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소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짐 소프는 1887년 또는 1888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미국의 육상 선수이자 프로 미식축구, 야구, 농구 선수였다. 그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오종 경기와 십종 경기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아마추어 자격 논란으로 인해 메달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프로 선수로 활동하며 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활약했다. 소프는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야구 명예의 전당,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 등에 헌액되었으며, 2022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그의 올림픽 금메달을 복권했다. 짐 소프는 1953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유산은 기념비와 상, 그리고 그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 사업을 통해 기려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12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에드워드 린드버그
- 1912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프랭크 아이언스
프랭크 아이언스는 미국의 육상 선수로, 1908년 런던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 미국의 10종경기 선수 - 댄 오브라이언
미국의 육상 선수 댄 오브라이언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10종 경기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3회 우승자이며, 1992년에는 10종 경기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에는 저술, 모델, 방송 해설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미국의 10종경기 선수 - 엘러리 하딩 클라크
엘러리 하딩 클라크는 미국의 육상 선수이자 다재다능한 인물로,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높이뛰기와 멀리뛰기에서 모두 우승한 유일한 선수이며,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USAT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짐 소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제임스 프랜시스 소프 |
출생일 | 1887년 5월 22일 또는 28일 |
출생지 | 오클라호마주 프라하 근처 |
사망일 | 1953년 3월 28일 |
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로미타 |
민족 | 삭스 폭스족 |
미식축구 정보 | |
![]() | |
등번호 | 2, 21, 3 |
포지션 | 테일백 |
고등학교 | 칼라일 인디언 공업학교 (칼라일, 펜실베이니아주) |
대학교 | 칼라일 (1907–1908, 1911–1912) |
선수 경력 | 캔턴 불독스 (1915–1917, 1919–1920)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21) 오오랑 인디언스 (1922–1923) 록 아일랜드 인디펜던츠 (1924) 뉴욕 자이언츠 (1925) 록 아일랜드 인디펜던츠 (1925) 탬파 카디널스 (1926) 캔턴 불독스 (1926) 시카고 카디널스 (1928) |
코치 경력 | 인디애나 (1915) - 어시스턴트 코치 캔턴 불독스 (1915–1920) - 헤드 코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21) - 헤드 코치 오오랑 인디언스 (1922–1923) - 헤드 코치 탬파 카디널스 (1926) - 헤드 코치 |
운영진 경력 | 오오랑 인디언스 (1922–1923) - 단장 탬파 카디널스 (1926) - 구단주 겸 단장 |
주요 수상 경력 (선수) | 3회 오하이오 리그 챔피언 (1916, 1917, 1919) 1회 올프로 퍼스트팀 선정 (1923) NFL 1920년대 올디케이드 팀 선정 NFL 50주년 기념 올타임 팀 선정 2회 컨센서스 칼리지 풋볼 올아메리카 팀 선정 (1911, 1912) 3회 올아메리카 팀 선정 (1908) |
주요 수상 경력 (코치) | 3회 오하이오 리그 챔피언 (1916, 1917, 1919) |
출전 경기 수 | 52 |
선발 출전 경기 수 | 37 |
필드 골 | 4 |
최장 필드 골 거리 | 47야드 |
러싱 터치다운 | 6 |
득점 | 51 |
코치 성적 | NFL: 35.9% 승률 (14승 25패 2무) 오하이오 리그: 89.2% 승률 (32승 3패 2무) 전체: 60.3% 승률 (46승 28패 4무) |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 http://www.profootballhof.com/hof/member.jsp?PLAYER_ID=213 |
칼리지 풋볼 명예의 전당 | http://www.footballfoundation.org/Programs/CollegeFootballHallofFame/SearchDetail.aspx?id=10005 |
야구 정보 | |
![]() | |
포지션 | 외야수 |
타격 | 우타 |
투구 | 우투 |
메이저 리그 데뷔 | 1913년 4월 14일 |
최종 메이저 리그 출전 | 1919년 9월 25일 |
소속 팀 | 뉴욕 자이언츠 (1913–1915, 1917) 신시내티 레즈 (1917) 뉴욕 자이언츠 (1918–1919) 보스턴 브레이브스 (1919) |
타율 | .252 |
홈런 | 7 |
타점 | 82 |
안타 | 176 |
기타 경력 | |
NFL 초대 회장 | 1920년 - 1921년 |
이전 회장 | 랄프 헤이 |
다음 회장 | 조셉 카 |
메달 정보 | |
스포츠 | 남자 육상 |
국가 | 미국 |
금메달 | 1912년 스톡홀름 10종 경기 1912년 스톡홀름 5종 경기 |
2. 초기 생애
짐 소프는 쌍둥이 형제 찰리와 함께 스트라우드에 있는 색 앤드 폭스 인디언 에이전시 학교에 다녔으나, 찰리는 아홉 살 때 폐렴으로 사망했다.[9] 소프는 학교에서 여러 번 무단 결석을 하여, 아버지 하이럼은 그를 로렌스에 있는 미국 원주민 기숙학교인 해스켈 연구소로 보냈다.[10]
2년 후 어머니가 출산 합병증으로 사망하자,[10] 소프는 우울해졌다. 아버지와 여러 번 다툰 후, 그는 말 목장에서 일하기 위해 집을 나갔다.[10]
1904년, 열여섯 살의 소프는 아버지에게 돌아와 칼라일 인디언 산업 학교 (칼라일, 펜실베이니아주)에 다녔다. 그곳에서 글렌 스코비 "팝" 워너의 지도를 받았다.[16] 그해 말, 아버지 하이럼 소프는 사냥 사고로 인한 괴저 중독으로 사망했고,[10] 소프는 학교를 중퇴했다가 몇 년 후 칼라일 학교로 돌아갔다.[10]
2. 1. 출생과 가족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야코부스 프란시스쿠스 소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짐 소프의 출생, 이름, 민족적 배경에 대한 정보는 매우 다양하다.[2] 인디언 준주(후에 오클라호마주)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증명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1887년 5월 22일 프라하 마을 근처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졌다.[19] 소프는 1943년 ''쇼니 뉴스-스타''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1888년 5월 28일 "벨몬트 남쪽 근처, 포타와토미군 - 노스 포크 강둑을 따라... 이 내용이 나의 출생지에 대한 문의를 해소해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그의 세례 증명서에 기록된 날짜인 1887년 5월 22일에 태어났다고 믿는다.[3]소프의 아버지 하이럼 소프는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색 앤드 폭스 인디언 어머니를 두었다.[4][5] 그의 어머니 샬럿 비유는 시티즌 포타와토미 네이션 회원이자, 포타와토미족 추장 루이 비유의 후손이었다.[6][7] 소프는 색 앤드 폭스로 자랐으며,[8] 그의 원주민 이름인 ''Wa-Tho-Huk''는 "번개 섬광으로 밝혀진 길" 또는 간단히 "밝은 길"로 번역된다. 색 앤드 폭스의 관습에 따라 그는 출생 당시 일어난 일, 이 경우 그가 태어난 오두막으로 가는 길을 밝히는 빛을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소프의 부모는 모두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소프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이 종교를 따랐다.
2. 2. 어린 시절과 교육
짐 소프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야코부스 프란시스쿠스 소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2] 오클라호마주 프라하 마을 근처에서 1887년 5월 22일에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19] 그의 원주민 이름은 ''Wa-Tho-Huk''이며, "번개 섬광으로 밝혀진 길" 또는 "밝은 길"로 번역된다.[3]소프는 쌍둥이 형제 찰리와 함께 스트라우드에 있는 삭 & 폭스 부족 학교에 다녔으나, 찰리는 9살 때 폐렴으로 사망했다.[9] 소프는 학교에서 여러 번 무단 결석을 했고, 아버지 하이럼은 그를 캔자스주 로렌스에 있는 해스켈 연구소로 보냈다.[10]
2년 후 어머니 샬럿 비유가 출산 합병증으로 사망하자 소프는 우울증을 겪었고, 아버지와 여러 번 다툰 후 집을 떠나 말 목장에서 일했다.[10] 1904년, 소프는 아버지에게 돌아와 펜실베이니아주 칼라일에 있는 칼라일 인디언 산업 학교에서 글렌 스코비 "팝" 워너의 지도를 받았다.[16] 그해 말, 아버지 하이럼 소프는 사냥 사고로 인한 괴저 중독으로 사망했고, 소프는 학교를 중퇴했다가 몇 년 후 칼라일 학교로 돌아갔다.[10]
3. 아마추어 경력
짐 소프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학교 높이뛰기 선수들을 즉석에서 약 1.52m 약 22.86cm로 뛰어넘으며 육상 경력을 시작했고, 미식축구, 야구, 라크로스, 사교 댄스 등 다양한 종목에서 활약했다. 특히 1912년에는 대학 간 사교 댄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1912년 봄, 짐 소프는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했다. 기존에 강점을 보였던 점프, 허들, 포환 던지기 외에도 장대 높이뛰기, 창던지기, 원반 던지기, 해머 던지기, 약 25.40kg 추 던지기 등 새로운 종목을 훈련하며 다재다능한 운동 능력을 키웠다. 뉴욕에서 열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스웨덴으로 가는 미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1912년 9월,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돌아온 짐 소프는 아마추어 육상 연맹(AAU) 종합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10개 종목 중 7개 종목에서 우승하고 나머지 3개 종목에서 2위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13년, 과거 세미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마추어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올림픽 경기에는 아마추어리즘에 관한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었고, 짐 소프는 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당하고 올림픽 메달을 반납해야 했다.
3. 1. 대학 시절
팝 워너 코치는 짐 소프가 육상 선수로서 뛰어났지만, 미식축구와 같이 몸싸움이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을 망설였다.[114] 하지만 소프는 워너 코치를 설득하여 연습 경기에서 수비진을 상대로 돌진하는 플레이를 시도했다. 워너 코치는 소프가 쉽게 태클당하고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114] 소프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그들을 돌파했다."[114] 그는 워너 코치에게 다가가 "아무도 짐을 태클할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하며 공을 넘겨주었다.[114]1907년 당시 앨버트 페인이 주전 하프백이었고 짐 소프는 후보 선수였으나, 페인이 부상당하면서 출전 기회를 얻게 되었다.[111][115]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와의 경기에서 그는 단 2번의 플레이 만에 약 68.58m 터치다운을 기록했고, 추가로 2개의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는 활약을 펼쳤다.[111] 그는 러닝백 뿐만 아니라 블로커, 태클러, 키커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111]
1911년, 짐 소프는 뛰어난 운동 능력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3] 그는 러닝백, 수비수, 플레이스 키커, 펀터로 활약하며 하버드 대학교와의 경기에서 팀의 모든 득점인 4개의 필드 골을 성공시켜 18-15 승리를 이끌었다.[111][114] 당시 하버드 대학교는 전미 대학 체육 협회(NCAA) 초창기 최고 랭킹 팀이었다.[14] 그의 팀은 그 시즌을 11승 1패로 마무리했다.
1912년, 칼라일 인디언 산업 학교는 짐 소프의 활약에 힘입어 전국 대학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는 그 시즌 동안 25개의 터치다운과 198점을 기록했다.[111][116] 칼라일의 1912년 기록에는 육군사관학교 팀을 27-6으로 이긴 경기가 포함되어 있는데,[19] 그 경기에서 짐 소프의 92야드 터치다운은 팀원의 반칙으로 무효가 되었지만, 다음 플레이에서 97야드 터치다운을 기록했다.[15] 당시 그와 경기를 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훗날 1961년 연설에서 짐 소프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 예로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몇 명 있다. 내가 떠올리는 사람은 짐 소프이다. 그는 평생 훈련하지 않았고,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미식축구 선수보다 뛰어난 플레이를 했다.
짐 소프는 1908년 올 아메리칸 서드 팀[111], 1911년과 1912년에는 올 아메리칸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다.[109][111][117]
짐 소프는 1907년에 길을 걷다가 학교 높이뛰기 선수들을 즉석에서 약 1.52m 약 22.86cm로 뛰어넘으며 육상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11] 그의 초기 육상 기록은 1907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미식축구, 야구, 라크로스, 사교 댄스에도 출전하여 1912년 대학 간 사교 댄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12] 1908년 당시 그는 높이뛰기에서 약 1.83m 약 12.70cm, 멀리뛰기에서 약 7.01m 약 15.24cm, 포환 던지기에서 약 14.33m 약 22.86cm, 창던지기에서 약 126.19m, 장대높이뛰기에서 약 3.05m 약 20.32cm, 100야드 달리기에서 10초, 120야드 허들에서 15초, 440야드 달리기에서 51초의 기록을 세웠다.[111]
1912년 봄, 그는 올림픽을 위해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점프, 허들, 포환 던지기에만 집중했지만, 이제 장대 높이뛰기, 창던지기, 원반 던지기, 해머 던지기 및 약 25.40kg 추를 추가했다. 뉴욕의 셀틱 공원에서 열린 올림픽 선발전에서 그의 다재다능함은 이 모든 종목에서 두드러졌고, 스웨덴으로 가는 팀에 합류할 자격을 얻었다.[109]
3. 2. 올림픽 경력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짐 소프는 오종 경기와 십종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로 떠올랐다.육상 경기 오종 경기에서 소프는 멀리뛰기, 창 던지기, 200m 달리기, 원반 던지기, 1500m 달리기의 다섯 종목 중 네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특히 창 던지기는 1912년 이전에 출전한 경험이 없었음에도 3위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21]
십종 경기에서는 휴고 비즐란데르와의 경쟁이 예상되었으나, 소프는 10개 종목 모두에서 상위 4위 안에 드는 고른 활약을 펼치며 688점 차이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올림픽 기록 8,413점은 거의 2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11] 특히, 경기 직전 신발을 도난당해 쓰레기통에서 주운 짝짝이 신발을 신고 경기에 임했음에도 금메달을 획득하는 투혼을 발휘했다.[27]
종목 | 세부 종목 | 기록 | 순위 |
---|---|---|---|
오종 경기 | 멀리뛰기 | 7m07cm | 1위 |
창 던지기 | 46m71cm | 3위 | |
200m 달리기 | 22초 9 | 1위 | |
원반 던지기 | 35m57cm | 1위 | |
1500m 달리기 | 4분 44초 8 | 1위 | |
높이뛰기 | 1m87cm | 공동 4위 | |
멀리뛰기 | 6m89cm | 7위 | |
십종 경기 | 100m 달리기 | 11초 2 | 공동 3위 |
멀리뛰기 | 6m79cm | 3위 | |
포환 던지기 | 12m89cm | 1위 | |
높이뛰기 | 1m87cm | 1위 | |
400m 달리기 | 52초 2 | 4위 | |
원반 던지기 | 36m98cm | 3위 | |
110m 허들 | 15초 6 | 1위 | |
장대높이뛰기 | 3m25cm | 공동 3위 | |
창 던지기 | 45m70cm | 4위 | |
1500m 달리기 | 4분 40초 1 | 1위 |
시상식에서 구스타프 5세 스웨덴 국왕은 소프에게 "경, 당신은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입니다"라고 칭송했고, 소프는 "감사합니다, 국왕"이라고 답했다.[29][30] 소프의 전기 작가 케이트 버포드는 이 일화가 위경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31] 이 이야기는 1948년까지 신문과 책에 등장하며 신화가 되었다.[32]
소프의 올림픽 우승은 미국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림픽 팀 귀국 후, 브로드웨이에서 열린 테이프 행렬의 주인공이 되었고, "사람들이 제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친구를 가질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없었다"라고 회상했다.[29]
한편, 소프는 육상 경기 외에도 1912년 하계 올림픽 야구 시범 경기에 참가하기도 했다.[20]
3. 3. 전미 챔피언
1912년 9월 2일, 짐 소프는 스웨덴 올림픽에서 승리한 후 아마추어 육상 연맹(AAU) 종합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아이리시 아메리칸 육상 클럽의 홈구장인 뉴욕 퀸스의 켈틱 파크로 돌아왔다. 이곳은 4개월 전 그가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소프는 아이리시 아메리칸 육상 클럽의 브루노 브로드와 프린스턴 대학교의 존 L. 브레데머스를 상대로 10개 종목 중 7개 종목에서 우승하고 나머지 3개 종목에서 2위를 차지하며 총점 7,476점을 기록했다. 이는 1909년 마틴 셰리단이 같은 장소에서 세운 이전 기록 7,385점을 경신한 것이다.[33][34]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셰리단은 자신의 기록이 깨지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소프에게 다가가 악수하며 "짐, 내 친구,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보다 더 훌륭한 운동 선수를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33] 셰리단은 뉴욕 월드 기자에게 "소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입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나를 이겼습니다. 내가 전성기였을 때조차도 오늘 그가 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33]
3. 4. 아마추어 자격 논란
1913년, 짐 소프는 과거 세미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당하고 올림픽 메달을 반납해야 했다. 당시 올림픽 경기에는 아마추어리즘에 관한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어, 상금을 받거나 프로 선수와 경쟁한 선수는 아마추어로 간주되지 않아 대회 출전이 금지되었다.1913년 1월 말, ''우스터 텔레그램''을 비롯한 미국 신문들은 소프가 1909년과 1910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록키마운트에서 이스트 캐롤라이나 리그 세미프로 야구를 했으며, 적은 보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게임당 2USD (현재 가치 약 47USD), 주당 최대 35USD(현재 가치 약 822USD)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125] 당시 대학 선수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여름에 프로로 활동했지만, 대부분 가명을 사용했다.[116]
대중은 소프의 과거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126] 전미 아마추어 육상 연합(AAU)과 사무총장 제임스 에드워드 설리번은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127] 소프는 설리번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프로 야구를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119]
> 저는 제가 단순히 인디언 학교 학생이었고 그런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로 약간의 변명을 바란다. 사실, 저는 제가 잘못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른 여러 대학생들이 했던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1]
하지만 그의 편지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AAU는 소프의 아마추어 자격을 소급하여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늦게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만장일치로 소프의 올림픽 타이틀, 메달 및 상을 박탈하고 그를 프로로 선언하기로 결정했다.[111]
소프가 돈을 받고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AAU와 IOC는 자격 박탈에 대한 자체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1912년 올림픽 규정집에는 항의는 "경기 폐막식으로부터 3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첫 번째 신문 보도는 1913년 1월에 나왔으며, 이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이 끝난 지 약 6개월 후였다. 또한, 소프가 올림픽 전에 세미프로 야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AAU는 1913년 문제가 제기될 때까지 이 문제를 무시했다는 증거도 있다.
4. 프로 경력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1913년 1월, 짐 소프가 과거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아마추어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119][123] 소프는 1909년과 1910년에 노스캐롤라이나주 록키마운트에서 이스트 캐롤라이나 리그 소속으로 세미 프로 야구를 하며 적은 보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125] 당시 대학 선수들이 여름에 가명을 사용하며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116] 전미 아마추어 육상 연합(AAU)과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소프의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하고 올림픽 메달을 회수했다.[111]
이후 소프는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보류 조항 시대에 드문 자유 계약 선수였던 소프는 여러 구단의 제안을 받고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하여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129] 그해 10월에는 자이언츠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과 함께 월드 투어에 참가하여 전 세계를 돌며 야구 경기를 펼쳤다.[130] 이 투어에서 소프는 최고의 유명 인사로 주목받았으며, 그의 이름은 가는 곳마다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131]
4. 1. 야구
1913년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뉴욕 자이언츠는 1912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 팀이었다. 소프는 1913년 151경기 중 19경기에 출전했고, 팀은 다시 한번 1913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을 차지했다. 그 해 10월 1913년 월드 시리즈에서 자이언츠가 패배한 직후, 소프는 자이언츠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과 함께 세계 투어에 참가했다.[39] 미국과 전 세계를 돌며 진행된 이 야구 투어에서 소프는 가장 유명한 선수였다.[40]소프는 3시즌 동안 자이언츠에서 외야수로 간헐적으로 뛰었다. 1916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마이너 리그 생활을 한 후,[42] 1917년 자이언츠로 복귀했다. 시즌 초 신시내티 레즈로 팔렸으며, 레즈의 프레드 토니와 시카고 컵스의 히포 본이 맞붙은 "더블 노히터" 경기에서 10회에 결승 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43] 시즌 말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고, 1918년에도 간헐적으로 뛰었다. 1919년 5월 21일 팻 레이건을 상대로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메이저 리그 통산 289경기에 출전하여 91득점, 82타점, .252타율을 기록했다.[44] 이후 1922년까지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했으며, 한때 마이너 리그 톨레도 머드 헨스에서 뛰기도 했다.[45]
소프는 2020년 에디 알바레즈 이전까지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에서) 올림픽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모두 뛴 마지막 선수였다.[41]
4. 2. 미식축구
소프는 1913년 인디애나 주에 기반을 둔 파인 빌리지 프로스의 일원으로서 프로 미식축구를 시작했다. 이 팀은 1910년대에 지역 팀들을 상대로 여러 시즌 동안 연승을 기록했다.[46] 1915년 캔턴 불독스와 계약했는데, 당시 경기당 250USD라는 엄청난 임금을 받았다. 캔턴은 그를 영입하기 전에는 경기당 평균 1,200명의 팬이 왔지만, 소프의 매실론 타이거스와의 데뷔전에는 8,000명이 나타났다. 이 팀은 1916년, 1917년, 1919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소프는 1919년 챔피언십 경기에서 팀의 5야드 라인에서 바람의 도움을 받아 95야드 펀트를 차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했다고 한다.1920년, 캔턴 불독스는 14개 팀 중 하나가 되어 아메리칸 프로페셔널 풋볼 협회를 결성했는데, 이는 2년 후에 내셔널 풋볼 리그(NFL)가 되었다. 소프는 명목상 초대 회장이었지만, 캔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선수로 보냈다. 1년 후, 조셉 카에게 회장직을 넘겨주었다. 그는 캔턴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했고, 팀을 코치하기도 했다. 1921년과 1923년 사이에는 모든 선수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구성된 오랑 인디언스 (오하이오주 라루) 팀을 조직하고 선수로 뛰는 데 기여했다.[47] 비록 팀의 1922년 기록은 3승 6패, 1923년에는 1승 10패였지만, 소프는 훌륭한 경기를 펼쳤고 1923년에 ''그린베이 프레스-가제트''의 첫 번째 올-NFL 팀에 선정되었다. 이는 나중에 1931년에 NFL에 의해 리그의 공식 올-NFL 팀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소프는 NFL 챔피언십 팀에서 한 번도 뛰지 못했다. 그는 41세에 프로 풋볼에서 은퇴했으며,[9] 1920년부터 1928년까지 6개 팀에서 52경기를 뛰었다.[48]
4. 3. 농구
2005년, 낡은 책에서 발견된 티켓 한 장으로 짐 소프가 프로 농구 선수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49] 소프는 1926년까지 라루, 오하이오를 기반으로 한 순회 농구팀 월드 페이머스 인디언스의 주요 선수였다. 이 팀은 최소 1927년부터 1928년까지 2년 동안 여러 주를 순회하며 경기를 펼쳤다.[49] 당시 소프의 팀에 대한 이야기가 일부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지만, 그의 농구 경력은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다.[50]
5. 결혼과 가족
칼라일에서 만난 아이바 M. 밀러와 1913년에 결혼했다.[19] 1917년, 부부는 오클라호마 예일에 있는 집(현재 짐 소프 하우스)을 구매하여 1923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52] 슬하에 제임스 F., 게일, 샬롯, 그레이스 프랜시스 4명의 자녀를 두었다.[19][53] 1925년, 밀러는 소프의 유기를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54]
1926년, 당시 선수로 뛰던 야구팀 매니저를 위해 일하던 프리다 베로나 키르크패트릭(1905년 9월 19일 ~ 2007년 3월 2일)과 결혼했다.[55] 필립, 윌리엄, 리처드, 존 소프 4명의 아들을 두었다.[19] 키르크패트릭은 15년 만인 1941년에 소프와 이혼했다.[55]
1945년 6월 2일, 패트리샤 글래디스 애스큐와 마지막으로 결혼했다.[19] 그녀는 소프가 사망할 때 곁에 있었다.
6. 말년과 죽음
짐 소프는 선수 생활 은퇴 후 가족을 부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스포츠와 관련 없는 직업을 갖는 것을 어려워했고, 오랫동안 직업을 유지하지 못했다. 특히 대공황 기간 동안 그는 영화 배우, 대부분 엑스트라로, 일반적으로 서부극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역할을 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56] 1931년 연작 영화 ''버팔로 빌과 싸우다''부터 시작했다.[56] 1932년 코미디 ''Always Kickin''에서 짐 소프는 젊은 축구 선수들에게 드롭킥을 가르치는 코치 역으로 자신의 역할을 맡아 두드러지게 출연했다. 1935년 영화 ''She''에서 경비대 대장 역,[57] 1940년 영화 ''크누트 록네, 올 아메리칸''에서 심판 역,[57] 1950년 영화 ''웨건 마스터''에서 나바호족 멤버 역을 연기했다. 한 ''아메리카 인디언 매거진'' 기사에 따르면 짐 소프는 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56]
1931년, 대공황 기간 동안 짐 소프는 자신의 삶에 대한 영화 권리를 MGM에 1500USD에 판매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결국 이 권리를 획득하여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짐 소프 - 올 아메리칸''(1951)에서 짐 소프를 기렸다. 이 영화에는 1912년과 1932년 올림픽의 기록 영상이 포함되었다.[58] 짐 소프는 코칭 어시스턴트로 한 장면에 출연했다.[58]
그는 영화 출연 외에도 건설 노동자, 보안 요원, 경비원, 그리고 도랑 파는 사람으로 일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에 잠시 미국 상선에 입대했다.[59] 짐 소프는 만년 동안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60] 그는 1950년대 초에 돈을 다 써버렸다. 1950년 입술 암으로 입원했을 때 짐 소프는 자선 환자 자격으로 입원했다.[60] 절차 발표 기자 회견에서 그의 아내 패트리샤는 울면서 도움을 요청하며 "우린 파산했어요... 짐에게는 그의 이름과 기억밖에 없어요. 그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돈을 썼고, 그것을 나눠주었어요. 그는 자주 이용당했어요."라고 말했다.[60]
1953년 초, 짐 소프는 캘리포니아주 로미타에 있는 집에서 패트리샤와 식사하던 중 세 번째 심부전을 겪었다. 그는 인공호흡으로 잠시 소생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했지만, 곧 의식을 잃었다. 그는 65세의 나이로 3월 28일에 사망했다.[19]
7. 인종차별 문제
짐 소프는 부모가 모두 혼혈이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자랐다. 그는 미국의 심각한 인종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올림픽 메달이 인종 때문에 체육 관계자들에 의해 박탈당했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었다.[61]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대중의 의견은 대체로 이러한 견해를 반영했다. 짐 소프가 금메달을 땄을 당시,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이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유럽계 미국인의 방식을 따르도록 양보할 것을 자주 요구했고,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시민권이 부여된 것은 1924년이었다.[148]
짐 소프가 칼라일 학교에 다닐 때, 학생들의 인종은 마케팅 목적으로 사용되었다.[62] 미식축구 팀은 인디언스라고 불렸다. 학교와 언론인들은 스포츠 경기를 인디언 대 백인의 대결로 묘사하여 헤드라인을 만들었다.[62] 짐 소프에 대한 최초의 ''뉴욕 타임스'' 기사는 "올림픽의 인디언 소프; 칼라일 출신의 레드스킨이 미국 팀 자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13] 그의 생애 동안, 소프의 업적은 다른 신문과 스포츠 기자들에 의해 비슷한 인종적 맥락으로 묘사되었으며, 이는 당시 시대를 반영했다.[63]
8. 유산
펜실베이니아 주 짐 소프 마을에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5세가 짐 소프에게 "당신은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입니다"라고 칭찬한 말을 인용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소프의 묘는 고향 오클라호마의 흙과 1912년 금메달을 획득한 스톡홀름 경기장 흙으로 조성되었다.[74]
짐 소프의 업적은 생전과 사후에 스포츠 저널리스트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1950년 AP 통신 여론 조사에서 20세기 전반기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와 "가장 위대한 미국 미식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75][76] 1999년 AP 통신 선정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 목록에서 베이브 루스, 마이클 조던에 이어 3위에 올랐고,[78] ESPN은 20세기 북미 최고의 운동 선수 목록에서 소프를 7위로 선정했다.[79]
1963년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창립 멤버 17명 중 한 명으로 헌액되었으며,[80] 명예의 전당 원형 홀에는 실물보다 큰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대학 풋볼, 미국 올림픽 팀, 전국 육상 경기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16]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3년 4월 16일을 "짐 소프의 날"로 선포하여 그의 삶에 대한 전국적인 인식을 높였다.[83] 1986년 짐 소프 협회가 제정한 짐 소프 상은 매년 대학 풋볼 최고의 수비수에게 수여된다. 연례 소프 컵 육상 대회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84]
소프의 아내 패트리샤는 오클라호마 주 정부가 소프 기념 시설을 건설하지 않자 분노했다.[161] 패트리샤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마을 마우크 청크와 이스트 마우크 청크가 산업 유치를 모색한다는 소식을 듣고 거래를 제안, 두 마을은 짐 소프의 기념비와 묘지를 건설하고 합병하여 그의 이름을 따르기로 했다. 소프 본인은 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없다.
2010년 6월, 소프의 아들 잭은 미 원주민 묘지 보호 및 반환법을 인용, 소프의 유해를 고향 오클라호마로 돌려보내 다른 친족과 함께 재매장하도록 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97][98]
8. 1. 올림픽 메달 복원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1982년 짐 소프 재단을 설립하고 미국 의회의 지지를 얻은 로버트 휠러와 플로렌스 리들론 부부의 노력으로 짐 소프의 복권을 승인했다.[67] 이들은 짐 소프의 실격이 올림픽 규정에 명시된 30일의 기간을 지나서 발생했다는 1912년의 증거를 찾아 IOC에 제출했다. IOC는 이례적으로 짐 소프를 페르디난드 비에와 휴고 비즐란데르와 함께 공동 챔피언으로 선언했지만, 두 선수 모두 짐 소프를 유일한 챔피언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1983년 1월 18일, IOC는 짐 소프의 자녀인 게일과 빌에게 기념 메달 2개를 수여했다.[66][67] 그러나 짐 소프의 원래 메달은 박물관에 보관 중 도난당해 아직 찾지 못했다.[21]2020년 7월, Bright Path Strong 단체는 IOC에 짐 소프를 1912년 올림픽 단독 우승자로 복권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을 시작했다.[68][69] 이 청원은 짐 소프 영화 제작사인 Pictureworks Entertainment가 후원했으며, 1964년 도쿄 올림픽 10,000미터 금메달리스트 빌리 밀스도 지지했다.[70][71] 2022년 7월 14일, 노르웨이와 스웨덴 국가 올림픽 위원회(비에와 비즐란데르 대표)가 승인하면서 IOC는 짐 소프를 두 종목의 단독 우승자로 복권하기로 결정했다.[72][73]
8. 2. 기념 사업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5세가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입니다."라고 칭송한 짐 소프를 기리는 기념비가 짐 소프 마을 근처에 세워져 있다. 그의 무덤은 소프의 고향인 오클라호마에서 가져온 흙과 그가 올림픽 메달을 딴 경기장의 흙 위에 놓여 있다.[74]짐 소프의 업적은 생전과 사후에 스포츠 기자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1950년 AP 통신의 여론 조사에서 20세기 전반기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와 "가장 위대한 미국 미식축구 선수"로 선정되었다.[75][76] 1967년에는 NFL 50주년 기념 올타임 팀에 선정되었고,[77] 1999년 AP 통신 선정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 목록에서 베이브 루스, 마이클 조던에 이어 3위에 올랐다.[78] ESPN은 20세기 북미 최고의 운동 선수 목록에서 소프를 7위로 선정했다.[79]
1963년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창립 멤버 17명 중 한 명으로 헌액되었으며,[80] 명예의 전당 원형 홀에는 실물보다 큰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대학 풋볼, 미국 올림픽 팀, 전국 육상 경기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16]
2018년에는 전미 아메리카 원주민 명예의 전당 첫 헌액식에서 헌액자 중 한 명이 되었다.[81] 하스켈 인디언 네이션스 대학교의 체력 단련 센터와 홀은 소프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82]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3년 4월 16일을 "짐 소프의 날"로 선포하여 그의 삶에 대한 전국적인 인식을 높였다.[83] 1986년 짐 소프 협회가 제정한 짐 소프 상은 매년 대학 풋볼 최고의 수비수에게 수여된다. 연례 소프 컵 육상 대회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84] 미국 우정 공사는 1998년 2월 3일 세기의 기념 우표 시트 시리즈의 일부로 32센트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85]
2000년 ABC 스포츠의 ESPN이 발표한 스포츠 팬 여론 조사에서 소프는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로 선정되었다.[86][87] 2018년, 소프는 아메리카 원주민 달러 동전에 헌정되었다.[88] 2024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소프가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90]
8. 3. 펜실베이니아주 짐 소프

소프의 장례식은 오클라호마주 쇼니에 있는 성 베네딕토 가톨릭 교회에서 거행되었고,[91] 그의 시신은 페어뷰 묘지에 안치되었다. 주민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쇼니로 시신을 기차로 운송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다. 사람들은 마을의 운동 공원에 소프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지역 관리들은 주 의원들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25,000달러를 포함하는 법안은 존스턴 머레이 주지사에 의해 거부되었다.
한편, 소프의 세 번째 아내는 다른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인 마우치 청크와 이스트 마우치 청크가 사업 유치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프의 시신을 펜실베이니아로 보냈다.[92][93] 소프의 아들 잭에 따르면, 과부인 패트리샤는 금전적 대가를 받고 관리들과 거래를 했다.[94] 마을들은 소프의 유해를 "구입"하고, 그의 무덤에 기념비를 세우고, 합병하여 새로 통합된 마을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서 짐 소프, 펜실베이니아로 개명했다. 소프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기념비 부지에는 그의 무덤,[101] 운동 자세를 취한 그의 조상 2개,[95] 그리고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역사적 표지판이 있다.[96]
2010년 6월, 잭 소프는 아버지의 유해를 고향으로 돌려 오클라호마의 다른 가족 구성원 근처에 재매장하기 위해 짐 소프 자치구를 상대로 연방 소송을 제기했다. 잭은 미국 원주민 묘지 보호 및 반환법을 인용하며 아버지의 유해를 오클라호마의 보호 구역으로 가져와 아버지, 누이, 형제의 근처, 즉 그가 태어난 곳에서 1마일 떨어진 곳에 묻을 것을 주장했다. 그는 계모와 펜실베이니아주 짐 소프 자치구 관리들 간의 합의가 그가 원주민 땅에 묻히기를 원하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97][98] 잭 소프는 2011년 2월 22일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99]
2013년 4월, 리처드 카푸토 미국 지방 법원 판사는 짐 소프 자치구가 미국 원주민 묘지 보호 및 반환법(NAGPRA)에 따른 박물관에 해당하며 따라서 해당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고 판결했다. 빌과 리처드 소프의 변호사는 그들이 아버지의 유해를 오클라호마 중부의 색 앤드 폭스 랜드로 돌려보내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100] 2014년 10월 23일, 미국 제3 순회 항소 법원은 카푸토 판사의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 법원은 짐 소프 자치구가 NAGPRA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박물관"이 아니므로 원고들이 소프 유해의 재매장을 요청하기 위해 해당 연방 법령을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101] NAGPRA의 용어에 따르면 "'박물관'은 연방 자금을 지원받고 미국 원주민 문화재를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모든 고등 교육 기관을 포함한 모든 기관 또는 주 또는 지방 정부 기관을 의미합니다."[102] 항소 법원은 지방 법원에 자치구를 유리하게 판결하도록 지시했다.[101] 항소 법원은 펜실베이니아 법에 따라 원고가 소프 유해의 재매장을 명령하도록 주 법원에 요청할 수 있지만, "시신이 일단 매장되면 그러한 이전을 위한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는 한 동일한 이동을 허용하는 데 매우 꺼려진다"고 언급했다.[103] 2015년 10월 5일, 미국 대법원은 이 문제를 심리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법적 절차를 사실상 종결했다.[104]
참조
[1]
서적
p. 115
[2]
서적
Jim Thorpe
https://books.google[...]
Twenty-First Century Books
[3]
뉴스
Author of Jim Thorpe's biography shakes things up
http://www.tnonline.[...]
2015-05-02
[4]
뉴스
America at Large: Bizarre coda to Olympian Jim Thorpe's epic life
http://www.irishtime[...]
2017-06-04
[5]
서적
The Irish and the Making of American Sport, 1835–1920
https://books.google[...]
McFarland and Company
[6]
웹사이트
The fight to recognize Jim Thorpe as official Olympic gold medal winner
https://www.potawato[...]
Citizen Potawatomi Nation
2024-03-21
[7]
웹사이트
Connections between Potawatomi and Kickapoo endure
https://www.potawato[...]
Citizen Potawatomi Nation
2024-03-21
[8]
뉴스
Jim Thorpe Leaps To Fame On Carlisle Athletic Field
https://www.newspape[...]
2015-10-24
[9]
웹사이트
Jim Thorpe – Fast facts
http://www.cmgww.com[...]
[10]
웹사이트
Jim Thorpe – Olympic Hero and Native American
http://www.olympics3[...]
[11]
백과사전
Jim Thorpe
[12]
뉴스
Jim Thorpe cruelly treated by authorities
http://sportsillustr[...]
CNN Sports Illustrated
2008-04-15
[13]
뉴스
Indian Thorpe in Olympiad: Redskin from Carlisle Will Strive for Place on American Team
https://www.nytimes.[...]
2018-07-23
[14]
웹사이트
Jim Thorpe leads Carlisle to upset of Harvard in 1911
https://www.ncaa.com[...]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2018-08-29
[15]
웹사이트
Jim Thorpe
http://www.usoc.org/[...]
[16]
뉴스
Roller-coaster life of Indian icon, sports' first star
http://www.cnn.com/2[...]
CNN.com
2004-07-14
[17]
웹사이트
Jim Thorpe
http://www.profootba[...]
[18]
웹사이트
Athletics at the 1904 St. Louis Summer Games: Men's All-Around Championship
https://www.sports-r[...]
Sports Reference
2018-01-25
[19]
뉴스
Jim Thorpe is Dead on West Coast at 64
https://www.nytimes.[...]
2020-12-07
[20]
웹사이트
Jim Thorpe
https://www.olympedi[...]
2021-04-25
[21]
간행물
Why Are Jim Thorpe's Olympic Records Still Not Recognized?
http://www.smithsoni[...]
2016-08-15
[22]
웹사이트
Athletics at the 1912 Stockholm Summer Games: Men's Pentathlon
https://www.sports-r[...]
Sports Reference
2018-06-30
[23]
웹사이트
Athletics at the 1912 Stockholm Summer Games: Men's High Jump Qualifying Round
https://www.sports-r[...]
Sports Reference
2018-06-30
[24]
웹사이트
Jim Thorpe
https://www.sports-r[...]
Sports Reference
2018-01-21
[25]
웹사이트
Jim Thorpe
https://www.usatf.or[...]
National Track and Field Hall of Fame
2018-01-21
[26]
웹사이트
Hugo Wieslander
https://www.sports-r[...]
Sports Reference
2019-06-29
[27]
뉴스
Battle over athlete Jim Thorpe's burial site continues
https://www.washingt[...]
2024-09-08
[28]
뉴스
Greatest Olympic athlete? Jim Thorpe, not Usain Bolt
https://www.washingt[...]
2017-06-07
[29]
웹사이트
ESPN.com: Thorpe preceded Deion, Bo
https://www.espn.com[...]
2024-09-08
[30]
서적
Jim Thorpe: Sac and Fox athlete
Chelsea House
1992
[31]
뉴스
Sports in Brief
Amarillo (TX) Daily News
1948-03-13
[32]
서적
Pictorial History of American Sports, from Colonial Times to the Present
A. S. Barnes
[33]
뉴스
Indian Thorpe is Best Athlete – Olympic Champion Wins All-Around Championship and Breaks Record
https://www.nytimes.[...]
2022-07-15
[34]
웹사이트
Hopes to Set New Record
https://newspaperarc[...]
2018-09-14
[35]
뉴스
"Jim" Thorpe Admits He Is Professional, and Retires from Athletics
1913-01-28
[36]
간행물
Wishing Jim Thorpe a Happy Birthday
http://www.smithsoni[...]
2017-05-11
[37]
간행물
Doping and an Olympic Crisis of Idealism
http://www.newyorker[...]
2017-05-11
[38]
뉴스
Thorpe is to Play Ball with Giants; Famous Indian Athlete Accepts McGraw's Terms Over the Telephone
https://www.nytimes.[...]
2018-07-23
[39]
뉴스
Sox and Giants on World's Tour; Comiskey-McGraw Party Leaves Chicago Oct 19 and Arrives in New York March 6
https://www.nytimes.[...]
2018-07-23
[40]
웹사이트
The Inside Story of Baseball's Grand World Tour of 1914
https://www.smithson[...]
2024-09-08
[41]
웹사이트
From Olympic medalist to MLB infielder: How speedskater Eddy Alvarez made it to The Show
https://www.espn.com[...]
ESPN
2020-08-08
[42]
문서
"Jim Thorpe's Speed Big Hit In A.A."
https://www.flickr.c[...]
The Janesville Daily Gazette
1916-07-10
[43]
뉴스
Baseball's 'Ten Greatest Moments'
https://www.nytimes.[...]
2018-07-23
[44]
웹사이트
Jim Thorpe
https://www.baseball[...]
2024-09-08
[45]
뉴스
Hens Win Another and Depart From Training Camp
https://news.google.[...]
2019-07-05
[46]
웹사이트
NFL History by Decade, 1911–1920
http://www.nfl.com/h[...]
National Football League
2009-09-07
[47]
서적
Native athletes in sport & society: a reader
https://books.google[...]
Bison Books
[48]
웹사이트
Jim Thorpe
https://www.pro-foot[...]
Pro Football Reference
2013-07-23
[49]
웹사이트
History Detectives – Episode 10, 2005: Jim Thorpe Ticket, Jamestown, New York
http://www-tc.pbs.or[...]
pbs.org
2017-05-25
[50]
뉴스
Jim Thorpe and a Ticket to Serendipity
https://www.nytimes.[...]
2017-05-25
[51]
뉴스
Jim Thorpe may take up professional hockey
https://www.newspape[...]
2020-11-23
[52]
웹사이트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Inventory – Nomination Form
"{{NRHP url|id=71000[...]
National Park Service
2014-12-19
[53]
웹사이트
Thorpe, Grace: Daughter of Jim Thorpe passes on
http://www.indiancou[...]
2023-04-03
[54]
문서
List of marriages, divorces, births, and deaths
https://web.archive.[...]
Time (magazine)
1925-04-06
[55]
뉴스
Athlete Thorpe's 2nd wife, Freeda, dies at 101
http://www.seattlepi[...]
2017-06-01
[56]
간행물
Akapamata: The Forgotten Hollywood Legacy Of Jim Thorpe
https://www.american[...]
2024-08-17
[57]
뉴스
Penny matching piles up $3,000 charity fund
1935-04-11
[58]
간행물
8 Olympic Movies That Medal
http://www.mensjourn[...]
2017-06-15
[59]
간행물
Unnamed TIME Article
http://www.time.com/[...]
1943-02-22
[60]
뉴스
Thorpe Has Cancerous Growth Removed From Lip in Hospital at Philadelphia
https://www.nytimes.[...]
2007-04-23
[61]
문서
Watterson
[62]
문서
Bloom quoted in Bird
[63]
뉴스
"Thorpe, the Indian, Best All-American"
Los Angeles Times
1926-11-24
[64]
뉴스
Jim Thorpe's Medals
https://www.nytimes.[...]
2016-06-19
[65]
웹사이트
Legends lunches begin this fall with Bob Lilly
https://www.bizjourn[...]
2024-09-08
[66]
뉴스
Jim Thorpe Is Restored as Sole Winner of 1912 Olympic Gold Medals
https://www.nytimes.[...]
2024-05-30
[67]
뉴스
Jim Thorpe's Family Feud
https://www.nytimes.[...]
2007-04-23
[68]
웹사이트
Petition filed to restore Jim Thorpe's status as sole gold medalist
https://www.cbssport[...]
2022-08-08
[69]
웹사이트
Jim Thorpe is reinstated as the sole winner of two events in the 1912 Olympics
https://www.npr.org/[...]
NPR
2022-08-08
[70]
웹사이트
Jim Thorpe petition drive starts to restore his status as sole winner of 1912 Olympic gold medals
https://oklahoman.co[...]
2020-07-17
[71]
뉴스
Campaign launched to recognise Thorpe as sole champion from Stockholm 1912
https://www.insideth[...]
Inside the Games
2020-07-17
[72]
웹사이트
IOC reinstates Jim Thorpe as sole winner of 1912 Olympic decathlon and pentathlon
https://www.espn.com[...]
2022-07-15
[73]
뉴스
IOC to display the name of Jim Thorpe as sole Stockholm 1912 pentathlon and decathlon gold medallist
https://olympics.com[...]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2023-10-02
[74]
웹사이트
Jim Thorpe, PA - Jim Thorpe's Tourist Attraction Grave
https://www.roadside[...]
2024-09-08
[75]
웹사이트
Jim Thorpe
http://encarta.msn.c[...]
[76]
웹사이트
Biography - The Official Licensing Website of Jim Thorpe
http://www.cmgww.com[...]
2024-09-08
[77]
뉴스
Unitas QBs NFL Team
https://www.newspape[...]
2020-05-01
[78]
웹사이트
Top 100 athletes of the 20th century
http://www.usatoday.[...]
[79]
웹사이트
Top N. American athletes of the century
https://www.espn.com[...]
2024-09-08
[80]
웹사이트
Hall of Famers by Year of Enshrinement
http://www.profootba[...]
Pro Football Hall of Fame
2012-09-06
[81]
웹사이트
National Native American Hall of Fame names first twelve historic inductees
https://newsmaven.io[...]
IndianCountryToday.com
2018-10-22
[82]
웹사이트
Haskell Indian Nations University Directory
https://www.haskell.[...]
Haskell Indian Nations University
2018-01-10
[83]
웹사이트
Proclamation 4209—Jim Thorpe Day
https://www.presiden[...]
2024-09-08
[84]
웹사이트
16 Jahre "Thorpe Cup"
https://web.archive.[...]
2010-08-10
[85]
웹사이트
American Indian Subjects on United States Postage Stamps
https://web.archive.[...]
United States Postal Service
2013-07-28
[86]
웹사이트
Wide World of Sports athlete of the century
https://www.espn.com[...]
ESPN Network
2012-02-06
[87]
웹사이트
Jim Thorpe: All-Around Athlete and American Indian Advocate
http://americanhisto[...]
Smithsonian Institution
2012-02-06
[88]
웹사이트
United States Mint to Release 2018 Native American $1 Coin Products on February 15
https://www.usmint.g[...]
United States Mint
2019-04-26
[89]
웹사이트
2018 Native American 2018 Native American $1 Coin Designs Depict Jim Thorpe Coin Designs Depict Jim Thorpe
https://www.coinnews[...]
2024-09-08
[90]
뉴스
Katie Ledecky, Jim Thorpe among 2024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recipients by Joe Biden
https://www.usatoday[...]
2024-05-30
[91]
뉴스
Jim Thorpe Body Arrives Home For Burial Rite
https://news.google.[...]
2016-07-14
[92]
뉴스
Is There Life After Jim Thorpe For Jim Thorpe, Pa.?
2010-07-21
[93]
웹사이트
Jim Thorpe, Pa., fights to keep its namesake
https://www.latimes.[...]
2024-09-08
[94]
웹사이트
Frank Deford of ''Real Sports with Bryant Gumbel'' interviews Jack Thorpe
https://www.youtube.[...]
HBO (official channel on YouTube)
2012-07-09
[95]
웹사이트
Jim Thorpe plans to add third Olympian statue
https://www.tnonline[...]
2017-05-19
[96]
뉴스
Jim Thorpe sleeps on – for now – in town where everyone knows his name
https://www.theguard[...]
2024-09-08
[97]
뉴스
Son Of Jim Thorpe Sues for His Remains
https://web.archive.[...]
2010-06-25
[98]
웹사이트
Jim Thorpe's son sues town of Jim Thorpe over location of athlete's remains
https://www.pennlive[...]
2024-09-08
[99]
웹사이트
Jim Thorpe's son Jack dies
http://www.tnonline.[...]
2012-07-09
[100]
뉴스
Judge Sides With Sons About Legendary Athlete Jim Thorpe's Remains
http://www.newson6.c[...]
KOTV-DT
2013-04-21
[101]
뉴스
Pennsylvania town named for Jim Thorpe can keep athlete's body
http://www.cbsnews.c[...]
CBS News
2014-10-24
[102]
웹사이트
25 USC Ch. 32: Native American Graves Protection and Repatriation
http://uscode.house.[...]
2024-09-08
[103]
법률
http://www2.ca3.usco[...]
2016-09-09
[104]
뉴스
U.S. Supreme Court: Jim Thorpe's body to remain in town that bears his name
http://www.poconorec[...]
2015-10-13
[105]
웹사이트
Jim Thorpe running festival benefits Turn To Us
https://www.tnonline[...]
2021-06-21
[106]
웹사이트
World-Class Athlete Jim Thorpe Was Born May 28, 1888
http://www.americasl[...]
America's Library
2011-05-08
[107]
웹사이트
BIOGRAPHY
http://www.cmgww.com[...]
www.cmgww.com
2011-05-08
[108]
문서
O'Hanlon-Lincoln
[109]
뉴스
Jim Thorpe Is Dead On West Coast at 64
http://select.nytime[...]
The New York Times
1953-03-29
[110]
웹사이트
im Thorpe – Olympic Hero and Native American
http://www.olympics3[...]
olympics30.com
2011-05-08
[111]
서적
SUPERSTATAS FOOTBALL'S ALL-TIME GREATS
Watermill Press
[112]
웹사이트
Encyclopedia of World Biography Jim Thorpe
http://www.bookrags.[...]
Bookrags,Thomson-Gale
2011-05-08
[113]
뉴스
Sports Illustrated : Jim Thorpe cruelly treated by authorities
http://sportsillustr[...]
2004-08-08
[114]
문서
Jeansonne
[115]
웹사이트
CARLISLE FOOTBALL TEAM, 1907
http://www.jimthorpe[...]
jimthorpefilm.com
[116]
웹사이트
Roller-coaster life of Indian icon, sports' first star
http://articles.cnn.[...]
CNN.com Botelho, Greg. July 14, 2004,
2011-05-08
[117]
웹사이트
NCAA FOOTBALL Award Winners 4ページ(PDF)
http://fs.ncaa.org/D[...]
NCAA
2011-05-08
[118]
웹사이트
Hall of Fame Member :Jim Thorpe
http://www.profootba[...]
PRO FOOTBALL HALL OF FAME
2011-05-08
[119]
웹사이트
Thorpe preceded Deion, Bo
http://espn.go.com/s[...]
Ron Flatter, ESPN.com
2011-05-08
[120]
서적
Jim Thorpe, Sac and Fox Athlete
Chelsea House Publications
[121]
뉴스
Indian Thorpe is Best Athlete — Olympic Champion Wins All-Around Championship and Breaks Record.
The New York Times
1912-09-03
[122]
문서
Wheeler
[123]
뉴스
'"Jim" Thorpe Admits He Is Professional, and Retires from Athletics'
The Washington Post
1913-01-28
[124]
웹사이트
マイナーリーグ成績 by Minors @ Baseball-Reference.com:Jim Thorpe
https://www.baseball[...]
[125]
웹사이트
JJim Thorpe's Family Feud,
http://select.nytime[...]
Dave Anderson The New York Times, 1983年2月7日
2011-05-08
[126]
문서
Schaffer and Smith
[127]
문서
Schaffer and Smith
[128]
문서
Rogge, Johnson, and Rendell
[129]
웹사이트
Thorpe is to Play Ball with Giants; Famous Indian Athlete Accepts McGraw's Terms Over the Telephone.
http://select.nytime[...]
The New York Times 1913年2月1日
2011-05-08
[130]
웹사이트
Sox and Giants on World's Tour; Comiskey-McGraw Party Leaves Chicago Oct. 19 and Arrives in New York March 6.
http://select.nytime[...]
The New York Times 1913年7月27日
2011-05-08
[131]
문서
Elfers
[132]
웹사이트
Jim Thorpe's Speed Big Hit In A.A.
http://flickr.com/ph[...]
The Janesville Daily Gazette 1916年7月10日
2011-05-08
[133]
웹사이트
CHRONOLOGY OF PROFESSIONAL FOOTBALL(PDF)
http://static.nfl.co[...]
NFL
2011-05-08
[134]
문서
Neft, Cohen, and Korch
[135]
문서
Neft, Cohen, and Korch
[136]
웹사이트
NFL Coaching Record
http://www.pro-footb[...]
[137]
문서
Neft, Cohen, and Korch
[138]
문서
Neft, Cohen, and Korch
[139]
문서
Neft, Cohen, and Korch
[140]
웹사이트
Jim Thorpe Ticket (PDF)
http://www.pbs.org/o[...]
www.pbs.org/historydetectives
2011-05-08
[141]
웹사이트
List of marriages, divorces, births, and deaths
http://www.time.com/[...]
タイム (雑誌)1925年4月6日
2011-05-08
[142]
뉴스
Freeda Thorpe, former wife of Jim Thorpe, dies at 101], Seattle Post-Intelligencer
http://www.seattlepi[...]
2007-03-07
[143]
웹사이트
Briefs
http://www.time.com/[...]
タイム (雑誌)1943年2月22日
2011-05-08
[144]
문서
8. Jeansonne. pg 61
[145]
웹사이트
Thorpe Has Cancerous Growth Removed From Lip in Hospital at Philadelphia
http://select.nytime[...]
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1951年4月6日
2011-05-08
[146]
문서
9. Watterson. page151
* 6. Elfers. page18
[147]
문서
4. Schaffer and Smith. page50
[148]
문서
10. Lincoln and Slagle. pg. 282
[149]
문서
11. Bloom quoted in Bird. Page97
[150]
웹사이트
Indian Thorpe in Olympiad: Redskin from Carlisle Will Strive for Place on American Team
http://select.nytime[...]
The New York Times 1912年4月28日
2011-05-08
[151]
뉴스
Thorpe, the Indian, Best All-American
http://pqasb.pqarchi[...]
ロサンゼルス・タイムズ
1926-11-24
[152]
웹사이트
Jim Thorpe cruelly treated by authorities.
http://sportsillustr[...]
ロイター sportsillustrated.cnn.com, 2004年8月8日
2011-05-08
[153]
문서
1. O'Hanlon-Lincoln. pg 132
[154]
웹사이트
Jim Thorpe, Pennsylvania – Jim Thorpe's Tourist Attraction Grave at
http://www.roadsidea[...]
[155]
웹사이트
Top 100 athletes of the 20th century
http://www.usatoday.[...]
[156]
웹사이트
Top N. American athletes of the century
http://espn.go.com/s[...]
[157]
웹사이트
Hall of Famers by Year of Enshrinement
http://www.profootba[...]
[158]
웹사이트
Jim "Bright Path" Thorpe
http://www.collegefo[...]
カレッジフットボール殿堂
2011-05-15
[159]
웹사이트
Richard Nixon: Proclamation 4209 - Jim Thorpe Day
http://www.presidenc[...]
[160]
웹사이트
"Thorpe Cup"
http://www.zehnkampf[...]
[161]
뉴스
Is There Life After Jim Thorpe For Jim Thorpe, Pa.?
2010-07-21
[162]
문서
1. O'Hanlon-Lincoln. page145
[163]
웹사이트
Jim Thorpe -- All-American
https://www.imdb.com[...]
インターネット・ムービー・データベース
2011-05-15
[164]
서적
Native American Son, The Life and Sporting Legend of Jim Thorpe
Alfred A. Knopf (New York, 201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