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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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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재륜은 조선 효종과 현종 대의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의 아들이자 효종의 딸 숙정공주의 부마로, 동평위에 봉해졌다. 숙정공주와 혼인하여 3남 2녀를 두었으나 1남 1녀만 성장했다. 그는 숙종에게 재혼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고, 이후 사위 김도연이 기사환국에 연루되자 자살을 권하기도 했다. 1723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공사견문록》, 《한거만록》, 《동평기문》 등의 저서를 남겼다.

2. 생애

1666년(현종 7년) 3월, 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함께 갔다. 같은 해 12월, 동서인 익평위 홍득기와 함께 탄핵을 받았다. 홍득기와 정재륜의 하인과 포수 등이 국경을 넘어 사냥한 일로 처벌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경도 등지에서 사냥을 하여 피물을 싣고 돌아오다 붙잡혔기 때문이다.[4]

1670년(현종 10년), 1705년(숙종 31년), 1716년(숙종 42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당시, 숙종김육의 증손자이자 김석주의 아들인 김도연(金道淵)을 처형하려 하였는데, 김도연은 정재륜과 숙정공주 부부의 사위였다. 정재륜은 사위인 김도연이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자살할 것을 권하여 김도연은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9]

1723년(경종 3년) 2월 8일, 정재륜은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경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특별히 관판을 하사하고, 청평위 심익현의 예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정재륜은 효종, 현종, 숙종, 경종의 4대에 걸쳐 조정의 일을 맡았으며, 왕실의 부마로서 궁중의 여러 കാര്യ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 《한거만록(閑居漫錄)》, 《동평기문(東平記聞)》 등이 있다.

2. 1. 초기 생애

동래 정씨인 정재륜은 효종과 현종 대에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여흥 민씨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656년(효종 6년), 효종의 다섯째 딸 숙정공주와의 혼인이 결정되어 '''동평위'''(東平尉)에 봉해졌다.[1] 1657년(효종 7년) 12월 가례를 올리고 4년간 궁중에서 지내다가 1661년(현종 2년) 7월에 궁에서 나왔다. 숙정공주와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두었으나 1남 1녀만이 성장하였다.[2]

2. 2. 혼인과 궁중 생활

1656년(효종 6년), 효종의 다섯째 딸인 숙정공주와의 혼인이 결정되었고 '''동평위'''(東平尉)[1]에 봉해졌다. 1657년(효종 7년) 12월 가례를 올렸다. 혼례 후 4년간 궁중에서 지내다가 1661년(현종 2년) 7월 출합하였다. 숙정공주와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두었으나 1남 1녀만이 성장하였다.[2]

1662년(현종 3년), 아내 숙정공주가 언니인 숙안공주와 함께 황해도 신천, 재령, 평산 등지에 있던 민간인 소유의 땅을 불법으로 갈취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3]

1668년(현종 9년), 숙정공주가 유질을 앓자 현종은 어의 5명을 보내 치료하게 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5월 5일 사망했다.[5]

숙정공주 사후, 정재륜은 아들 정효선 마저 죽자 문종의 사위인 반성위 강자순과 세조의 사위인 하성위 정현조가 아내가 죽은 후에 재혼한 사례를 언급하며 숙종에게 다시 장가갈 것을 청하였다.[6] 숙종은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였으나 사헌부 대신들이 불가함을 아뢰자, 정재륜의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다.[6]

숙종은 이후 아내를 잃은 국왕의 부마는 재혼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다.[8]

2. 3. 숙정공주 사후

1668년(현종 9년), 숙정공주가 유질을 앓자 현종은 어의 5명을 보내 치료하게 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5월 5일에 사망했다.[5]

숙정공주가 사망하고, 아들 정효선 마저 죽자, 정재륜은 문종의 사위인 반성위 강자순과 세조의 사위인 하성위 정현조가 아내가 죽은 후에 재혼한 사례를 언급하며 숙종에게 다시 장가들기를 청하였다.[6] 숙종은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였으나, 사헌부의 대신들이 불가함을 아뢰자 정재륜의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다.[6]

이후 숙종은 아내를 잃은 국왕의 부마는 재혼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다.[8]

1670년(현종 10년), 1705년(숙종 31년), 1716년(숙종 42년)에 세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당시, 숙종김육의 증손자이자 김석주의 아들인 김도연(金道淵)을 처형하려 하였는데, 김도연은 정재륜과 숙정공주 부부의 사위였다. 정재륜은 사위인 김도연이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자살할 것을 권하여 김도연은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9]

2. 4. 정치 활동과 말년

1662년(현종 3년) 아내 숙정공주가 언니인 숙안공주와 함께 황해도 신천, 재령, 평산 등지에 있던 민간인 소유의 땅을 불법으로 갈취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3]

1666년(현종 7년) 3월, 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였다. 같은 해 12월 동서인 익평위 홍득기와 함께 탄핵되었다. 홍득기와 정재륜의 가노, 포수 등이 국경을 넘어 사냥한 일로 처벌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경도 등지에서 사냥을 하여 피물을 싣고 돌아오다 붙잡히는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4]

1668년(현종 9년), 숙정공주가 유질을 앓자 현종은 어의 5명을 보내 치료하게 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5월 5일 사망했다.[5]

숙정공주 사후 정재륜은 아들 정효선 마저 죽자, 문종의 사위인 반성위 강자순과 세조의 사위인 하성위 정현조가 아내가 죽은 후에 재혼한 사례를 언급하며 숙종에게 다시 장가갈 것을 청하였다.[6] 숙종은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였으나 사헌부의 대신들이 불가함을 아뢰자, 정재륜의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다.[6]

숙종은 이후 아내를 잃은 국왕의 부마는 재혼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다.[8]

1670년(현종 10년), 1705년(숙종 31년), 1716년(숙종 42년)에 세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당시 숙종김육의 증손자이자 김석주의 아들인 김도연(金道淵)을 처형하려 하였는데, 김도연은 정재륜과 숙정공주 부부의 사위였다. 정재륜은 사위인 김도연이 죽음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자살할 것을 권하여 김도연은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9]

1723년(경종 3년) 2월 8일 졸하였다.

3. 저술 활동

정재륜은 왕의 부마로서 궁중에 출입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 《한거만록(閑居漫錄)》, 《동평기문(東平記聞)》 등을 저술하였다.

4. 평가

정재륜은 기국이 준수하고 계책과 사려가 깊었으며, 검소함을 숭상하여 모든 부마들의 존경을 받았다. 효종, 현종, 숙종, 경종 4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으며, 조선 왕조의 예법과 제도에 밝아 사람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조정에서도 의지하는 바가 컸다.[9] 그러나 괴상한 행동을 하고 남의 비밀을 캐는 것을 좋아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9]

대표적인 저서로는 왕의 부마로서 궁중을 출입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공사견문록》이 있으며, 그 외에 《한거만록》, 《동평기문》 등이 있다.

5. 가족 관계

항목내용
조부정광성(1576 ~ 1654)
조모창원 황씨(1579 ~ 1649) - 황근중의 딸
아버지정태화(1602 ~ 1673)
외조부민선철(? ~ 1628) - 유효립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망
외조모김해 김씨
어머니여흥 민씨(1605 ~ 1671)
아내숙정공주(1646 ~ 1668) - 효종과 인선왕후의 다섯째 딸
아들정효선(1663 ~ 1680)
며느리여주 이씨 - 이만휘의 딸
정씨
사위김도연(1664 ~ 1689) - 김좌명의 손자이며 김석주의 아들


참조

[1] 실록 효종실록 17권 조선왕조실록 1656-08-29
[2] 웹사이트 국조인물고 - 정태화 https://terms.naver.[...]
[3] 실록 현종실록 5권 조선왕조실록 1662-07-13
[4] 실록 현종실록 13권 조선왕조실록 1666-12-05
[5] 실록 현종개수실록 19권 조선왕조실록 1668-05-05
[6] 실록 숙종실록 12권 조선왕조실록 1681-07-12
[7] 문서
[8] 실록 숙종실록 12권 조선왕조실록 1681-07-26
[9] 실록 숙종실록 20권 조선왕조실록 168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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