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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코바르 막 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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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콘코바르 막 네사는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울라 지방의 왕으로, 그의 출생과 관련된 다양한 설화가 존재한다. 그는 네스의 아들이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1년 동안 통치한 후 영구적인 왕으로 인정받았다. 콘코바르는 메브, 에흐네 등 여러 여성과 결혼했으며, 데르드러와의 비극, 쿠얼러의 소몰이 전쟁, 로스 나 리그 전투 등 주요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는 케트 막 마가크에 의해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은 기독교화된 이야기로 전해진다. 콘코바르는 에반 마하의 궁정을 다스렸으며, 오한 방패, 고름 글라스 검 등 다양한 소유품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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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코바르 막 네사
지도
기본 정보
이름콘코바르 막 네사
로마자 표기Konkobar mak Nesa
다른 이름콘호바르 막 네사
이명콘코바르 막 핀
콘코바르 막 에하드 살브르Konkobar mak Ehad Salbre
설명얼스터의 왕
가문
아버지페르구스 막 로이크
어머니네스
계부카흐바드 막 핀드 초엠
아내모르간
자매들
잉그루브
베브힌드
자녀코르브막
군그닐
피어타
생애
즉위기원전 27년경
사망서기 33년경
사인케트 막 마가크에게 입은 부상으로 사망
이전 통치자카흐바드 막 핀드 초엠
후임 통치자쿠스크리드
통치 기간60년
신화 속 정보
소속붉은 가지 기사단
기타
관련 인물쿠 훌린

2. 일생

콘코바르의 출생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진다. 가장 이른 판본에서는 울라의 왕 오하드 살비더의 딸 네스드루이드 카흐바드에게 왕이 될 이를 낳기에 좋은 날이냐고 묻자, 카흐바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스는 주위에 다른 남자가 없었기에 카흐바드를 침대로 데려가 동침하여 콘코바르를 잉태했다.[50]

후대 판본에서는 네스의 열두 양아버지가 잔치를 벌이던 중 카흐바드가 이끄는 피어너가 습격하여 그들을 모두 죽였다. 네스의 친부 오하드는 범인을 알 수 없어 복수하지 못했다. 이에 네스는 직접 피어너를 모아 카흐바드를 추적했다. 그러다 네스가 혼자 목욕하는 사이 카흐바드가 나타나 자신의 아내가 되라는 조건으로 네스를 살려주었다. 둘은 콘코바르 강 가에 살았는데, 얼마 뒤 네스가 아들을 잉태했다. 이 아이의 씨가 카흐바드가 아니고 파크트나 파하크라고도 한다. 카흐바드는 산통이 온 네스에게 다음날까지 아이를 낳지 않으면 태어날 아들은 왕이 되고 영원한 명성을 얻으리라 예언했다. 네스가 하루를 참고 아이를 낳았더니 콘코바르가 강물 속에 빠져 버렸고, 카흐바드가 아기를 건져내어 강의 이름을 따서 콘코바르라고 이름 붙였다.[51]

다른 판본에서는 당시 울라의 왕이었던 에오차이드 살부이드의 딸인 네스가 드루이드 카스바드에게 지금이 무슨 길한 때인지 묻는다. 카스바드는 "왕비를 통해 왕을 낳을 때"라고 대답한다. 주변에 다른 남자가 없었기에 네스는 카스바드를 침대로 데려가 아들을 임신한다.[3] 또 다른 판본에서는 네스가 12명의 양아버지에게 길러졌는데, 카스바드가 이끄는 피안이 이들을 모두 죽인다. 에오차이드는 범인을 찾지 못해 복수할 수 없었고, 네스는 카스바드를 사냥하기 위해 자신만의 피안을 조직한다. 그러나 그녀가 연못에서 혼자 목욕을 하던 중 카스바드가 나타나 그녀를 아내로 삼는 조건으로 목숨을 살려준다. 그들은 콘코바르 강 근처에 정착했고 네스는 곧 아들을 임신했지만, 이 판본에서 아버지의 정체는 네스의 연인이었던 최고 왕 파크트나 파타크였다. 카스바드는 네스에게 다음 날까지 출산하지 않으면 아들이 위대한 왕이 되어 영원한 명성을 얻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날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네스는 콘코바르 강가의 판석에 앉아 다음 날 아침 출산했고, 아기는 강에 빠졌지만 카스바드가 그를 건져내 강 이름을 따서 콘코바르라고 이름 짓고 자신의 아들로 키웠다.[4]

콘코바르 막 네사의 이름은 〈어머니 네스의 아들〉을 나타내는 부칭이다. 일설에 따르면[28], 드루이드교 사제 카토바드(카파, 카스바드)가 "지금 임신하면 그 아이는 반드시 왕이 될 것이다"라고 점을 쳐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스에게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다른 설[29]에서는 네스가 콘코바르 강의 물을 마시다가 두 마리의 벌레를 삼켜 임신했다거나, 혹은 상왕 파흐트나 파타흐가 친아버지라고도 한다. 네스가 출산을 시작했을 때 카토바드는 출산을 하루 늦추면 그리스도와 같은 탄생일이 되어 그 아이는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콘코바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울라의 왕은 페르구스 막 로크였다. 페르구스는 네스에게 반했고, 네스는 1년 동안 페르구스가 콘코바르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했다. 자신이 낳을 아이가 왕의 아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핑계였다(중세 아일랜드 법으로 유산은 남자 혈통을 따라 상속되며, 부계 혈통에 왕이 있어야 왕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52] 울라의 귀족들은 어린아이는 이름뿐인 왕이 될 것이니 문제없다고 페르구스에게 조언했고, 페르구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콘코바르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 1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고, 연말이 되자 사람들은 콘코바르를 영구히 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53] 이에 페르구스는 아르드리 오후 페들레크를 끌어들여 울라에 전쟁을 걸었다. 피나는 전투 끝에 콘코바르가 먼저 평화협상을 제안하여 페르구스에게 땅과 이멘마하의 쿠라드미르를 내주고 또한 페르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다. 그런 한편 콘코바르는 아르드리 오후에게 자기 아버지 파크트나 파하크를 죽였던 보상(에라크)을 요구하여 그에게서 땅을 뜯어내고 자신의 왕위를 보장받으며 그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54]

콘코바르는 오후의 여러 딸들과 돌아가며 결혼했다.

콘코바르의 결혼과 가족 관계
배우자자녀비고
메브아말가드(Amalgadga)메브는 콘코바르의 곁을 떠남
에흐네(Eithnega)푸르바더메브가 에흐네를 강에 빠뜨려 죽임. 푸르바더는 제왕절개로 태어남.
무간 에탄카트레크글라스네(Glaisnega)콘코바르의 정실부인
클로흐루(Clothruga)코르막 콘드 롱가스코르막은 콘코바르와 네스 사이의 아들이라고도 함.[55] 페르구스 막 로크에게 양자로 보내짐.
(불명)쿠스크라드 멘드 마하, 폴로만 막 콘코바르
배우자자녀
페델름 니크로하크카르브러 니어 페르에르크 막 카르프르
아할



콘코바르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하나는 핀드코엠이고[56] 다른 하나는 데크티네이다.[57] 핀드코엠은 시인 아메르긴 막 에키트와 결혼해 코날 케르나크를 낳았고, 데크티네는 수얼탐 막 로크와 결혼했으나 신 루 라와더의 씨를 받아 쿠 훌린을 낳았다.[58]

2. 1. 출생과 성장 배경

콘코바르의 출생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이른 판본에서는 울라의 왕 오하드 살비더의 딸 네스드루이드 카흐바드에게 오늘이 무엇을 하기에 상서로운 날이냐고 물었고, 카흐바드는 왕이 될 이를 낳게 될 날이라고 대답했다. 주위에 다른 남자가 없었기에 네스는 카흐바드를 침대로 데려가 동침했고 아들을 잉태했는데 이 아들이 콘코바르다.[50]

후대의 판본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네스에게는 열두 명의 양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열두 양아버지가 잔치를 벌이는 와중에 카흐바드가 이끄는 피어너가 집을 습격하여 그들을 모두 죽였다. 범인을 알 수 없었기에 네스의 친부 오하드는 그들의 복수를 해줄 수 없었다. 이에 네스는 몸소 피어너를 모아서 카흐바드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연못에서 네스가 혼자 목욕하고 있는 와중에 카흐바드가 나타났고, 그녀와 그녀의 무기 사이에 버티고 서서 자기 칼을 뽑았다. 카흐바드는 자신의 아내가 되라는 조건으로 네스를 살려 주었다. 결혼한 둘은 콘코바르라는 이름의 강 가에 살았는데, 얼마 뒤 네스가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씨가 카흐바드가 아니고 파크트나 파하크라고도 한다. 산통이 오자 카흐바드는 네스에게 다음날이 될 때까지 아이를 낳지 않고 버틴다면 태어날 아들은 왕이 되고 영원한 명성을 얻으리라 예언했다. 그래서 네스가 하루를 참고 아이를 낳았더니 콘코바르 강물 속에 아기가 빠져 버렸다. 카흐바드가 아기를 건져내고 강의 이름을 따서 콘코바르라고 이름붙였다.[51]

다른 판본에서는 당시 울라의 왕이었던 에오차이드 살부이드의 딸인 네스가 드루이드 카스바드에게 지금이 무슨 길한 때인지 묻는다. 카스바드는 "왕비를 통해 왕을 낳을 때"라고 대답한다. 주변에 다른 남자가 없었기에 네스는 카스바드를 침대로 데려가 아들을 임신한다.[3] 또 다른 판본에서는 네스가 12명의 양아버지에게 길러졌는데, 12명 모두가 잔치에 참석한 동안, 카스바드는 무토지 전사단인 피안을 이끌고 집을 공격하여 그들을 모두 죽인다. 에오차이드는 범인을 확인할 수 없어 복수할 수 없었고, 네스는 카스바드를 사냥하기 위해 자신만의 피안을 조직한다. 그러나 그녀가 연못에서 혼자 목욕을 하던 중 카스바드가 나타나 그녀와 그녀의 무기 사이에 서서 칼을 든다. 그는 그녀를 아내로 삼는 조건으로 그녀의 목숨을 살려준다. 그들은 콘코바르라는 강 근처에 정착했고 네스는 곧 아들을 임신했지만, 이 판본에서 아버지의 정체는 네스의 연인이었던 최고 왕 파크트나 파타크였다. 그녀와 카스바드가 파크트나를 방문하러 떠났을 때, 네스는 산고를 겪는다. 카스바드는 그녀에게 다음 날까지 출산하지 않으면 아들이 위대한 왕이 되어 영원한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날에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네스는 콘코바르 강가의 판석에 앉아 다음 날 아침 출산했다. 아기는 강에 빠졌지만 카스바드가 그를 건져내 강 이름을 따서 콘코바르라고 이름 짓고 자신의 아들로 키웠다.[4]

콘코바르 막 네사의 이름은 〈어머니 네스의 아들〉을 나타내는 부칭이다. 일설에 따르면[28], 드루이드교 사제 카토바드(카파, 카스바드)가 "지금 임신하면 그 아이는 반드시 왕이 될 것이다"라고 점을 쳐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스에게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다른 설[29]에서는 네스가 콘코바르 강의 물을 마시다가 두 마리의 벌레를 삼켜 임신했다거나, 혹은 상왕 파흐트나 파타흐가 친아버지라고도 한다. 네스가 출산을 시작했을 때 카토바드는 출산을 하루 늦추면 그리스도와 같은 탄생일이 되어 그 아이는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2. 2. 왕위 계승

콘코바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울라의 왕은 페르구스 막 로크였다. 페르구스는 네스에게 반했고, 네스는 한 가지 조건을 걸어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했다. 그 조건이란 1년 동안 페르구스가 콘코바르에게 왕위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이 낳을 아이가 왕의 아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핑계였다(중세 아일랜드 법으로 유산은 남자 혈통을 따라 상속되며, 부계 혈통에 왕이 있어야 왕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52] 울라의 귀족들은 어린아이는 이름뿐인 왕이 될 것이니 문제없다고 페르구스에게 조언했고, 페르구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콘코바르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 1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고, 연말이 되자 사람들은 콘코바르를 영구히 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53] 이에 페르구스는 아르드리 오후 페들레크를 끌어들여 울라에 전쟁을 걸었다. 피나는 전투 끝에 콘코바르가 먼저 평화협상을 제안하여 페르구스에게 땅과 이멘마하의 쿠라드미르를 내주고 또한 페르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다. 그런 한편 콘코바르는 아르드리 오후에게 자기 아버지 파크트나 파하크를 죽였던 보상(에라크)을 요구하여 그에게서 땅을 뜯어내고 자신의 왕위를 보장받으며 그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54]

2. 3. 결혼과 가족 관계

콘코바르는 오후의 여러 딸들과 돌아가며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는 훗날 코나크타의 여왕이 되는 메브였다. 메브와 콘코바르 사이에는 아말가드(Amalgadga)라는 아들이 태어났으나, 곧 메브는 콘코바르의 곁을 떠났다.

그 뒤 메브의 여동생 에흐네(Eithnega)가 콘코바르와 결혼해 아들을 가졌는데, 메브가 그녀를 강에 빠뜨려 죽여 버렸다. 에흐네가 죽은 뒤 뱃속의 아기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는데 이 아기가 푸르바더이다.

그 다음에는 무간 에탄카트레크가 콘코바르와 결혼해 글라스네(Glaisnega)라는 아들을 낳고 콘코바르의 정실부인 자리를 굳혔다.

콘코바르의 장남 코르막 콘드 롱가스는 그 어머니가 오후의 딸 클로흐루(Clothruga)라고도 하고, 콘코바르가 자기 어머니 네스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라고도 한다.[55] 코르막은 페르구스 막 로크에게 양자로 보내졌다.

그 외에 콘코바르의 아들로는 쿠스크라드 멘드 마하, 폴로만 막 콘코바르가 있다. 딸 페델름 니크로하크타라의 왕 카르브러 니어 페르와 결혼해 아들 에르크 막 카르프르를 낳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딸 아할이 있다.

콘코바르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하나는 핀드코엠이고[56] 다른 하나는 데크티네이다.[57] 핀드코엠은 시인 아메르긴 막 에키트와 결혼해 코날 케르나크를 낳았고, 데크티네는 수얼탐 막 로크와 결혼했으나 신 루 라와더의 씨를 받아 쿠 훌린을 낳았다.[58]

3. 주요 사건

콘코바르 막 네사는 여러 중요한 사건들에 연루되었다.


  • 데르드러와의 비극: 콘코바르는 아름다운 데르드러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격리시켜 키웠으나, 데르드러는 젊은 전사 니세와 사랑에 빠져 도망쳤다. 콘코바르는 이들을 추적하여 니세를 죽이고 데르드러를 강제로 아내로 삼았지만, 결국 데르드러는 자살하고 만다.[59][12]
  • 쿠얼러의 소몰이: 메브 여왕이 이끄는 코나크타 군대가 울라를 침략했을 때, 콘코바르는 쿠 훌린과 함께 울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비록 울라의 황소 돈 쿠얼릉거는 빼앗겼지만, 쿠 훌린의 활약으로 코나크타 군은 패배했다.[60][13]
  • 로스 나 리그 전투: 콘코바르는 코나크타에 대한 복수를 위해 미데와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콘코바르는 사위인 카르프러 니어 페르를 잃었지만, 코날 케르나크의 활약으로 승리하고 타라를 점령했다.[61]
  • 죽음: 콘코바르는 코나크타 전사 케트 막 마가크가 던진 메스 게그러의 뇌에 맞아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의사들은 뇌를 제거할 수 없었고, 콘코바르는 흥분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7년 후, 콘코바르는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뇌가 터져 죽었다.[62][63]

3. 1. 데르드러와의 비극

콘코바르가 이야기꾼 페들리미드 막 달의 집을 방문했을 때, 페들리미드의 아내가 딸을 낳았다. 콘코바르의 수석 드루이드였던 카흐바드는 갓 태어난 아이가 너무 아름다워서 여러 왕들이 그녀를 두고 전쟁을 벌일 것이며, 슬픔만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이의 이름은 데르드러라고 지어졌고, 콘코바르는 데르드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남자와 격리시켜 키워, 성인이 되면 결혼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데르드러는 니세라는 젊은 전사와 눈이 맞아 니세의 두 형제의 도움을 받아 숨은 뒤 알바(스코틀랜드)로 도망가 버렸다. 그러나 어디에 정착하든 그곳의 왕들이 데르드러를 차지하기 위해 니세 형제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옮겨 다녀야 했다. 마침내 콘코바르가 외딴 섬에 들어간 그들의 꼬리를 잡았고, 페르구스를 보내 안전한 귀향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페르구스는 잔치를 거절할 수 없는 기아스 때문에 일행에서 이탈,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고 페르구스의 아들 피어후(Fiachuga)가 대신 일행을 호위했다. 이멘마하에 도착하자 니세 형제와 피어후는 콘코바르의 명령을 받은 에간 막 두르하크트에게 살해당하고 데르드러는 콘코바르와 강제로 결혼했다.[59][12]

아들의 죽음과 배신에 분노한 페르구스는 콘코바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페르구스에게 길러진 코르막도 페르구스를 따라 친부를 거역하기로 했다. 둡하크 돌텡가와 브리크루도 페르구스를 따랐다. 이들은 이멘마하에 불을 지르고 울라 여자들 여럿을 도륙한 뒤 코나크타로 망명길에 올라 메브알릴 부부에게 의탁했다.[59][12]

데르드러는 콘코바르와 1년 동안 함께 살았으나 그 동안 한 번도 웃은 일이 없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쉬기도 거부했다. 콘코바르는 데르드러에게 도대체 무엇이 싫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신과 오간 막 두르하크트”라고 대답했다. 콘코바르는 그녀를 오간에게 줘 버렸다. 다음날 데르드러는 오간의 전차에 타고 바위에 머리를 찧어 자살했다.[59][12]

3. 2. 쿠얼러의 소몰이 전쟁

메브의 깃발 아래 에린 땅의 다섯 왕국 중 네 곳의 군대가 모여, 울라의 황소 돈 쿠얼릉거를 빼앗기 위해 울라로 쳐들어갔다. 이것이 곧 〈쿠얼러의 소몰이〉 전쟁의 시작이다. 쿠 훌린을 제외한 모든 울라 남자들은 이전에 마하가 내린 저주로 인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고, 이는 콘코바르도 마찬가지였다. 쿠 훌린은 코나크타의 대전사들과 하나하나 일기토로 격파하며 다른 울라인들이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60]

쿠 훌린의 아버지 수얼탐 막 로크는 콘코바르에게 코나크타 군의 침략을 경고하며, 너무 늦기 전에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콘코바르와 그의 드루이드들은 드루이드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콘코바르 앞에서 말할 수 없다는 궁정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수얼탐에게 죽음을 명했다. 수얼탐은 달아나다 넘어져 자신의 방패 가장자리에 목이 잘렸지만, 방패 위에 올려진 그의 목은 계속해서 경고의 말을 외쳤다. 콘코바르는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다. 싸움 도중 페르구스가 콘코바르를 죽일 기회를 잡았으나, 코르막이 양아버지가 친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막았다. 이에 페르구스는 대신 언덕 세 개의 꼭대기를 날려 버렸다. 결국 메브의 군대는 쿠 훌린에게 패배했지만, 본래 목적했던 울라의 황소 돈 쿠얼릉거는 빼앗아 코나크타로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돈 쿠얼릉거는 코나크타에서 알릴의 황소 핀웨나크와 싸워 핀웨나크를 죽이고 자신도 지쳐 죽었다.[60][13]

3. 3. 로스 나 리그 전투

쿠얼러 전투 이후 콘코바르는 병이 들어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되었다. 울라인들은 카흐바드에게 왕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라고 요구했다. 콘코바르는 카흐바드에게 에린의 나머지 네 왕국이 자신에게 전쟁을 걸어 놓고도 멀쩡하기에 병이 났다고 말했다. 콘코바르는 알릴과 메브에게 승리했지만 둘 다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고, 결국 황소는 잃어버렸다. 콘코바르는 코나크타에 전쟁을 걸고 싶어했으나 때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카흐바드는 인마가 활기를 되찾는 여름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그러는 한편 콘코바르는 해외 세력을 끌어들여 자기 편으로 삼고자 했다. 그는 알바의 부속 도서들에서 공물을 걷고 있던 코날 케르나크에게 전갈을 보내 스칸디나비아페로 제도에서 거대한 함대를 꾸려 울라로 데려오게 했다.[61]

이런 불온한 움직임을 다른 네 왕국이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무운(오늘날의 먼스터)의 왕 오후 막 루크타(Eochu mac Luchtaga)는 알릴과 메브에게 콘코바르에게 보상을 해주라고 설득했다. 알릴이 울라로 사신을 보냈으나 콘코바르는 제안을 거부했다. 콘코바르는 에린 땅 모든 곳에 자신의 천막을 칠 수 없다면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그날 밤 어디에 천막을 치고 싶냐고 묻자 콘코바르는 보인 강가의 로스 나 리그(오늘날의 미스 주 로스나리)를 지목했다. 로스 나 리그에서 울라와 미데 사이에 회전이 벌어졌다. 미데측의 지휘관은 타라의 왕이자 콘코바르의 사위인 카르프러 니어 페르였고, 라긴(오늘날의 렌스터)의 갈론(Gailióinga)의 왕 핀드 막 로사(Find mac Rossaga)도 이에 가담했다. 전투는 울라측에 불리하게 진행되다가, 코날이 합류하자 전황이 반전되었다. 울라 병사들은 동요했지만 코날이 두려워서 도망치지 못했다. 코날은 혼자서 1천 명을 쳐죽였다. 카르프러 니어 페르는 800명을 죽이고 나서 쿠 훌린이 멀리서 던진 창을 맞고 죽었다. 갈론군은 패퇴하고 울라가 타라를 차지했다. 카르프러의 아들이자 콘코바르의 손자인 에르크(Ercga)가 새로운 타라의 왕으로 세워졌다. 에르크는 콘코바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쿠 훌린의 딸 핀스코흐(Fínscothga)와 결혼했다.[61]

3. 4. 죽음

콘코바르는 라긴의 왕 메스 게그러의 뇌를 굳힌 것을 울라의 코날이 전리품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코나크타의 전사 케트 막 마가크가 이를 훔쳐가면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케트는 무릿매로 메스 게그러의 뇌를 던져 콘코바르의 머리를 맞추었고, 이 뇌는 콘코바르의 머리통 깊숙히 박혀 버렸다. 이 사건은 우르카르(Urchairga)의 발러 아흐(Baile Athga), 오늘날의 웨스트미스 주 호르셀리프에서 일어났다고 전해진다.[62] 콘코바르의 의사들은 박힌 뇌를 제거할 수 없었고, 상처를 봉합한 뒤 왕에게 흥분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7년 후, 콘코바르는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뇌가 터져 죽었다. 머리가 터진 자리에서 뿜어져 나온 피의 세례를 받은 결과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갔다고 한다.[63]

콘코바르의 죽음에 관한 이 기록은 기독교적인 윤색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노르드 신화에서 토르흐룽그니르와 싸우다 머리에 숫돌이 박힌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어, 두 이야기가 하나의 기원을 공유하거나 바이킹이 에린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노르드-게일)에 수입된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있다.

울라인들은 코나크타에 망명 중이던 콘코바르의 아들 코르막 콘드 롱가스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코르막은 이멘마하로 돌아오는 길에 기아스를 어기게 되었고 다 코카(Da Chocaga) 여관에 묵던 중 습격당해 피살당했다.[64] 이에 코날 케르나크는 콘코바르의 다른 아들 쿠스라드 멘드 마하(Cúscraid Mend Machaga)를 왕으로 추대했다.[65] 콘코바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중세 시대에 널리 알려졌으며, 다양한 버전으로 기록된 많은 필사본에 남아 있다.[15]

4. 콘코바르 왕의 궁정

콘코바르 왕은 에반 마하에 있는 세 개의 관 중 하나인 '''「붉은 가지」의 관''' (Cróeb Ruad|dull red branchga)[32]에 앉았다고 전해진다. 왕의 머리 위에는 은으로 만든 가지에 세 개의 황금 사과를 매달아 놓은 장치가 있어, 모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이것을 흔들었다고 한다.[30]

4. 1. 에반 마하의 궁정

에반 마하는 알스터의 왕도이다. 마하라는 여성이 쌍둥이를 낳은 것에서 유래되었지만, 콘코바르는 임신 중인 그녀에게 무리하게 마차 경주를 시킨 탓에, 가장 중요한 때(국가의 위기)에 신하인 알스터인(우라드인) 남자들 거의 전원의 힘이 진통 중인 여성처럼 쇠약해지는 벌을 받는다.[31]

이 도시에 세워진 세 개의 관 중, 왕은 '''「붉은 가지」의 관'''(Cróeb Ruad|dull red branchga[32])에 앉는다고 전해진다. 왕의 머리 위에는 은으로 만든 가지에 세 개의 황금 사과를 매달아 놓은 장치가 있어, 모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이것을 흔든다고 한다.[30]

또한, 콘코바르 왕에게는 이른바 초야권이 인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쿠 훌린의 신부 Emer|에웨르영어의 경우에는, 형식상으로는 이 악습을 따랐지만, 감시역을 붙여 실제로는 그녀가 왕의 수청을 들지 않도록 (쿠 훌린의 격노를 사지 않도록) 조치했다.

4. 2. 초야권 논란

콘코바르 왕에게는 이른바 초야권이 인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사실은 『에위르에게 구혼』에서 밝혀진다. 다만 쿠 훌린의 신부 Emer|에웨르영어의 경우에는, 형식상으로는 이 악습을 따랐지만, 감시역을 붙여 실제로는 그녀가 왕에게 수청을 들지 않도록 (쿠 훌린의 격노를 사지 않도록) 조치했다.[31]

5. 콘코바르의 소유품

콘코바르 막 네사의 무구와 소유품으로는 방패 '오한', 검 '고름 글라스' 등이 알려져 있다.[38] 이 외에도 '독창' Craisech Neme|크라세크 네메영어(Venomous Lance)[47], 피드헬 장기판 '미두'(Cennchaem|켄카엠sga)[48], 술통 Ol nGuala|올 응구알라sga[30][49] 등이 있다.

5. 1. 오한 (방패)

콘코바르 막 네사의 무구와 소유품[38] 중, 앞서 언급한 방패 '''오한'''(Ochain, "아름다운 귀"[39])이 유명하다.

후세 전승에 따르면, 이 방패가 두드려져 비명을 지를 때, '''에린의 3대 급류'''(3대 파랑)가 호응한다고 전해진다[40]).

방패 이름은 '''"대해"''' ('''an Acéin'''[41], '''"The Ocean" ''')으로 표기된 편집본도 존재한다(근세판 『우슬리우의 자식들의 최후』=오플라나간 편집본 『데어드러』[42]).

5. 2. 고름 글라스 (검)

콘코바르 막 네사의 검, '''고름 글라스''' (Gorm Glas영어 "청록색")(레이디 그레고리 판 『데어드리』)는 재화(再話)에 따른 무기명(개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백과사전에서 이 왕의 검의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다.[43][44]

근세 사본에서 편찬되었다는 『우슬리우의 아들들의 최후』 (『데어드라』 이야기)가 만약 옳다면, 콘코바르가 왕자 '''피아크라''' ('''피아흐라''' Fiachra, Fiachna)에게 빌려준 검의 진정한 이름은 '''콜그 글라스''' (?) ("the Blue-green Blade"; colg glasga)이다. (오플라나간 편 『데어드라』[42])

그러나 이러한 무기명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15세기 사본을 살펴보면, 이것은 사실 왕의 검이 아니라, 코날 케르나흐의 창이라고 되어 있다. (글렌 마산 사본 판 『데어드라』 이야기)[45][46]

근세 판 『데어드라』 이야기에서는, 이 외에도 콘코바르가 왕자에게 빌려준 창명 (투창명)의 고유명이나, 이본에서는 활명이 등장한다.

5. 3. 기타 소유품

그 외에도 '''"독창"''' Craisech Neme|크라세크 네메영어(Venomous Lance)[47], 피드헬을 가리키는 장기판 '''"미두"'''('''케엔케임''' Cennchaem|켄카엠sga)[48], 술통 Ol nGuala|올 응구알라sga(『콘호바르의 이야기』[30][49]) 등이 있다.

참조

[1] 문서 Conchobar의 다른 철자들
[2] 논문 Conchobar mac Nessa The Encyclopedia of Medieval Literature in Britain 2017
[3] 서적 The Táin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4] 간행물 Tidings of Conchobar mac Nessa & Anecdota from the Stowe MS. No 992 1910 & 1884
[5] 서적 Early Medieval Ireland Longman 1995
[6] 간행물 Stokes 1910 1910
[7] 간행물 La guerre entre Fergus et Conchobar 1923
[8] 간행물 Cath Boinde 1905
[9] 문서 Findchóem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 1897
[10] 서적 Compert Con Culainn and Other Stories 1978
[11] 서적 Dictionary of Celtic Myth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12] 서적 Longes mac n-Uislenn: the Exile of the Sons of Uisliu Modern Language Association of America 1949
[13] 서적 The Táin 1969
[14] 서적 Cath Ruis na Ríg for Boinn Todd Lecture Series 1892
[15] 논문 The Different Versions of 'Aided Chonchobair' 2012
[16] 서적 Lectures on the Manuscript Materials of Ancient Irish History Dublin 1861
[17] 서적 The Death of Conchobar 1906
[18] 간행물 Da Choca's Hostel 1900
[19] 간행물 The Battle of Airtech 1916
[20] 서적 ケルト事典 (년도 없음)
[21] 서적 The Táin 1969
[22] 서적 Celtic Ency. (년도 없음)
[23] 서적 かなしき女王 (년도 없음)
[24] 서적 デァドリー (년도 없음)
[25] 서적 (년도 없음)
[26] 서적 ケルトの神話 1997
[27] 서적 Dict. (년도 없음)
[28] 문서 コンホヴァルの誕生 & コンホヴァルの話 1884
[29] 문서 コンホヴァルの誕生 (긴 버전) (년도 없음)
[30] 문서 コンホヴァルの話 (년도 없음)
[31] 문서 クアルンゲの牛捕り (서문) (년도 없음)
[32] 사전 DIL 사전 (년도 없음)
[33] 사전 DIL 사전 (년도 없음)
[34] 문서 エウィルへの求婚 (년도 없음)
[35] 문서 クー・フリンの誕生 (서문) (년도 없음)
[36] 서적 Cath Boinde https://books.google[...] 1905
[37] 서적 The Death of Conchobar 1906
[38] 문서 所有物のリストは、Harry Mountain, Celtic Ency. にあるが、これにはいくつか記載漏れもある
[39] 문서 "Óchoin, better Ó-cháin, fair-ear," (Stokes, Scéla Conc.); "Bright-rim" (Stokes, Uisneach).
[40] 문서 『ロスナリーの戦い』、近世版『デアドラ』
[41] 문서 ocían (acían, acén, oicén) "The ocean (DIL)"
[42] 서적 Deirdri, or, the Lamentable Fate of the Sons of Usnach,.. Dublin 1808
[43] 서적 Conchobar mac Nessa
[44] 서적 Dict. Celtic Mythology 1992
[45] 문서 The Glen Masan MS., Mackinnon ed., Celtic Review 1. 旧エディンバラの弁護士図書館所蔵 Adv. Lib. 53 写本; 現今スコットランド国立図書館所蔵 Adv.MS.72.2.3 写本
[46] 서적 The Death of the Sons of Uisneach 1887
[47] 문서 前述 Macgnimrada で少年時代のクーフリンに貸した武器。特に固有名とみなす理由はない。
[48] 문서 近代版『デアドラ』
[49] 문서 『エウィルへの求婚』 Meyer tr., LU version では、この"ワイン樽"は、別の名で登場する。
[50] 서적 The Táin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51] 논문 Tidings of Conchobar mac Nessa 1910
[52] 서적 Early Medieval Ireland Longman 1995
[53] 문서 Stokes 1910
[54] 논문 La guerre entre Fergus et Conchobar 1923
[55] 논문 Cath Boinde 1905
[56] 문서 어떤 전승에서는 핀드코엠이 코나크타 여자로 콘코바르와는 무관하다고도 한다: see Whitley Stokes (ed. & trans.), "Cóir Anmann", ''Irische Texte'' series 3 vol. 2, 1897, p. 393-395
[57] 문서 어떤 전승에서는 데크티네가 콘코바르의 딸이라고도 한다. see A. G. van Hamel, ''Compert Con Culainn and Other Stories'', 1978, pp. 1-8
[58] 서적 Dictionary of Celtic Myth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59] 서적 Longes mac n-Uislenn: the Exile of the Sons of Uisliu Modern Language Association of America 1949
[60] 문서 Kinsella 1969, pp. 52-253
[61] 서적 Cath Ruis na Ríg for Boinn 1892
[62] 서적 Lectures on the Manuscript Materials of Ancient Irish History Dublin 1861
[63] 서적 The Death of Conchobar 1906
[64] 논문 Da Choca's Hostel 1900
[65] 논문 The Battle of Airtech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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