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인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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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인의 사적》(Gesta Hungarorum)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헝가리 연대기로, 카르파티아 분지 정복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13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 작성된 유일한 필사본이 존재하며, 익명의 저자는 벨라 3세의 공증인으로 추정된다. 이 연대기는 서문과 5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헝가리인들의 기원과 헝가리 왕국 귀족 가문의 족보를 다루고 있다. 《헝가리인의 사적》은 루마니아 민족주의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지만, 그 내용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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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인의 사적 | |
---|---|
개요 | |
제목 | 헝가리인의 사적 |
원어 제목 | Gesta Hungarorum |
종류 | 역사서 |
언어 | 라틴어 |
집필 시기 | 12세기 말 - 13세기 초 |
저자 | 불명의 저자 (Anonymus, "P. Magister"로 지칭) |
내용 | |
주제 | 헝가리의 역사 마자르족의 정복 |
범위 | 초기 헝가리 역사 (헝가리 정복 이전 시기부터 12세기 말까지) |
중요성 | 헝가리 역사에 대한 최초의 현존하는 책 헝가리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 |
특징 | |
서술 방식 | 연대기적 서술, 전설과 역사적 사실 혼합 |
자료 | 구전, 이전의 기록, 저자의 상상력 |
관점 | 헝가리 민족주의적 관점 |
영향 | |
후대 역사서 | 시몬 케자(Simon of Kéza)의 "헝가리인의 사적(Gesta Hunnorum et Hungarorum)" |
기타 | |
참고 | 헝가리 초기 역사에 대한 중요한 자료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혼합으로 인해 비판적 검토 필요 |
2. 배경
헝가리인 또는 마자르족은 11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들만의 알파벳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초기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무슬림, 비잔틴, 서유럽 저자들이 기록했다.[1] 예를 들어, 《풀다 연대기》, 프륌의 레기노의 《연대기》, 콘스탄티누스 7세의 《제국 통치론》에는 9세기 말과 10세기 초 카르파티아 분지 정복에 대한 동시대 또는 거의 동시대의 보고가 담겨 있다. 헝가리인들 사이에서는 구전 전통, 즉 노래와 발라드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보존했다.[1] 《채색 연대기》는 정복 당시 헝가리인들을 이끈 "일곱 명의 지도자"가 "자신들에 대한 시를 지어 서로 노래하며 세상에 명성을 얻고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리하여 그들의 후손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 이웃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뽐낼 수 있었다"고 명시했다.[1]
이 작품은 단 하나의 필사본으로 존재한다.[1] 코덱스(필사본)는 17x 크기이며, 빈 페이지 2개를 포함하여 24개의 엽(페이지)으로 구성되어 있다.[3] 코덱스의 첫 페이지는 원래 ''게스타''의 시작 부분을 담고 있었으나, 필사자가 텍스트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실수하여 비워졌다.[5][6] 이 작품은 고딕 소문자로 작성되었다.[7] 첫 페이지의 정교한 이니셜을 포함한 글자와 장식 스타일을 통해 이 필사본이 13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7][2] 필사자의 오류는 현존하는 필사본이 원본 작품의 사본임을 보여준다.[7][2] 예를 들어, 필사자는 비잔틴 제국에 대한 헝가리의 습격을 서술하는 텍스트에서 ''게스타''의 저자가 네오파트라스 (현재 그리스의 이파티)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맥락상 명백히 ''Cleopatram'' 대신 ''Neopatram''으로 썼다.[7]
《헝가리인의 사적》은 서문과 5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1]
《헝가리인의 사적》은 저자 생전이나 그 후 수세기 동안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1] 13세기 율리아누스 수사는 익명의 저자보다 한 세기 전의 작품인 《기독교 헝가리인의 업적》을 연구했고,[2] 후대 연대기들은 《사적》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익명의 저자가 헝가리 정복에 대한 설명 대부분을 지어냈다는 것을 동시대인들이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2]
《헝가리인의 사적》(Gesta Hungarorum)은 현존하는 최초의 헝가리 연대기이다.[2]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카르파티아 분지의 정복이며, 정복의 배경과 직후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칼라일 에이머 맥카트니와 안드라스 로나-타스를 포함한 많은 역사가들은 케자의 시몬의 연대기, 《채색 연대기》, 그리고 13~15세기에 제작된 다른 작품들이 《게스타》가 완성되기 전에 쓰여진 텍스트를 보존했다고 동의한다. 그들은 최초의 "헝가리 연대기"가 11세기 후반 또는 12세기 초에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이 고대 연대기의 존재는 후대 자료에 의해 증명된다. 1230년대 초 도미니크회 수도사 그룹의 여행에 대한 한 리카르두스의 보고서는 동부의 《대 헝가리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헝가리 기독교인의 사적》(Gesta Ungarorum Christianorum)이라는 연대기를 언급하고 있다. 1358년의 《채색 연대기》는[2] 11세기의 이교도 봉기와 관련하여 "헝가리인들의 행적에 관한 고대 서적"을 언급한다. 최초의 "헝가리 연대기"는 12~14세기에 여러 번 확장되고 다시 쓰여졌지만, 그 내용은 14세기 작품을 토대로만 재구성할 수 있다.
3. 필사본
17세기 초까지 필사본의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다.[8] 1601년과 1636년 사이에 빈의 황립 도서관 소장품이 되었다.[8] 이 시기에 궁정 사서 세바스티안 텐그나겔은 이 필사본을 "헝가리 국왕 벨라의 비서가 쓴 헝가리 초기 7명의 공작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등록했다.[8] 텐그나겔은 엽과 장에 번호를 추가했다.[8] 이 코덱스는 18세기 후반에 제본되었으며, 쌍두 독수리가 새겨진 가죽 표지로 묶였다.[8] 1933년 또는 1934년에 헝가리로 이관된 이 필사본은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9][10]
4. 저자
''헝가리인의 사적''의 저자는 1790년 그의 작품의 첫 헝가리어 번역이 출판된 이후로 익명의 작가로 알려져 왔다.[1] 저자는 스스로를 "가장 영광스러운 벨라, 사랑스러운 기억의 헝가리 왕의 공증인이자 때로는 마스터라고 불리는 P"라고 묘사했다.[2][3][4] 이 벨라 왕이 누구인지는 학계에서 논쟁 중인데, 헝가리에는 이 이름을 가진 왕이 4명이나 되기 때문이다.[5][6][7]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 왕을 1196년에 사망한 헝가리의 벨라 3세로 추정한다.[8][9][10]
익명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특정 학교에서 동창이었던 "가장 존경받는 사람 N"에게 헌정했다.[11][12] 그는 다레스 프리지우스에게 귀속된 ''트로이 역사''를 읽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다고 언급했다.[13] 또한 자신의 스승의 지시에 따라 트로이 전쟁에 관한 작품을 한 권으로 묶어 놓았다고 언급했다.[14] 익명의 작가는 헝가리 정복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헝가리 왕과 그 귀족들의 계보"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15] 익명의 작가를 벨라 3세 왕의 공증인으로 보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1200년경 또는 13세기의 첫 10년 동안 자신의 ''사적''을 썼다고 한다.[16][17]
''사적''에 언급된 지명을 연구한 결과, 익명의 작가는 오부다, 체펠 섬(오늘날 부다페스트 남쪽에 위치), 티사 강 상류 지역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오부다로 "돌 덮개로 흐르는 작은 강"을 포함하여 이전 지역의 12개 장소(정착지, 나룻배, 시내)를 언급했다. 그는 트란실바니아의 남부와 동부 지역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5. 구성
익명의 저자는 서문에서 헝가리인들의 초기 역사와 카르파티아 분지 정복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2] 또한 그는 왕족 아르파드 왕조와 헝가리 왕국의 귀족 가문의 족보에 대해 쓰고 싶어 했다.[3]
처음 일곱 개의 장은 헝가리인들의 전설적인 고향인 스키타이 또는 ''덴투모게르''와[4] 그곳으로부터의 출발에 대해 다룬다.[5] 첫 번째 장은 11세기 후반의 "헝가리 연대기"를 기반으로 하며, ''Exordia Scythica''와 프륌의 레기노의 연대기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6] 두 번째 장에서는 헝가리인들이 "훙구아르"[7](현재 우크라이나의 우즈호로드)의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8] 세 번째 장은 아르파드 왕조의 기원에 대한 토테미즘적 기독교 이전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으며, 앨모스의 출생 전에 매가 임신하는 엠서의 꿈을 이야기한다.[9] 다음 부분은 앨모스에 대해 묘사하며, 그가 "스키타이의 모든 왕자들보다 더 강력하고 현명했다"[10]고 언급하는데, 이는 구전이나 동시대 법률 문서의 일반적인 표현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11] 다섯 번째 장은 앨모스를 헝가리인들의 "지도자이자 주군"[12]으로 선출하는 것에 대해 기록하며, 혈맹 의식을 언급한다.[13] 이 부분에서 익명의 저자는 헝가리인들이 "소문으로 들었던 훈족의 왕 아틸라의 땅이었던 판노니아 땅을 스스로 찾기로 선택했다"[14]고 말하며, 아틸라를 앨모스의 조상으로 묘사한다.[15] 다음 장은 앨모스 선출 이후 헝가리 지도자들이 한 맹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앨모스의 후손이 통치권을 세습할 권리와 선출인 및 선출인의 자손이 왕국의 최고 관직을 맡을 권리를 확인하는 내용을 포함한다.[16] 일곱 번째 장에서 익명의 저자는 헝가리인들이 스키타이를 떠나 "에틸" 강과 "키예프 루스"를 거쳐 블라디미르-수즈달로 불리는 러시아를 지나 키예프로 가는 여정에 대해 기록한다.[17]
''게스타(Gesta)''의 다음 네 부분은 헝가리인들이 루스인 및 "쿠만인"과 벌인 전투에 대해 묘사한다. 익명의 저자가 키예프를 경유한 헝가리인들의 기록은 고대 "헝가리 연대기"를 기반으로 한다. 키예프를 거쳐 카르파티아 분지로 향하는 헝가리인들의 행진에 대한 언급은 ''러시아 원초 연대기''와 케자의 시몬, 그리고 뮐게른의 하인리히의 연대기에서도 발견된다. 익명의 저자는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이 정보를 ''트로이 이야기''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로맨스에서 차용한 생생한 전투 장면으로 보충했다. 익명의 저자는 루스인과 "쿠만인"이 헝가리인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다고 언급한다. 칼라일 에이머 맥카트니, 죄르피 죄르기, 빅토르 스피네이를 비롯한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가 원래 모든 유목 투르크 민족을 지칭했던 헝가리어 단어 ''쿤''을 잘못 해석하여, 그의 자료 중 하나에 언급된 ''쿤''을 그 시대의 쿠만인으로 오인했다는 데 동의한다. 후자는 12세기에 헝가리 군주에 대항하여 최소 두 번 루스 공국을 지원했는데, 이것이 익명의 저자의 실수를 설명해준다. ''게스타''의 아홉 번째 장은 루스인과 "쿠만" 왕자들이 앨모스에게 복종하는 것을 묘사한다. 익명의 저자는 또한 일곱 명의 쿠만 추장이 헝가리인에 합류한 방법을 기록하는데, 이는 죄르피에 따르면 카바르족 출신 귀족 가문의 구전 전통을 바탕으로 헝가리 부족 연맹에 카바르족이 통합된 기억을 보존했을 수 있다.
6. 평가 및 판본
1746년 요한 게오르크 폰 슈반트너가 《헝가리의 사적》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 출판했고,[1][2] 마티아스 벨이 서문을 썼다.[1] 할레 대학교와 괴팅겐 대학교 교수들은 곧 《사적》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루스 공국에 대한 시대착오적 묘사를 지적했다.[1] 슬로바키아 학자 유라이 스클레나르는 1780년대에 익명의 저자가 대 모라비아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1]
18세기 이후 《헝가리인의 사적》은 헝가리와 주변 국가들의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발라쿠룸 탄원서》 저자들이 익명의 저자 작품을 언급하며 젤루, 글라드, 메누모루트 등을 루마니아 역사의 중요 인물로 부각했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헝가리인의 사적》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알렉산드루 마게아루는 《사적》이 몇몇 연대기적 실수를 범하지만, 대체로 신뢰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3] 반면 칼라일 에일머 맥카트니는 "가장 모호하며, 가장 오해의 소지가 있는 초기 헝가리 텍스트"라고 비판했다.[4]
6. 1. 주요 판본
Johann Georg von Schwandtnerde가 1746년에 초판본을 출판한[1] 이후, 현대의 비평적 편집본 및 번역본(독일어, 영어 등)은 다음과 같다.[2]
출판년도 | 저자 | 제목 | 비고 |
---|---|---|---|
1970 | 데죄 데르체니 | 헝가리 채색 연대기: Chronica de Gestis Hungarorumla | |
1991 | 가브리엘 실라기 | Die "Gesta Hungarorum" des anonymen Notarsde | 독일어 번역과 함께하는 비평적 편집 |
2010 | 마틴 라디, 라슬로 베스프레미 | 익명의 벨라 왕의 서기: 헝가리인의 업적 |
6. 2. 루마니아 민족주의와의 관계
18세기 말 트란실바니아 루마니아인의 해방을 요구하면서, 《발라쿠룸 탄원서》의 저자들은 익명의 저자의 작품을 언급했다.[17] 익명의 저자가 언급한 세 영웅, 즉 젤루, 글라드, 메누모루트는 루마니아 역사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루마니아 역사가들은 그들을 《헝가리인의 사적》에 등장하는 루마니아 통치자들로 제시하며, 이는 헝가리 정복 당시 현재의 루마니아 영토에 루마니아 국가가 존재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루마니아 정부는 심지어 1987년 《더 타임스》에 익명의 저자가 루마니아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전면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의 《헝가리인의 사적》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신뢰할 만한 자료로 여기는 반면, 네아구 쥬바라와 같이 익명의 저자의 작품의 사실적 정확성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다른 이들은 그 정보에 의문을 제기한다. 칼라일 에일머 맥카트니는 익명의 저자의 작품을 "가장 유명하고, 가장 모호하며, 가장 짜증나고, 가장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모든 초기 헝가리 텍스트"라고 묘사했으며, "이것은 그가 젤루라는 인물 전체를 소개했거나 트란실바니아에 발라크족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다"라고 썼다. 폴 로버트 마고치 역시 《사적》을 신뢰할 수 없는 작품으로 간주했다. 루마니아계 영국 역사가 데니스 델레탄트는 익명의 저자가 사실보다 전설과 역사적 전통에 의존한다는 점을 비판하며 논쟁의 여지가 있는 연대기라는 의견에 동의한다.[16] 《사적》의 첫 번째 영어 번역본 번역자인 마틴 레이디는 "가장 잘해야 동시대의 상황을 거꾸로 투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7]
참조
[1]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2]
서적
The Hungarian Illuminated Chronicle
[3]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4]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5]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6]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7]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8]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9]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0]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1]
서적
The Chronicle of Regino of Prüm
[12]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3]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4]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5]
서적
Anonymus, Notary of King Béla: The Deeds of the Hungarians
[16]
서적
Historians and the History of Transylvania
Columbia University Press
[17]
서적
The deeds of the Hungarians.
https://discovery.uc[...]
The Slavonic and East European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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