자연 등을 주제로 한 설치 미술과 회화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며 한국 미술계의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 특별전에 참여했으며, 1996년에는 여성 미술가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1997년에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12]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도 작품을 통해 꾸준히 발언해왔다.[15][16][17][18][19][11][20]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윤석남은 1939년 만주 봉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으로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연출한 윤백남이다.[10][13] 어머니 원정숙은 윤백남의 첩이었으며, 윤석남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첩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며 용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13] 가족은 1937년 만주로 이주했으며, 윤석남은 광복 전까지 만주에서 생활했다.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서 '석남(石男)'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후 남동생 세 명이 태어났다.[10][11][12]1954년 아버지가 별다른 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서른아홉 살이었던 어머니 원정숙이 6남매를 홀로 키우며 생계를 책임졌다.[10][11][12]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10][11][12]
이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66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야간 과정에 입학하여 1년 남짓 공부했다.[10][11][12][2][3] 40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하고자 1983년부터 2년간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 그래픽센터에서 판화를,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회화를 공부했다.[10][11][12][2][3]
기간 | 학교 | 전공/과정 | 비고 |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 졸업 | ||
1966년 ~ 1967년경 | 성균관대학교 | 영문학 | 야간, 1년 남짓 수학 |
1983년 ~ 1984년 |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그래픽센터 | 판화 | |
1983년 ~ 1984년 |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 | 회화 |
2. 2. 작가로서의 삶
윤석남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화가의 꿈을 꾸었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바로 실현하지 못했다. 남편의 사업 성공으로 경제적 안정을 찾았지만, 표현에 대한 내면의 열망으로 심리적 갈등을 겪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1979년경 30대 후반에 친구의 권유로 시인 박두진에게 서예를 배우기 시작하며 예술 활동에 발을 들였다. 약 4년간 서예에 몰두했으나, 스승인 박두진이 임서 기간(스승의 글씨를 그대로 베껴 쓰는 연습 기간)만 20년이 걸린다고 말하자,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을 갈망하며 그림으로 방향을 바꾸었다.[10][11][14][13]1980년경 마흔 살 무렵, 화가 이종무에게 두 달간 그림을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특정 스승 없이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를 주요 모델로 삼아 약 2년간 그림에 몰두했다. 어머니와 주변 여성들의 삶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1982년 첫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전시를 계기로 많은 화가와 교류하고 여러 단체전에 초대받으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대한민국 화단이 추상미술 위주였던 상황에서, 그의 구체적이고 서사적인 화풍은 신선한 주목을 받으며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10][11][14][13]
1985년에는 김인순, 김진숙 등 동료 여성 작가들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주의 미술 단체로 평가받는 '시월모임'을 결성했다.[3][4] 같은 해 10월 9일부터 10월 15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제1회 시월모임전을 개최했으며, 이듬해인 1986년에는 대한민국 여성주의 미술의 중요한 시작점으로 평가받는 제2회 시월모임전 '반에서 하나로'를 열었다.[5] 또한 인문사회 분야 여성학자 및 문인들로 구성된 그룹 '또 하나의 문화' 회원으로 활동하며 여성주의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다졌다. 시월모임 회원들과 함께 민족미술협의회 내 여성미술 분과의 주축으로 활동하며 여성 문제를 미술로써 탐구하고 발언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12]
1995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 특별전에 설치 작품 <어머니의 이야기>로 참여하여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6년에는 여성 미술가로서는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1997년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12]
이후에도 윤석남은 어머니, 자연, 여성의 역사와 삶 등을 주제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시[15], 여성미술제[16][17][18][19] 등 사회적 의미가 있는 전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4년에는 미국 시카고 한인문화회관에서 열린 ‘어머니의 눈으로(Through the eyes of the mother)’ 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지속했다.[21] 그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예술가로서, 여성의 권익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예술 창작에 평생을 헌신해 왔다.[6] 그의 작품은 테이트 미술관,[7] 퀸즐랜드 미술관,[5]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8]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 3. 가족 관계
아버지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영화감독이었던 윤백남(尹白男)으로,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촬영하기도 했다.[10][11][12] 윤석남은 3남 3녀 중 셋째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서 '석남(石男)'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이후 세 명의 남동생이 태어났다.[10][11][12]어머니 원정숙(1915년 ~ 2010년)은 하숙집 딸이었으며, 초등학교 학력에도 불구하고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즐겨 읽었다. 그녀는 신문에 연재되던 윤백남의 글의 팬이었는데, 우연히 윤백남이 그녀의 집에서 하숙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원정숙은 열아홉 살에 스물일곱 살 연상인 윤백남의 첩이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6남매를 두었다.[13] 윤석남은 아버지가 유부남인 상태에서 어머니를 첩으로 삼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며, 아버지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13]
1954년 아버지가 별다른 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서른아홉 살이었던 어머니 원정숙은 전업주부에서 6남매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이때 막내 동생은 겨우 두 살이었다.[10][11][12] 윤석남은 어머니를 낙천적이고 당당한 성향의 인물로 기억하며,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이 자녀들을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또한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이것이 자신의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13] 어머니의 삶은 윤석남이 여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작품 세계
마흔 살 무렵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표현에 대한 열망으로 30대 후반 서예를 시작했고, 이후 그림으로 방향을 바꾸어 초기에는 주로 자신의 어머니와 주변 여성들을 모델로 삼아 작업했다.[10][11][14][13] 1982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1980년대 추상 일변도의 화단 분위기 속에서 인물 중심의 구상적인 작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10][11][14][13]
1985년 김인순, 김진숙 등과 함께 여성주의 미술 그룹 '시월모임'을 결성하고 이듬해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전시회로 평가받는 '반에서 하나로' 전을 개최하며 본격적인 여성주의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12][3][4][5] 여성학자, 문인들과 교류하며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민족미술협의회 내 여성미술분과 활동 등을 통해 여성 문제를 꾸준히 탐구했다.[12] 윤석남은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는 예술 활동에 평생을 헌신한 작가로 평가받는다.[6]
그의 작품 세계는 여성, 특히 어머니의 삶과 정체성, 모성, 가족 등을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이는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 특별전에 출품한 설치 작품 '어머니의 이야기' 등에서 잘 드러난다.[12]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여성 억압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여성의 시각에서 다루며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15][16][17][18][19][11][20] 회화, 판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했다.[12]
1996년 여성 미술가로서는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12] 윤석남의 작품은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7] 호주의 퀸즐랜드 미술관,[5] 일본의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8]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4. 수상 및 경력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룸)
4. 1. 수상
wikitext
4. 2. 주요 경력
wikitext연도 | 주요 활동 |
---|---|
1982년 | 서울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윤석남>전 |
1993년 | 금호미술관 개인전 <어머니의 눈> |
1995년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전 참가 |
1997년 | 조선일보미술관 개인전 <빛의 파종> |
1999년 | 예술의 전당 <'99여성미술제:팥쥐들의 행진>전 참가 |
2000년 | 광주 비엔날레 <人十間:광주비엔날레2000> 본전시 참가 |
2001년 | 서울시립미술관 <가족>전 참가 |
2003년 | 일민미술관 개인전 <늘어나다> |
2005년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광복60주년기념 한국미술 100년전> 참가 |
2007년 | 경기도미술관 <경기, 1번 국도>전 참가 |
2008년 |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윤석남:1,025:사람과 사람없이>전, 경기도미술관 <언니가 돌아왔다>전 참가 |
2009년 | 학고재 개인전 <윤석남>전 |
5. 사회적 활동 및 평가
뉴욕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윤석남은 1985년 김인순, 김진숙 작가 등과 함께 페미니스트 아트 콜렉티브인 '시월모임'을 결성했다.[3][4][12] 같은 해 10월 9일부터 10월 15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제1회 시월모임전을 개최했으며, 이듬해인 1986년에는 대한민국 여성주의 미술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시월모임 2회전 '반에서 하나로'를 열었다.[5][12] 이후 인문사회계열 여성학자와 여성 문인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문화' 회원이 되어 여성주의에 대해 공부했으며, 시월모임 회원들과 함께 민족미술협의회 내 여성미술분과의 주축이 되어 여성문제를 탐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12]
윤석남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여성 권익을 옹호하는 예술 창작에 힘써온 적극적인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6] 1995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 특별전에 설치작품 '어머니의 이야기'로 참여했으며,[12] 이후에도 자연과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일본군 위안부 기념관 건립기념전, 여성미술제 등에 참여하였다.[15][16][17][18][19][11][20] 2014년 2월에는 미국 시카고한인문화회관에서 열린 ‘어머니의 눈으로(Through the eyes of the mother)’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21]
이러한 활동을 통해 윤석남은 1996년 여성 미술가 최초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고, 1997년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12] 그의 작품은 테이트 미술관,[7] 퀸즐랜드 미술관,[5]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8]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6. 관련 방송
- 799회 《MBC 스페셜 - 핑크를 찢다 화가 윤석남》(2019년 3월 4일)
참조
[1]
웹사이트
Breakthrough Korean Feminist Artist Yun Suknam in Her First U.S. Museum Exhibition
https://www.smithson[...]
[2]
웹사이트
Yun Suknam Artist
https://www.theartro[...]
The Artro
2021-03-19
[3]
웹사이트
Yun Suknam at OCI Museum
https://www.artforum[...]
[4]
웹사이트
Portraits of the World: Korea
https://npg.si.edu/b[...]
2018-12-17
[5]
웹사이트
Women and Reality: Yun Suk-nam
https://blog.qagoma.[...]
2021-07-12
[6]
웹사이트
Painter Yun Suk-nam calls out to souls of forgotten female activists
http://www.koreahera[...]
The Korea Herald
2021-03-19
[7]
웹사이트
Yun Suknam born 1939
https://www.tate.org[...]
[8]
웹사이트
福岡アジア美術館
https://faam.city.fu[...]
[9]
뉴스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http://news.naver.co[...]
국민일보
2013-10-31
[10]
간행물
미술가 윤석남
http://navercast.nav[...]
아트인컬처
2009-05-14
[11]
뉴스
화가 윤석남_페미니즘 미술의 산증인을 만나다
http://woman.chosun.[...]
여성조선
2014-07-31
[12]
뉴스
“지금은 따뜻한 마음, 배려가 필요해요”
http://news.naver.co[...]
여성신문
2015-06-10
[13]
뉴스
핑크 소파를 박차고 나온 ‘우아한 미친년’
http://www.hani.co.k[...]
한겨레
2015-06-19
[14]
뉴스
비주류 한계 극복한 거장 2인 전시회
http://news.naver.co[...]
서울경제
2013-10-31
[15]
뉴스
화가 윤석남씨 고정희상 수상
http://news.naver.co[...]
경향신문
2007-11-20
[16]
뉴스
화가 윤석남씨 제4회 고정희상 수상
http://news.naver.co[...]
파이낸셜뉴스
2007-11-20
[17]
뉴스
여성사전시관, 바리데기 태우던 날
http://news.naver.co[...]
한겨레21
2011-02-11
[18]
뉴스
갤러리 안으로 들어온 숲…윤석남 개인전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13-10-15
[19]
뉴스
여성 ‘일’의 참 가치, 끈질긴 생명력이 시각예술로
http://news.naver.co[...]
여성신문
2010-11-26
[20]
뉴스
(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마지막 물음
http://news.naver.co[...]
동아일보
2014-09-13
[21]
뉴스
시카고서 한미 어머니 모성 다룬 전시 열려
http://news.naver.co[...]
여성신문
201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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