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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르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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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 마르티농은 프랑스의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20세기 초 프랑스 및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을 주로 다루었다. 리옹에서 태어나 파리 음악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포로 수용소에서 작곡 활동을 했다. 전쟁 후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과 아키텐 보르도 국립 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 더블린에서 라디오 에런 교향악단의 창단을 도왔다.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을 역임했으나, 레퍼토리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1976년 파리에서 사망했으며, 델타 오미크론의 국가 후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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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르티농
기본 정보
NHK 교향악단을 지휘 (1953년 10월 13일)
NHK 교향악단을 지휘 (1953년 10월 13일)
본명장 마르티농
출생지프랑스 1870, 리옹
사망지프랑스
국적프랑스
직업지휘자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악기지휘
바이올린
장르클래식 음악
활동 기간1951년 - 1969년
레이블EMI

2. 생애

장 마르티농은 리옹에서 태어나 파리 음악원에서 알베르 루셀, 샤를 뮌슈 등에게 음악을 배웠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 군에 복무했으며, 포로로 잡혀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2]

전쟁 후,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과 아키텐 보르도 국립 관현악단의 지휘자를 맡았다. 아일랜드 RTE 국립 교향악단 창설에 기여했고, 시카고 교향악단,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 등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2] 헨리크 셰링, 피에르 푸르니에 등과 협연하여 20세기 초 프랑스와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연주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0번 전곡 초연을 지휘한 직후 골수암 진단을 받고 파리에서 사망했다.[6]

2. 1. 유년 시절과 교육

장 마르티농은 리옹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고, 파리 음악원에 진학하여 알베르 루셀에게 작곡을, 샤를 뮌슈와 로제 데조르미에르에게 지휘를, 뱅상 댕디에게 화성을, 쥘 부셰리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2]

2. 2.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장 마르티농은 프랑스 군에 복무했으며, 1940년에 포로로 잡혔다. 수감 기간 동안 ''포로의 노래''와 같은 작품을 작곡했다.[2]

2. 3. 전후 활동 및 주요 경력

전쟁 후, 마르티농은 파리의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1946년에는 아키텐 보르도 국립 관현악단 지휘자로도 임명되었다.[2]

1946년 3월 더블린을 처음 방문했을 때, 클로드 드뷔시의 ''바다''를 해석한 것(이 작품의 아일랜드 초연)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음악적 사건'으로 묘사되었다.[3] 그 첫 번째 콘서트의 성공으로 라디오 에런(아일랜드 공영 방송 서비스)은 다음 해에 그를 초청하여 신설된 라디오 에런 교향악단의 음악가 선발 및 전반적인 조직을 돕도록 했다. 더블린에 있는 동안 마르티농은 우리 성모 합창단의 발전을 장려했으며, 라디오 관현악단과 함께 여러 중요한 행사에서 그 합창단을 지휘했고, 여름 음악 학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및 작곡에 대한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4]

그가 관계했던 다른 오케스트라로는 시카고 교향악단(1963년~1968년, 음악 감독), 뒤셀도르프 심포니,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콩세르 라무뢰 및 헤트 레지던시 오케스트 (헤이그)가 있었다.

마르티농의 레퍼토리는 20세기 초 프랑스 및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 집중되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 초연은 각각 헨리크 셰링과 피에르 푸르니에가 연주했다.

그는 국제 전문 음악 단체인 델타 오미크론의 국가 후원자였다.[5]

마르티농은 데릭 쿠크가 완성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0번을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이 처음으로 전곡 연주하는 것을 객원 지휘한 직후 골수암 진단을 받았다.[6] 그는 파리에서 사망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시작했으나, 지휘자로 전향하여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 보르도 교향악단, 콩세르 라무뢰,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다. 1958년부터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이후, 1963년에는 시카고 교향악단 음악 감독이 되었지만, 오케스트라와의 궁합은 결코 좋지 않았다. 후년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기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1968년부터는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여 프랑스 지휘계의 중진으로 활약했지만, 1976년 3월 1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4. 시카고 교향악단과의 갈등

장 마르티농은 시카고 교향악단 음악 감독(1963년 ~ 1968년) 재직 당시, 악단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독일 음악, 특히 말러브루크너 작품 연주를 줄이거나 아예 배제하면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7] 이는 독일계 알자스인 혈통을 이어받아 독일 음악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와는 상반된 행보였다.[7]

2. 5. 말년과 죽음

마르티농은 데릭 쿠크가 완성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0번을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이 처음으로 전곡 연주하는 것을 객원 지휘한 직후 골수암 진단을 받았다.[6] 1976년 3월 1일, 66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6] 그는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재임했던 시절을 "미국에서의 고통스러운 시기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언급할 정도로 오케스트라와 좋지 않은 관계를 보였다.[2]

3. 작품 활동

장 마르티농은 지휘자로서 드뷔시로 대표되는 프랑스 음악을 특기로 했지만, 독일계 알자스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독일 음악 해석에도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7] 일본의 평론가 우노 코요시는 그를 "(프랑스인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독일의 구성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했다.[7] 하지만 시카고 교향악단에서는 악단이 전통적으로 잘하는 독일 음악의 비중을 줄여(특히 말러브루크너는 처음부터 거부했다)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

음반 녹음에서는 프랑스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다. 특히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을 지휘한 드뷔시의 관현악 작품 전집, 생상스의 교향곡 전집,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 라벨 관현악 작품 전집(파리 관현악단) 등이 유명하다.

작곡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현악 사중주, 교향곡 4번 "지고(至高)" 등은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3. 1. 주요 작품 목록

장 마르티농 주요 작품 목록
제목작품 번호연도비고
Après ma journée faite (나의 하루 일과 후)작품번호 261940
Ballade du soldat incassable (부서지지 않는 군인의 발라드)작품번호 40 2번1945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번) "giocoso"작품번호 181937
현악 사중주 독주와 36명의 연주자를 위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lyrique"작품번호 381962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71
색소폰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작품번호 38b1974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작품번호 521967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2번작품번호 511963
오케스트라를 위한 디베르티스망 -축소판-1942
Doménon, ou, 윈드 퀸텟을 위한 음악1970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듀오 -소나타 형식의 음악-작품번호 471959
피아노를 위한 사랑 이야기의 에필로그 -자장가-작품번호 35 1번1947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잃어버린 지평선1946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Humanité (Les Soirs)작품번호 121940
찬가, 변주곡 및 론도작품번호 561961/1968
서주와 토카타작품번호 451947
내 가장 아름다운 꿈1946?
망명의 음악작품번호 311941
그리스 비극을 위한 서곡작품번호 471951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이전의 풍경작품번호 25 1번1940
시편 CXXXVI (포로의 노래)작품번호 331946
합창과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시편 136 (포로의 노래)작품번호 331946
현악 사중주 1번작품번호 431946
현악 사중주 2번작품번호 541966
알토와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721972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1번작품번호 19 1번1935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1번) 버전작품번호 19 1b1935/1968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2번작품번호 19 2번1936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2번) 버전작품번호 19 2b1936/1968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3번작품번호 221946?
관악 트리오를 위한 소나티네 4번작품번호 26 1번1940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소나티네 5번작품번호 32 1번1942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소나티네 6번작품번호 49 2번1960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a la lune qui s'en va"작품번호 10 3번1946?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야상곡작품번호 341944
현악 오케스트라, 피아노, 하프 및 팀파니를 위한 심포니에타1952
교향곡 3번 "Irlandaise"작품번호 451948
교향곡 4번 "Altitudes"작품번호 531965
현악 삼중주작품번호 32 2번1943
세 개의 샹송작품번호 201938
Absolve, Domine -모테트-작품번호 301942남성 4성부와 특별 오케스트라
Ambohimanga, ou La cité bleue -발레 라디오-작품번호 421949
Appel de parfums -합창-작품번호 28 2번1941남성 4성부
183번 협주곡1943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프로피의 40번째 생일을 위해 쓰여진 패러디 작품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giocoso작품번호 181937
협주곡 "lyrique"작품번호 38a1944
알토를 위한 협주곡작품번호 18b1937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작품번호 521963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71
색소폰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1974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2번작품번호 511958
오보에 해독미상
론도의 팡파르작품번호 401946
Hécube작품번호 461949
찬가 변주곡과 론도1961/1968
서주 아다지오와 파사칼리아작품번호 551966
Le lis de Saron ou le cantique de cantiques작품번호 481952
혼성 4성부 모테트작품번호 28 4번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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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2번 "Hymne a la Vie"작품번호 371944
교향곡 3번 "Irlandaise"작품번호 451948
교향곡 4번 "Altitudes" (원본)작품번호 531965
교향곡 4번 "Altitudes" (수정)작품번호 531965
교향곡 4번 "Altitudes" (새로운 코다 결말)작품번호 531965
여행 교향곡작품번호 49 1번1956
심포니에타작품번호 161935
현악 삼중주작품번호 32 2번1943
세 개의 새로운 샹송작품번호 361968
Vigintour 1번작품번호 581968
그랜드 푸그1969
Magnificat미상
모토 페르페투오미상
세레나데1946


4. 지휘 스타일 및 평가

장 마르티농의 지휘는 명석하고 힘이 넘쳤으며, 드뷔시로 대표되는 프랑스 음악을 특기로 했지만, 자신은 독일계 알자스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독일 음악 해석에 대해서도 식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도 평론가 우노 코요시는 일찍이 "(프랑스인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독일의 구성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했다.[7] 그러나 시카고 교향악단에서는 동 악단이 전통적으로 잘하는 독일 음악의 비중을 줄인 것(특히 말러브루크너는 처음부터 거부했다)이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

음반 녹음에서는 프랑스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으며, 손수 이끌던 프랑스 국립 관현악단을 지휘한 드뷔시의 관현악 작품 전집, 생상스의 교향곡 전집,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오케스트라는 전신인 프랑스 국립 방송 관현악단), 라벨 관현악 작품 전집(파리 관현악단) 등이 특히 유명하다.

작곡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현악 사중주, 교향곡 4번 "지고(至高)"도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5. 한국과의 관계

장 마르티농은 NHK 교향악단일본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기 위해 일본을 세 차례 방문했다. 1953년과 1963년에는 NHK 교향악단을, 1970년에는 일본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이와키 히로유키는 자신의 저서에서 마르티농이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 등을 지휘한 연주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1]

참조

[1] 웹사이트 MusicSack http://musicsack.com[...] 2011-10-09
[2] 논문 Jean Martinon (Obituary) 1976-05
[3] 뉴스 Irish Press 1946-04-01
[4] 서적 Maestro, Magician, Midwife: Jean Martinon in Dublin Peter Lang 2015
[5] 웹사이트 Delta Omicron http://delta-omicron[...]
[6] 뉴스 San Francisco Chronicle
[7] 서적 『名曲レコード全集2』 音楽乃之友社 1964
[8] 웹인용 MusicSack http://musicsack.com[...]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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