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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궁중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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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궁중무용은 궁중에서 연행되던 춤으로, 기원과 목적,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창작 목적에 따라서는 국가와 왕실의 경사를 축하하거나, 조상 또는 선왕의 공적을 기리고, 군왕의 업적을 기리는 춤 등이 있으며, 기원에 따라 외국 수입, 민간 유입, 한국 창작 등으로 나뉜다. 현존하는 궁중무는 53종으로, 신라 4종, 고려 13종, 조선 36종이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는 향악무와 당악무로 구분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신라와 고려의 무용을 계승하여 궁중무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2. 분류

한국의 궁중무용은 그 기원과 목적,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2. 1. 창작 목적에 따른 분류

창작 목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국가와 왕가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춤
  • 조상 또는 선왕(先王)의 공적을 추모하고 찬양하기 위한 춤
  • 군왕의 위업과 업적을 송축(頌祝)하고 고취·선양하기 위한 춤

2. 2. 기원에 따른 분류

한국의 궁중무용은 그 기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분류설명
외국에서 수입된 춤외국에서 전래된 춤이다.
민간에서 발생되어 궁중으로 들어온 춤민간에서 유행하던 춤이 궁중으로 유입된 경우이다.
한국에서 창작된 춤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춤이다.
한국에서 창작되었으나 외국의 악곡이나 무용의 이름을 사용하는 춤춤은 한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외국의 악곡이나 무용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한국에서 창작되었으나 외국 무용의 형식을 띤 춤춤은 한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외국 무용의 형식을 차용한 경우이다.
한국에서 창작되었으나 연희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춤춤은 한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연희되는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경우이다.
기타 발생 경위가 정확하지 않은 춤기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춤이다.


3. 역사

한국 궁중무용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시대별로 다양한 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궁중무용은 53종으로, 신라시대 4종, 고려시대 13종, 조선시대 36종이다.[1]

3. 1. 신라시대

고대에는 어느 사회에서나 1년에 1~2차례 제천대회가 열려 제천과 함께 부족의식을 고취하고 가무백희(歌舞百戲)가 연행(演行)되었다. 이때의 가무백희는 무용, 음악, 기타 놀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형태였다. 신라시대의 궁중무는 신라악을 통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고려사 악지에는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신라의 가악(歌樂)으로 6종을 들고 있으나, 문헌비고 속악부에는 신라악으로 30여 종을 들고 있어, 7세기 후반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이전 시대의 악(樂)을 집성하여 후세에 전한 것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헌에서 '백희'라는 성어(成語)가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사기 권1 유리이사금 9년(32)의 '가배조(嘉俳條)'이다. 여기서 보이는 '가무백희'는 상세하지 않으나, 대체로 중국의 각저희, 즉 산악백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 무용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종목으로는 검무, 무애무, 처용무, 5기, 도솔가무 등을 들 수 있다.

3. 2.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궁중무는 향악무(鄕樂舞)와 당악무(唐樂舞)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는 고려사 악지(樂志)의 정재홀기(呈才笏記)에 속악정재(俗樂呈才)와 당악정재(唐樂呈才)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속악정재는 한국에서 발생한 것이고, 당악정재는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고려 때 향악무와 당악무 각각 6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용종류기록철에만 나오는 광수무(廣袖舞)는 무원(舞員) 수와 반주 악곡이 풍경지곡(豊慶之曲)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현재 재연(再演)이 불가능한, 이름만 남아있는 춤이다.[1]

3. 2. 1. 당악무와 향악무

신라 통일 이후 고려에 걸쳐서 당나라의 음악이 수입됨으로써 전부터 내려오던 음악과 양립하게 되었고, 당악의 대칭으로 향악이라 하게 되었다. 원래 악(樂)이라 함은 곡(曲)과 창(唱), 희와 무(舞)를 총칭하는 것이다. 당악에 향악의 이름이 사용됨으로써 정재(呈才)에 있어서도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라는 구별법이 생겼고, 따라서 당악에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는 춤을 '''당악무'''라 하고, 향악과 함께 하는 춤을 '''향악무'''라 하며, 좌와 우로 구별하기 위하여 이를 양부악(兩部樂)이라고도 했다.

일본에서 당나라의 음악을 좌방악(左坊樂), 고려 음악을 우방악(右坊樂)이라고 흔히 부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좌는 당악, 우는 향악을 가리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악은 반드시 당나라 음악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중국 계통의 속악(俗樂)을 통틀어 호칭하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당나라 계통의 음악과 송나라에서 들어온 교방악(敎坊樂)과 허다한 사악(詞樂)까지 합한 총칭이다. 향악이라면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고대로부터 계승되어 오던 한국의 재래음악 즉 민속악을 가리킨다고 하겠으며 이것은 곧 당악과의 대칭이라 할 것이다.

3. 3.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궁중무용의 전성기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춤을 계승하고 36종의 새로운 춤이 창작되는 등 다양한 춤들이 발전하였다. 이는 한국 궁중무용 전체 53종 중 36종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1]

참조

[1] 문서 재조(才操)를 드린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은 옛날에 궁중에서만 통용되던 술어이다.
[2] 문서 중이 보통 사람의 옷을 이르는 말
[3] 인용문
[4] 문서 타악기의 일종
[5] 문서 당나라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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