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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폰 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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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율리우스 폰 작스(Julius von Sachs)는 1832년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난 독일의 식물 생리학자이다. 그는 식물 생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광합성, 수경 재배, 식물 호르몬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작스는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저술과 교육 활동에도 힘썼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식물학 교본》, 《식물 생리학 강의》 등이 있다. 그는 19세기 후반 식물 생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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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폰 작스 - [인물]에 관한 문서

2. 생애

율리우스 폰 작스는 어린 시절부터 식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모님의 사망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얀 에반젤리스타 푸르키네의 조수로 일하며 식물 생리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1859년 타란트 농학교 조교를 시작으로, 1862년 켐니츠 공과대학을 거쳐 포펠스도르프 농학교(현재 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867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를 거쳐 1868년부터는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식물학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 저술,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광합성, 생장 측정기, 클리노스타트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해 식물 생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식물학 교과서'', ''식물 생리학 강의'', ''식물학의 역사''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1885년에는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2] 64세의 나이로 뷔르츠부르크에서 사망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율리우스 폰 작스는 1832년 10월 2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 조각가였으며, 아들에게 선과 색상의 정확성을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율리우스는 식물에 매료되어 아버지와 함께 여러 번 현장 학습을 하며 식물을 수집했다. 그는 13세에서 16세 사이에 수집한 꽃, 균류 및 기타 표본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채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1] 1845년부터 1850년까지 김나지움에서 그는 자연 과학에 가장 관심이 많았으며, 두개골을 수집하고 가재에 대한 논문을 썼다. 그의 자연 과학 교사였던 크로버는 젊은 작스에게 자연 과학에 헌신하지 말라고 엄숙하게 경고하면서 특별한 선견지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

16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에는 어머니와 형제도 콜레라로 사망했다. 갑작스럽게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그는 얀 에반젤리스타 푸르키네가 프라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면서 그의 가족에게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다. 작스는 1851년 프라하 대학교에 입학했다.[1] 그는 푸르키네를 위해 실험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으며, 실험실 일이 끝나면 매일 스스로를 위해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나와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규명하는 데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다.[1]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브로츠와프)에서 동판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작스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 젊은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학교를 중퇴했지만, 우연히 생리학자 얀 에반겔리스타 푸르키네를 알게 되어, 1851년부터 프라하에서 그의 조수를 맡아 생리학에 관심을 가졌다.[2] 카렐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1856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식물 생리학의 사강사가 되었다.[2]

2. 2. 학문적 경력

1856년 작스는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식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식물 생리학 강사로 자리를 잡았다. 1859년에는 율리우스 아돌프 슈퇴크하르트 아래 타란트 농업 아카데미(현재 드레스덴 공과대학교의 일부)의 생리학 조교로 임명되었고, 1862년에는 켐니츠 공과대학의 학장으로 초빙되었지만, 거의 즉시 포펠스도르프(현재 본 대학교의 일부)에 있는 농업 아카데미로 옮겨 1867년까지 그곳에 머물렀으며, 그해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식물학 교수로 임명되었다.[1]

1868년에는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의 식물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사망할 때까지 (더 명망 있는 독일 대학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계속 유지했다.[1]

작스는 연구자, 저술가, 교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이름은 19세기 후반을 특징짓는 식물 생리학의 발전에 특히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가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식물학 분야는 거의 없다. 식물학 저널과 학술 단체의 간행물에 흩어져 있는 그의 초기 논문들 (1892-93년에 수집된 판이 출판됨)은 매우 다양하고 흥미롭다. 그 중 두드러진 것은 "Keimungsgeschichten" 시리즈로, 이는 미세 화학적 방법과 형태학적발아의 생리학적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그는 "수경 재배" 방법을 부활시키고 이를 영양 문제 연구에 적용했다.[1]

광합성 개념을 발전시킨 그의 실험에서,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녹말 입자는 햇빛에 의존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햇빛을 받은 잎은 표백되어 흰색으로 변하고 요오드로 염색하면 검게 변하여 녹말 함량을 증명하지만, 햇빛을 받지 않은 같은 식물의 잎은 흰색으로 유지된다.

작스의 후기 논문은 거의 예외 없이 ''뷔르츠부르크 식물 연구소의 연구'' (1871-88) 세 권에 게재되었다. 여기에는 길이 성장의 주기성에 대한 그의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는 자체 기록 생장 측정기를 고안하여 스펙트럼의 고도로 굴절되는 광선이 성장 속도에 미치는 지연 영향을 확립했다. 광선 굴성 및 중력 굴성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그는 클리노스타트를 도입했으며, 성장 지점의 세포 구조 및 배열에 대한 그의 연구, 증산 작용의 "흡수 이론"의 근거가 되는 정교한 실험 증거, 녹색 의 동화 작용에 대한 그의 철저한 연구 등이 있다.[1]

작스가 처음 출판한 책은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1865; 프랑스어판, 1868)으로, 이 책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많은 독창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1868년에는 그의 유명한 ''식물학 교과서''의 첫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광범위한 연구로 풍부해진 당대 식물학의 요약을 제공하는 포괄적인 저서이다.[1] 세 번째 판은 1873년 필리프 에두아르 레옹 반 티겜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1875년 알프레드 베넷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독일어판은 1874년에 출판되었으며, 1882년 옥스퍼드에서 출판되었다.

''교과서''는 결국 ''식물 생리학 강의'' (제1판, 1882; 제2판, 1887; 영어판, 옥스퍼드, 1887)로 대체되었는데, 이 책은 범위가 더 제한적이지만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교과서''가 얻은 일반적인 인정을 얻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식물학의 역사'' (1875)가 있는데, 이는 16세기 중반부터 1860년까지 식물학의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설명한 것으로, 영어판은 1890년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1]

1885년 그는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2]

3. 주요 연구 업적

작스는 연구, 저술,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식물 생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19세기 후반 식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작스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제목비고
1859《붉은 강낭콩(Phaseolus multiflorus)의 발아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
1859《가변적인 조명 조건에서 잎이 번갈아 가며 희게 변하고 어두워지는 현상에 대하여》
1862《식물의 웃자람에 대하여》
1863《다양한 식물 기관의 신생 및 발달에 미치는 햇빛의 영향에 대하여》
1865《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1868《식물학 교과서》제3판 1873년, [https://archive.org/stream/lehrbuchderbotan00sach#page/n5/mode/2up 제4판 1874년]
187516세기부터 1860년까지의 식물학사(뒤셀도르프 대학교 및 주립 도서관에서 1875년에 디지털화)
1878《가장 어린 식물 부위에서 세포의 배열에 대하여》
1882《식물 생리학 강의》
1892《식물 생리학에 관한 논문집》
1894《기계적 변형과 계통 발생》
1896《계통 발생적 격언 및 내적 형성 원인 또는 자기 변형에 대하여》



작스는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1865년)을 통해 당시 식물 생리학 지식에 크게 공헌했으며, 이어서 출판한 『식물학 교과서』(1868년)는 식물학 분야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또한, 『식물 생리학 강의』(1882년)를 통해 식물 생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했으며, 『식물학사』(1875년)에서는 16세기 이후 식물학 각 분야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의 제자로는 프랜시스 다윈(찰스 다윈의 아들), 휴고 데 브리스(유전학자) 등 많은 식물학자들이 있다.

3. 1. 수경 재배법 발전과 식물 영양 연구

작스는 초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식물 생리학자 중 한 명으로, 잊을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초기에는 훗날 식물 호르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연구와 발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오래전부터 시도되었던 수경 재배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비료 연구에 응용했다.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전분 입자가 광합성의 초기 산물임을 발견하기도 했다. 후기에는 신장의 주기성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자동 생장 기록계를 고안했고, 이 파장에 따라 생장을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굴광성굴지성 연구를 위해 중력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회전 장치인 크리노스타트를 고안했다. 그 외에도 생장점의 세포 구조, 증산류, 광합성 등 훗날 식물 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여러 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3. 2. 광합성 연구

작스는 초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식물 생리학자 중 한 명으로,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전분 입자가 광합성의 초기 산물임을 발견했다. 또한 자동 생장 기록계를 고안하여 이 파장에 따라 생장을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훗날 식물 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1]

3. 3. 식물 생장 연구

작스는 연구자, 저술가, 교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이름은 19세기 후반 식물 생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식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기여했다. 그의 초기 논문 중 "Keimungsgeschichten" 시리즈는 미세 화학적 방법과 형태학적발아의 생리학적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했다.[2] 또한 그는 "수경 재배" 방법을 부활시키고 이를 영양 문제 연구에 적용했다.[2]

가장 중요한 것은 광합성 개념을 발전시킨 그의 실험으로,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녹말 입자는 햇빛에 의존한다는 것을 밝혔다. 햇빛을 받은 잎은 표백되어 흰색으로 변하고 요오드로 염색하면 검게 변하여 녹말 함량을 증명하지만, 햇빛을 받지 않은 같은 식물의 잎은 흰색으로 유지된다.

작스의 후기 논문에는 길이 성장의 주기성에 대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는 자체 기록 생장 측정기를 고안하여 스펙트럼의 고도로 굴절되는 광선이 성장 속도에 미치는 지연 영향을 확립했다. 광선 굴성 및 중력 굴성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클리노스타트를 도입했으며, 성장 지점의 세포 구조 및 배열에 대한 연구, 증산 작용의 "흡수 이론"의 근거가 되는 정교한 실험 증거, 녹색 의 동화 작용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2]

초기에는 훗날 식물 호르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연구와 발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시도되었던 수경 재배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비료 연구에 응용했다. 또한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전분 입자가 광합성의 초기 산물임을 발견했다. 후기 연구 중에서는 신장의 주기성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자동 생장 기록계를 고안했고, 이 파장에 따라 생장을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클리노스타트(중력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회전 장치)를 고안하여, 이를 통해 굴광성굴지성을 연구했다. 그 외에도 생장점의 세포 구조, 증산류, 광합성 등, 훗날 식물 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여러 방면의 연구가 있다.

3. 4. 기타 연구

작스는 연구자, 저술가, 교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19세기 후반 식물 생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식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를 수행했다. 그의 초기 논문들은 매우 다양하며, 특히 "Keimungsgeschichten" 시리즈는 미세 화학적 방법과 형태학적발아의 생리학적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수경 재배" 방법을 부활시켜 영양 문제 연구에 적용했다.[2] 또한, 광합성 개념을 발전시킨 실험을 통해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녹말 입자가 햇빛에 의존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햇빛을 받은 잎은 요오드로 염색하면 검게 변하여 녹말 함량을 증명했지만, 햇빛을 받지 않은 잎은 흰색으로 유지되었다.

작스의 후기 논문은 ''뷔르츠부르크 식물 연구소의 연구'' (1871-88) 세 권에 주로 게재되었다. 여기에는 길이 성장의 주기성에 대한 연구, 자체 기록 생장 측정기 고안, 스펙트럼의 고도로 굴절되는 광선이 성장 속도에 미치는 영향, 광선 굴성 및 중력 굴성 연구, 클리노스타트 도입, 성장 지점의 세포 구조 및 배열 연구, 증산 작용의 "흡수 이론" 관련 실험, 녹색 의 동화 작용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스는 특히 초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식물 생리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초기에는 식물 호르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연구와 발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수경 재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비료 연구에 응용했으며,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전분 입자가 광합성의 초기 산물임을 발견했다. 후기 연구에서는 신장의 주기성에 관한 연구, 자동 생장 기록계 고안, 이 파장에 따라 생장을 억제한다는 사실 확인, 크리노스타트(중력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회전 장치)를 고안하여 굴광성굴지성 연구, 생장점의 세포 구조, 증산류, 광합성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의 제자로는 프랜시스 다윈(찰스 다윈의 아들), 휴고 데 브리스(유전학자) 등 많은 식물학자들이 있다.

그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출판 연도제목비고
1859붉은 강낭콩(Phaseolus multiflorus)의 발아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
1859가변적인 조명 조건에서 잎이 번갈아 가며 희게 변하고 어두워지는 현상에 대하여
1862식물의 웃자람에 대하여
1863다양한 식물 기관의 신생 및 발달에 미치는 햇빛의 영향에 대하여
1865《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1868《식물학 교과서》제3판 1873년, [https://archive.org/stream/lehrbuchderbotan00sach#page/n5/mode/2up 제4판 1874년]
187516세기부터 1860년까지의 식물학사(뒤셀도르프 대학교 및 주립 도서관에서 1875년에 디지털화)
1878가장 어린 식물 부위에서 세포의 배열에 대하여
1882《식물 생리학 강의》
1892《식물 생리학에 관한 논문집》
1894기계적 변형과 계통 발생
1896계통 발생적 격언 및 내적 형성 원인 또는 자기 변형에 대하여


4. 저술 및 교육 활동

작스는 연구자, 저술가, 교사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이름은 19세기 후반 식물 생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여하지 않은 식물학 분야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식물학 저널과 학술 단체의 간행물에 흩어져 있는 그의 초기 논문들은 1892-93년에 수집되어 출판되었는데,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 "Keimungsgeschichten" 시리즈는 미세 화학적 방법과 형태학적발아의 생리학적 세부 사항에 대한 지식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수경 재배" 방법을 부활시켜 영양 문제 연구에 적용했다.[2]

광합성 개념을 발전시킨 그의 실험도 중요한 업적이다. 그는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녹말 입자가 햇빛에 의존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햇빛을 받은 잎은 표백되어 흰색으로 변하고 요오드로 염색하면 검게 변하여 녹말 함량을 증명했지만, 햇빛을 받지 않은 같은 식물의 잎은 흰색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작스의 후기 논문은 ''뷔르츠부르크 식물 연구소의 연구'' (1871-88) 세 권에 주로 게재되었다. 여기에는 길이 성장의 주기성에 대한 그의 연구, 자체 기록 생장 측정기를 고안하여 스펙트럼의 고도로 굴절되는 광선이 성장 속도에 미치는 지연 영향을 확립한 연구, 광선 굴성 및 중력 굴성에 대한 연구에서 클리노스타트를 도입한 내용, 성장 지점의 세포 구조 및 배열에 대한 연구, 증산 작용의 "흡수 이론"의 근거가 되는 정교한 실험 증거, 녹색 의 동화 작용에 대한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스가 처음 출판한 책은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1865)으로, 이 책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많은 독창적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1868년에는 그의 유명한 ''식물학 교과서''의 첫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광범위한 연구로 풍부해진 당대 식물학의 요약을 제공하는 포괄적인 저서이다. ''교과서''는 결국 ''식물 생리학 강의'' (1882)로 대체되었는데, 이 책은 범위가 더 제한적이지만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식물학의 역사'' (1875)는 16세기 중반부터 1860년까지 식물학의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설명한 책이다.

작스는 특히 초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식물 생리학자 중 한 명으로, 식물 호르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연구와 발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수경 재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비료 연구에 응용했으며,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전분 입자가 광합성의 초기 산물임을 발견했다. 후기 연구에서는 신장의 주기성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며, 자동 생장 기록계를 고안하고, 이 파장에 따라 생장을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굴광성굴지성을 연구하기 위해 크리노스타트(중력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회전 장치)를 고안했다. 그 외에도 생장점의 세포 구조, 증산류, 광합성 등, 훗날 식물 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여러 방면의 연구를 수행했다.

작스는 저술 및 교육 측면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1865)은 당시 식물 생리학 지식에 크게 기여했으며, 『식물학 교본』(1868)은 유명한 식물학 교과서로 널리 알려졌다. 『식물 생리학 강의』(1882)와 『식물학사』(1875) 역시 중요한 저서로 평가받는다.

그는 근면하고 엄격한 인물로, 학생들에게는 휴일에도 연구 활동을 과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프랜시스 다윈(찰스 다윈의 아들), 휴고 데 브리스(유전학자)를 비롯한 많은 식물학자들이 있다.

작스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연도저서
1859붉은 강낭콩(Phaseolus multiflorus)의 발아에 관한 생리학적 연구
1859가변적인 조명 조건에서 잎이 번갈아 가며 희게 변하고 어두워지는 현상에 대하여
1862식물의 웃자람에 대하여
1863다양한 식물 기관의 신생 및 발달에 미치는 햇빛의 영향에 대하여
1865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
1868식물학 교과서
187516세기부터 1860년까지의 식물학사
1878가장 어린 식물 부위에서 세포의 배열에 대하여
1882식물 생리학 강의
1892식물 생리학에 관한 논문집
1894기계적 변형과 계통 발생
1896계통 발생적 격언 및 내적 형성 원인 또는 자기 변형에 대하여


5. 진화론에 대한 입장

작스는 "다윈 이후의 식물학자"이자 "진화론을 자신의 형태학적 저술에 통합한" 인물로 묘사된다.[3] 그는 원래 다윈주의를 지지했지만, 만년에는 이에 격렬히 반대하며 비다윈적 진화를 선호했다.[4][5]

6. 영향 및 유산

율리우스 오스카 브레펠트, 프랜시스 다윈, 카를 리터 폰 괴벨, 게오르크 알브레히트 크렙스, 스피리돈 밀리아라키스, 헤르만 뮐러-투르가우, 프리츠 놀, 빌헬름 페퍼, 카를 프란틀, 크리스티안 에른스트 슈탈, 휴고 데 브리스, 해리 마셜 워드 등 작스의 많은 제자들은 훗날 유명한 식물학자가 되었다.

그의 과학적 주장은 데니스 로버트 호글랜드와 다니엘 이스라엘 아르논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은 작스의 원칙 중 하나를 따라 양액을 개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저는 일반적으로 수경 재배에 사용하는 (화학 물질의) 양을 언급하며, 개별 염의 양과 전체 용액의 농도에 관하여 다소 넓은 여유가 허용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하나의 염을 조금 더 많이 또는 적게 사용해도 상관없습니다. 경험에 의해 결정된 품질과 양에 대한 특정 한계 내에서 영양 혼합물이 유지된다면 말입니다."[6] 이른바 '작스의 양과 질 원칙'과 '크노프의 네 가지 염 혼합물'은 유명한 호글랜드 용액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표준 식물학적 저자 약어 '''Sachs'''는 그가 기술한 에 적용된다.

1866년, 식물학자 그리세바흐는 작시아를 발표했는데, 이는 서인도 제도와 플로리다 식물 중 엘레캠페인 족에 속하는 속이다.[7] 1895년, 식물학자 파울 린드너는 작시아를 발표했는데, 이는 Ascomycota 문과 Saccharomycetales 목에 속하는 곰팡이 이다.[8] 이 두 속 모두 율리우스 폰 작스를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9]

작스는 특히 초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식물 생리학자로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초기에는 훗날 식물 호르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연구와 발아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진행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시도되었던 수경 재배를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비료 연구에 응용했다. 또한 엽록체에서 발견되는 전분 입자가 광합성의 초기 산물임을 발견했다. 후기 연구 중에서는 신장의 주기성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자동 생장 기록계를 고안했고, 이 파장에 따라 생장을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굴광성굴지성을 연구하기 위해 크리노스타트(중력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회전 장치)를 고안했다. 그 외에도 생장점의 세포 구조, 증산류, 광합성 등, 훗날 식물 생리학의 기초가 되는 여러 방면의 연구가 있다.

작스는 저술 및 교육 측면에서도 현저한 업적이 있다. 최초의 저서는 『식물 실험 생리학 핸드북(Handbuch der Experimentalphysiologie des Pflanzen)』(1865년)으로, 당시 식물 생리학 지식에 크게 기여했다. 이어서 유명한 식물학 교과서 『식물학 교본(Lehrbuch der Botanik)』(1868년)을 출판했다. 이후, 식물 생리학에 관한 『식물 생리학 강의(Vorlesungen uber Pflanzenphysiologie)』(1882년)를 저술했다. 또한 『식물학사(Geschichte der Botanik)』(1875년)에서는 16세기 이후의 식물학 각 분야의 발전을 추적하고 있다.

근면하고 엄격한 인물로, 학생들에게는 휴일에도 연구 활동을 과했다고 한다. 제자로는 프랜시스 다윈(찰스 다윈의 아들, 아버지와 공동 연구를 수행), 휴고 데 브리스(유전학자)를 비롯한 많은 식물학자들이 있다.

7. 기타

Julius von Sachs|율리우스 폰 작스de에 관한 논문은 뷔르츠부르크 의학사 연보(2005년)와[1] 식물 생리학(1929년 1월)에서 찾아볼 수 있다.[2]

참조

[1] 서적 Sand and Water Culture Methods Used in the Study of Plant Nutrition Commonwealth Agricultural Bureaux 1966
[2] 웹사이트 J. von Sachs (1832–1897) http://www.dwc.knaw.[...] Royal Netherlands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2015-07-20
[3] 서적 Gametes & Spores: Ideas about Sexual Reproduction, 1750–1914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2
[4] 간행물 "At the Deathbed of Darwinism: A Series of Papers" https://archive.org/[...] German Literary Board 1904
[5] 서적 Principia Botanica: Or, Beginnings of Botany Weldon & Wesley 1960
[6] 서적 The water-culture method for growing plants without soil Berkeley, Calif.: University of California, College of Agriculture, Agricultural Experiment Station 1938
[7] 문서 Catalogus plantarum cubensium exhibens collectionem Wrightianam aliasque minores ex insula Cuba missas pages 150–151 https://www.biodiver[...] 1866
[8] 웹사이트 Sachsia – Names Record http://www.speciesfu[...] Species Fungorum 2022-10-08
[9] 서적 Eine Enzyklopädie zu eponymischen Pflanzennamen https://doi.org/10.3[...] Botanic Garden and Botanical Museum, Freie Universität Berlin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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