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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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쿠리냐는 바스크 자치 지방의 공식 깃발로, 루이스 아라나와 사비노 아라나 형제가 디자인한 바스크의 상징이다. '표시, 기호'를 뜻하는 바스크어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붉은색 바탕에 녹색 사선 십자와 흰색 십자가가 교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1894년에 처음 게양되었으며, 바스크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시기를 거치며 저항의 의미를 지녔다. 1977년 합법화되었으며, 현재 바스크 자치주와 프랑스령 생피에르 미클롱 등에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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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쿠리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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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별칭 | 이쿠리냐 |
상세 정보 | |
용도 | 110000 |
비율 | 14:25 |
채택 | 1936년 10월 19일 1978년 12월 18일 |
디자인 | 빨간색 바탕에 깃발의 가장자리까지 확장되는 흰색 중앙 십자가가 있고 깃발의 모서리까지 확장되는 녹색 대각선 십자가가 겹쳐져 있음 |
디자이너 | 루이스 아라나 사비노 아라나 |
2. 명칭
이 명칭은 루이스와 사비노 아라나 형제가 만든 신조어로, ikur|이쿠르eu('표시, 기호'라는 뜻이며 irakurri|이라쿠리eu '읽다'에서 파생)에서 유래되었다.[1] 바스크어에서 '깃발'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특히 바스크 지방의 깃발을 의미한다.[1]
이쿠리냐는 1894년 사비노 아라나와 루이스 아라나 형제가 비스케이 지방을 대표하기 위해 디자인한 깃발이다. 바스크 민족주의당(PNV) 활동이 비스케이에 집중되면서 이쿠리냐가 널리 알려졌고, 1895년 당기로 채택, 1933년에는 전체 바스크 지방의 깃발로 제안되었다.
아라나 형제가 처음 사용한 비스카이아어 표기는 ikuŕiñ|이쿠리뉴eu이었다(마지막 -a|-아eu는 바스크어 정관사 단수형).[1] 현대 표준 바스크어 표기는 ikurrin|이쿠린eu이다.[1]
"이쿠리냐"(Ikurrina)라는 명칭은 사비노 아라나가 만들었다. 그는 바스크어 동사 "irakurri"(읽다)에 포함된 "ra"가 옛 사역 접사라고 생각하여 이를 제거한 "*ikurri"라는 동사가 있었다고 가정했다. 그는 이 동사의 의미를 "나타내다"라고 생각하여 "*ikur"(나타내는 것)이라는 명사를 만들었다. "*ikur"에 아라나가 고안한 접미사 "-in"을 붙인 것이 "ikurrin"이며, 여기에 정관사 "a"를 붙인 형태가 "ikurrina"이다. 처음에는 "깃발"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제안되었지만, 바스크의 상징으로 여겨진 이 깃발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아라나가 제안한 정서법에서 "ikurrin"은 "ikuŕiñ"으로 표기된다.
3. 디자인
이쿠리냐는 유니언 잭과 유사한 패턴으로,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 EAJ-PNV의 설립자인 루이스 아라나와 사비노 아라나 형제가 디자인했으며, 바스크 지방의 국가적 비공식 상징으로 여겨진다.[1] 프랑스 바스크에서 널리 사용되며, 프랑스 바스크인과 많은 스페인 바스크 선원들이 정착한 북아메리카의 프랑스 해외 집합체인 생피에르 미클롱의 비공식 깃발의 일부를 형성한다.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EAJ-PNV)의 깃발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당의 비스케이 지방을 대표하는 부서의 상징이었을 뿐이어서, 다른 깃발이 전체 국가를 대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논란이 있었다.
붉은색 바탕은 비스케이 사람들을, 녹색 십자형은 비스케이의 옛 법(푸에로스)의 상징인 게르니카의 나무를, 흰색 십자가는 바스크 가톨릭 신앙을 상징한다. 빨강, 흰색, 녹색은 바스크의 국가 색상이 되었다.
이쿠리냐의 디자인은 유니언 잭의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이 있다.[2] 세로 280cm × 가로 500cm의 직사각형으로, 붉은색 바탕 위에 녹색 사선 십자와 흰색 십자가가 교차된 형태이다.[3] 녹색 선과 흰색 선의 폭은 동일하다.[4] 붉은색은 바스크인을, 녹색은 게르니카의 떡갈나무를, 흰색 십자는 가톨릭 신앙을 각각 의미한다. "게르니카의 나무"는 바스크의 전통적인 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전통적인 법과 민족의 자치·자유를 상징한다.
4. 역사
1923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정권은 이쿠리냐를 불법화했지만, 이미 프랑스령 바스크를 포함해 널리 퍼져 있었다. 1932년 '조국 바스크의 날' 행사에 사용되었고, 1936년 바스크 자치 정부 수립과 함께 자치 정부 깃발로 공식 채택되었다.
1939년 스페인 내전 종결 후 프랑코 독재 시대에 스페인-바스크 지역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바스크인들에게 이쿠리냐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1975년 프랑코 사후 1977년 이쿠리냐는 다시 합법화되었고, 1978년 바스크 자치주 깃발로 채택되었다. 현재 프랑스령 바스크에서도 게양이 허용된다.
4. 1. 기원과 초기 역사
이쿠리냐는 1894년 사비노 아라나와 루이스 아라나 형제가 디자인했으며, 7개의 바스크 지방 각각에 하나씩, 그리고 전체 국가를 대표하는 깃발 세트 중 하나로 비스케이 지방을 대표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바스크 민족주의당(PNV) 활동이 비스케이 밖에서는 드물었기 때문에 비스케이 깃발만이 대중에게 인정받았다. 이쿠리냐는 EAJ-PNV의 전신인 "Euzkeldun Batzokija" 클럽에서 처음 게양되었다.[3] 1895년 바스크 민족주의당은 이 깃발을 채택했고, 1933년에는 전체 바스크 지방의 깃발로 제안했다.
바스크인들이 "이쿠리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1936년 바스크 정부는 사회주의 고문 아스나르의 제안에 따라 이를 바스크 자치 지방의 깃발로 채택했다. 이 깃발은 스페인 내전 동안 비스케이 만에서 활동한 스페인 공화국 해군의 일부인 바스크 보조 해군의 해군기로 사용되었다.[3]
1938년, 바스크 정부가 군사적으로 패배한 후, 프랑코 장군의 정권은 이 깃발을 금지했지만, 북 바스크 지방에서는 계속 사용되었다.[4]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쿠리냐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지하 단체 ETA의 최초 활동은 공공 장소에 깃발을 게양하는 것이었다.
1976년,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더비 경기에서 양 팀의 선수들은 아토차 경기장에 불법 바스크 깃발인 이쿠리냐를 몰래 가져와 게양하기 위해 뭉쳤다. 당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이 행위는 성공적이었고, 깃발 합법화를 향한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5]
바스크 깃발은 스페인 민주주의 전환 동안 1977년에 다시 합법화되었다. 2년 후, 바스크 정부는 이쿠리냐를 바스크 자치 공동체의 깃발로 채택했다.
4. 2.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시기
1936년, 바스크 정부는 사회주의 고문 아스나르의 제안에 따라 이쿠리냐를 바스크 자치 지방의 깃발로 채택했다. 이 깃발은 스페인 내전 동안 비스케이 만에서 활동한 스페인 공화국 해군의 일부인 바스크 보조 해군의 해군기로 사용되었다.[3]
1938년, 바스크 정부가 군사적으로 패배한 후, 프랑코 장군의 정권은 이 깃발을 금지했지만, 북 바스크 지방에서는 계속 사용되었다.[4]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깃발은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지하 단체 ETA의 최초 활동은 공공 장소에 깃발을 게양하는 것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종결(1939년)되고 프랑코 독재 시대가 시작되자 스페인-바스크에서 이쿠리냐는 공적 공간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4] 내전과 독재 시대에 이쿠리냐는 바스크 지방에서 프랑코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으며, 내전 발발일(1936년 7월 17일), 게르니카 폭격의 날(1937년 4월 26일), 프랑코가 제정한 스페인 국민의 날 등에는 불법적으로 교회, 대성당, 산정 등에 게양되었고, 거리의 벽이나 전단 등에 그려졌다. 바스크 민족주의당에서 분열된 급진적 비합법 조직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는 먼저 이 깃발을 공공 장소에 게양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4. 3. 민주화 이후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고, 1977년 이쿠리냐 게양이 합법화되었다.[5] 1976년,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경기에서 양 팀 선수들이 아토차 경기장에 불법 바스크 깃발인 이쿠리냐를 몰래 가져와 게양한 사건은 깃발 합법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이 행위는 성공적이었다.
1938년 바스크 정부가 군사적으로 패배한 후, 프랑코 정권은 이 깃발을 금지했지만, 북 바스크 지방에서는 계속 사용되었다.[4]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쿠리냐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지하 단체 ETA의 최초 활동은 공공 장소에 깃발을 게양하는 것이었다.
바스크 자치주 발족 후, 1978년 12월 18일 이쿠리냐는 바스크 자치주기로 채택되었다. 자치주 내 공공 기관에서는 스페인 국기와 함께 이쿠리냐를 게양해야 한다. 프랑스령 바스크에서도 이쿠리냐 게양은 용인되며, 바욘 시청에는 바욘 시기, 동바욘 소구역기, 이쿠리냐, 프랑스 국기, 유럽기가 게양되어 있다.
5. 논란과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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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른 지역에서의 사용
이쿠리냐는 바스크인 항해자들이 많이 이주한 북대서양의 프랑스령 생피에르 미클롱의 기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 -]
7. 갤러리
참조
[1]
서적
Dictionary of the Standard Basque
http://www.euskaltza[...]
Euskaltzaindia
2010-10-04
[2]
서적
ikurriña
http://lema.rae.es/d[...]
Real Academia Española
2014-03-30
[3]
웹사이트
La Marina de Guerra Auxiliar de Euzkadi 1936-1937
http://www.marinavas[...]
[4]
웹사이트
ECMI Minorities Blog. National and Linguistic Minorities in the Context of Professional Football across Europe: Five Examples from Non-kin State Situations.
https://www.ecmi.de/[...]
2023-03-27
[5]
웹사이트
The Basque Flag (Ikurrina) – A Brief History
https://authentic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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