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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사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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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 매카트니 사망설은 1960년대 후반,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대역으로 교체되었다는 음모론이다. 1966년부터 소문이 돌기 시작하여 1969년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앨범 커버, 가사, 백마스킹 기법 등에서 단서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비틀즈는 공식적으로 사망설을 부인하고 매카트니가 직접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지만, 소문은 1969년 11월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이 설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었으며, 영화, 만화, 음악 등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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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사망설
개요
주제폴 매카트니의 사망에 대한 음모론도시전설
내용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1966년에 사망했으며, 비틀즈는 그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대역을 썼다는 주장
관련 인물폴 매카트니
비틀즈
기원 및 확산
최초 보도1969년 미국의 대학 신문
확산 경로음반 커버와 가사에 숨겨진 단서
대역 오디션 주장
주요 주장
사망 시점1966년
사망 원인교통사고
대역의 이름윌리엄 캠벨 (William Campbell) 또는 빌리 시어스 (Billy Shears)
증거
음반 커버애비 로드 커버 해석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커버 해석
가사가사에 숨겨진 메시지 주장
음성 분석폴 매카트니와 대역의 목소리 비교
외모 변화폴 매카트니의 외모 변화 지적
반론
폴 매카트니의 생존폴 매카트니는 현재까지 생존하며 활동 중
증거 부족제시된 증거들의 신빙성 부족
영향
대중문화다양한 영화, 음악, 문학 작품에 영감을 줌
음모론현대 음모론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관련 용어
빌리 시어스 (Billy Shears)대역의 이름으로 거론되는 인물
I'm Only Sleeping리볼버에 수록된 곡으로, 가사 내용이 사망설과 관련 있다는 주장이 있음
외부 링크
스노프스 (Snopes)폴 매카트니 사망설 검증 (영어)

2. 기원

1966년 초, 폴 매카트니의 건강 악화설이 돌았으나,[1] 9월에 이르러서야 사망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비틀즈의 홍보 담당자 토니 바로우는 언론의 문의에 매카트니와 통화했다고 답하며 소문을 부인했다.[2] 1966년 말, 매카트니의 솔로 프로젝트 진행설과 비틀즈 해체설이 겹치면서 사망설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3][4]

1967년 초, 런던에서 매카트니가 M1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다시 불거졌으나,[5] 2월 ''비틀즈 북''에서 공식적으로 반박되었다.[5] 매카트니는 5월에 열린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발매 기자 회견에서 이 소문을 언급했다.[6]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덴버 (콜로라도)에서 비틀즈인 척하는 사람들이 팬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고용되었다고 언급했고,[7] 이는 매카트니 대역설의 초기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8][9][10]

1960년대 중반, 비틀즈는 음악에 백마스킹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9월 17일, 드레이크 대학교의 학생 신문 ''Drake Times-Delphic''에 "비틀 폴 매카트니는 죽었는가?"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12] 이 기사는 화이트 앨범의 레볼루션 9를 거꾸로 재생했을 때 "Turn me on, dead man"으로 해석된 메시지가 포함되었다는 내용을 다루었다.[12] 1969년 10월 10일, 비틀즈의 홍보 담당자 데릭 테일러는 이 소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최근에 폴이 죽었다는 보도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년 동안 그런 질문을 받아 왔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사무실과 집에서 밤낮으로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14][15]

2. 1. 초기 소문 (1966-1967)

1966년 초, 폴 매카트니의 건강 악화설이 돌았으나,[1] 9월에 이르러서야 사망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비틀즈의 홍보 담당자 토니 바로우는 언론의 문의에 매카트니와 통화했다고 답하며 소문을 부인했다.[2] 1966년 말, 매카트니의 솔로 프로젝트 진행설과 비틀즈 해체설이 겹치면서 사망설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3][4]

1967년 초, 런던에서 매카트니가 M1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다시 불거졌으나,[5] 2월 ''비틀즈 북''에서 공식적으로 반박되었다.[5] 매카트니는 5월에 열린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발매 기자 회견에서 이 소문을 언급했다.[6]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덴버 (콜로라도)에서 비틀즈인 척하는 사람들이 팬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고용되었다고 언급했고,[7] 이는 매카트니 대역설의 초기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8][9][10]

1960년대 중반, 비틀즈는 음악에 백마스킹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9월 17일, 드레이크 대학교의 학생 신문 ''Drake Times-Delphic''에 "비틀 폴 매카트니는 죽었는가?"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12] 이 기사는 레볼루션 9를 거꾸로 재생했을 때 "Turn me on, dead man"으로 해석된 메시지가 포함되었다는 내용을 다루었다.[12] 1969년 10월 10일, 비틀즈의 홍보 담당자 데릭 테일러는 이 소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최근에 폴이 죽었다는 보도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년 동안 그런 질문을 받아 왔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사무실과 집에서 밤낮으로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14][15]

2. 2. 의도된 혼란 (1967-1968)

1960년대 중반, 비틀즈는 백마스킹(Backmasking) 기법을 실험적으로 사용했고, 이는 가사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유행과 맞물려 사망설의 단서로 해석되었다.[64] 예를 들어,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의 마지막 부분에서 존 레논이 "I buried Paul"(나는 폴을 매장했다)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나중에 폴 매카트니는 실제로는 "cranberry sauce"(크랜베리 소스)라는 말이라고 밝혔다).[65]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중앙 드럼의 글자(LONELY HEARTS)에 거울을 놓으면 나타나는 메시지 "I ONE IX HE DIE". "I ONE"은 11, "IX"는 9로, "11월 9일에 그는 죽는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틀즈의 앨범 『더 비틀즈』(일명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아임 소 타이어드" 가사 중에 "Monsieur, Monsieur, Monsieur, how about another one?(무슈, 무슈, 무슈, 한 잔 더 어때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을 거꾸로 재생하면 "폴은 죽었어. 슬퍼, 슬퍼, 슬퍼"가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영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의 마지막 장면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 다른 멤버들은 빨간 장미를 꽂고 있는데, 매카트니만 검은 장미를 꽂고 있다는 점도 단서로 지적되었다. "어 데이 인 더 라이프"의 가사에는 소문의 발단이 된 자전거 사고에 대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64]

3. 확산

1969년 10월 12일, 미시간 주디트로이트의 라디오 방송국 WKNR-FM에 전화를 건 사람이 디스크 자키 러스 깁에게 이 소문과 그 단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깁과 다른 전화 연결자들은 한 시간 동안 생방송 중에 이 주제에 대해 논쟁을 벌였으며, 방송 이틀 후에는 "미시간 데일리"지가 미시간 대학교 학생 프레드 라보어가 쓴 풍자적인 『애비 로드』 리뷰를 게재했다. 그 제목은 "매카트니 사망. 새로운 증거가 밝혀지다"였다[26]。 이 기사에서는 비틀즈 앨범 커버의 다양한 "단서"가 매카트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으며,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애비 로드』 레코드에서도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었다. 이렇게 많은 단서를 고안한 레이버였지만, 전 미국의 신문에서 이 이야기가 다뤄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18]。 또한 WKNR-FM은 이 문제에 대한 2시간짜리 특별 프로그램 "The Beatle Plot"을 편성하여 소문을 가속화했다. 특별 프로그램은 1969년 10월 19일에 방송되었다.

1969년 10월 21일 이른 아침, 뉴욕의 라디오 방송국 WABC의 디스크 자키 로비 영/Roby Yonge영어는 프로그램 진행상 어쩔 수 없이 중단할 때까지 한 시간 동안 이 소문에 대해 논쟁했다. 당시 WABC는 38개 주에 걸쳐 넓은 청취 가능 구역을 자랑했으며, 때로는 국외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20]。 그날 늦게 비틀즈의 홍보 담당자는 국내외 언론에서 광범위하게 다뤄진 소문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969년 학생 방송인이었던 빈 셀사는 나중에 그 확산이 반문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밥 딜런, 비틀즈, 그리고 롤링 스톤스는 1966년 말부터 그들의 모든 노래가 개인적인 메시지가 되었고, 끝없는 조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 되었다.[26]

WMCA는 10월 23일 알렉스 베넷을 런던에 있는 비틀즈의 애플 군단 본부로 파견하여 "폴은 죽었다"는 이론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를 진행했다. 그곳에서 링고 스타는 베넷에게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면 믿을 거예요.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WKNR의 존 스몰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레논은 그 소문이 "미친 짓"이지만 ''애비 로드''에 좋은 홍보라고 말했다.

1969년 할로윈 밤, WKBW는 뉴욕주 버팔로에서 비틀즈의 가사와 다른 단서들을 분석하는 "폴 맥카트니는 살아 있고 건강하다 - 아마도"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WKBW의 DJ들은 "폴은 죽었다"는 헛소문이 레논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결론 내렸다.[21]

1969년 10월 말 전에, 몇몇 음반들이 맥카트니의 사망 의혹 현상을 이용했다. 여기에는 미스터리 투어의 "폴의 발라드(The Ballad of Paul)"; 빌리 시어스와 올 아메리칸스의 "형제 폴(Brother Paul)"; 호세 펠리치아노의 가명인 웨블리 핀스터의 "안녕 폴(So Long Paul)"; 자카리아스와 그의 트리 피플의 "우리는 모두 폴 베어러(1부와 2부)"가 포함되었다. 또 다른 노래는 테리 나이트의 "세인트 폴(Saint Paul)"이었는데 이 노래는 그해 6월에 작은 히트를 쳤고, 이후 라디오 방송국들이 "고(故) 폴 매카트니"를 기리는 노래로 사용했다.[22] 뉴질랜드 가수 셰인의 "세인트 폴" 커버 버전은 그 나라의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23]

3. 1. 대학가를 중심으로 (1969.09)

1969년 9월 17일, 드레이크 대학교 학생 신문에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죽었는가?"라는 기사가 게재되면서 폴 매카트니 사망설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26] 이 기사는 "Revolution 9"의 백마스킹 메시지 등 앨범에 숨겨진 단서를 언급하며 캠퍼스 내 소문을 다뤘다.

1969년 10월 12일, 디트로이트 라디오 방송국 WKNR-FM에 한 통화자가 디스크 자키 러스 깁에게 소문과 그 단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26] 깁과 다른 전화자들은 이후 한 시간 동안 방송에서 그 소문에 대해 논의했고,[16] 깁은 추가적인 잠재적 단서들을 제공했다. 이틀 후, ''미시간 데일리''는 깁의 쇼에서 그 대화를 들었던 미시간 대학교 학생 프레드 라보어가 쓴 ''애비 로드''에 대한 풍자적인 평론을 "맥카트니 사망, 새로운 증거 밝혀지다"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26] 그는 비틀즈 앨범 표지, 특히 ''애비 로드'' 표지에 있는 맥카트니의 사망 의혹과 관련된 다양한 단서들을 제시했다. 라보어는 나중에 자신이 그 단서들의 대부분을 지어냈으며, 그 이야기가 미국 전역의 신문들에 의해 보도되었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18]

WKNR은 10월 19일에 처음 방송된 2시간짜리 프로그램 ''비틀 플롯(The Beatle Plot)''으로 그 소문에 더욱 불을 지폈다.[19] 이 쇼는 "악명 높은", "사기극" 및 "모큐멘터리"로 불리며 깁과 WKNR에게 엄청난 세계적인 홍보를 가져다주었다.

그 이야기는 곧 WMCA와 WABC 등 뉴욕 지역의 더 주류 라디오 방송국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10월 21일 새벽, WABC의 디스크 자키 로비 욘지는 형식 파괴로 방송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한 시간 이상 동안 방송에서 그 소문에 대해 논의했다. 그 시간대에 WABC의 신호는 광범위한 청취 지역을 커버했고, 38개 미국 주와 때로는 다른 국가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20]

1969년 학생 방송인이었던 빈 셀사는 나중에 그 확산이 반문화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밥 딜런, 비틀즈, 그리고 롤링 스톤스는 1966년 말부터 그들의 모든 노래가 개인적인 메시지가 되었고, 끝없는 조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 되었다.[26]

3. 2. 언론의 주목 (1969.10)

1969년 10월 12일, 디트로이트 라디오 방송국 WKNR-FM에 한 통화자가 디스크 자키 러스 깁에게 폴 매카트니 사망설과 그 단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26] 깁과 다른 전화자들은 이후 한 시간 동안 방송에서 그 소문에 대해 논의했고,[16] 깁은 추가적인 잠재적 단서들을 제공했다. 이틀 후, ''미시간 데일리''는 깁의 쇼에서 그 대화를 들었던 미시간 대학교 학생 프레드 라보어가 쓴 ''애비 로드''에 대한 풍자적인 평론을 "맥카트니 사망, 새로운 증거 밝혀지다"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26] 그는 비틀즈 앨범 표지, 특히 ''애비 로드'' 표지에 있는 맥카트니의 사망 의혹과 관련된 다양한 단서들을 제시했다. 라보어는 나중에 자신이 그 단서들의 대부분을 지어냈으며, 그 이야기가 미국 전역의 신문들에 의해 보도되었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18]

WKNR은 10월 19일에 처음 방송된 2시간짜리 프로그램 ''비틀 플롯(The Beatle Plot)''으로 그 소문에 더욱 불을 지폈다.[19] 그 이야기는 곧 WMCA와 WABC 등 뉴욕 지역의 더 주류 라디오 방송국들에 의해 다루어졌다. 10월 21일 새벽, WABC의 디스크 자키 로비 욘지는 형식 파괴로 방송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한 시간 이상 동안 방송에서 그 소문에 대해 논의했다. 그 시간대에 WABC의 신호는 광범위한 청취 지역을 커버했고, 38개 미국 주와 때로는 다른 국가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20] 비록 비틀즈의 홍보실은 그 소문을 부인했지만, 맥카트니가 공적인 생활에서 이례적으로 물러난 것은 소문의 확산에 기여했다.

WMCA는 10월 23일 알렉스 베넷을 런던에 있는 비틀즈의 애플 군단 본부로 파견하여 "폴은 죽었다"는 이론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를 진행했다. 그곳에서 링고 스타는 베넷에게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면 믿을 거예요.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WKNR의 존 스몰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레논은 그 소문이 "미친 짓"이지만 ''애비 로드''에 좋은 홍보라고 말했다.

1969년 할로윈 밤, WKBW는 뉴욕주 버팔로에서 비틀즈의 가사와 다른 단서들을 분석하는 "폴 맥카트니는 살아 있고 건강하다 - 아마도"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WKBW의 DJ들은 "폴은 죽었다"는 헛소문이 레논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결론 내렸다.[21]

1969년 10월 말 전에, 몇몇 음반들이 맥카트니의 사망 의혹 현상을 이용했다. 여기에는 미스터리 투어의 "폴의 발라드(The Ballad of Paul)"; 빌리 시어스와 올 아메리칸스의 "형제 폴(Brother Paul)"; 호세 펠리치아노의 가명인 웨블리 핀스터의 "안녕 폴(So Long Paul)"; 자카리아스와 그의 트리 피플의 "우리는 모두 폴 베어러(1부와 2부)"가 포함되었다. 또 다른 노래는 테리 나이트의 "세인트 폴(Saint Paul)"이었는데 이 노래는 그해 6월에 작은 히트를 쳤고, 이후 라디오 방송국들이 "고(故) 폴 맥카트니"를 기리는 노래로 사용했다.[22] 뉴질랜드 가수 셰인의 "세인트 폴" 커버 버전은 그 나라의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23]

3. 3. 절정과 여파

1969년 11월, 캐피톨 레코드 판매 담당자들은 비틀즈 앨범 판매가 소문에 기인하여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했다.[35] 로코 카테나는 "이는 비틀즈 판매 역사상 가장 큰 달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35] 이 소문은 미국에서 ''Abbey Road''의 상업적 성공에 기여하여 이전 모든 앨범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 2월 이후 차트에서 사라졌던 ''Sgt. Pepper''와 ''Magical Mystery Tour''는 다시 ''빌보드'' 톱 LP 차트에 진입했다.

"폴은 죽었다"는 주제의 특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11월 30일 뉴욕의 WOR에서 방송되었다.[18] ''폴 매카트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하는 완벽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법정에서 진행되었으며 유명 변호사 F. 리 베일리가 사회를 맡았다.[18] 베일리는 시청자들에게 결론을 맡겼다.[18]

이후 레논과 매카트니는 각자 자신들의 작품에서 폴 사망설에 언급했다. 레논은 1971년의 "How Do You Sleep?"에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을 "프릭"으로 표현했다.[70] 매카트니는 1993년의 라이브 앨범 《폴 이즈 라이브》의 타이틀과 재킷 사진을 사망설을 역이용한 패러디로 삼았다.[71]

폴 사망설을 주제로 한 서적[72][73]과 영화[74][75][76]는 적지 않아, 여러 고찰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57][77], 팝 문화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왔다.[78]

1969년 10월 말까지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캐피털 레코드의 가수 테리 나이트는 "세인트 폴"을 1969년 5월에 발표했다. 이 곡은 몇 달 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고'''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주목받았다.[69]

4. 전제

이 이론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1966년 11월 9일[25] 폴 매카트니가 ''Sgt. Pepper'' 녹음 세션 도중 멤버들과 다툰 후, 주차 단속원("'''러블리 리타'''") 때문에 화가 나서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25] 신호등이 바뀐 것을 ("'''어 데이 인 더 라이프'''") 알아채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25]

The ''Abbey Road'' album cover
''애비 로드'' 앨범 커버의 "장례 행렬"


매카트니의 장례식 후, 해리슨("'''블루 제이 웨이'''")과 스타("'''돈 패스 미 바이'''")가 조사를 낭독하고, 레논이 장례를 집전하여 매장했다는("'''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에서 "I Buried Paul"이라는 진술) 이야기가 ''애비 로드'' 앨범 커버의 장례 행렬 묘사와 함께 전해진다. 대중의 슬픔을 우려한 비틀즈는 매카트니 외모 콘테스트 우승자를 대역으로 내세웠다.[25] 이러한 시나리오는 비틀즈의 라이브 공연 중단과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을 위한 이미지 변신과 맞물려 설득력을 얻었다.[25]

일부에서는 대역이 "에든버러 출신의 고아 윌리엄 캠벨"이었다고 주장하며,[26] 다른 사람들은 빌 셰퍼드,[27] 나중에는 빌리 셰어스로 불렸다고 주장한다.[27] 영국의 MI5가 비틀즈 팬들의 고통을 우려하여 대역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있다.[28] 살아남은 비틀즈 멤버들은 죄책감 때문에 팬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음악과 앨범 아트워크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28][29]

팬들은 노래를 거꾸로 재생하거나 가사 및 앨범 커버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매카트니의 죽음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25]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마지막 부분에서 레논이 "I buried Paul"이라고 말했다는 주장(레논은 "Cranberry sauce"라고 해명)과,[25] "Revolution 9"의 "number nine" 반복 구절을 거꾸로 재생하면 "turn me on, dead man"이 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25] "I'm So Tired" 끝부분을 거꾸로 재생하면 "Paul is dead man, miss him, miss him, miss him…"이 들린다는 주장도 있다.[30]

''애비 로드'' 앨범 커버는 장례 행렬로 해석되기도 한다.[25] 흰색 옷의 레논은 천상의 존재, 검은 옷의 스타는 장례 지도사, 데님 옷의 조지 해리슨은 무덤 파는 사람, 맨발의 매카트니는 시체를 상징한다는 것이다.[17] 흰색 폭스바겐 비틀 번호판 'LMW 281F'(잘못 읽으면 "28IF")는 매카트니가 살아있었다면 28세였을 것이라는 "증거"로 제시되었지만,[26] 실제로는 27세였다.[26] "LMW"는 "린다 매카트니가 운다" 또는 "린다 매카트니, 미망인"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지만,[31] 매카트니 부부는 1966년에 만나지 않았다.[31] 왼손잡이 매카트니가 오른손으로 담배를 든 것도 그가 가짜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25]

4. 1. 사망 시나리오

이 이론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1966년 11월 9일[25] 폴 매카트니가 ''Sgt. Pepper'' 녹음 세션 도중 멤버들과 다툰 후, 주차 단속원("'''러블리 리타'''") 때문에 화가 나서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25] 신호등이 바뀐 것을 ("'''어 데이 인 더 라이프'''") 알아채지 못하고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25]

매카트니의 장례식 후, 해리슨("'''블루 제이 웨이'''")과 스타("'''돈 패스 미 바이'''")가 조사를 낭독하고, 레논이 장례를 집전하여 매장했다는("'''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에서 "I Buried Paul"이라는 진술) 이야기가 ''애비 로드'' 앨범 커버의 장례 행렬 묘사와 함께 전해진다. 대중의 슬픔을 우려한 비틀즈는 매카트니 외모 콘테스트 우승자를 대역으로 내세웠다.[25] 이러한 시나리오는 비틀즈의 라이브 공연 중단과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을 위한 이미지 변신과 맞물려 설득력을 얻었다.[25]

일부에서는 대역이 "에든버러 출신의 고아 윌리엄 캠벨"이었다고 주장하며,[26] 다른 사람들은 빌 셰퍼드,[27] 나중에는 빌리 셰어스로 불렸다고 주장한다.[27] 영국의 MI5가 비틀즈 팬들의 고통을 우려하여 대역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있다.[28] 살아남은 비틀즈 멤버들은 죄책감 때문에 팬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음악과 앨범 아트워크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28][29]

팬들은 노래를 거꾸로 재생하거나 가사 및 앨범 커버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매카트니의 죽음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25]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마지막 부분에서 레논이 "I buried Paul"이라고 말했다는 주장(레논은 "Cranberry sauce"라고 해명)과,[25] "Revolution 9"의 "number nine" 반복 구절을 거꾸로 재생하면 "turn me on, dead man"이 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25] "I'm So Tired" 끝부분을 거꾸로 재생하면 "Paul is dead man, miss him, miss him, miss him…"이 들린다는 주장도 있다.[30]

''애비 로드'' 앨범 커버는 장례 행렬로 해석되기도 한다.[25] 흰색 옷의 레논은 천상의 존재, 검은 옷의 스타는 장례 지도사, 데님 옷의 조지 해리슨은 무덤 파는 사람, 맨발의 매카트니는 시체를 상징한다는 것이다.[17] 흰색 폭스바겐 비틀 번호판 'LMW 281F'(잘못 읽으면 "28IF")는 매카트니가 살아있었다면 28세였을 것이라는 "증거"로 제시되었지만,[26] 실제로는 27세였다.[26] "LMW"는 "린다 매카트니가 운다" 또는 "린다 매카트니, 미망인"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지만,[31] 매카트니 부부는 1966년에 만나지 않았다.[31] 왼손잡이 매카트니가 오른손으로 담배를 든 것도 그가 가짜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25]

4. 2. 대역

이 이론은 1966년 11월 9일 (또는 같은 해 9월 11일)에 폴 매카트니가 ''Sgt. Pepper'' 녹음 세션 도중 밴드 멤버들과 다툰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25] 이후 살아남은 비틀즈는 대중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혹은 단순한 농담으로 매카트니 외모 콘테스트 우승자를 대역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프레드 라보어는 대역이 "에든버러 출신 고아 윌리엄 캠벨"이라고 주장했다.[26] 반면, 다른 사람들은 대역의 이름이 빌 셰퍼드[27] 또는 빌리 셰어스라고 주장하며, 영국의 MI5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28] 살아남은 비틀즈 멤버들은 죄책감 때문에 음악과 앨범 아트워크에 메시지를 남겨 팬들에게 진실을 알리려 했다고 한다.[28][29]

팬들은 매카트니의 죽음에 대한 수십 개의 증거들을 찾아냈다. 여기에는 노래를 거꾸로 재생할 때 감지되는 메시지와 가사 및 앨범 커버 이미지의 상징적 해석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White Album의 "Revolution 9"에서 "number nine, number nine"이라는 말이 거꾸로 재생되었을 때 "turn me on, dead man, turn me on, dead man"이 되었다는 것이다. "I'm So Tired"의 끝 부분에서 유사한 반전은 "Paul is dead man, miss him, miss him, miss him…"을 만들어냈다.[30]

''애비 로드'' 앨범 커버는 장례 행렬로 해석되기도 한다. 흰색 옷을 입은 존 레논은 천상의 존재를, 검은 옷을 입은 링고 스타는 장례 지도사를, 조지 해리슨은 무덤 파는 사람을 상징하며, 맨발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 매카트니는 시체를 상징한다는 것이다.[17] 사진 속 흰색 폭스바겐 비틀의 번호판 LMW 281F (잘못 읽으면 "28IF")도 추가적인 "증거"로 제시되었다.[26] 왼손잡이 매카트니가 오른손으로 담배를 든 것도 그가 대역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4. 3. 단서

팬들과 이 전설을 따르는 사람들은 매카트니의 죽음에 대한 수십 개의 증거들을 찾아냈다. 여기에는 노래를 거꾸로 재생할 때 감지되는 메시지와 가사 및 앨범 커버 이미지의 상징적 해석이 포함된다.[64] 자주 인용되는 예로, 존 레논이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의 마지막 부분에서 "I buried Paul"(나는 폴을 매장했다)이라고 말했다는 주장이 있다 (레논은 나중에 그 말이 실제로는 "Cranberry sauce"였다고 말했다).[65] White Album의 Revolution 9에서 "number nine, number nine"이라는 말이 거꾸로 재생되었을 때 "turn me on, dead man, turn me on, dead man"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임 소 타이어드의 끝 부분에서 유사한 반전은 "Paul is dead man, miss him, miss him, miss him…"을 만들어냈다.[30] "아임 소 타이어드" 가사 중에는 "Monsieur, Monsieur, Monsieur, how about another one?(무슈, 무슈, 무슈, 한 잔 더 어때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을 거꾸로 재생하면 "폴은 죽었어. 슬퍼, 슬퍼, 슬퍼"가 된다.

''애비 로드'' 앨범 커버는 장례 행렬로 해석되기도 한다. 흰색 옷을 입은 레논은 천상의 존재를 상징하고, 검은 옷을 입은 링고 스타는 장례 지도사를 상징하며, 조지 해리슨은 데님을 입고 무덤 파는 사람을 나타내고, 맨발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 매카트니는 시체를 상징한다.[17][64] 사진 속 흰색 폭스바겐 비틀의 번호판 – LMW 281F (잘못 읽으면 "28IF") – 또한 추가적인 "증거"로 확인되었다.[26] "28IF"는 매카트니가 살아 있었다면 그의 나이 (하지만 앨범이 녹음되고 발매되었을 때 매카트니는 27세였다)를 나타냈고 "LMW"는 "린다 매카트니가 운다" 또는 "린다 매카트니, 미망인"을 의미했다 (하지만 매카트니와 당시 린다 이스트만은 그의 죽음이 주장된 1966년에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31] 왼손잡이 매카트니가 오른손으로 담배를 든 것도 그가 사칭자라는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비틀즈 주연 영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의 마지막 장면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 다른 멤버들은 빨간 장미를 꽂고 있는데, 매카트니만 검은 장미를 꽂고 있다. 어 데이 인 더 라이프의 가사에는 소문의 발단이 된 자전거 사고에 대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5. 반박

1969년 10월 21일, 비틀즈의 홍보실은 사망설을 "오래된 쓰레기"[32][66]라고 일축하며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이 이야기는 약 2년 동안 떠돌아다녔다. 온갖 괴짜들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폴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33][67] 10월 24일, BBC 라디오 기자 크리스 드레이크는 매카트니와 인터뷰를 가졌고, 매카트니는 소문이 이해는 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인터뷰 일부는 10월 26일 라디오 4에서 처음 방송되었으며, 미국 WMCA에서도 방송되었다. 작가 존 윈에 따르면, 매카트니는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진실을 깨닫기를 바라면서"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 수법은 실패했다.

매카트니는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CBS 뉴스 취재진에 의해 몰래 촬영되기도 하였다. 그는 ''라이프'' 잡지의 기자와 사진 작가에게 격분하여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물통을 쏟았으며, 사진작가를 때리려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후 매카트니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문제의 사진이 담긴 필름 롤을 넘겨받는 대가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데 동의했다.

스코틀랜드에서 폴 매카트니와 가족을 보여주는 ''Life'' 잡지 표지'
소문을 반박한 잡지 기사


1969년 11월 7일 자 라이프지에 매카트니의 인터뷰 기사와 사진이 게재된 후, 소문은 줄어들기 시작했다.[26] 매카트니는 인터뷰에서 "아마도 내가 최근에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아서 소문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충분한 언론 노출을 했고, 요즘은 할 말이 없다. 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일할 때 일할 것이다. 나는 10년 동안 켜져 있었고 끄지 않았다. 이제 나는 할 수 있을 때마다 끄고 있다. 나는 요즘 조금 덜 유명해지고 싶다."[34][68]라고 밝혔다.

5. 1. 공식 부인

1969년 10월 21일, 비틀즈의 홍보실은 사망설을 "오래된 쓰레기"[32][66]라고 일축하며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이 이야기는 약 2년 동안 떠돌아다녔다. 온갖 괴짜들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폴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33][67] 10월 24일, BBC 라디오 기자 크리스 드레이크는 매카트니와 인터뷰를 가졌고, 매카트니는 소문이 이해는 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인터뷰 일부는 10월 26일 라디오 4에서 처음 방송되었으며, 미국 WMCA에서도 방송되었다.

매카트니는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CBS 뉴스 취재진에 의해 몰래 촬영되기도 하였다. 그는 ''라이프'' 잡지의 기자와 사진 작가에게 격분하여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물통을 쏟았으며, 사진작가를 때리려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후 매카트니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문제의 사진이 담긴 필름 롤을 넘겨받는 대가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데 동의했다.

1969년 11월 7일 자 라이프지에 매카트니의 인터뷰 기사와 사진이 게재된 후, 소문은 줄어들기 시작했다.[26] 매카트니는 인터뷰에서 "아마도 내가 최근에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아서 소문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충분한 언론 노출을 했고, 요즘은 할 말이 없다. 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일할 때 일할 것이다. 나는 10년 동안 켜져 있었고 끄지 않았다. 이제 나는 할 수 있을 때마다 끄고 있다. 나는 요즘 조금 덜 유명해지고 싶다."[34][68]라고 밝혔다.

5. 2. 라이프지 인터뷰 (1969.11)

1969년 10월 21일, 비틀즈의 홍보실은 폴 매카트니 사망설을 "오래된 쓰레기"라고 일축하며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32] "이 이야기는 약 2년 동안 떠돌아다녔다. 온갖 괴짜들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폴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고 덧붙였다.[33] 10월 24일, BBC 라디오 기자 크리스 드레이크는 매카트니의 농장에서 그와 인터뷰를 가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진실을 깨닫기를 바랐던 매카트니의 의도와는 달리, 이 인터뷰는 사망설을 잠재우는 데 실패했다.

매카트니는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CBS 뉴스 취재진에 의해 몰래 촬영되기도 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면도하지 않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후 ''라이프'' 잡지의 기자와 사진작가가 매카트니의 농장을 방문했다. 침입에 격분한 매카트니는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물통을 쏟았으며, 사진작가를 때리려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사진이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시킬까 두려워한 매카트니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문제의 사진이 담긴 필름 롤을 넘겨받는 대가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데 동의했다.

1969년 11월 7일, ''라이프'' 지에 매카트니 가족사진과 인터뷰가 게재되면서 사망설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26] 인터뷰에서 매카트니는 소문이 "빌어먹을 멍청한" 것이라고 말하며, 최근 언론 노출이 적었던 것이 소문의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평생 충분한 언론 노출을 했고, 요즘은 할 말이 없다. 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일할 때 일할 것이다. 나는 10년 동안 켜져 있었고 끄지 않았다. 이제 나는 할 수 있을 때마다 끄고 있다. 나는 요즘 조금 덜 유명해지고 싶다."라고 말했다.[34]

6. 여파 및 유산

1969년 11월, 캐피톨 레코드 판매 담당자들은 폴 매카트니 사망설로 인해 비틀즈 앨범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했다.[35] 캐피톨의 전국 상품 기획 부사장인 로코 카테나는 "이는 비틀즈 판매 역사상 가장 큰 달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35] 이 소문은 미국에서 ''애비 로드''의 상업적 성공에 기여하여 이전 모든 앨범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35] 2월 이후 차트에서 사라졌던 ''Sgt. Pepper''와 ''Magical Mystery Tour''는 다시 ''빌보드'' 톱 LP 차트에 진입하여 각각 101위와 109위에 올랐다.[35]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미스터리 투어의 "더 발라드 오브 폴", 빌리 셰어즈 앤 더 올 아메리칸스의 "브라더 폴", 호세 펠리시아노의 변명인 워블리 핀스터의 "쏘 롱 폴"이다.

캐피털 레코드의 가수 테리 나이트영어는 드럼의 링고 스타가 도중에 퇴출한 《화이트 앨범》의 제작 현장을 목격한 인물인데, 당시 비틀즈의 해산을 노래한 "세인트 폴"을 1969년 5월에 발표했다. 이 곡은 빌보드의 "버블링 언더 핫 100 싱글"을 서서히 상승하여 6월 후반에는 114위까지 올랐지만, 몇 달 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고'''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주목받으면서 곧 잊혀졌다[69]

1969년 11월 30일, 뉴욕의 WOR에서 ''폴 매카트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하는 완벽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특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18] 이 프로그램은 법정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유명 변호사 F. 리 베일리가 사회를 맡았다.[18] 베일리는 사망설 지지자들과 피터 애셔, 마이크 매카트니, 앨런 클라인 등 매카트니의 지인들을 심문하고 반대 의견을 들었다.[18][35] 베일리는 시청자들에게 결론을 맡겼지만,[35] 녹화 전 라보어는 자신의 기사가 농담이었다고 고백했다.[18] 이에 베일리는 "1시간짜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으니, 당신은 이것에 따라야 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18]

매카트니는 그 이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귀 뒤를 쳐다보는 등의 묘한 시선을 느껴야 했고,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35]

이후, 매카트니는 1993년 라이브 앨범 《폴 이즈 라이브》의 제목과 재킷 사진(《애비 로드》의 패러디)을 통해 사망설을 유머러스하게 활용했다.[71]

이 설을 소재로 한, 유명 변호사 프랜시스 리 베일리(Francis Lee Bailey)가 사회를 맡은 TV 프로그램이 1969년 11월 30일 뉴욕의 WWOR-TV에서 방송되었다. 프로그램에서 베일리는 프레드 레이버(Fred LaBour)와 기타 "증인"에게 소문에 대한 반대 심문을 했지만, 결론은 시청자의 판단에 맡겨졌다. 녹화에 앞서 레이버가 그 기사는 농담으로 쓴 것이라고 말하자 베일리는 한숨을 쉬며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니, 그걸 명심해 주게"라고 답했다고 한다[62]

이후 레논과 매카트니는 각자 자신들의 작품에서 폴 사망설에 언급했다. 레논은 1971년의 "How Do You Sleep?"에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을 "프릭"으로 표현했다[70]

1971년, 존 레논은 노래 "How Do You Sleep?"에서 매카트니의 인격을 공격하며, 사망설 이론가들을 "괴짜"라고 묘사했다.[70] 레논은 이 곡에서 "그들이 당신이 죽었다고 말했을 때 옳았다"고 언급했다.[35]

"폴은 죽었다" 현상은 사회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학문 분야에서 연구 대상이 되었다. 바바라 수첵은 사망설을 "아름다운 청년이 죽어 신으로 부활하는 전형적인 신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보았다. 랄프 로스노우와 게리 파인은 사망설의 인기가 참여자들이 부담 없이 단서를 찾는 공유된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카미유 파글리아(Camille Paglia)는 사망설을 고대 그리스 전통과 연결하여, 록 음악의 "예쁘고 긴 머리의 소년들"이 양성을 매료시키는 현상으로 해석했다.[39]

피터 도거트(Peter Doggett)는 "폴은 죽었다"라는 이론의 근본은 논리에 어긋나지만, 1963년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사실은 쿠데타였다는 음모론에 직면한 시민들의 분위기 속에서 그 인기는 이해할 수 있다고 썼다. 이언 맥도널드(Ian MacDonald)는 그의 저서 ''Revolution in the Head''에서 비틀스가 특히 화이트 앨범의 "Glass Onion" 트랙에서 레논이 다른 비틀스 노래에 대한 언급을 포함시켜 단서를 찾도록 유도함으로써 현상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16] 맥도널드는 이를 록 음악 청중이 환각제를 사용하면서 조장된 "정신적 유행병"과 앨범의 백색 앨범에 대한 찰스 맨슨의 살인적인 해석과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1980년 레논 살해로 확대된 현상과 함께 묶는다.

21세기에도 사망설은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28] 모큐멘터리 및 다큐멘터리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28] 스티브 터너(Steve Turner)는 2016년 저서에서 "그 이론은 여전히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2009년 ''Wired Italia'' 잡지 기사를 인용했는데, 여기에는 폴 매카트니의 alleged 사망 전후 사진을 비교하여 두개골 특징을 측정한 두 명의 법의학 연구 컨설턴트의 분석이 실렸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66년 11월 이후 이미지에 나타난 사람은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40]

1969년 10월 말까지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미스터리 투어의 "더 발라드 오브 폴", 빌리 셰어즈 앤 더 올 아메리칸스의 "브라더 폴", 호세 펠리시아노의 변명인 워블리 핀스터의 "쏘 롱 폴"이 있다.

6. 1. 상업적 영향

1969년 11월,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 판매 담당자들은 폴 매카트니 사망설로 인해 비틀즈 앨범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했다.[35] 캐피톨의 전국 상품 기획 부사장인 로코 카테나는 "이는 비틀즈 판매 역사상 가장 큰 달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35] 이 소문은 미국에서 ''애비 로드''의 상업적 성공에 기여하여 이전 모든 앨범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35] 2월 이후 차트에서 사라졌던 ''Sgt. Pepper''와 ''Magical Mystery Tour''는 다시 ''빌보드'' 톱 LP 차트에 진입하여 각각 101위와 109위에 올랐다.[35]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미스터리 투어의 "더 발라드 오브 폴", 빌리 셰어즈 앤 더 올 아메리칸스의 "브라더 폴", 호세 펠리시아노의 변명인 워블리 핀스터의 "쏘 롱 폴"이다.

캐피털 레코드의 가수 테리 나이트영어는 드럼의 링고 스타가 도중에 퇴출한 《화이트 앨범》의 제작 현장을 목격한 인물인데, 당시 비틀즈의 해산을 노래한 "세인트 폴"을 1969년 5월에 발표했다. 이 곡은 빌보드의 "버블링 언더 핫 100 싱글"을 서서히 상승하여 6월 후반에는 114위까지 올랐지만, 몇 달 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고'''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주목받으면서 곧 잊혀졌다[69]

6. 2. 텔레비전 프로그램

1969년 11월 30일, 뉴욕의 WOR에서 ''폴 매카트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하는 완벽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특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18] 이 프로그램은 법정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유명 변호사 F. 리 베일리가 사회를 맡았다.[18] 베일리는 사망설 지지자들과 피터 애셔, 마이크 매카트니, 앨런 클라인 등 매카트니의 지인들을 심문하고 반대 의견을 들었다.[18][35] 베일리는 시청자들에게 결론을 맡겼지만,[35] 녹화 전 라보어는 자신의 기사가 농담이었다고 고백했다.[18] 이에 베일리는 "1시간짜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으니, 당신은 이것에 따라야 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18]

6. 3. 매카트니의 반응

매카트니는 그 이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귀 뒤를 쳐다보는 등의 묘한 시선을 느껴야 했고,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35] 1969년 11월,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 판매 담당자들은 비틀즈 앨범 판매가 소문에 기인하여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했다.[35] 이 소문은 미국에서 ''Abbey Road''의 상업적 성공에 기여하여 이전 모든 앨범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35]

이후, 매카트니는 1993년 라이브 앨범 《폴 이즈 라이브》의 제목과 재킷 사진(《애비 로드》의 패러디)을 통해 사망설을 유머러스하게 활용했다.[71]

1969년 10월 말까지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미스터리 투어의 "더 발라드 오브 폴", 빌리 셰어즈 앤 더 올 아메리칸스의 "브라더 폴", 호세 펠리시아노의 변명인 워블리 핀스터의 "쏘 롱 폴"이다.

캐피털 레코드의 가수 테리 나이트영어는 드럼의 링고 스타가 도중에 퇴출한 《화이트 앨범》의 제작 현장을 목격한 인물인데, 당시 비틀즈의 해산을 노래한 "세인트 폴"을 1969년 5월에 발표했다. 이 곡은 빌보드의 "버블링 언더 핫 100 싱글"을 서서히 상승하여 6월 후반에는 114위까지 올랐지만, 몇 달 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고'''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주목받으면서 곧 잊혀졌다[69]

이 설을 소재로 한, 유명 변호사 프랜시스 리 베일리(Francis Lee Bailey)가 사회를 맡은 TV 프로그램이 1969년 11월 30일 뉴욕의 WWOR-TV에서 방송되었다. 프로그램에서 베일리는 프레드 레이버(Fred LaBour)와 기타 "증인"에게 소문에 대한 반대 심문을 했지만, 결론은 시청자의 판단에 맡겨졌다. 녹화에 앞서 레이버가 그 기사는 농담으로 쓴 것이라고 말하자 베일리는 한숨을 쉬며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니, 그걸 명심해 주게"라고 답했다고 한다[62]

이후 레논과 매카트니는 각자 자신들의 작품에서 폴 사망설에 언급했다. 레논은 1971년의 "How Do You Sleep?"에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을 "프릭"으로 표현했다[70]

6. 4. 레논의 언급

1971년, 존 레논은 노래 "How Do You Sleep?"에서 매카트니의 인격을 공격하며, 사망설 이론가들을 "괴짜"라고 묘사했다.[70] 레논은 이 곡에서 "그들이 당신이 죽었다고 말했을 때 옳았다"고 언급했다.[35]

6. 5. 분석과 유산

"폴은 죽었다" 현상은 사회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학문 분야에서 연구 대상이 되었다. 바바라 수첵은 사망설을 "아름다운 청년이 죽어 신으로 부활하는 전형적인 신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보았다. 랄프 로스노우와 게리 파인은 사망설의 인기가 참여자들이 부담 없이 단서를 찾는 공유된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카미유 파글리아(Camille Paglia)는 사망설을 고대 그리스 전통과 연결하여, 록 음악의 "예쁘고 긴 머리의 소년들"이 양성을 매료시키는 현상으로 해석했다.[39]

피터 도거트(Peter Doggett)는 "폴은 죽었다"라는 이론의 근본은 논리에 어긋나지만, 1963년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 사실은 쿠데타였다는 음모론에 직면한 시민들의 분위기 속에서 그 인기는 이해할 수 있다고 썼다. 이언 맥도널드(Ian MacDonald)는 그의 저서 ''Revolution in the Head''에서 비틀스가 특히 화이트 앨범의 "Glass Onion" 트랙에서 레논이 다른 비틀스 노래에 대한 언급을 포함시켜 단서를 찾도록 유도함으로써 현상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16] 맥도널드는 이를 록 음악 청중이 환각제를 사용하면서 조장된 "정신적 유행병"과 앨범의 백색 앨범에 대한 찰스 맨슨의 살인적인 해석과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1980년 레논 살해로 확대된 현상과 함께 묶는다.

21세기에도 사망설은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28] 모큐멘터리 및 다큐멘터리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28] 스티브 터너(Steve Turner)는 2016년 저서에서 "그 이론은 여전히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2009년 ''Wired Italia'' 잡지 기사를 인용했는데, 여기에는 폴 매카트니의 alleged 사망 전후 사진을 비교하여 두개골 특징을 측정한 두 명의 법의학 연구 컨설턴트의 분석이 실렸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66년 11월 이후 이미지에 나타난 사람은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40]

1969년 10월 말까지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미스터리 투어의 "더 발라드 오브 폴", 빌리 셰어즈 앤 더 올 아메리칸스의 "브라더 폴", 호세 펠리시아노의 변명인 워블리 핀스터의 "쏘 롱 폴"이 있다.

7.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폴은 죽었다"는 대중문화에서 수없이 언급되었다.


  • 1970년 6월호 DC 코믹스의 만화 ''배트맨''(#222)에는 "죽었다... 살아있는 것으로 증명될 때까지"라는 이야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올리버 트위스트 밴드의 사울이 사망하여 대역으로 교체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만화의 표지에는 로빈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뒷면을 모방한 앨범을 들고 있다.[43][44]
  • 1972년 National Lampoon 코미디 앨범 ''Radio Dinner''에는 앨범의 게이트폴드에 역재생 부분과 메모를 포함하여 가짜 사건을 패러디한 몇 가지 발표된 "단서"가 있다.[45][46]
  • 더 러틀스의 1978년 텔레비전 영화로 비틀즈의 역사를 풍자한 ''All You Need Is Cash''에서 사망한 밴드 멤버로 추정되는 인물은 조지 해리슨 캐릭터인 스티그 오하라로 바뀌었는데, 그는 "워터 베드 상점에서 화재로" 사망하고 마담 투소 밀랍 인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해리슨이 "조용한 비틀"이라는 평판을 바탕으로 "스티그는 죽었다"는 이론은 영화에서 그의 대화 부족과 러틀스의 ''Shabby Road'' 앨범 표지에 바지가 없는 모습과 같은 단서로 뒷받침되었다.[47]
  • 1993년 2월 13일 ''Saturday Night Live'' 에피소드에서 폴 매카트니는 The Chris Farley Show에 출연하여 크리스 팔리가 그의 경력의 일부를 기억하는지 질문했다. "폴은 죽었다" 소문에 대해 팔리는 도시 전설을 설명한 다음 "그것은, 음, 속임수였죠, 그렇죠?"라고 물었고 매카트니는 "네. 저는 실제로 죽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 매카트니는 1993년 라이브 앨범의 제목을 이 소문을 언급하여 ''Paul Is Live''로 정했다. 그는 또한 ''Abbey Road'' 앨범 표지와 단서를 패러디한 슬리브로 이 앨범을 발표했다.
  • 1995년 비디오 "Free as a Bird"는 1970년대 후반 레논이 녹음하고 매카트니, 해리슨, 스타가 밴드의 ''Anthology'' 프로젝트를 위해 완성한 곡으로, 비틀즈가 1960년대에 미친 영향과 관련된 다른 신화들과 함께 "폴은 죽었다"를 언급한다. 저자 게리 번스에 따르면 이 비디오는 1969년 사기와 동일한 "기호학적 과잉"에 빠져서 집요한 단서 찾기를 "조롱"한다.
  • 1995년 ''The Simpsons'' 에피소드 "Lisa the Vegetarian"에서 폴 매카트니가 게스트로 출연하여 자신의 노래 "Maybe I'm Amazed"를 거꾸로 재생하면 렌즈콩 수프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이 노래는 엔딩 크레딧에서 재생되며, 거꾸로 재생하면 앞서 언급한 레시피뿐만 아니라 매카트니 자신이 "아, 그런데, 저는 살아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48]
  • 1995년 Yo La Tengo 앨범 Electr-O-Pura의 수록곡 "Paul Is Dead"
  • 2010년, 미국 작가 앨런 골드셔는 매시업 소설 ''Paul Is Undead: The British Zombie Invasion''을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링고 스타를 제외한 모든 비틀즈 멤버가 좀비로 묘사되어 있다.[49]
  • ''Paul McCartney Really Is Dead: The Last Testament of George Harrison''는 2010년 가짜 다큐멘터리로 조엘 길버트가 감독했으며, 1999년 12월 30일에 칼에 찔린 후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믿는 조지 해리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이다.[50] 이 영화는 매카트니가 리타라는 소녀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영국 정보기관이 그를 대역으로 교체하는 은폐 작전을 조율했다고 밝힌다. 이 영화는 조지 해리슨을 사칭한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아 매카트니가 죽었다는 노래와 앨범 아트에 남겨진 단서를 아카이브 영상과 재연을 통해 설명한다.[51]
  • 2015년, 인디 록 밴드 EL VY는 "Paul Is Alive"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비틀마니아를 언급하는 가사가 포함되어 있고[52] 1969년 소문을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다.[53]
  • 2018년 코미디 단편 영화 ''Paul Is Dead''는 매카트니가 음악 수련회에서 사망하고 빌리 시어스라는 대역으로 교체되는 사건을 묘사한다.[54]
  • 파올로 배론과 에르네스토 카르보네티가 공동 제작한 그래픽 노블 ''Paul Is Dead''는 2020년 Image Comics에서 영어로 출판되었다.
  • 2023년, 미국의 슈퍼그룹 Boygenius는 원래 "Paul is Dead"로 불리려 했던 "Revolution 0"라는 노래를 발표했다.[55]


1969년 10월 말까지 폴 사망설을 토대로 한 여러 곡들이 발표되었다. 미스터리 투어의 "더 발라드 오브 폴", 빌리 셰어즈 앤 더 올 아메리칸스의 "브라더 폴", 호세 펠리시아노의 변명인 워블리 핀스터의 "쏘 롱 폴"이다.

캐피털 레코드의 가수 테리 나이트영어는 드럼의 링고 스타가 도중에 퇴출한 《화이트 앨범》의 제작 현장을 목격한 인물인데, 당시 비틀즈의 해산을 노래한 "세인트 폴"을 1969년 5월에 발표했다. 이 곡은 빌보드의 "버블링 언더 핫 100 싱글"을 서서히 상승하여 6월 후반에는 114위까지 올랐지만, 몇 달 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고''' 폴 매카트니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주목받으면서 곧 잊혀졌다[69]

이 설을 소재로 한, 유명 변호사 프란시스 리 베일리(Francis Lee Bailey)가 사회를 맡은 TV 프로그램이 1969년 11월 30일 뉴욕의 WWOR-TV에서 방송되었다. 프로그램에서 베일리는 프레드 레이버(Fred LaBour)와 기타 "증인"에게 소문에 대한 반대 심문을 했지만, 결론은 시청자의 판단에 맡겨졌다. 녹화에 앞서 레이버가 그 기사는 농담으로 쓴 것이라고 말하자 베일리는 한숨을 쉬며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니, 그걸 명심해 주게"라고 답했다고 한다[62]

이후 레논과 매카트니는 각자 자신들의 작품에서 폴 사망설에 언급했다. 레논은 1971년의 "How Do You Sleep?"에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을 "프릭"으로 표현했다[70]。 또 매카트니는 1993년의 라이브 앨범 《폴 이즈 라이브》의 타이틀과 재킷 사진(《애비 로드》의 재킷의 "숨겨진 단서")을 사망설을 역이용한 패러디로 삼았다[71]

폴 사망설을 주제로 한 서적[72][73]과 영화 [74][75][76]는 적지 않아, 여러 고찰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57][77], 팝 문화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왔다[78]。 예를 들어 코믹스에서는 "배트맨"에서 1970년에 사망설이 패러디로 다루어진 적이 있으며[79],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도 1990년에 코미디 터치로 그려진 적이 있다[80]카탈루냐의 비누 오페라 "el cor de la ciutat"의 2006년 에피소드에서도 화제가 되었으며[81], "와이어드 이탈리아(Wired Italia)" 잡지의 2009년 기사에서는 사망 추정 시기 전후에 찍힌 매카트니의 사진을 비교하는 기획이 진행되었다[82]

2010년에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폴 매카트니는 정말 죽었나 - 조지 해리슨의 유언?"이 비디오로 발매되었다. 그 소문이 진짜라고 말하는 "자칭 조지 해리슨"의 목소리를 담은 가짜 파운드 푸티지의 음성 테이프를 주역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이었다[83]

7. 1. 코믹스와 만화

1970년 6월호 DC 코믹스의 만화 제목 ''배트맨''(#222)에는 "죽었다... 살아있는 것으로 증명될 때까지"라는 이야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올리버 트위스트 밴드의 사울이 사망하여 대역으로 교체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만화의 표지에는 로빈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뒷면을 모방한 앨범을 들고 있다.[43][44] 1972년 National Lampoon 코미디 앨범 ''Radio Dinner''에는 앨범의 게이트폴드에 역재생 부분과 메모를 포함하여 가짜 사건을 패러디한 몇 가지 발표된 "단서"가 있다.[45][46] 더 러틀스의 1978년 텔레비전 영화로 비틀즈의 역사를 풍자한 ''All You Need Is Cash''에서 사망한 밴드 멤버로 추정되는 인물은 조지 해리슨 캐릭터인 스티그 오하라로 바뀌었는데, 그는 "워터 베드 상점에서 화재로" 사망하고 마담 투소 밀랍 인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파올로 배론과 에르네스토 카르보네티가 공동 제작한 그래픽 노블 ''Paul Is Dead''는 2020년 Image Comics에서 영어로 출판되었다. 2018년 코미디 단편 영화 ''Paul Is Dead''는 매카트니가 음악 수련회에서 사망하고 빌리 시어스라는 대역으로 교체되는 사건을 묘사한다.[54]

7. 2. TV 프로그램

1970년 6월, DC 코믹스의 만화 ''배트맨''(#222)에는 "죽었다... 살아있는 것으로 증명될 때까지"라는 이야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올리버 트위스트 밴드의 사울이 사망하여 대역으로 교체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만화의 표지에는 로빈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뒷면을 모방한 앨범을 들고 있다.[43][44] 1972년 National Lampoon 코미디 앨범 ''Radio Dinner''에는 앨범의 게이트폴드에 역재생 부분과 메모를 포함하여 가짜 사건을 패러디한 몇 가지 발표된 "단서"가 있다.[45][46] 더 러틀스의 1978년 텔레비전 영화 ''All You Need Is Cash''에서는 조지 해리슨 캐릭터인 스티그 오하라가 "워터 베드 상점에서 화재로" 사망하고 마담 투소 밀랍 인형으로 대체되었다는 설정이 등장한다.[47]

1993년 2월 13일 ''Saturday Night Live'' 에피소드에서 폴 매카트니는 크리스 팔리가 진행하는 The Chris Farley Show에 출연하여 "폴은 죽었다"는 소문에 대해 질문을 받고 "네. 저는 실제로 죽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1995년 ''The Simpsons'' 에피소드 "Lisa the Vegetarian"에서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노래 "Maybe I'm Amazed"를 거꾸로 재생하면 렌즈콩 수프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하며, 엔딩 크레딧에서 이 노래를 거꾸로 재생하면 레시피와 함께 "아, 그런데, 저는 살아있어요"라는 매카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48]

2010년, 미국 작가 앨런 골드셔는 매시업 소설 ''Paul Is Undead: The British Zombie Invasion''을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링고 스타를 제외한 모든 비틀즈 멤버가 좀비로 묘사되어 있다.[49] ''Paul McCartney Really Is Dead: The Last Testament of George Harrison''는 2010년 가짜 다큐멘터리로, 매카트니가 리타라는 소녀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영국 정보기관이 그를 대역으로 교체하는 은폐 작전을 조율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50][51] 2018년 코미디 단편 영화 ''Paul Is Dead''는 매카트니가 음악 수련회에서 사망하고 빌리 시어스라는 대역으로 교체되는 사건을 묘사한다.[54]

7. 3. 음악

1970년 6월호 DC 코믹스의 만화 제목 ''배트맨''(#222)에는 "죽었다... 살아있는 것으로 증명될 때까지"라는 이야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올리버 트위스트 밴드의 사울이 사망하여 대역으로 교체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만화의 표지에는 로빈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뒷면을 모방한 앨범을 들고 있다.[43][44] 1972년 National Lampoon 코미디 앨범 ''Radio Dinner''에는 앨범의 게이트폴드에 역재생 부분과 메모를 포함하여 가짜 사건을 패러디한 몇 가지 발표된 "단서"가 있다.[45][46]

더 러틀스의 1978년 텔레비전 영화로 비틀즈의 역사를 풍자한 ''All You Need Is Cash''에서 사망한 밴드 멤버로 추정되는 인물은 조지 해리슨 캐릭터인 스티그 오하라로 바뀌었는데, 그는 "워터 베드 상점에서 화재로" 사망하고 마담 투소 밀랍 인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해리슨이 "조용한 비틀"이라는 평판을 바탕으로 "스티그는 죽었다"는 이론은 영화에서 그의 대화 부족과 러틀스의 ''Shabby Road'' 앨범 표지에 바지가 없는 모습과 같은 단서로 뒷받침되었다.[47]

1993년 2월 13일 ''Saturday Night Live'' 에피소드에서 폴 매카트니는 The Chris Farley Show에 출연하여 그의 경력의 일부를 기억하는지 질문했다. "폴은 죽었다" 소문에 대해 크리스 팔리는 도시 전설을 설명한 다음 "그것은, 음, 속임수였죠, 그렇죠?"라고 물었고 매카트니는 "네. 저는 실제로 죽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매카트니는 1993년 라이브 앨범의 제목을 이 소문을 언급하여 ''Paul Is Live''로 정했다. 그는 또한 ''Abbey Road'' 앨범 표지와 단서를 패러디한 슬리브로 이 앨범을 발표했다.

1995년 비디오 "Free as a Bird"는 1970년대 후반 레논이 녹음하고 매카트니, 해리슨, 스타가 밴드의 ''Anthology'' 프로젝트를 위해 완성한 곡으로, 비틀즈가 1960년대에 미친 영향과 관련된 다른 신화들과 함께 "폴은 죽었다"를 언급한다. 저자 게리 번스에 따르면 이 비디오는 1969년 사기와 동일한 "기호학적 과잉"에 빠져서 집요한 단서 찾기를 "조롱"한다.

1995년 ''The Simpsons'' 에피소드 "Lisa the Vegetarian"에서 폴 매카트니가 게스트로 출연하여 자신의 노래 "Maybe I'm Amazed"를 거꾸로 재생하면 렌즈콩 수프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이 노래는 엔딩 크레딧에서 재생되며, 거꾸로 재생하면 앞서 언급한 레시피뿐만 아니라 매카트니 자신이 "아, 그런데, 저는 살아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48] 1995년 Yo La Tengo 앨범 Electr-O-Pura의 수록곡 "Paul Is Dead"도 있다.

2010년, 미국 작가 앨런 골드셔는 매시업 소설 ''Paul Is Undead: The British Zombie Invasion''을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링고 스타를 제외한 모든 비틀즈 멤버가 좀비로 묘사되어 있다.[49] ''Paul McCartney Really Is Dead: The Last Testament of George Harrison''는 2010년 가짜 다큐멘터리로 조엘 길버트가 감독했으며, 1999년 12월 30일에 칼에 찔린 후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믿는 조지 해리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이다.[50] 이 영화는 매카트니가 리타라는 소녀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영국 정보기관이 그를 대역으로 교체하는 은폐 작전을 조율했다고 밝힌다. 이 영화는 조지 해리슨을 사칭한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아 매카트니가 죽었다는 노래와 앨범 아트에 남겨진 단서를 아카이브 영상과 재연을 통해 설명한다.[51]

2015년, 인디 록 밴드 EL VY는 "Paul Is Alive"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비틀마니아를 언급하는 가사가 포함되어 있고[52] 1969년 소문을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다.[53] 2018년 코미디 단편 영화 ''Paul Is Dead''는 매카트니가 음악 수련회에서 사망하고 빌리 시어스라는 대역으로 교체되는 사건을 묘사한다.[54] 파올로 배론과 에르네스토 카르보네티가 공동 제작한 그래픽 노블 ''Paul Is Dead''는 2020년 Image Comics에서 영어로 출판되었다. 2023년, 미국의 슈퍼그룹 Boygenius는 원래 "Paul is Dead"로 불리려 했던 "Revolution 0"라는 노래를 발표했다.[55]

7. 4. 기타

대중문화에서 이 전설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었다.

  • 1970년 6월호 DC 코믹스의 만화 배트맨 #222에는 "죽었다... 살아있는 것으로 증명될 때까지"라는 이야기가 실렸는데, 올리버 트위스트 밴드의 사울이 사망하여 대역으로 교체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만화 표지에는 로빈이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뒷면을 모방한 앨범을 들고 있다.[43][44]
  • 1972년 National Lampoon 코미디 앨범 ''Radio Dinner''에는 앨범의 게이트폴드에 역재생 부분과 메모를 포함하여 가짜 사건을 패러디한 몇 가지 발표된 "단서"가 있다.[45][46]
  • 더 러틀스의 1978년 텔레비전 영화 ''All You Need Is Cash''에서 사망한 밴드 멤버로 추정되는 인물은 조지 해리슨 캐릭터인 스티그 오하라로 바뀌었는데, 그는 "워터 베드 상점에서 화재로" 사망하고 마담 투소 밀랍 인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스티그는 죽었다"는 이론은 영화에서 그의 대화 부족과 러틀스의 ''Shabby Road'' 앨범 표지에 바지가 없는 모습과 같은 단서로 뒷받침되었다.[47]
  • 1993년 2월 13일 ''Saturday Night Live'' 에피소드에서 폴 매카트니는 The Chris Farley Show에 출연하여 크리스 팔리가 그의 경력의 일부를 기억하는지 질문했다. "폴은 죽었다" 소문에 대해 팔리는 도시 전설을 설명한 다음 "그것은, 음, 속임수였죠, 그렇죠?"라고 물었고 매카트니는 "네. 저는 실제로 죽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 매카트니는 1993년 라이브 앨범의 제목을 이 소문을 언급하여 ''Paul Is Live''로 정했다. 그는 또한 ''Abbey Road'' 앨범 표지와 단서를 패러디한 슬리브로 이 앨범을 발표했다.
  • 1995년 비디오 "Free as a Bird"는 1970년대 후반 레논이 녹음하고 매카트니, 해리슨, 스타가 밴드의 ''Anthology'' 프로젝트를 위해 완성한 곡으로, 비틀즈가 1960년대에 미친 영향과 관련된 다른 신화들과 함께 "폴은 죽었다"를 언급한다.
  • 1995년 ''The Simpsons'' 에피소드 "Lisa the Vegetarian"에서 폴 매카트니가 게스트로 출연하여 자신의 노래 "Maybe I'm Amazed"를 거꾸로 재생하면 렌즈콩 수프 레시피가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이 노래는 엔딩 크레딧에서 재생되며, 거꾸로 재생하면 앞서 언급한 레시피뿐만 아니라 매카트니 자신이 "아, 그런데, 저는 살아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48]
  • 1995년 Yo La Tengo 앨범 Electr-O-Pura의 수록곡 "Paul Is Dead"가 있다.
  • 2010년, 미국 작가 앨런 골드셔는 매시업 소설 ''Paul Is Undead: The British Zombie Invasion''을 출판했는데, 여기에는 링고 스타를 제외한 모든 비틀즈 멤버가 좀비로 묘사되어 있다.[49]
  • ''Paul McCartney Really Is Dead: The Last Testament of George Harrison''는 2010년 가짜 다큐멘터리로 조엘 길버트가 감독했으며, 1999년 12월 30일에 칼에 찔린 후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믿는 조지 해리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이다.[50] 이 영화는 매카트니가 리타라는 소녀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영국 정보기관이 그를 대역으로 교체하는 은폐 작전을 조율했다고 밝힌다. 이 영화는 조지 해리슨을 사칭한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아 매카트니가 죽었다는 노래와 앨범 아트에 남겨진 단서를 아카이브 영상과 재연을 통해 설명한다.[51]
  • 2015년, 인디 록 밴드 EL VY는 "Paul Is Alive"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비틀마니아를 언급하는 가사가 포함되어 있고[52] 1969년 소문을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다.[53]
  • 2018년 코미디 단편 영화 ''Paul Is Dead''는 매카트니가 음악 수련회에서 사망하고 빌리 시어스라는 대역으로 교체되는 사건을 묘사한다.[54]
  • 파올로 배론과 에르네스토 카르보네티가 공동 제작한 그래픽 노블 ''Paul Is Dead''는 2020년 Image Comics에서 영어로 출판되었다.
  • 2023년, 미국의 슈퍼그룹 Boygenius는 원래 "Paul is Dead"로 불리려 했던 "Revolution 0"라는 노래를 발표했다.[5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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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뉴스 McCartney 'Death' Rumors 196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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