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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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근모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정책가로, 한국과학원, 한국과학재단,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의 설립을 주도하여 국가 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뉴욕공과대학 부교수,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형 원전 표준 설계 사업을 주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으로 활동하며 원자력 및 핵융합 연구에도 기여했으며,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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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모 | |
---|---|
기본 정보 | |
이름 | 정근모 |
원어명 | 鄭根謨 |
로마자 표기 | Jeong Geun-mo |
출생일 | 1939년 12월 30일 |
출생지 | 대한민국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물리학자 원자력 전문가 과학기술 행정가 |
소속 | 참주인연합 |
경력 | |
주요 경력 |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과학원(현 한국과학기술원) 2대 부원장 |
2. 학력
1955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7월 서울고등학교에서 1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1]
2. 1. 정규 학력
연도 | 학교 | 학위 | 비고 |
---|---|---|---|
1955년 7월 | 서울고등학교 | 고등학교 졸업 | 1년 수료 조기졸업[1] |
1959년 | 서울대학교 | 물리학 학사 | |
1960년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 석사과정 수료 | |
1963년 | 미시간 주립 대학교 | 이학 박사 | |
1994년 | 미시간 주립 대학교 | 명예 공학 박사 | |
1995년 | 미국 폴리테크닉 대학교 | 명예 공학 박사 |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후(Post-Doc) 과정을 밟았다.[1]
2. 2. 박사 후 과정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1]2. 3. 명예 박사 학위
1994년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서 명예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5년에는 미국 Polytechnic대학교에서 명예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3. 경력
정근모는 학계, 정부 및 공공기관, 기타 여러 단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분야 | 기관/직책 |
---|---|
학계 | 뉴욕공과대학 전기 및 핵물리학과 부교수,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아주대학교 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호서대학교 총장, 명지대학교 총장 |
미국공학한림원, 스웨덴공학한림원 회원 | |
정부 및 공공기관 |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전력기술(KOPEC) 사장, IAEA 총회의장, IAEA 원자력안전자문위원, 한국전력공사 원자력 상임 고문 |
기타 | (사)서울특별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 사랑의집짓기 HABITAT 한국이사장 |
3. 1. 학계 경력
정근모는 뉴욕공과대학 전기 및 핵물리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미국 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미국 과학재단 에너지 수석 심의관, 미국 프린스턴대학 및 MIT 핵융합 연구원으로 활동했다.[1]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아주대학교 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을 역임했다.[1] 명지대학교와 호서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미국공학한림원 및 스웨덴공학한림원 회원이다.[1]3. 2. 정부 및 공공기관 경력
- 미국 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 미국 과학재단 에너지 수석 심의관
- 과학기술처 장관
-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 한국전력기술(KOPEC) 사장
-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 IAEA 총회의장
- IAEA 원자력안전자문위원
- (사)서울특별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
- 사랑의집짓기 HABITAT 한국이사장
- 한국전력공사 원자력 상임 고문 (현직)
3. 3. 기업 경력
연도 | 기관/직책 |
---|---|
? | 미국 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
? | 미국 과학재단 에너지 수석 심의관 |
? | 미국 프린스턴대학 MIT 핵융합 연구원 |
? | 한국전력기술(KOPEC) 사장 |
? | 한국전력공사 원자력 상임 고문 (현직) |
? | 미국공학한림원 회원 |
? | 스웨덴공학한림원 회원 |
3. 4. 기타 경력
4. 생애 및 업적
'''정근모'''는 한국과학원, 한국과학재단,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의 설립을 주도하며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교육, 연구 거버넌스의 초석을 마련한 선구적인 과학기술정책가이다.[1]
1939년 12월 교육자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54년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 1년 만에 수료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하여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행정학, 정책학을 공부할 정도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두루 관심을 가졌다.[1]
1960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으로 유학, 물리학 공부와 미국의 과학기술 생태계 파악에 관심을 보였다. 1963년 박사학위 취득 후 남플로리아대학 조교수, MIT 핵공학과 연구교수, 뉴욕공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로 연구 활동을 했다. MIT 연구 시절 하버드행정대학원(현 케네디스쿨)의 과학기술정책 과정을 밟았으며, "후진국에서의 두뇌유출을 막는 정책 수단" 논문은 훗날 한국과학원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1]
1975년 한국과학원 설립 공로패, 1986년 은탑산업훈장, 1991년 청조근정훈장, 2001년 장영실과학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국제적으로는 1998년 캐나다 원자력협회 국제공로상, 세계원자력한림원상 등을 수상하며 연구자와 정책가로서 과학과 사회, 연구와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을 미쳤다.[1]
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참주인연합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15,380표(0.06%)를 얻어 9위로 낙선하였다.
4. 1. 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 기반 구축
정근모는 한국과학원(KAIST), 한국과학재단,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의 설립을 주도하며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 거버넌스의 초석을 마련했다.[1]1970년 과학기술처 김기형 장관의 초청으로 귀국한 그는, 당시 한국의 열악한 연구 환경으로 인해 많은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는 두뇌유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이공계 대학원인 한국과학원 설립을 제안했다.[1] 한국과학원은 기존의 문교부 중심 고등교육 시스템이 아닌 과학기술처 산하에서 고급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 교육기관이었다.[1] 그는 한국과학원의 방향 및 설계를 주도했으며, 1971년 한국과학원 초대 부원장으로 임명되었다.[1]
한국과학원 설립을 주도하며 과학기술정책계의 주요 인사로 떠오른 그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고, 199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쳐 과학기술처 장관직을 수행했다.[1] 이 과정에서 그는 국내 기초연구 및 집단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SRC, ERC 등 우수연구센터 육성정책 이론을 개발하고 추진했다.[1] SRC, ERC 사업은 한국에서 연구중심 대학 개념이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1] 그는 1990년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고등과학원 설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며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힘썼다.[1]
4. 2. 연구중심대학 육성 및 과학기술 인재 양성
정근모는 한국과학원(KAIST), 한국과학재단,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의 설립을 주도하며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교육 및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1] 1970년 과학기술처 장관의 초청으로 귀국한 그는, 당시 한국의 열악한 연구 환경으로 인한 인재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학원 설립을 제안했다.[1] 한국과학원은 과학기술처 산하의 특수 교육기관으로, 정근모는 설립 과정 전반을 주도했고 초대 부원장으로 임명되었다.[1]198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이후 두 차례 과학기술처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SRC, ERC 등 우수연구센터 육성정책을 추진하여 연구중심대학 개념을 정착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했다.[1] 또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고등과학원 설립을 주도하여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힘썼다.[1]
4. 3. 원자력 및 핵융합 연구
정근모는 과학기술 정책가로서 활동하면서도 물리학자로서 핵융합 및 원자력 기술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했다. 한국전력기술 사장 시절에는 KSNP-OPR-APR로 이어지는 한국형 원전 표준 설계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1] 그 결과, 12개의 OPR1000 원전이 국내 원자력 발전 사업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1] 1989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을 맡아 원자력 발전의 위험 거버넌스 구축에 앞장섰다.[1] 1990년대에는 한국핵융합연구시설(KSTAR) 확립에 집중했으며,[1] 2009년 한국전력공사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아랍에미리트 원전 사업을 기획하고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이끌었다.[1]이러한 공로로 1998년 캐나다 원자력협회 국제공로상, 세계원자력한림원상 등을 받았다.[1]
4. 4. 2007년 대선 출마
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참주인연합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15,380표(0.06%)를 얻어 9위로 낙선하였다.5.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2007년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 참주인연합 | 15,380표 | 0.06% | 9위 | 낙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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